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85화 (85/224)

085.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있다 (2)

평균 시속 190km대, 최고 시속 250km 이상.

활공비는 2.5 수준으로 윙슈트 플라잉은 1m를 추락할 때 2.5m를 전진한다.

“끄아아아아아아!”

하지만 심심할 때 인터넷으로 확인한 정보는 실제와는 체감 차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젠자아아아아앙!”

예전에 영상에서 봤던 대로 온몸을 쭉 폈지만 고천수는 숙련자가 아니었다. 무시무시한 속도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던 것이다.

“자, 잡아야……!”

지면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는 메이플라이 중 하나를 잡아야만 했다. 알고는 있지만 쉽지 않았다.

이 슈트에는 무슨 기능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뭔가 그냥 추락하게 생겼네.

-10젠짜리 윙슈트 기능이 뭐냐?

-이런 윙슈트는 보급함에서 잘 안 나오니까 기억이 헷갈…….

“형님들!”

고천수는 급하게 소리쳤다.

“빨리 아무거나 말해 보세요!”

-ㅋㅋㅋㅋ 난 천수 다급하게 물어보는 게 넘 웃기더라.

-천수도 그거 알고 항상 한계점에서 윽박지르는 듯.

-앜ㅋㅋㅋㅋㅋㅋ

대부분은 그냥 웃어넘기고 있었지만, 역시 도와주려는 시청자도 있었다.

-[한도초과] : 천수야! 손목이라도 뒤로 젖혀 봐!

-10젠짜리 윙슈트 기능이면 그거 같은데. 에어 브레이크.

팍!

시키는 대로 해 보았다.

“아?”

그러자 놀랍게도 추락 속도가 절반 정도는 줄어들었다.

-[한도초과] : 미안해. 일이 닥치고 알려 줘야 스포일러 시비 피해 가기가 쉬워서…….

“괜찮습니다!”

어차피 비행기 안에 있던 보급품일 때부터 이야기상 중요 지점에서 나타나는 아이템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주제에 랜덤인 듯했던 건 충격이었지만, 어쨌든 고천수는 일이 이렇게 풀릴 거라 예상했었다.

‘닥치면 도와주게 돼 있으니까.’

열혈팬이라는 존재 자체가 고천수에게는 천군만마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한도초과만 의지한다고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팬이 더 필요해.’

온리원의 말대로 시청자가 각양각색이라면 한도초과 단 한 명은 절대로 전지전능할 수가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많은 팬들의 도움이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많은 팬을 만들기 위해서는…….

쉬아아악!

지치지 않고 계속되는, 인상적인 플레이가 필요했다.

“크으으으윽!”

세찬 바람이 고천수의 얼굴을 때렸다. 속도를 줄여도 눈을 뜨기 쉽지는 않았지만, 고천수는 어떻게든 집중력을 유지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메이플라이를 포착해냈다.

“너로 정했다……!”

고천수는 낙하와 동시에 이동하면서 메이플라이를 강렬하게 주시했다.

날고 있는 상태에서 목표에 정확히 도달하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고천수는 눈물이 날 지경으로 눈을 부릅뜨고 젖혔던 손목을 내려 속도를 높였다.

“좀만, 조금만……!”

그리고 마침내 메이플라이를 고작 10m 정도 앞뒀을 때였다.

파악!

뱅글뱅글 돌고 있는 메이플라이의 기다린 몸체를 고천수는 팍 껴안을 수 있었다.

“크으으윽!”

순간 미끄러질 뻔했지만 고천수는 메이플라이의 허리에 나 있는 틈을 붙잡고 멈춰 섰다.

“하아.”

자기도 모르게 숨이 크게 터져 나갔다.

[띠링! 100L쓰레기봉투 님이 1젠을 후원하셨습니다. - 대박.]

[띠링! 행운인형 님이 3젠을 후원하셨습니다. - 이걸 잡네.]

[띠링! 화장실에서폰보는놈 님이 2젠을 후원하셨습니다. - 지렸다.]

당연히 반응도 따라왔다. 고천수는 웃음을 지으면서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망할…….’

부딪히면서 손이 좀 찢겼다. 고통이 따랐지만 그래도 기쁘기는 했다.

