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87화 (87/224)

087. 포항공항 (2)

쿠우웅.

지면이 울릴 정도의 충격이었다.

‘뭐지?’

착륙한 비행기 쪽에 문제가 생긴 걸까.

들어가 건물의 내부를 살펴본 고천수는 눈을 크게 떴다.

쿠웅.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무너져 있었다. 그 위로 천장도 부서져 떨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사람들은…….’

고천수가 출입구 쪽을 서성이던 때였다.

2층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나 에스컬레이터 반대쪽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서두르십시오!”

그 사람들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고천수에게도 익숙한 인물이었다.

‘저건……!’

청주 공항에서 서둘러 비행기를 타라고 안내해 줬던 군인이었다.

-공군이다.

-7.5사단 놈들은 안 보이네.

-휴, 다행.

한시름을 놓은 건 고천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그 소령도?’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사람들의 뒤로 조종사복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탁탁탁탁!

계단을 타고 내려온 그는 굳은 표정으로 건물이 무너진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소령님!”

사람들을 인솔하던 군인이 그에게 소리쳤다.

“키가 있는 곳이……!”

에스컬레이터가 무너진 곳에 어딘가로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있었던 듯했다. 고천수는 당황스러워하는 그들을 지켜보다가 가까이 다가갔다.

“……음?”

기척을 눈치 챈 진 소령이 고천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무사히 착륙하셨나 보군요.”

놀라는 진 소령을 보며 고천수가 입을 열었다.

“여긴 방금 전에 무너졌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건물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언제 또 붕괴할지 모르니 바로 나가야 합니다.”

고천수의 말에 진 소령은 정신을 차린 듯 눈썹을 치켜뜨더니 사람들을 인솔하던 군인에게 외쳤다.

“이병철!”

“병장 이병철!”

“사람들 데리고 먼저 나가 있어!”

인솔 군인, 이병철은 그 명령대로 사람들과 다른 군인들을 데리고 나갔다.

“후.”

진 소령은 한숨을 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뭔가 잘못된 겁니까?”

그렇게 묻는 고천수를 보며 진 소령은 굳이 숨길 거 없다는 듯 붕괴된 장소를 가리켰다.

“이 안에 저희들이 써야 될 차 키가 있습니다. 이 근처에 있던 다른 군인들이 떠나기 전에 남겨 두겠다고 했죠.”

“그럼…….”

“일이 골치 아파졌습니다.”

진 소령은 출입구 쪽으로 눈을 돌렸다. 고천수도 함께 시선을 향했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대충 봐도 20명은 넘어.’

군인이 반이고 민간인이 반이었다.

‘군인도 다 병사들만…….’

위관이나 부사관은 없었다. 지휘관은 여기에 있는 진 소령 한 명뿐이었다.

“근데 먼저 떴던 비행기는 어떻게 된 겁니까.”

진 소령이 고천수에게 물었다.

“살아 계신 걸 보니 다른 사람들도 더 있을 것 같은데.”

“아, 그거요.”

함께 데려가려고 그런 거면 참으로 책임감이 투철한 군인이 아닐 수 없었다.

“비행기는 추락했습니다.”

고천수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는 운이 좋아서 천천히 떨어지는 그 날벌레 몸에 걸려서 살았죠.”

“그런…….”

진 소령은 그게 가능하냐고 묻지 않고 그저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살아남은 건 그쪽뿐입니까?”

“고천수입니다. 이름으로 편하게 부르시죠. 그리고 살아남은 건 저 말고도 있습니다. 밖에 꼬마랑 개 한 마리가 있습니다. 셋 다 운이 좋았죠.”

-운이 좋았ㅋㅋㅋ

-틀린 말은 아니긴 함.

고천수는 이제 거꾸로 진 소령에게 물었다.

“진 소령님 쪽 인원도 이게 전부입니까? 청주 공항에서 더 올 인원은 없습니까?”

“원래는 더 있어야 하는데 저도 모르겠군요.”

진 소령은 이맛살을 살짝 찌푸렸다.

“안 그래도 고천수 씨가 해 줬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경계하긴 했는데, 그 군인들의 수가 적지 않고 민간인들까지 데리고 있던 터라…….”

“태운 건 역시 어쩔 수 없었다는 거군요.”

“다른 비행기들에 태우긴 했는데, 이쪽으로 안 오는 걸 보니 뭔가 문제가 생기긴 한 모양입니다.”

