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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96화 (96/224)

096. 요금으로 지불할 것

그렇게 모두가 자리를 비운 뒤, 선장은 고천수의 맞은편에 간이 의자를 가져와 앉으며 입을 열었다.

“뭔가, 알고 계십니까?”

첫 질문부터 노골적이었다.

고천수는 헛웃음을 뱉으며 반문했다.

“뭘 말입니까?”

“군인.”

선장은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 단어를 말하면서 저를 보는 눈빛이 날카롭더군요.”

“흠.”

“제가 오해를 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뇨, 맞습니다.”

고천수는 순순히 수긍했다.

“일부러 힘 줘서 얘기했던 거 맞아요.”

“아, 역시.”

“7.5사단.”

공군도 있었지만 고천수는 선장과의 대화에서 필요한 건 다른 군인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선장님은 이 군인들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설마.”

선장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7.5사단의 병사?”

“그건 아니고요.”

지금 이걸로 고천수는 확실히 알았다.

선장은 7.5사단과 연락을 나눈 적이 있던 것이 분명했다.

“그냥 7.5사단을 아는 것뿐이죠. 포항까지 오면서 그쪽 부대원들이랑 엮였으니까.”

“아.”

“선장님은 7.5사단을 어떻게 아는 거죠?”

고천수의 물음에 선장은 잠시 몸을 흠칫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건…….”

“제가 7.5사단의 병사가 아니라서 말하기 어려운 겁니까?”

하지만 걱정할 건 없었다.

어차피 포항에 도착한 7.5사단의 부대원들은 아주 작살이 나지 않았던가.

“쉽게 생각하세요. 그 사람들이 이 배에 타기로 했던 건지는 몰라도, 이미 배는 떠나지 않았습니까?”

약속한 게 있었다면 이미 깨진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저한테 얘기한다고 해서 뭐 달라질 건 없습니다. 7.5사단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저한테 털어놓으시고, 마음의 짐이라도 더세요.”

고천수의 말에 선장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의 얼굴에서는 아직 망설임이 보였지만, 고천수는 곧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들을 수 있었다.

“배를 구한다고 했습니다.”

선장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곧 포항에 도착하는데 타고 갈 배가 필요하다고 했죠.”

“우연히 그렇게 들은 겁니까?”

“우연히, 라고 해야 할지.”

살짝 미묘한 표정을 지은 선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도 군인을 찾고 있었거든요.”

“군인을……?”

“네.”

선장은 팔을 넓게 펼쳐 보였다.

“올라오면서 이 배의 상태를 보셨겠죠? 괴물들에게 점령당한 지 오래입니다.”

그런 거라면 고천수도 확실히 확인했다.

널브러진 사람들과 변종 좀비까지 보고 올라왔으니까.

“그래서 군부대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배를 정리해 줄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제가 교신할 때만 해도 승무원들이 전부 보이지 않기도 했고요.”

선장의 말에 고천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배를 정리해 줄 사람이라.’

하지만 배를 목적지가 아닌 곳에 대려고 하면 괜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 배는 부두에 접안도 하지 않았다. 군인들을 태우기 위한 행동이라기엔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던 것이다.

“근데 이상하긴 했습니다. 제가 교신했던 그 군인들은 자기네들이 알아서 배에 탈 테니까 근처에 있으라고만 했거든요.”

“근처에 있으라고만 했다고요?”

변명을 하듯 빠르게 말을 덧붙이는 선장을 보며 고천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처에 있으라고 하고 뒈지는 거 보여 줄 참이었나.

-글쎄.

-왜 꼭 천수가 만난 7.5사단 부대원하고 동일할 거라 생각함?

시청자들의 채팅을 보던 고천수는 살짝 탄식했다.

‘듣고 보니 그렇네.’

배에서 연락을 한다고 하면 기본적으로는 선박의 교신 시스템을 활용할 터.

청주에 있었던 7.5사단의 부대와 연락이 미리 닿았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았다.

‘설마…….’

선박의 교신을 받을 수 있는 장소에 또 다른 7.5사단의 부대원들이 있었다고 한다면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뭐, 결과적으로는 아무 군인도 타지 못했지만 말이죠.”

