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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94화 (94/224)

094. 무임승차는 환영받지 못한다 (3)

-와, 뭐야.

-여기에도 널려있네.

-뭐, 난 예상했지.

고천수는 멈춰 있는 에스컬레이터에 널려 있는 사람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어이구, 세상에.”

같은 현장을 확인한 박창식이 주춤대며 탄식을 뱉었다.

“여기에도 사람들이 있잖아.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러게요.”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승객들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보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발견되리라 예상했던 건 아니었다.

“형님들, 이 사람들 위험한 상태인지만 말씀해 주십쇼.”

앞으로도 맞닥뜨릴 거라면 위험도를 판단해야 했다.

-음. 위험한 상태라고 해야 하나.

-너한테 위험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님. 만져도 뭐…….

-사람들을 이렇게 만든 놈이 위험한 거지.

역시나 다 알려 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확실한 지표는 되었다.

“감사합니다, 형님들.”

고천수는 곧장 에스컬레이터로 걸어갔다.

“이, 이봐!”

뒤에서 박창식이 놀란 목소리를 뱉었지만 고천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미친ㅋㅋㅋㅋㅋ

-야! 뭐 하는 거야!

그는 그대로 에스컬레이터에 있는 사람들을 밟으며 올라갔다.

“기사님, 따라오세요.”

어차피 안 닿고 올라가는 방법은 없었다. 발로 올라가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다.

“하, 하지만…….”

“꾸물거릴 시간 없습니다, 기사님.”

망설이는 박창식을 쳐다보며 고천수가 손짓했다.

“빨리 오세요.”

“으, 음.”

고민하는 듯하던 박창식은 근처에서 레드 좀비의 울음소리가 한 번 더 들리자 얼른 걸음을 뗐다.

“기분이, 이상해.”

사람을 밟으며 비척비척 올라오는 박창식을 보며 고천수는 나지막이 한 마디를 해 주었다.

“매트리스 하나 깔았다고 생각하세요.”

사람 밟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할 때는 해야 하는 법.

-매트리슼ㅋㅋㅋㅋㅋ

-눕방각.

-사람 위에 누워서 방송하는 스트리머가 있다?!

“형님들. 진정하십쇼.”

고천수는 에스컬레이터를 다 올라가 주위를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아직까진 아무것도 안 보여.’

사람들을 이렇게 만든 녀석이 어떤 종류의 몬스터인지 아직은 추측하기 힘들었다.

“흠.”

누워 있는 사람을 한 명 건드려 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쌕쌕 숨을 몰아쉬고 있을 뿐이었다.

‘자고 있는 건가?’

핏줄이 서 있기는 하지만 뭐로 변한다기에는 상태가 안정적이었다.

마치 수면 중인 듯했다.

“후. 정말 끔찍한 기분이구만.”

다 올라온 박창식이 인상을 찌푸리며 탄식을 토해냈다. 뒤를 지키듯 천천히 따라 올라온 흑구의 시선을 피하며 박창식이 고천수에게 말했다.

“자네는 저번에도 봤지만 진짜 대담하단 말이야. 어디서 훈련이라도 받았나?”

“훈련이요?”

고천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말도 마세요. 꽤나 힘들었으니까.”

-ㅋㅋㅋㅋㅋ 뭐냐.

-방송시청이 힘들었다는 건가?

“자네,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군.”

“예. 평범하진 않죠.”

시청자들과 달리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박창식에게 진실을 밝히지 않으며, 고천수는 위층으로 가는 다른 계단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스읍.”

그곳에도 바닥에 늘어져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죄다 이러고 있는 건가?’

계단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제 이곳저곳에 널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고천수는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뭐, 그냥 이게 전부면 문제없긴 한데…….’

좀비로 변하지 않고 가만히 이러고만 있는 상태면 고천수에게 별 위협이 될 건 없었다.

누워 있는 사람들이 많이 발견될수록, 실제 좀비의 수는 얼마 없다는 방증이 되기도 했다.

콰드득.

조용한 가운데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고천수는 뒤따라오던 박창식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해 보이고는 소리가 난 쪽을 살폈다.

‘저건…….’

좀비가 한 마리 있었다.

콰드득.

그냥 있던 건 아니었다.

좀비는 무언가를 뜯어먹고 있었다.

“아.”

그게 뭔지를 알아챈 고천수가 빠르게 다가가 도끼를 휘둘렀다.

콰직!

도끼에 머리가 찍힌 좀비가 철퍼덕 늘어졌다. 고천수는 도끼를 빼내며 발로 좀비를 치워냈다.

그 아래에 깔려 있던 건,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팔이 반쯤 뜯어먹혔네.

-이미 죽은 거 아님?

