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90화 (90/224)

090. 크루즈 선 (2)

그 순간 채팅창이 불타올랐다.

-저건 뭐냐?

-움직이는 크레인?

-드디어 나타났다 아입니까!

고천수는 눈을 크게 뜨며 눈앞의 이동식 크레인을 바라보았다.

‘뭐지, 저건?’

미처 기대하지 않고 있던 것의 등장이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치 못했기에 조금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고천수 씨!”

어느새 멈춰선 이동식 크레인에서 내린 진 소령이 고천수에게 뛰어와 소리쳤다.

“구해 왔습니다! 이거면 충분히 크루즈 선까지 닿을 겁니다!”

그 말에 고천수는 크레인의 크기를 눈으로 가늠해 보았다.

확실히 이동식치고는 엄청난 크기기는 했다. 수백 톤짜리 크레인인 듯했다. 횡으로 설치돼 있는 기둥도, 뻗으면 수십 미터는 될 것이었다.

“소령님, 이런 걸 어디서 구한 겁니까?”

감탄하던 고천수는 잠시 멈칫했다.

진 소령이 조수석에서 내렸다는 점에서, 운전석에는 누군가 있을 터였다.

그런 생각으로 고개를 돌리자, 고천수는 운전석에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사람은?”

“제 지인입니다. 제가 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군요. 이쪽에 있던 군인들이 떠나기 전에 말을 흘렸던 모양입니다.”

“정말입니까? 여태 기다리고 있었다니……, 그것 참 놀랍네요.”

뭐가 됐든 어찌 된 일인지는 알았다.

다만 남자가 진 소령을 기다리면서 이동식 크레인까지 준비하고 있었던 걸 보면, 크루즈 선이 꽤 오랫동안 저 상태로 정박해 있던 게 분명했다.

그건 엄청나게 신경 쓰였다.

‘대체 뭐지?’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면 동력을 잃어서 저기 떠 있는 건 아닌 듯하고, 추측할 수 있는 거라면 그냥 부두에 배를 대는 것 자체가 무서워서 저러는 거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이유로, 이곳을 바로 떠나지 않고 저러고 있는 걸까?

“고천수 씨!”

고민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땅의 흔들림이 계속되자, 진 소령은 이동식 크레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 친구가 크레인을 움직여 줄 겁니다. 고천수 씨는 기둥 끝에 달아 놓은 작업대를 타고 크루즈 선으로 건너가면 됩니다!”

부우웅.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동식 크레인이 크루즈 선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부두 끝으로 이동했다.

손짓하는 진 소령을 따라 운전병과 고천수도 같은 곳으로 뛰어갔다.

그때였다.

투다다다.

멀지 않은 곳에서 총성이 들렸다.

‘이건…….’

타앙. 타앙. 투다다다.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개로 뭉쳐서 들리는 수십 발의 총소리를 듣고 고천수는 온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항구로 간 군인들도 이쪽으로 왔나?

-그럴 리가.

-자살 행위임.

그런 자살 행위임에도 이쪽으로 오는 군인들이 있다면 대체 누구인가.

“진 소령님! 총 갖고 계십니까?”

공항에서 만났을 때부터 진 소령 일행은 눈에 보이는 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다. 여태 이유를 묻진 않았지만, 지금은 확인해야만 했다.

“총 말입니까?”

갑작스러운 총성에 같이 당황하고 있던 진 소령이 고천수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없습니다. 탄약도 떨어졌고, 이유도 모르게 총이 부식하기 시작해서 버리고 탈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행기에까지 문제가 생길까 봐.”

“망할.”

고천수는 진 소령에게 당부했다.

“진 소령님,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는 건 제가 말했던 7.5사단일 겁니다.”

인곡항으로 갔던 인원이 이쪽으로 돌아올 리는 없었다. 게다가 그 인원들이 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지금 총성을 내고 있는 건 누구겠는가.

“맞닥뜨리면 100% 좋을 거 없습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그러면서 고천수는 흑구와 함께 크레인의 작업대에 올라탔다.

“빨리요!”

공항에 뒤늦게 착륙했을 텐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이 취할 수단은 뻔했다.

또 누군가를 미끼로 던지며 오고 있는 것일 터.

목숨에 경각에 달했을 그들이 또 무슨 명분으로 끔찍한 짓을 벌일지 모르니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떠야 했다.

“소, 소령님!”

운전병이 같이 작업대에 올라타 소리치자 진 소령이 우물쭈물하다가 소리쳤다.

“먼저 가! 나는 나중에 따라갈 테니까!”

그러더니 진 소령은 크레인의 남자에게 기기를 작동해 줄 것을 부탁했다.