선장이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천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예, 그렇네요.”

일단 7.5사단의 부대원들은 아무도 타지 못했으니 더 할 말은 없었다. 조금 찝찝함이 남기는 하지만.

“근데 한 가지.”

고천수는 손가락을 들었다.

“의문이 남는군요.”

배 안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 군인들이 필요했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왜 그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었단 말인가.

“제 요청에 따라 순순히 승무원들을 내보내신 걸 보면, 교신한 걸 알리진 않으신 것 같아서요.”

“그건…….”

“왜 그러신 겁니까?”

고천수의 말에 선장은 당황한 듯 손을 저었다.

“아, 아닙니다. 알리긴 했습니다.”

“알렸다고요?”

“예, 예. 다만 그냥 단순한 해군 같다고만 했을 뿐입니다.”

대답이 좀 이상했다.

“그 말은 교신을 한 부대가 조금 정상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는 뜻 같은데요.”

“후.”

선장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

-ㅋㅋㅋㅋㅋ.

-솔직한 선장이네.

-눈치도 빨랐던 듯.

“어떻게 그 사실을 아신 거죠?”

고천수의 물음에 선장은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무슨 위업을 완수하기 위해 자기네들은 꼭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야 한다고 해서…….”

“…….”

들어보니 누구라도 의심할 만한 내용이었다. 고천수는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아니, 잠시만요.”

그 정도면 애초에 태울 생각을 하지 말아야 정상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선장님은 그 군인들을 태우려고 했던 겁니까?”

“방법이, 없었습니다.”

선장이 갑자기 울먹거렸다.

“이 배는 오래 가지 못하니까요.”

돌연 폭탄급 발언을 내던진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의 기기를 조작해 보였다.

‘뭐야.’

대체 뭘 하는 건가 싶어 고천수가 빤히 쳐다보고 있자니, 선장은 조타기를 포함한 기기를 몇 개나 만지작거리다가 두 팔을 벌리며 외쳤다.

“보이십니까?!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질 않습니다!”

선장은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 먹통인 건 아니지만 정상적이지 않아요!”

“…….”

“배를 운용하기 어려운 상태란 겁니다!”

고천수는 그런 그의 모습을 계속 지켜만 보고 있었다.

-천수, 잘 모르겠다는 표정인데?

-하긴 나도 선장이 뭐 건드렸는지 모르겠는뎈ㅋㅋㅋ

모르는 건 맞았다.

하지만 그래서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이거, 감이 좀 오는데.’

고천수는 일어나 선장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선장님, 진정하세요.”

흥분하는 선장을 보며 고천수는 한 가지를 눈치 챘다.

“뭐가 문제인지 차분히 말씀해 보시죠.”

교신을 했던 7.5사단이 정상적인 군부대가 아니란 걸 직감했음에도 선장은 그들을 태우려고 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그런 일을 하려고 했던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군인들을 통해서 해결하려던 게 뭡니까.”

그걸 들어야 했다.

거기에 분명 핵심이 있었다.

“그건……!”

주먹을 쥔 선장이 순간 고천수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최하층을 정리해 줬으면 했습니다.”

“최하층?”

배 안쪽의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군인이 필요했다는 건 이미 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게 하나 더 있자면, 바로 최하층이라는 단어였다.

“최하층은 뭐죠?”

“거기에 기관실이 있습니다.”

선장은 주먹을 더욱 꽉 쥐었다.

“연락이 끊기기 전, 거기에 있던 기관장이 무전을 했어요.”

“무전?”

“괴물들이 거기서 날뛰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이해했다.

고천수는 선장의 의도를 바로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랬구나, 이거.’

거기에 몰려든 몬스터 때문에 기관실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선장은 기관장의 마지막 무전을 듣고, 그곳을 정리하지 못하면 배가 얼마 가지 못할 것이라고 여긴 것이었다.

“가서 문제점을 찾아내서 고치지 않으면 이 배는 끝장입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다른 데에 가 있던 기관사 한 명이 살아 돌아왔어요.”