먹이가 된 이 사람도 피부에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의식이 없는 중에 당한 게 분명했다.

“음.”

기다려 봤지만, 새로운 좀비가 탄생하지는 않았다.

그냥 쌕쌕거리고 있는 걸 보니 아직 죽지도 않았다.

“형님들, 이거 물려도 그냥 이 상태인 겁니까?”

-엉.

-한 번 이렇게 되면 뭔 짓 해도 안 일어날걸.

-진짜?

굉장히 무서운 얘기였다.

“그럼 좀 더 알려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한 번 의식을 잃으면 끝장이라는 얘기인 만큼, 적의 정체를 아는 게 중요했다.

-괜찮아. 아직은.

-가다 보면 알아서 알게 될 거임.

-맞아.(사실 난 모름.)

구슬려서 알아낼 수 있는 건 당장은 이 정도였다.

고천수는 뒤를 돌아보았다.

“기사님, 이제 움직여도 돼요.”

가만히 서 있던 박창식이 살짝 한숨을 내쉬며 다가오며 물었다.

“뭔가. 뭐 위험한 거라도 있던 건가?”

“딱히 그런 건 아니고요.”

메마르게 답하며 고천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냥 이대로 가기만 하면 되는 건가?’

아직까지는 무난했다.

“괜찮으니까 일단 계속 가죠. 지금 위험할 건 없…….”

그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어그로 1 - 09:59]

켜진 스킬창을 보고 뒤늦게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끄아아아아아아!

소스라치게 강한 외침이 고천수의 귓구멍을 때렸다.

-오우.

-이 층에도 있었나.

레드 좀비였다.

녀석이 소리를 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기사님! 계단으로 뛰세요!”

고천수는 먼저 박창식에게 손짓했다.

하지만 박창식은 그대로 고천수를 두고 가지 않았다.

“매번 신세만 질 수는 없어!”

고천수의 앞으로 나선 박창식은, 쇄도하는 레드 좀비의 면상에 곧장 막대를 찔러넣었다.

콰드득!

레드 좀비의 입안에 막대가 꽂혔다.

하지만 밀린 쪽은 오히려 박창식이었다.

“흐악!”

입에 뭐가 박히건 말건 그대로 전진한 레드 좀비 때문에 박창식은 손에서 막대를 놓치고 옆으로 넘어졌다.

끄아아아아아아!

레드 좀비는 그런 박창식은 신경 쓰지도 않는 듯 고천수에게 뛰어왔다.

“뭐야.”

고천수는 레드 좀비를 보며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먼저 찍은 놈부터 작살 내는 녀석인가.”

어쨌거나 싸움을 걸어 온다면 승부는 내야 했다.

고천수는 레드 좀비가 입에 박은 채로 가지고 오는 막대를 주시했다.

“있잖아.”

벽이 있는 쪽으로 빠르게 뛰어간 고천수가 뒤돌아서며 도끼를 치켜들었다.

“입에 사탕 문 채로 뛰어다니지 말라는 말 못 들어봤냐?”

콰지직!

달려들던 레드 좀비가 채 고천수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덜컥 멈춰 섰다.

꺽?

막대가 먼저 벽에 닿으면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던 것이다.

“거봐.”

갈라지며 더욱 세게 레드 좀비의 입안에 박힌 막대기를 바라보며, 고천수가 정면으로 걸어가 도끼를 휘둘렀다.

“뛰지 말랬잖아!”

콰악!

도끼가 레드 좀비의 머리에 살짝 박혔다.

끄아아아아!

역시 한 방으로는 모자랐다. 레드 좀비가 내뻗는 손을 피해 고천수는 도끼를 한 번 더 휘둘렀다.

콰직!

이번엔 눈 밑이었다.

끄아아!

“아직도?”

한 번에 치명상을 주려고 한 시도는 실패했다.

“하긴 이 정도에 당하지는 않겠지.”

콰드드득!

레드 좀비가 밀어치는 힘에 벽에 맞닿은 막대가 부서질 듯 마구 균열이 갔다.

“그럼 여기는?”

콱!

턱 밑, 목을 노렸더니 도끼가 조금 세게 박혔다.

“그래, 여기네.”

고천수는 바로 도끼를 뒤로 뺐다가 다시 휘둘렀다.

콰직!

이제 목이 너덜해졌지만, 아직 몇 번 더 도끼질이 필요할 거라 느껴질 때였다.

으르르!

여태 지켜보던 흑구가 나섰다.

끄아아아!

흑구가 갑자기 한쪽 바짓자락을 붙들고 늘어지자 레드 좀비가 비틀대며 몸을 돌렸다.

후웅.

레드 좀비가 흑구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통에 벽에서 벗어난 막대가 고천수의 머리를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끄아아아아아!