운전자가 크레인 운전석으로 이동해 차량의 지지대를 박고 기둥을 살짝 들어 올리자, 진 소령은 그쪽으로 가 대화를 나누더니 남자를 바깥으로 끌어내고 자신이 운전석에 앉았다.

“뭐, 뭐 하는 거야!”

밀려난 남자가 당황하자 진 소령은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소리쳤다.

“각도는 맞췄다며! 이 레버만 작동하면 기둥 뻗는 거 맞지? 자네도 얼른 올라타!”

“그게 무슨…….”

“난 알아서 갈 수 있으니까 자네는 타라고! 여태 나 기다려 줬잖아! 더 이상 기다리지 마!”

그 외침에 남자는 주춤했다.

그는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천수를 쳐다봤다.

‘젠장.’

하지만 고천수라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둘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를 떠나서, 남자는 살기 위해서는 지금 작업대에 올라타야 했다.

진 소령은 기둥을 전개하고 본인은 나중에 그걸 타고 넘어오려는 게 분명했다.

일반인이라면 불가능.

제대로 된 손잡이도 없고 경사까지 생긴 원형의 철제 구조물을 기어서 수십 미터를 건너야 하는 것이었다.

“얼른!”

하지만 진 소령은 지체하지 말라는 듯 남자에게 소리쳤다.

“빨리 가야 나도 살 수 있어! 얼른 움직여!”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남겨진 소령이 살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천수야, 얼른 남자 데리고 가라.

-진 소령은 원래 그런 사람임.

-인곡항 못 갔어도 살 길은 저 남자 희생밖에 없다.

몇 시청자들의 채팅을 보니, 진 소령도 심지 굳은 군인의 피가 흐르는 설정이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고천수가 할 일은 이제 하나였다.

“타세요!”

고천수는 내려와 남자의 팔을 붙잡았다.

“같이 타고 가야 합니다!”

“하, 하지만……!”

“같이 안 가면 진 소령님의 의지를 욕보이는 꼴밖에 안 됩니다! 다 같이 죽도 밥도 안 되기 전에 얼른 타세요!”

남자는 여전히 주춤거렸지만, 고천수는 그를 억지로 끌고 작업대에 올라탔다.

-소령의 굳건한 의지를 욕보인다니…….

-천수 그냥 본인이 살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님?

-쉿.

그때였다.

부아아앙!

승합차 한 대가 나타나더니 이동식 크레인 근처에 와서 멈춰 섰다.

‘엿됐네……!’

그런 고천수의 감상에 걸맞듯, 그 차에서 내린 것은 다름 아닌 익숙한 얼굴이었다.

“잠깐! 기다려!”

중대장.

대전복합터미널에서 7.5사단의 일부 병력을 이끌고 있던 그가, 무기도 들지 않은 채 이쪽으로 뛰어왔다.

승합차에서는 추가로 3명이 더 내렸다. 그들은 소총을 들고 있었다.

콰앙!

그리고 그들은 지금 막 도착한 다른 차량에 밀려 그대로 비명횡사해 버렸다.

‘뭐야.’

혼돈의 혼돈이었다.

군인들을 밀어 버린 차량에서, 예상치도 못했던 인물이 또 나타난 것이었다.

“이 개새끼들!”

대전 급행 2번 버스 기사, 박창식.

그가 군인들이 들고 있던 총 중, 충돌에 부서지지 않은 기관단총을 집어 들고 중대장을 겨눴다.

“사람을 몇이나 죽게 만드는 거야! 이 미친 쓰레기 새끼들아!”

여기까지 오면서 정말 못 볼 꼴을 다 본 모습이었다.

“죽어!”

흥분한 그가 중대장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타앙!

“크악!”

팔을 스쳤다.

중대장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흐느적거렸다.

타앙!

두 번째 탄도 아슬아슬하게 중대장의 어깨를 스쳤다.

“큭!”

대한민국 남자 중에 총을 쏠 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이제 제대로 자세를 잡은 박창식은, 다음 조준 사격에서는 중대장의 급소를 맞출 확률이 높았다.

티잉!

다만 그것은 엄폐물이 없을 때의 얘기였다.

“아아아아!”

이동식 크레인을 방패로 삼아 살아남은 중대장이 곧장 진 소령이 있는 곳으로 기어올랐다.

“도와 주십쇼! 저 미친 민간인이…… 컥!”

중대장의 말은 채 이어지지 않았다.

진 소령이 운전석의 문을 열어 중대장을 쳐 버렸던 것이다.

“크윽!”

중대장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박창식 씨!”

그때를 틈타 고천수가 박창식에게 외쳤다.

