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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93화 (93/224)

093. 무임승차는 환영받지 못한다 (2)

고천수가 찾은 곳은 근처에 있던 애견용품점이었다.

-요즘 크루즈 선에는 이런 것도 있네.

-이게 돈이 되나?

-원랜 애견 탑승도 되는 크루즈 선인가 봄.

그래 봤자 제대로 된 애견용품점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사료 같은 애견식품과 개목걸이, 목줄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맘에 드는 거 있냐?”

고천수의 물음에 흑구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가 어느 진열장 앞에 섰다.

-개껌. ㅋㅋㅋㅋ

-이 와중에 배 채우려고 하네.

흑구는 고천수를 돌아보며 혀를 내밀었다.

“뭐야, 그건. 맛보고 싶다고?”

고천수는 헛웃음을 내뱉고는 간식 코너에 있는 육포 하나를 까서 건네주었다.

찹찹.

흑구는 주는 대로 육포를 맛나게 받아먹고는 혀를 다시 내밀었다.

“어쭈.”

어이가 없었지만 고천수는 육포를 몇 개 더 까서 건네주었다.

“그래, 많이 먹어라.”

위에 올라가면 힘쓰게 될 일이 많을 텐데 여기서 음식으로 체력이라도 구비해 두는 게 나았다.

고천수는 몇 개 간식은 가방에 챙겨 넣기도 했다.

-용케 가방 들고 뛰었다니깐.

가방 안에는 김하령이 남긴 의료품들이 남아 있었다.

‘뭐, 이것까지 챙길 필요는 없었겠지만.’

크루즈 선에도 의료실은 다 있을 터였다. 오히려 여기에 있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었다.

‘모르겠네.’

그래도 아직 의료 시설이 멀쩡하게 남아 있는지는 알 수 없으니 챙기고 있는 게 나을 듯싶었다.

‘……다들 진짜 어떻게 됐으려나.’

김하령, 장서연, 양민철. 헤어진 일행들이 고천수라고 신경 쓰이지 않는 건 아니었다.

어떻게든 자신만은 살아남아야 하기에 그냥 두고 왔다지만 부디 죽지는 않았기를 바랐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게임을 클리어하지 못해 세상이 이대로 흘러간다면 지금까지 결정된 생사 또한 그대로일 테니까.

왈!

어깨가 조금 무거워지려던 그때, 흑구가 어떤 개목걸이 앞에서 짖어댔다.

“뭐, 이거 갖고 싶다고?”

가시처럼 뭔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제품이었다.

“취향 한 번 참……. 뭐, 나쁘진 않은데.”

뭐가 목을 물려고 하면 방어용으로 쓸 수 있을 듯했다.

-안 불편하려나?

-지가 이거 끼고 싶어하네.

-주인이랑 닮아서 별종이야. ㅋㅋㅋㅋ

별종.

듣기에 나쁘지 않은 말이었다.

고천수는 바로 개목걸이를 집어 흑구에게 채워 주었다.

왈왈!

흑구는 사기가 올라간 듯 제자리에서 통통 튀었다.

“좋냐, 짜슥아.”

개인 생존이 중요한 이런 세계관에서는 동료를 만들어도 계속해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고천수는 특별하게 누군가에게 큰 정을 줄 생각은 없었지만, 만약 어떻게든 자신을 따라온다면 그 노력을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잘해보자, 흑구야.”

고천수는 흑구가 그 기대에 부응해주기를 바라면서, 이내 박창식이 간 곳을 돌아보았다.

“근데 이 아저씨는 어디에…….”

“천수!”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박창식이 빠르게 뛰어왔다.

“이거 어떤가!”

하와이안 셔츠.

박창식은 하얀색 바탕에 푸른색 식물이 요란하게 그려진 피서용 상의를 입고 있었다.

“뭐야, 왜 그런 표정이지? 별로인가?”

“아뇨.”

고천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무기 골라 오라니까 기껏해야 옷을 골라 오셔서요.”

“아차!”

“제가 골라 드릴 테니까 그거 잡고 다니세요.”

고천수는 걸어가 상점 구석에 있던 막대 걸레에서 막대만 뺀 뒤 박창식에게 건네주었다.

“자. 드세요.”

“어, 이거면 되려나?”

“초보자한테는 공격 범위가 넓은 게 좋아요.”

괜히 다른 무기 들고 나대다가 좀비한테 물리고 방해가 되는 것보다는 자기라도 보호할 수 있는 걸 가지고 있는 게 나았다.

“자, 그럼 이제 갑니다. 정신 바짝 차리세요.”

고천수는 손짓하며 다시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주변에는 아까 전에 해치운 좀비가 우스꽝스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달칵.

일단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러 보았다.

근처에 불이 들어와 있는 걸 보고 시험해 본 것인데, 다행히도 엘리베이터 또한 정상 작동하는 모습이었다.