‘살았다.’

한 번에는 못 잡을 거라 생각했다. 한 번쯤 놓치지 않을까 했는데, 이 정도면 완전한 성공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후원까지 받아 재산도 39젠으로 채워졌다.

텁.

고천수는 메이플라이의 몸을 잡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피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봤을 때도 이미 몸은 터져 나가는 걸 확인했었지만, 직접 보니 역시 메이플라이는 충돌 자살을 한 게 확실해 보였다.

‘물론 안 죽고 기절했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내려갈 때 안 깨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이제 걱정할 건 내려가서 포항 공항, 더 나아가 바닷가까지 안전하게 이동해야 하는 일인데…….

“어?”

고천수는 순간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

“저건……!”

비행기 벽 구멍 쪽에 누군가 서 있었다.

“뭐 하는 거야!”

꼬마였다.

메이플라이들이 계속해서 충돌해 뒤흔들리는 비행기 안쪽에서 꼬마는 위태롭게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오지 마!”

무서울 수는 있었다. 동체는 뚫렸고 메이플라이들은 끊임없이 달려들고 있으니까.

하지만 뛰어내리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들어가라고!”

하지만 고천수의 외침이 들릴 리 없었다. 비척거리던 꼬마는 메이플라이 몇 마리가 비행기에 충돌하는 순간, 균형을 잃고 구멍 밖으로 떨어졌다.

“아.”

어떻게 해 볼 틈도 없었다.

꼬마는 곧장 추락을 시작했다.

-그냥 죽겠는데?

-떨어지는 게 꼭 운석 같네.

농담이나 칠 때가 아니었다. 꼬마는 고천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대로 놔두면 100% 죽게 될 것이었다.

“이런…….”

고천수는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도와줄 수 없다면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게 나았다.

물론, 고천수는 꼬마를 외면하기 위해 눈을 돌렸던 건 아니었다.

[띠링! 울부짖는정신병자, 물주 님이 보상 미션을 설정하였습니다.]

[연합 미션 - 꼬마 구하기.]

[연합 보상 - 19젠.]

-[울부짖는정신병자] : 할 수 있겠어?

두근.

고천수는 주먹을 꽉 쥐고 눈을 빠르게 움직였다.

마치 계산 중인 것처럼.

‘19젠……!’

홈쇼핑의 19,900원처럼 뭔가 애매하게 부른 액수.

하지만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야, 설마.

-잠깐.

-[한도초과] : 천수야?

목숨을 걸 정도의 금액인가?

그건 아닐 수도 있었다.

파앗!

하지만 성공할 수 있다면, 그딴 건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

-[한도초과] : 고천수!

휘이이이잉!

상공의 바람이 고천수를 감싸 안았다.

‘어떻게 하는지는 다 알았어!’

메이플라이에 매달려 있으면서 복기는 전부 끝냈다. 남은 것은 공연한 두려움으로 인해 실수를 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리 멀지 않아……!’

꼬마는 이제 고천수보다 밑에 있었다.

고천수는 최단 루트로 꼬마를 향해 날아갔다.

“야아아아아!”

소리쳤지만 꼬마는 듣지 못하는 듯했다.

“안 들리냐! 인마, 몸 펴!”

아무것도 안 입고 떨어지는 와중이라고 해도 저항을 이용하면 조금은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꼬마는 반응이 없었다.

-기절한 거 아냐?

정말 기절했다면 골치 아픈 일이었다.

고천수는 계속해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아래를 꽃들처럼 수놓고 있는 많은 메이플라이들을 바라봤다.

‘저기에 안착시키기만 해도……!’

추락하면서 나무에 연속해서 몇 번 걸리기만 해도 살아날 확률이 조금 생긴다.

지금은 제자리에서 천천히 회전하며 떨어지고 있는 메이플라이들이 그 완충제 역할을 해 줄 수 있었다.

“야아아아아!”

꼬마의 반응이 없었지만 일단은 최대한 가까이 다가갔다.

“이 자식!”

마침내 고천수는 꼬마의 옆에 다가섰다.

“거기서 왜 뛰어내리고 지랄이야! 어?”

윽박을 지를 때였다.

