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99화 (99/224)

099. 마스크를 써라 (3)

“이쪽……이라고요?”

고천수가 가리키는 방향을 들은 배영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아는 겁니까?”

그야 마스크 탐색기가 그쪽 방향을 가리키고 있으니까.

그래도 고천수는 배영호가 의문을 보이는 걸 이해하기는 했다.

‘이상할 테지.’

배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는 놈이 어디로 가자고 하는 건 아무리 봐도 우스운 일이긴 했다.

“그럼 그냥 이쪽으로 안내하면 됩니까?”

“안내야 어렵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나머지 승무원들은 쭈뼛대면서도 처음과 같은 경계심을 보이진 않았다.

-ㅋㅋㅋㅋ 천수한테 넘어온 듯.

-천수 아니었으면 완전 에바였자너~.

-살려줬는데 믿어야지, 암.

시청자들의 말대로 레드 좀비가 몰려올 때 전략을 짜 줬던 게 확실히 먹힌 듯했다.

“이쪽으로.”

승무원들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을 때, 기관사는 먼저 앞서 나가며 길을 안내했다.

“가자, 흑구야.”

고천수는 더 이상 기다릴 것 없이 그를 따라 나갔다.

“앗! 같이 갑시다!”

배영호가 놀란 목소리를 뱉으며 다른 승무원들과 함께 고천수에게 따라붙었다.

그렇게 일행이 모여 함께 향한 곳은 분위기 있게 꾸며진 한 레스토랑이었다.

-이런 데에 마스크가?

-약국 같은 데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주방?”

마스크 탐색기를 보던 고천수가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거기에는 ‘특급 방진 마스크 5개. 코앞에 있음.’이라는 알림이 뜨고 있었다.

그리고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은 다름 아닌 주방 쪽이었다.

‘이런 데에 왜 마스크가.’

의문을 가지는 사이, 배영호가 고천수를 흘깃거리며 물었다.

“저기, 근데 그건 뭡니까?”

겉모습과 다르게 회중시계가 아니란 건 배영호도 알아봤을 것이었다.

“아, 이거요.”

고천수는 마스크 탐색기의 뚜껑을 닫으며 말했다.

“회중시계요.”

-ㅋㅋㅋㅋㅋ

-또 시작이네. ㅋㅋㅋ

“네?”

배영호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웅얼거렸다.

“하지만 시계 같지가 않았…….”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필요한 걸 찾는 게 중요하지.”

고천수는 배영호의 어깨를 둘러잡으며 낮게 읖조렸다.

“언제 어디서 괴물들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배영호 씨, 당신은 이 배에 대해서 잘 아는 베테랑 승무원이죠?”

“베, 베테랑…….”

“적어도 저보다는 잘 알겠죠. 맞아요, 틀려요.”

갑작스러웠는지 배영호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면서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그쵸? 잘 알기는 하겠죠?”

“그럼 역시 믿고 부탁할 수밖에 없네요.”

고천수는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봤다시피 저는 괴물들하고는 잘 싸워요. 근데 이 배에 대해서는 아는 게 아무래도 적을 수밖에 없죠.”

“음.”

“그러니까 안내 좀 잘 부탁해요.”

고천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신이 아끼는 이 배, 구할 수 있게 도와줄 테니까.”

배와 선장에 대한 과잉 충성으로 외부인인 고천수를 경계하고 있는 거라면 팀워크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일단 새로 합류한 일원으로서의 능력을 보여 준 뒤, 이렇게 그가 소중히 여기는 것에 대한 존중을 보여 주면 되는 일이었다.

“아.”

물론 안 먹혀도 고천수는 상관없긴 했지만, 다행히도 배영호는 그렇게까지 몰상식한 부류는 아니었다.

“네, 네. 뭐, 저도…….”

떨떠름해 하면서도 배영호는 고천수가 제안한 관계를 긍정하고 받아들였다.

“좋습니다, 배영호 씨. 그럼 가 볼까요.”

고천수는 맨 앞에 서있는 기관사를 지나쳐 먼저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미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듯, 주방은 늘어진 각종 식재료와 요리 도구들로 엉망이 되어있었다.

‘여기에 마스크가 있을 만한 곳이…….’

고천수가 주위를 둘러보고 있자니, 기관사가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고천수 씨, 저쪽이 아닐까 합니다.”

그가 가리킨 곳에 웬 철문이 하나 있었다.

“저쪽? 저기는 어딥니까?”

“다용도 창고입니다.”

기관사는 확신을 가진 표정을 지었다.

“비상용이든 뭐든 누가 뭔가 가져다 두었다면 저기가 제격일 겁니다.”