진 소령은 길게 한숨을 흘렸다.

“제 불찰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급박했어도 최선의 방법을 찾았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지금은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도 아니었다.

고천수가 붕괴 위험이 있는 이곳에 남아 진 소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 그로서도 이 안에 있다는 키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진 소령님. 일단은 그 키를 찾을 방법부터 따져 보죠. 여기 있는 사람들이라도 일단은 안전하게 이동해야 하니까요.”

-말은. ㅋㅋㅋㅋ

-역시 우리 천수만큼 이타적인 사람도 없제.

-[한도초과] : ^^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진 소령은 그 말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일단은 들어갈 수 있나 살펴보죠.”

진 소령은 붕괴된 장소 코앞까지 성큼성큼 걸어가 상태를 살폈다.

“공간이…… 있기는 있는데.”

잔해 사이로 작은 통로처럼 틈이 하나 나 있기는 했다.

“저희가 들어가기에는 좀 어려워 보입니다.”

진 소령의 말에 고천수도 살짝 잔해를 살펴보았다.

‘확실히…….’

사람이 지나가기에는 너무 작은 틈이었다.

‘잔해를 좀 치워 볼까?’

그런 생각을 떠올린 고천수는 곧 고개를 저었다.

그런 짓을 하다가 균형을 잃은 잔해가 무너지기라도 하면 본말전도였다.

“잠시만 기다려 보시겠습니까?”

진 소령은 밖으로 나가 잠시 군인들과 대화를 나누더니, 한 작은 군인과 함께 돌아왔다.

“저희 중에 가장 작은 친구입니다. 도움이 될지 모릅니다.”

이미 얘기는 끝났다는 듯, 작은 군인은 몸을 눕히고 틈 사이로 기어서 전진하기 시작했다.

“앗.”

하지만 채 몸이 반도 들어가지 못한 군인이 탄식과 함께 말했다.

“더는 못 들어갑니다. 몸이 걸립니다.”

“이런…….”

진 소령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망했네.

-근데 그럼 더 작은 사람만 있으면 되는 거 아냐?

-더 작은 사람?

그때 시청자들이 나누는 대화를 본 고천수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십니까?”

“잠시 만요.”

진 소령의 물음을 뒤로 하고 고천수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박준과 흑구가 있는 장소였다.

“준아!”

고천수가 외치자 큰 나무 뒤에 숨어있던 박준이 머리를 살짝 내밀었다.

“앗, 형.”

박준은 흑구와 함께 나무 밖으로 나오며 대답했다.

“괜찮은 거예요?”

“응? 괜찮지, 당연히.”

“큰 소리가 나고 건물 밖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나오길래요.”

그 말에 고천수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여기서도 공항의 정문 앞이 보이기는 했다.

“걱정 마. 다친 사람은 없고, 나한테도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그럼 다행이고요.”

“근데 문제가 하나 있어.”

고천수는 더 지체할 것 없이 박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부탁할 게 있어. 같이 가자.”

“부탁……요?”

고개를 갸웃거리긴 했지만 박준은 거절을 표하진 않았다.

“네! 알겠어요!”

“그럼 서두르자.”

고천수는 박준을 데리고 정문 앞으로 향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박준을 보고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마 이런 애도 살아있을지는 몰랐던 것이리라.

“왔습니다.”

안으로 들어간 고천수가 옆에 데리고 온 박준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아이는…….”

진 소령 역시 박준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같이 살아남았다는 일행이 이 아이입니까?”

“네.”

시간을 지체할 생각이 없던 고천수는 진 소령에게 빠르게 물었다.

“소령님, 이 안에 키가 있다고 했죠?”

그렇다면 그게 어디에 있는지, 박준에게도 설명해 줄 필요가 있었다.

“이 녀석한테 맡길 수 있게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시죠.”

“아.”

박준을 틈새 안으로 들여보낼 계획이라는 걸 알아챘는지 진 소령이 살짝 탄식했다.

“그렇군요. 위치야 정확히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진 소령은 박준과 눈을 마주쳤다.

“이 아이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걱정 마십쇼.”

이 나이치고는 박준은 제법 담력이 있었다.

공중에서 함께 목숨을 건졌던 고천수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가능하지?”

고천수가 시선을 보내며 하는 말에 박준이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억지로 한다는 거 아니냐.