“여기입니다!”

“……응?”

흥분해 있던 박창식이 고천수를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 자네!”

“네, 접니다!”

안부 인사를 나눌 시간은 없었다.

고천수는 바로 박창식에게 고했다.

“지금 저희! 이거 타고 저쪽으로 이동할 겁니다!”

목적지는 이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크루즈 선이었다.

“얼른 타세요! 같이 가야 합니다!”

“어? 아! 사, 살 길이 있는 건가?”

-ㅋㅋㅋㅋ 얼굴 표정 변하네.

-방금 전까진 죽을 거라 생각했나 봄.

하지만 아무리 살 길이 열렸어도 정산해야 할 게 있다는 듯, 박창식은 쓰러져 있는 중대장에게 뛰어갔다.

“잠깐만! 이 개새끼만은 그냥…….”

철컥.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박창식이 들고 있는 총에서는 총알이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뭐, 뭐야, 이거.”

“박창식 씨!”

뭔 일이 있었든지 간에 지금 기능 고장이나 고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냥 오세요! 시간 없으니까!”

“크읏! 하지만……!”

“안 오시면 두고 갑니다!”

고천수의 외침에 박창식이 총을 든 채로 작업대로 기어 올라왔다.

“진 소령님!”

이제야 준비는 다 됐다.

탈 수 있는 사람이 다 타고서야 진 소령은 레버를 조작했다.

쿠웅.

크레인의 기둥이 빠르게 뻗어 나갔다.

-잠만, 크루즈 선 움직이는데?

-시동 켠 듯.

-야 씨, 이러면 못 타는 거 아냐?

그 말에 고천수가 급하게 크루즈 선을 돌아보았다.

스크루가 돌아가기 시작한 듯, 크루즈 선의 꽁무니에 작은 물결이 일어났다.

“아.”

그걸 보고 고천수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고작 탄식밖에 없었다.

-멘붕.

-정신 차려!

-[한도초과] : 아직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고천수는 이를 악물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래, 아직은……!’

아직은 크루즈 선이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크레인의 기둥이 뻗어나가는 속도를 본다면…….

“상점창.”

고천수는 급하게 상점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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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 동아줄(1젠) : 제법 단단한 10m 길이의 동아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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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곳이 남아있는 아이템 하나가 있었다.

-뭐임.

-이런 상황에 아이템 구경?

-이거 사려구?

고천수는 지체할 것 없이 동아줄을 선택해 구매를 눌렀다.

훙.

그러자 공중에서 동아줄이 나타나 고천수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툭!

고천수가 살짝 피하자 작업대 위로 떨어진 동아줄을 보고 일행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뭐야.”

“이게 어디서…….”

다들 위를 올려다보았지만 뭐가 있을 리는 없었다.

“마침 잘됐네요!”

고천수는 그딴 건 상관없다는 듯 동아줄을 주워 들었다.

동아줄이라고 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굵고 튼튼하게 꼬여 있는 줄이었다. 지금 상황에 딱 필요한 정도의 강도와 그립감을 가지고 있었다.

“박창식 씨! 그것 좀 줘 보세요!”

“뭐? 이, 이거?”

박창식은 고천수에게 총을 건넸다.

고천수는 총의 기능고장을 해결하고 안에 낀 구겨진 총알을 빼낸 뒤, 탄창을 탈착해 내용물을 확인했다.

‘남은 총알은 없고…….’

빈 탄창을 다시 결합한 고천수는, 곧장 총의 몸체에다가 줄을 묶기 시작했다.

“뭐, 뭐 하는 건가?”

“혹시 몰라서요.”

고천수는 크루즈 선과의 남은 거리를 계속해서 눈으로 계산했다.

시동을 건 크루즈 선은 이제 속도를 붙이고 있었다.

붕붕.

고천수는 작업대가 크루즈 선에 다가서는 동안 총을 묶은 동아줄을 뱅글뱅글 돌렸다.

‘아직 멀어.’

작업대에서 크루즈 선으로 뛸 만한 거리가 되지 않았다.

모자랐다.

뛰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덜컹.

그 와중에 기둥은 이제 한계라는 듯 멈춰 섰다.

“크, 큰일 났다.”

“아직 거리가…….”

“다들 비키세요.”

다행히 작업대 정면으로는 난간이 없었다.

쉽게 뛸 수 있는 구조기는 했다.

“자, 자네 진짜 뭘 하려고 하는 건가!”

박창식이 다시 한번 물었지만 고천수는 거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막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곳에 시선이 꽂힌 그는, 이런 말만 남기고 발을 굴러 점프했다.

“다들 얌전히 기다리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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