덜컹.

조용하게 내려온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문을 열었다.

“습.”

긴장하며 도끼를 치켜들었던 고천수는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예, 문제없네요. 타시죠.”

-애초에 투명한 엘리베이터라 안에 다 보이는구만. ㅋㅋㅋㅋ

-대체 뭐에 쫄은겨.

-귀. 여. 워.

고천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밖에서 안 보인다고 해도 엘리베이터에 있으면 항상 어떤 이벤트가 일어날지 경계해야 했다.

“형님들, 모르십니까. 바닥 납작 붙어 있다가 일어나는 놈도 있고 천장 위로 갑자기 떨어지는 놈도 있어서 조심해야 돼요.”

아닌 게 아니라 크루즈 선은 좀비들이 함정처럼 나타나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어서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게임에서도 크루즈 선만 맵으로 나오면 좀비들이 별 기상천외한 곳에서 얼굴을 들이미니까.

배 안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공간이 넓은 듯하면서도 은근히 협소한 구간이 많아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얼른 타게.”

먼저 엘리베이터에 오른 박창식이 고천수를 향해 손짓했다.

고천수는 바로 흑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덜컹.

박창식이 버튼을 누르자 다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고천수는 잠시 멍하게 있다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상점이 갱신되었습니다.]

“아.”

바라마지 않던 알림이었다.

“상점…….”

콰창!

그때였다.

고천수가 말을 잇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크게 흔들렸다.

“큭?”

엘리베이터가 상부 4층을 지나쳐 올라가는 순간, 웬 좀비가 문을 들이박았던 것이다.

“뭐야.”

끄아아아아아!

좀비의 모습이 멀어졌다.

엘리베이터는 목적지인 상부 5층에 다다라 멈춰 섰다.

가가가각!

엘리베이터가 힘겨운 소리를 내며 천천히 문을 열었다.

-야 씨, 구겨졌어.

-몸통 박치기 한 방에 안쪽 문까지 이렇게 된 거임?

-일반 좀비가 아니네.

고천수의 생각도 같았다.

빠르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고천수는 난간으로 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끄아아아아아!

“아, 망할.”

온몸이 기괴하게 뒤틀린, 적색 좀비가 서 있었다.

-레드 좀비네.

콰앙!

레드 좀비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주변을 계속 들이박았다.

-슬 나타날 때가 됐다 했지.

-ㅋㅋㅋㅋ 아따, 성질 더러운 거 보게.

-좀비계의 분노조절장애. ㅎㄷㄷ

그나마 다행인 건 판단력이 일반 좀비보다 낮아 보인다는 점이었다.

콰앙!

레드 좀비는 엘리베이터가 지나간 자리만 계속해서 후려 때리고 있었다.

‘내려갈 때 이 엘리베이터는 못 쓰겠네.’

상부 4층의 엘리베이터 문과 통로를 다 구겨 버리고 있어서, 그쪽으로 다시 엘리베이터를 움직였다간 사이에 낄 듯했다.

“이, 이봐!”

박창식이 고천수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얼른 가자고! 구경하고 있지 말고!”

“아, 예.”

특수 좀비가 나타난 이상 더 빠르게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고천수는 박창식과 함께 다시 걸음을 옮기면서 입을 열었다.

“형님들, 여기 제가 감당 가능한 수준인 거 맞죠.”

감당이 가능한 정도가 아니면 이미 누가 여기 타기도 전에 오지랖을 부리긴 했겠지만, 아무래도 고천수의 입장에서는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한도초과] : 걱정 마, 천수야. 너라면 해낼 수 있어. 아자아자. 파이팅!

맥 빠지는 응원이기는 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뭐가 됐든지 간에 이곳도 공략이 가능한 장소라는 거.

좀비가 얼마나 숨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생존하지 못할 것도 없는 듯했다.

“스읍.”

고천수는 숨을 삼키며 고개를 살짝 까딱였다.

“확실히 배 위니까 좀 긴장되긴 하네요, 형님들.”

-언제는 긴장 안 됐남. ㅋㅋ

-괜찮아. 난 쫄보 천수 보려고 보는 건디.

-뭐, 정 안 되면 또 구명정 타면 되지.

“예, 감사합니다.”

적어도 초치는 시청자는 없어서 고천수도 조금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자, 그럼 어디 볼까요.”

아직 위로는 여섯 개 층이나 더 올라가야 했다.

‘역시 외부에서 기어오르는 게 더 나았으려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고천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역시 그건 위험했으니까.’

외부에는 난간이 있는 층이 얼마 없었다. 올라가다가 미끄러져 떨어질 가능성이 컸고, 창문이 제대로 깨지지 않으면 안으로 진입하는 것부터 위험했기 때문에 선택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외부로 힘들게 올라가는 와중에 듣도 보도 못한 몬스터라도 나타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피할 곳도 없는 상태에서 당하는 일은 사양이었다.

