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91화 (91/224)

091. 크루즈 선 (3)

점프와 동시에 줄이 내던져졌다.

뱅글뱅글 돌던 총은 멀리 날아가 고천수가 목표로 삼은 상부 2층 외부 계단 난간으로 향했다.

깡!

하지만 계단 난간에 걸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부딪혀서 튕겨 버렸다.

“큭!”

고천수의 몸은 크루즈 선에 채 닿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그가 잡고 있는 동아줄에 끌려 총은 계단 옆 복도의 난간까지 끌려왔다.

까당탕!

걸렸다.

쇠창살처럼 되어 있던 복도 난간에 총의 굴곡진 몸체가 끼면서 고천수도 추락을 멈출 수 있었다.

-와, 이걸?

-ㅋㅋㅋㅋㅋ 미친.

-이렇게 산다고?

아직이었다.

살았다고 하려면 위로 올라가야 했다.

까득.

고천수가 손을 뻗어 위로 올라가자 총이 들썩이며 난간과 마찰했다. 자칫하면 빠져 버릴 모양새였다.

‘조금만……!’

고천수는 앞을 바라보았다.

바다에는 익숙한 선 하나가 존재하고 있었다.

-아, 얘 설마.

-저거 노린 거임?

초록색 선.

분기점이 바다 위에 있었다.

“조금만 더!”

총이 난간에 걸려도 위로 올라가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고천수는 배에 타지 못하더라도 방금 전에 보인 저 초록색 선만큼은 넘길 생각이었다.

-아니, 못 올라가면 어떻게 살려고!

부표.

근처에 부표가 있었다.

만약에 올라가지 못하면 분기점을 넘고 부표까지 헤엄쳐 갈 계획이었다.

[분기점을 통과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건 최악의 상황에서일 뿐.

[새로운 스킬이 추가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스킬 소지에 관한 내용이 변경됩니다.]

[스킬창을 통해 상세한 내용을 확인하십시오.]

고천수는 항상 최선의 플레이를 노리는 남자였다.

“으아아아아!”

분기점은 넘겼다.

남은 것은 크루즈 선을 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뿐.

달카닥.

총이 난간에서 빠질락 말락 했다. 고천수는 거미라도 된 것처럼 빠르게 줄을 타고 기어올랐다.

팍!

그때였다. 총이 난간에서 빠졌다.

그리고 그 직전, 고천수는 크루즈 선 외벽에 붙어 있던 구명정을 향해 몸을 날렸다.

철퍽!

부딪혔다.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미끄러지던 고천수는 구명정에 고정돼 있던 쇠사슬을 팍 붙잡았다.

풍덩!

총과 줄이 바다 속으로 빠져 사라졌다.

“후우……!”

하지만 그는, 구명정에 올라섰다.

“으아아아!”

해냈다.

부표 잡을 일 없이, 깔끔하게.

-우오오오오오!

-오진다!

그에 맞는 찬사도 당연한 것이었다.

[띠링! 한도초과 님이 1젠을 후원하셨습니다! - 역시 우리 재간둥이!]

[띠링! 밥먹을때만 봄 님이 2젠을 후원하셨습니다! - 와, 이놈. 사이다 안 마셔도 되게 하네.]

[띠링! 물귀신 님이 1젠을 후원하셨습니다! - 아, 탐났는데.]

기분은 좋았지만 아직 할 일은 남아 있었다.

시선을 돌리자니 크레인 작업대 위에서 멍하니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인원들이 보였다.

이대로 두고 가도 되긴 하지만, 그건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었다.

“정보창.”

[상시 정보 :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위험합니다.]

[정보 1 : 포항공항에서 출발한 크루즈 선, 나찰라 호의 일부 공간에는 몇몇 위협적인 몬스터들이 배회하고 있습니다.]

[정보 2 : 바다에는 작은 배를 위협하는 여러 가지 위험이 존재합니다.]

“형님들, 저 사람들은 데려가겠습니다.”

어느 정도는 예감했던 대로 이 정체불명의 크루즈 선에도 위협이 존재했다.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는 만큼, 함께 안전을 도모할 만한 동료가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데려가게?

“형님들 크루즈 선 안 타 보셨습니까? 물론 저도 안 타 봤습니다만.”

고천수가 있는 곳은 구명정의 천장이었다.

작은 잠수함의 형태를 한 구명정으로, 일반적인 보트가 아니었다.

“일단 이건 중력강하식 구명정입니다.”

-그게 뭔데, 또.

-대체 뭘 어디까지 보고 다닌 거냨ㅋㅋㅋㅋ

-진짜 집에서 인터넷만 하고 살았냐?

“간단히 얘기하면, 혼자서도 내릴 수 있는 구명정이라는 겁니다.”

고박을 풀고 내부에 탑승해 조작하면 되는 일이었다.

고천수는 빠르게 구명정을 묶고 있는 고박을 풀었다. 그리고 내부로 들어가 눈에 보이는 라인을 당겨 브레이크를 풀었다.