“그렇군요.”

듣자마자 걸음을 옮기는 고천수와 함께 이동하며 기관사가 물었다.

“근데 이 근처에 마스크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아신 겁니까?”

“아, 그거요.”

고천수는 당황하지도 않고 태연하게 답했다.

“송하나 씨가 이 부근 한 번 보라고 하던데.”

“네?”

“쉐프들이 안전에 신경 많이 썼었다고, 비상 용품도 더 쟁여 놓은 걸로 안다고.”

둘러대기 내용으로는 어설프기 짝이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마스크를 찾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고천수는 도끼를 치켜든 채로 창고 문 앞에 달라붙었다.

“흠.”

문에 달린 창을 들여다보았지만 특별한 건 보이지 않았다.

무슨 진열장 같은 것만 늘어서 있는 게 확인될 뿐이었다.

똑똑.

고천수가 손으로 문을 한 번 두드려 보았다.

크아아.

그러자 문 안쪽에서 좀비 한 마리가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응, 그렇지. 이런 데엔 하나씩 또 있어야지?”

고천수는 도끼를 치켜세운 채 기관사에게 말했다.

“기관사님, 부탁합니다.”

“아, 네.”

기관사는 문을 붙잡고 고천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둘…….

“셋!”

그렇게 외치며 기관사가 문을 열어젖힌 순간, 좀비가 고천수를 발견하고 냅다 뛰어들었다.

콰악!

상대도 안 됐다.

고천수가 휘두른 도끼가 좀비의 목에 정확히 박혀 버렸다.

털썩.

무너지는 좀비에게서 도끼를 빼내는 고천수를 보며 기관사가 감탄한 목소리를 뱉었다.

“아까도 그렇지만 정말 대단하네요.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망설이지 말아야 하니까요.”

좀비는 사람을 보면 뭐라 계획을 짤 것도 없이 달려드는 몬스터였다.

괜히 주춤대다가 좀비에게 어디 한 군데 붙잡히기 전에 먼저 행동에 나서는 게 좋았다.

“어디…….”

고천수는 창고 안으로 들어가 진열장을 살폈다.

-오오!

-있다있다!

“와, 형님들도 보셨죠?”

고천수는 눈앞에 진열돼 있는 마스크 가방을 보면서 탄식을 흘렸다.

“진짜 있네요, 이게.”

어림잡아도 10개가 넘어 보였다.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 다 쓰고도 남을 양이었다.

“고천수 씨, 괜찮습니까?”

“네네. 괜찮아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기관사에게 대꾸하며 고천수는 마스크들을 살펴보았다.

‘진짜 거의 방독면 수준…….’

점화통 같이 생긴 게 호흡구 쪽에 두 개나 달려있고, 고글까지 있는 엄청난 마스크였다. 포장지에 적혀있는 제독 기능만 봐도 웬만한 분진은 걸러낼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왈!

사람 수만큼의 마스크는 확보했다.

하지만 고천수는 달려오는 흑구를 보고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머야머야.

-흑구 거 없어?

-10개도 넘어 보이는디.

10개가 넘어 봤자 흑구가 쓸 건 없었다.

사람의 얼굴에 맞게 만들어진 마스크가 흑구에게 맞을 리가 없던 것이다.

“후우, 제기랄.”

고천수는 창고 안까지 들어오려는 흑구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냥 개라더니 그냥 개는 아니지?

-천수 외로움 잘 탐.

-흑구 개목걸이 걸어줄 때부터 궁상이었잖아.

왈!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 간에 흑구는 경쾌한 몸동작으로 창고 안에 들어섰다.

“먹을 건 냉장고에 있어, 인마.”

괜한 미안함에 고천수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왈!

안쪽으로 더 들어온 흑구가 진열장을 올려다보며 한 번 짖었다.

“먹을 거 없다니까.”

고천수는 흑구가 올려다보고 있는, 포장된 마스크들 중 하나를 집어 들며 말했다.

“자, 봐. 그냥 마스크…….”

순간 그는 몸을 움찔했다.

“뭐야.”

뭔가 달랐다.

포장지 겉면에 Dog라고 적혀 있었다.

“뭐지……?”

뭔가 은어인가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설명에 확실히 개에게 착용하라고 영어로 적혀 있었다. 이건 라지 사이즈라는 것을 보니 대형견용인 듯했다.

“뭐냐고요, 형님들.”

-갑자기? ㅋㅋㅋ

-왜 우리한테 물어봐.

-개한테 끼는 건가 보지.

개에게 방진 마스크를 낀다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애완견도 탈 수 있는 크루즈 선이라서……?’