‘시청자들도 그쪽으로 가라고 안 하는 걸 보면…….’

역시 정석대로 내부를 통해 올라가는 게 제일 좋은 선택일 것이라 보였다.

“고천수, 저기 뭔가 내려온다.”

박창식이 고천수의 어깨를 건들며 말했다.

고천수가 고개를 돌리자 정말 위층 계단에서 누군가가 터덜터덜 내려오고 있었다.

“좀비네요.”

이번엔 승무원 복장을 입고 있는 좀비였다.

고천수는 도끼를 치켜들고 말했다.

“지금부터 저한테 잘 달라붙으세요. 하나씩 처리하면서 앞으로 갈 테니까.”

크아아아.

가까이 다가가자 좀비가 고천수에게 달려들었다.

콰직!

도끼가 박힌 좀비가 옆으로 비틀거리며 넘어갔다.

고천수는 도끼를 빼내고 다시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어그로 1 - 09:47]

“뭐냐, 이거.”

새로 시작된 어그로 스킬에 방금 전에 잡은 좀비만 적용돼 있었다.

“진짜 그 자식 엘리베이터만 보고 달려든 거네.”

끄아아아아아아아!

아래서 레드 좀비가 계속 외치는 소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천수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불안하네, 이거.’

벌써 변형 좀비가 하나 있다는 것부터가 굉장히 거슬렸다.

‘다른 놈도 있는 거 아냐?’

우드 좀비야 엔티가 달라붙어서 그렇다고 해도 레드 좀비는 좀비가 스스로 변한 형태였다.

다른 좀비들이 또 어떤 형태로 변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기사님, 저기.”

고천수는 ‘대극장’이라고 쓰인 표지판을 발견하고 가리켰다.

그러자 박창식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갑자기 영화라도 보자는 건가?”

“그건 아니고요.”

큰 배에 설치된 영화관은 여러 층을 겸하고 있을 때도 있다고 하지 않은가.

“혹시 극장 내부에 위로 몇 층을 한 번에 올라갈 수 있는 시설이 있나 해서요.”

“아, 다른 엘리베이터나 쭉 연결된 비상계단을 찾는 거구만.”

“네, 그렇죠.”

정직하게 층을 올라가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고천수는 가능한 빨리 이 배를 올라가 선장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뭐, 알겠네.”

뜻을 알아들은 박창식이 어깨를 으쓱이고 먼저 걸음을 옮겨 극장 문을 열었다.

“나도 가능한 빨리 위로 올라가고 싶으니까. 얼른…….”

덜컥.

박창식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굳어 버렸다.

-뭐야.

-마비된 거임?

-아, 이거.

순간 채팅창을 확인한 고천수가 흠칫하며 도끼를 치켜들었다.

“……기사님?”

박창식은 대답이 없었다.

고천수는 조심스럽게 박창식의 뒤로 다가갔다.

“대체 뭐가…….”

그러던 고천수도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이건……!’

사람이 있었다.

정확히는 사람들이었다.

‘뭐야!’

문 안쪽에 사람들 대여섯이 뒤엉켜 늘어져 있었다.

-헐. 슈밤.

-죽었나?

-죽은 건 아님.

그 말대로 사람들은 조금씩 숨을 내쉬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

하지만 고천수는 감히 사람들의 상태를 확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문 안쪽, 사람들이 엎어져 있는 곳 뒤에는 문이 또 있었다. 방음 역할을 하는 중문이 분명했다.

“형님들, 혹시 들리는 소리 있습니까?”

그 문이 닫혀있어서 극장 내부는 아직 확인할 수 없었다.

물론 안쪽의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왜. 들어가려고?

-아닠ㅋㅋㅋ 겁도 안 나냐? 다른 데로 가.

들어가려는 건 아니었다. 다만 고천수는 안에 뭔가 있다면 확인하고 싶은 것뿐이었다.

‘그냥 기절한 게 아니야.’

사람들은 핏줄이 울퉁불퉁 올라와 있었다.

물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천수, 어떻게 하지?”

박창식이 고갯짓을 하며 사람들을 가리켰다.

“뒤로.”

고천수는 짧게 한 마디를 하고 손짓했다.

그러자 박창식이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나면서 문을 닫았다.

“후.”

떨리는 한숨을 내쉰 박창식이 고천수를 돌아보며 물었다.

“방금 뭐였을까, 그거.”

“글쎄요.”

뭐가 뭔지 잘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고천수는 적어도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일단 여기는 포기하죠.”

좀 더 편하게 위로 올라가려는 생각만 포기하면 되는 일이었다.

고천수는 박창식과 흑구에게 다시 한번 손짓했다.

“정식하게 올라가죠. 조용하고 빠르게는 덤.”

그러면서 고천수는 태연한 척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하, 시바.”

에스컬레이터에도 널려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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