그렇게 구명정이 바다 위에 내려선 뒤에는, 안에 쓰인 안내대로 구명정 이탈기를 작동시켰다.

철컹.

구명정을 마지막까지 연결하고 있던 쇠사슬 고리가 풀렸다.

고천수는 안내서를 따라 배터리 박스를 열어서 스위치를 바꾸고 운전석으로 향했다.

“형님들 근데, 솔직히 안내서 없으면 그냥 포기하려고 했거든요.”

거기까지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니까.

다만 친절하게 마련된 안내서가 있어서 고천수도 구명정의 시동을 걸고 조작할 수 있었다.

-괜찮겠냐, 이거. ㅋㅋㅋㅋ

-침몰시키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불안.

“거, 참. 구명정은 뒤집히지도 않게 설계되는 거 모르십니까.”

더 이상 말씨름할 여유는 없었다.

고천수는 구명정의 방향을 돌려 작업대 쪽으로 향했다.

드르륵.

레버를 돌려 구명정을 멈춰 세운 고천수는 천장 위로 올라가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했다.

“예, 제가 딱 예상한 얼굴이네요.”

경악하는 면면을 본 고천수는 키득거리듯 말했다.

“제가 좀 답이 없어서요.”

할 수 있을 것 같으면 한다.

고천수의 생존 전략은 필요할 때 망설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게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가당치 않을지라도.

“얼른 타세요. 시간 없어요.”

사람들은 작업대 위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고천수는 구명정 천장을 탁 하고 쳤다.

“제가 데리고 내려와야겠습니까? 그렇게까지는 못해요.”

“하, 하지만 높이가…….”

운전병이 마른침을 삼키며 식은땀을 흘렸다.

고천수는 손에 든 것을 내밀어 보였다.

“예, 그럴까 봐 안에 있던 줄은 하나 챙겼어요. 올려 드릴 테니까 잘 잡으세요. 한 번에.”

고천수는 줄의 끝을 묶어서 무게 추를 만든 뒤에 뱅글뱅글 돌려서 작업대 위로 던졌다.

탁!

다행히도 박창식이 그 줄을 붙잡았다.

“이, 이거 묶으면 되는 거겠지?”

“네.”

고천수의 대답에 박창식이 줄을 작업대 난간에 묶고 다시 구명정을 내려다보았다.

“타고 내려가면 되는 거고!”

“네, 맞습니다.”

다만 기다려 줄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근데 빨리 하셔야 할 겁니다.”

쾅! 콰앙!

부두 쪽이 난리가 나 있었다.

빅 바디들이 나타나 주변을 모조리 다 부수고 있던 것이다.

“으, 으악!”

“젠장할!”

왈!

빅 바디가 던진 무언가에 맞은 이동식 크레인이 휘청거렸다. 그 때문에 위에 있던 사람들과 개 한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휘청거렸다.

“빨리 타세요! 차라리 물에 빠지든가! 흑구 너는 빨리 뛰어내리고!”

떠오를 수만 있다면 다른 줄을 던져 구해내면 그만이었다.

“아, 알겠어!”

고천수의 외침을 듣고 박창식이 먼저 기세 좋게 줄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다만 속도는 빨랐어도 착지가 좋지는 못했다.

“으아악!”

입구 근처에 발을 디디고 미끄러지는 박창식을 고천수가 붙잡았다.

쾅!

그사이에 작업대가 좌우로 흔들렸다.

“어, 어?”

아니, 흔들린 정도가 아니었다.

거의 넘어질 듯 들썩거리고 있었다.

빅 바디가 이동식 크레인을 건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으아아아!”

“크읏!”

그 바람에 안 그래도 휘청거리고 있던 운전병과 흑구, 그리고 진 소령의 지인 남자가 결국 아래로 떨어졌다.

풍덩!

거의 동시에 떨어진 그들을 보며 고천수는 짧게 탄식했다.

다행히 남자와 수영을 할 줄 아는 것인지 금방 떠올라 구명정 옆으로 다가왔다. 이미 헤엄치는 능력을 증명했던 흑구 또한 마찬가지.

박창식과 함께 안으로 들어간 고천수는, 구명정의 옆구리 출입구를 열고 다른 줄을 운전병 쪽으로 던졌다.

운전병은 그 줄을 잡고 구조됐고, 남자와 흑구는 알아서 출입구로 헤엄쳐 들어왔다.

“후.”

마침내 모든 인원을 구하고 문을 걸어 잠근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살긴 살았네요.”

쿠웅!

하지만 이대로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다들 안전벨트 매세요. 흑구 너는 저기 구석에라도 가 있고.”

크레인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고천수는 구명정을 운전해 장소를 빠르게 벗어났다.

푸아아아아!

무언가 물 위로 떨어지는 소리에 모두가 구명정 뒤편의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모두를 여기까지 오게 해 준 크레인이 기둥이 뒤틀리며 물에 처박히고 있는 장면이 생생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진 소령…….”