애견 숍이 있던 걸 보면 애완견이 탑승할 수 있는 크루즈 선인 건 맞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해가 잘 안 되긴 했다.

왈!

자기한테 낄 마스크가 있다는 걸 알아채고 여기에 온 흑구가 말이다.

“스읍.”

고천수는 진열장을 다시 둘러보다가 눈을 크게 떴다.

사람이 낄 수 있는 건 5개였다.

나머지는 개나 고양이가 끼는 것들이 사이즈별로 있었다.

“…….”

고천수는 채팅창을 빤히 쳐다보았다.

-ㅋㅋㅋㅋ 왜.

-무서웡. 왜 그런 표정으로 봐.

-크루즈 선이라 준비한 것 같고만.

“예.”

주방의 다용도 창고에 개가 낄 마스크까지 있다는 건 분명히 상식적인 일은 아니었다.

“말 안 하실 거면 앞으로 모른 척할게요.”

-아니, 시바. 모른 척. ㅋㅋㅋㅋ 앜ㅋㅋ

-그냥 플레이어가 애완동물 데려올 때 대비해서 있는 거임.

-몇몇 구간에 그냥 있는겨. ㅋㅋㅋㅋ 숨기는 거 없음.

“예.”

고천수는 다시 짧게 대답하고는 들고 있던 포장지를 뜯어내 마스크를 꺼내 들었다.

“이리 와 봐.”

그리고 쭈그려 앉아 흑구의 얼굴에 마스크를 착용시켜 주었다.

신기하게도 흑구는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진짜 너만 한 애완견도 없을 거다.”

여태까지의 모습을 보면 그냥 지능이 뛰어난 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충분한 정도가 아니라 키워 줄 만한 가치가 있을지 몰랐다.

“좋아. 이렇게 된 거, 같이 제주도까지 가는 거야.”

“고천수 씨 말대로였군요.”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고천수는 흑구에게서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기관사가 진열장에 늘어선 마스크를 보며 탄식했다.

“저희들이 쓰기엔 충분한 양이겠어요.”

그는 고천수가 다시 부르지 않자 그냥 들어온 듯했다.

고천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스크를 네 개 잡아 건네주었다.

“이거 승무원님들이랑 나눠 가지세요.”

마스크도 생겼으니 이제 더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부터 배를 살리러 갑시다.”

***

에스컬레이터.

마스크를 착용한 일행들이 천천히 걸어가며 탄식했다.

“승객들이…….”

“다들 죽은 걸까?”

“아냐, 죽진 않았어.”

침울한 표정을 짓는 일행들을 보며 고천수는 나지막이 말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지금은 우선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수면 상태에 빠진 사람들을 살릴 방법은 없었다. 멀쩡해도 살아남기 힘든 판에,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시체나 다름없었다.

“하, 하지만…….”

사람들을 밟으며 내려가는 고천수를 보고 승무원들이 주춤거렸다.

“그냥 좀 따라오세요. 흑구도 하니깐.”

고천수의 손짓을 따라 흑구는 에스컬레이터의 사람들을 사뿐히 밟고 내려갔다.

“후우.”

어쩔 수 없다는 건 아는지 일행들은 한숨과 함께 조심스럽게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왔다.

크아아아아!

그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하자니 어디에선가 레드 좀비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 근처의 엘리베이터 입구는 저기 소리치는 녀석이 부숴놨습니다. 조용히 내려갈 수 있는 길이 또 있습니까?”

“따라오세요.”

고천수의 물음에 배영호가 길을 안내했다.

“승무원들이 이용하는 통로가 꽤 여럿 있거든요.”

그는 다시 일행들 앞에 서며 말했다.

“비상시에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잠금이 풀리기는 하는데……, 노출돼 있지는 않으니까 아마 괜찮을 겁니다.”

끼릭.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문을 발견한 배영호가 조심스레 밸브를 돌렸다.

“들어오세요.”

안을 확인한 배영호가 손짓했다. 일행들은 다 함께 그곳으로 가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여기는 어디까지 연결돼 있죠?”

“기관실이 있는 최하층을 제외하고는 하부까지 다 연결돼 있습니다.”

그 말은 이제 곧 위험한 순간이 다가온다는 말과 진배없었다.

따각, 따각.

일행들이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일행들은 전부 긴장하고 있었다.

기관장의 연락이 끊긴 기관실.

무언가 있을 확률은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순간순간 증가하고 있었다.

끼, 릭.

드디어 계단이 끝을 보이고, 배영호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후, 후우.”

아무것도 없었다.

배영호는 일행들을 향해 손짓했다.

콰직!

그리고 그는, 바로 뜯겨나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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