선장은 이제 고천수의 손을 잡으며 호소했다.

“부탁입니다. 그 기관사를 데리고 최하층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제가 말입니까?”

“예.”

난감해하는 고천수에게 선장은 막무가내로 말했다.

“당신밖에 없습니다. 이 배에 올라타서 여기까지 자력으로 살아서 올라온 그쪽밖에는…….”

-마지막에 도움받지 않았나?

-조용히 하셈.

-천수 자아도취 중이라고.

“부탁입니다.”

선장이 파란 눈으로 고천수를 간절하게 쳐다보았다.

고천수는 기대를 받는 것이 나쁘지 않으면서도, 선장을 보며 살짝 침음할 수밖에 없었다.

‘약간 골치 아파졌는데, 이거.’

선장도 이러는 걸 보면 구명정으로 안전한 곳까지 도망 칠 수 없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살아남으려면 배를 고치는 것이 필수.

고천수에게 그 짐을 지우려고 하는 것이었다.

“선장님.”

고천수는 그의 팔을 치워내며 말했다.

“초면에 너무 무리한 부탁 아닙니까?”

기껏해야 방금 전에 서로 인사를 나눴을 뿐이었다.

“물론 제가 무리한 일을 하는 건 전문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상황을 살펴볼 시간은 필요했다.

“죄, 죄송합니다. 다 털어놓다 보니 이렇게 실례를…….”

“괜찮습니다.”

사과하는 선장에게 손짓하며 고천수는 고개를 저었다.

“무리하다고 했지 아직 안 한다고는 안 했습니다.”

배에 올라탈 때부터 어떤 시련을 극복하게 될 거라는 건 당연히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게 배를 움직이게 하는 일이라면, 가볍게 거부해 버릴 수는 없었다.

“승무원들이랑 다 같이 얘기해 보고 결정하죠.”

***

얼마 지나지 않아 승무원들이 돌아왔다.

“여기 물이요.”

자리에 앉아 있는 고천수에게 물은 건네준 이는 송하나였다.

다른 승무원들은 여전히 그를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감사합니다.”

고천수는 물병을 받아 곧장 목을 축였다.

그러고는 물병을 살짝 내려다보았다.

‘차.’

확실히 냉장고에서 꺼내온 물인 게 맞았다.

“기사님.”

다시 입을 열자 승무원들과 함께 돌아온 박창식이 반응했다.

“듣고 있네.”

“같이 가 보니 어떻던가요? 이 층.”

송하나가 이미 안전하다고 하긴 했지만, 고천수는 일행으로부터 구체적인 내용을 듣고 싶었다.

“곳곳에 복도를 막는 차단막이 내려와 있더군.”

박창식은 마치 눈앞에 그 차단막이 보이는 것처럼 손짓하며 말했다.

“적어도 이곳을 중심으로 위험한 길은 잘 막혀 있는 것 같아. 그 때문에 움직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고 말이지. 기껏해야 휴게실이나 갈 수 있는 정도.”

“먹고 마실 건 충분했습니까?”

“어. 화장실도 있으니까 먹은 다음에도 걱정 말라고.”

너스레를 떠는 박창식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고천수는 이제 선장에게 눈짓했다.

“선장님, 이제 승무원들에게도 말씀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밀로 둘 시간은 지났다.

고천수의 압박에 선장이 쭈뼛거리며 헛기침을 했다.

“뭐죠? 뭔가요?”

송하나가 궁금증을 드러내며 선장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승무원들도 다들 선장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게…….”

선장은 승무원들의 눈치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뭐, 이건 됐고.’

고천수는 그 대화에서 관심을 껐다.

이미 들었던 내용을 또 듣는 건 낭비였다.

리더인 선장이 직접 도움을 구한 만큼, 그는 다른 승무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별 관심도 없었다.

이제 배에 공짜로 타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상점창.”

그렇다고 대화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고천수는 이곳까지 오며 보았던 알림을 떠올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

그러자 곧장 보인 것은 상점창에 새로 나타난 아이템.

‘뭐야.’

고천수가 예상치 못했던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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