-천수가 시키니까 뭐라고 못하는 것 같은데. ㅋㅋㅋ

-속으로 울고 있을 듯.

솔직한 심정으로 이 일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해도, 고천수는 사정을 봐줄 수 없었다.

‘그냥 걸어갈 수는 없으니까.’

밖에 있는 군인들의 힘을 믿는다고 해도 아직 항구에 도착한 것도 아니었다.

그 거리를 움직이면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적어도 여기서 이동수단만큼은 제대로 확보해야만 했다.

“……이곳으로 가면 작은 상자가 있을 거야. 그 상자를 그냥 그대로 가지고 나오면 돼.”

그사이 진 소령은 박준에게 필요한 물건이 있는 장소를 다 일러줬다.

위치라고 해 봤자 이 틈새 너머에 있는 사무실 한편에 있는 어느 서랍 안일뿐이었다.

나이 어린 박준이라고 해도 못 알아들을 내용은 아니었다.

“다 외웠어요.”

박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몸을 눕혔다.

“제가 금방 가지고 나올게요.”

그렇게 포복으로 기어들어가는 박준을 보며 고천수는 계속해서 잔해의 상태를 살폈다.

혹시라도 무너질 것 같은 기미가 보이면 경고라도 해 줘야 했던 것이다.

‘고맙게 생각하마.’

직접 들어가지 못해 이런 일을 시키게 된 건 고천수로서도 유감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건, 박준이 망설이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고천수가 살려준 거에 대한 보답인 듯.

-하긴, 천수 아니면 죽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적극적인 게 이해는 가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이라서 언제 어디서 칭얼댈지는 모르기 때문에 고천수가 계속 박준의 모습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왈!

흑구가 박준을 따라 틈을 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응?”

고천수는 흑구까지 안으로 들여보낼 생각은 없었다.

“뭐야, 넌 나와도 돼.”

제아무리 영리해도 개였다.

언제 어느 때에 실수로라도 잔해를 건드려 박준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고천수는 흑구를 말리려고 했다.

왈왈!

하지만 흑구는 고천수가 잡아채기 전에 틈새 안으로 완전히 몸을 들였다. 고천수는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 거참.”

결국 흑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간 박준이 고천수가 있는 틈새 반대편에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었다.

“들뜨지 말고 잘해라!”

고천수의 당부를 들은 박준은 잠시 고천수의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잘할 수 있겠습니까?”

옆에서 진 소령이 우려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고천수는 그저 고개를 끄덕여줬다.

“어차피 이 일을 할 다른 사람이 없는데요, 뭘. 잘되길 기도나 하고 있죠.”

그냥 열쇠를 가져오는 일이니 별일 없을 터였다.

“으아아아아!”

……분명 없어야 하건만.

“뭐지?”

틈새 안쪽에서 울려 퍼진 비명 소리를 박준이 들어간 입구에서 소리쳐 물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진 소령은 근처에 있던 군인에게서 작은 손전등을 받아 바닥에 드러누웠다.

“고천수 씨! 아무래도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난 모양입니다!”

진 소령은 병사를 시키지 않고 직접 엎드린 자세로 틈새 안쪽을 살폈다.

‘아, 망할.’

고천수는 진 소령의 모습을 보며 눈썹을 살짝 움찔거렸다.

-뭐야, 천수도 진 소령처럼 뭐라도 제대로 하고 싶나?

-것보다 안에 뭐 있는 거잖아. 도망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냥 넘어졌을 수도 있지. 그 나이대 애들처럼.

‘안에 진짜 뭐가 있나?’

궁금증을 참지 못한 고천수도 진 소령의 옆에 엎드렸다.

아직 틈새로 뭔가 보이지는 않았다.

‘제발.’

안에 뭐가 있으면 박준이 감당하기 힘들었다. 잘못하면 박준이 바로 위험해지고 키를 가지고 나오는 일 또한 요원해질 수 있었다.

‘제발 좀.’

크아아아아!

하지만 희망을 짓밟듯, 틈새 저편에서 몬스터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런!”

진 소령이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괴물이 있다! 꼬마야! 돌아 나와!”

늦었다.

반대편에서 뭔가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났다.

“박준!”

고천수도 틈새에 얼굴을 대고 외쳤다.

보이는 것은 좀비의 것으로 보이는 두 다리와 박준, 그리고 잠깐 스쳐지나간 흑구의 실루엣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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