남자가 주먹을 꽉 쥐며 중얼거렸다.

고천수도 입을 다문 채 창문으로 저 먼 부두를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진 소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7.5사단의 그 중대장도 역시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 멀었다.

보이고 들리는 것이라고는 빅 바디의 모습과 잠깐씩 들리는 총소리뿐.

“살아남았기를.”

말도 안 되는 주문을 걸 듯 중얼거리며, 고천수는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

“그러니까 아저씨 이름은 차동진이라고요?”

크루즈 선으로 가는 사이, 서로 통성명을 나눴다.

“예에, 그렇습니다.”

“진 소령님의 십년지기 친구고 말이죠.”

그냥 지인이라고 소개할 수준이 아니었다.

“네, 맞습니다. 잘 부탁하죠.”

큰 항구에서 일한 사람답게 근육질인 그는, 거칠게 보이는 몸과 다르게 제법 말투가 신사다웠다.

‘끼리끼리라는 건가.’

진 소령의 인품을 생각하면 능히 납득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저, 저는…….”

“알 것 같네요.”

고천수는 운전병의 말을 끊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이름은 가슴팍에 훤히 박혀 있었으니까.

“주영훈 상병이군요.”

“네? 아, 네.”

그가 떨떠름해하는 사이 박창식이 손을 들고 말했다.

“나는 박창식.”

“감사합니다, 기사님. 아, 그리고 저는 고천수라고 합니다. 다들 알아 두십쇼.”

이로서 통성명은 모두 끝났다.

고천수는 전면에 있는 창을 바라보며, 손으로 크루즈 선을 가리켰다.

“저희는 지금 저기에 올라탈 겁니다.”

구명정으로 제주도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크루즈 선으로 갈아타야만 했다.

“이걸로 가지는 않고?”

아니나 다를까, 의문을 가졌는지 박창식이 물었지만 고천수는 고개를 저었다.

“이걸로는 오래 못 가요.”

바다에는 분명 작은 배에 위협되는 뭔가가 있다고 했다.

파고에도 균형을 잡게 만들어진 이 배가 무엇에 위협을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알아보려고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일단은 크루즈 선에 오른 다음에, 필요하면 다른 구명정을 내릴 겁니다.”

고천수는 그렇게 설명하며 구명정으로 크루즈 선을 따라잡았다.

“스킬창.”

그가 중얼거리자 스킬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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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ill 1

-주의사항 : 총 3개만 소유할 수 있습니다.

* 어그로(10분) : 자신을 노리는 몬스터가 많을수록 강해집니다. 마릿수마다 본래의 자신을 기준으로 신체 능력이 10% 추가 상승. 발동하고 나서 종료 시점까지 마릿수는 누적으로 계산됩니다. [삭제]

* 기록 누적 : 종료된 최고 어그로 기록에서 해당 상승분의 10%는 기본 신체 능력으로 합산됩니다. 즉, 본래의 자신이 강화되며, 이 수치는 기록이 바뀔 때마다 경신 적용됩니다. [삭제]

* 리커버리 : (아직 사용할 수 없습니다.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해금됩니다.) [삭제]

※ Skill 2

-주의사항 : 총 3개만 소유할 수 있습니다.

* 새로운주인 님의 보상 : 접촉한 대상의 시야를 10분 동안 훔쳐보기 스킬 1회. 발동 시점은 자유로움. [사용]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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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에 떴던 것처럼 새로운 스킬이 추가돼 있었다.

‘아직 사용할 수 없다고?’

하지만 지금 쓸 수는 없었다.

‘어쩐지 알림창이 좀 다르다 했다.’

새로운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가 아닌 단순 스킬 추가를 알리는 내용이었으니까.

[울부짖는정신병자 님이 금지어를 설정했습니다.]

-천수 표정 안 좋네.

-스킬은 머 좀 있으면 쓸 수 있겄제.

-일단은 크루즈 선에 타기나 하셈.

스킬을 곧 쓸 수 있게 된다는 건 고천수도 직감할 수 있었다.

크루즈 선에 타기 직전에 추가된 거니까,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근데 매니저님, 금지어 설정은 뭡니까?”

-[울부짖는정신병자] : 그냥 저번에 채팅방에서 쫓겨난 놈이 너한테 쓴 말을 금지어로 만든 것뿐임. 늦었지만 신경 쓰지 마셈. 깜박했음.

“아, 네.”

하여간에 뒷북은 잘 치는 매니저였다.

그것보다 지금은 새로운 스킬 설명에 붙은 특정 조건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굉장히 신경 쓰였다.

조건 자체가 뭔지 드러나 있지 않다는 건, 어차피 어느 순간 알아서 충족하게 된다는 의미와 크게 다를 바 없었으니까.

부드드드.

그사이 구명정이 아까 전에 풀었던 갈고리들 옆에 도착했다.

고천수는 심란한 마음을 정리하고 일행에게 말했다.

“자, 승선합시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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