그렇게 괴성을 지르는 레드 좀비의 뒷목이, 고천수의 눈에 들어왔다.

“흐읍!”

고천수는 곧장 무게를 실은 걸음을 옮겨 도끼를 레드 좀비의 뒷목에 휘둘렀다.

콰작!

여태까지와의 타격감과는 달랐다.

도끼는 그대로 레드 좀비의 뒷목을 깊게 파 버렸다.

끄…….

거기까지였다.

갑자기 움찔한 레드 좀비는 그대로 움직임을 멈춰 섰다.

-잡았다.

촤악!

도끼를 빼내자 레드 좀비는 마치 종잇장처럼 바닥에 널브러져 버렸다.

“처, 천수!”

박창식이 뒤늦게 달려오며 고천수의 몸을 살폈다.

“괘, 괜찮나?”

“네, 괜찮습니다.”

고천수는 한숨을 털어내며 레드 좀비를 내려다보았다.

‘위험할 뻔했네.’

일반적인 도끼보다 분명 절삭력이 좋은 이 도끼에도 버티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10번을 다 채워야 잡을 수 있나 했지만, 그 전에 약점을 확인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왈.

곁으로 다가온 흑구가 조용히 한 번 짖었다.

“뭐.”

고천수는 그런 흑구를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뱉었다.

“칭찬해 달라고?”

고천수는 쭈그려앉으며 흑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잘했다. 근데 너 좀 늦게 도와주더라?”

-ㅋㅋㅋㅋㅋ 뒤끝.

-흑구가 너 방해할까봐 잠시 빠져있던 거인 듯.

-??? : 지는 내가 당하고 있으면 버리고 갈 거면서.

“누가 누굴 버립니까, 형님들.”

흑구는 영리한 놈이었다. 애초에 자신을 버릴 상황을 만들지도 않을 터.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돕는 거겠지.’

어느 정도의 안전이 확보된 뒤 결정적인 장면에서 도움을 준다. 어찌 보면 탁월한 전략가였다.

“기사님, 앞으로 계단으로 뛰라고 하면 그냥 가세요.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응? 아, 그, 그러지.”

고천수는 주눅이 들어보이는 그에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도와주시려는 것만 해도 감사하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먼저 나서줄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었다.

왈!

그때였다.

흑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짖었다.

“뭐야. 뭐 또 있어?”

고천수가 묻자 흑구는 바로 뛰어서 계단을 올라가 버렸다.

-뭐냐.

-위에 뭐 있나?

-방금 전에 사람 있었던 거 같은데.

“……사람!”

고천수는 눈을 크게 뜨며 박창식을 재촉했다.

“기사님, 서둘러야 합니다!”

“아, 알았네!”

둘은 그렇게 바로 뛰어 올라갔다.

“저기!”

고천수는 저 멀리 사라져 가는 흑구를 가리키면서 달려갔다.

‘사람! 사람이……!’

그렇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고천수의 눈에 띈 것은, 불행히도 사람이 아니었다.

끄아아아아아!

끄아아아!

끄아아아아!

“아?”

레드 좀비 세 마리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뛰어오고 있었다.

-쒯!

-여기서 세 마리가?

뭐라고 할 틈도 없었다. 고천수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순간 주저앉으며 몸을 앞으로 굴렀다.

콰직!

달려오던 세 마리의 레드 좀비는 달려와 서로에게 부딪혔다.

-이걸 이렇게?

-미친!

하지만 레드 좀비가 어디로 사라진 건 아니었다.

뒷목이 아니면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레드 좀비들은 곧장 충격을 이겨내고 일어나 포효했다.

“천수! 눈 조심하라고!”

그때였다.

근처에 있던 비상용 소화기를 집어 든 박창식이 그대로 레드 좀비들에게 달려들었다.

촤아아아악!

빨랐다.

박창식은 소화기의 안전핀을 제거함과 동시에 호수를 꺼내 곧장 내용물을 분사했다.

끄아아아아!

레드 좀비들은 하얀 분말을 얼굴에 얻어맞고 괴성을 질러댔다. 박창식은 소화기를 마구 뿌려대다가 멀찍이 집어던지고 고천수를 일으켰다.

“자, 얼른!”

주위에 뿌연 분말이 연기처럼 휘날렸다. 고천수는 분말을 마시고 기침하는 입을 팔로 틀어막으며 박창식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왈!

앞에는 길을 인도하듯 흑구가 서 있었다.

‘저긴…….’

뜬금없이 열려 있는 문이 하나 있었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표식이 붙어 있는 문이었다.

왈왈!

흑구가 빨리 여기로 오라는 듯 그 앞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을 때, 안쪽에서 승무원복을 입은 한 젊은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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