꼬마가 떠듬떠듬 눈을 뜨는 게 보였다.

-이 색힠ㅋㅋㅋㅋ 기절한 척했던 거 아님?

-미쳤냨ㅋㅋㅋ 누가 이럴 때 기절한 척해.

-타이밍. ㅋㅋㅋㅋㅋㅋ

눈을 떴다고는 해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는 못했다. 고천수는 꼬마의 바로 밑으로 내려갔다.

“준비해라.”

원래라면 손목을 뒤로 젖히는 것만으로 공기 저항이 뚜렷하게 더 생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슈트를 입고 있는 상태에서는 가능했다.

즉,

스스스스스!

이 슈트엔 물리력을 거스르는 힘이 있는 것이었다.

“끄으으으으!”

서서히 손목을 젖히면서 고천수는 속도를 늦췄다. 꼬마의 몸이 고천수 위에 올라타면서 둘은 함께 느려지기 시작했다.

“야! 빨리 정신 차려!”

“으, 음. 형……?”

“잘 들어! 지금부터 저것들 몸에 올라탈 거야!”

고천수는 고갯짓으로 아래의 메이플라이들을 가리켰다.

“붙잡을 준비해!”

“네?”

“붙잡을 준비하라고!”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네가 스스로 잡으려고 해야 돼! 못 잡고 놓칠 수도 있어! 그래도 걱정하지 마!”

서로 위아래로 가깝게 떨어지고 있는 메이플라이 세 마리 중 가장 위에 있는 놈이 일단 목적지였다.

“떨어져도 아래 다른 것들이 있어! 부딪혀서 떨어지더라도 괜찮아! 수직으로만 떨어지면!”

그렇게 떨어질 수만 있다면…….

“그다음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자, 잠깐만요.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을 리가…….”

“해야 돼! 죽기 싫으면!”

더 이상은 시간이 없었다.

세 마리의 메이플라이와 거리는 가까워졌다. 둘이 함께 메이플라이를 한 번에 잡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줄였어도 추락 속도는 엄청나고, 그 무게를 감당하려다가 둘 다 엉뚱한 방향으로 튕겨 나갈 수도 있었다.

고천수가 확신할 수 있는 건 혼자서 메이플라이를 붙잡았던 경험뿐.

그러니 이젠 고천수와 꼬마, 각자의 대담함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후우.”

깊은 심호흡이 고천수의 긴장을 완화시켰다. 그의 강화된 신체는 극한의 상황까지 몰리자 더욱 감각을 일깨우고 있었다.

“형님들, 잘 보십쇼.”

고천수란 놈이 어떤 놈인지.

파앗!

고천수는 손목을 앞으로 내리고 먼저 아래로 내려갔다.

강한 바람이 둘 사이의 공간으로 휘몰아쳤다.

꼬마는 고천수가 없어지자 바로 허우적댔다.

쿵!

“컥!”

세 마리 중 가장 밑에 있는 메이플라이.

손목을 젖히며 속도를 다시 급하게 줄인 고천수는, 바로 그 메이플라이에 몸을 부딪치며 안착했다.

“끄으으으!”

-와, 또 잡았어!

-ㅋㅋㅋㅋ 담력은 진짜 미친 듯.

-한 번 배운 건 실수 안 한다 이건가.

아직이다.

고천수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날 실망시키지 마라!”

미션이 남아있었다.

생존한 거로 끝이 아니었다. 고천수는 받아야 할 것이 있었다.

“제발……!”

다만 그 이상이 담긴 눈빛으로 고천수가 꼬마를 바라볼 때였다.

“꺽!?”

꼬마는 제일 위에 있는 메이플라이와 부딪혔다.

잡지는 못했다.

“으아아아!”

툭!

추락한 꼬마는 그 아래에 있는 메이플라이와 부딪혔다. 고천수는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이쪽이야아아!”

속도는 줄었다. 이 정도면 고천수가 위험 없이 안전하게 잡아 줄 수 있었다.

단, 꼬마가 길을 이탈하지 않았을 때만.

“아아아아아! 혀엉!”

그때였다.

턱!

고천수가 길게 뻗은 팔.

1m도 안 되는 그 길이에, 꼬마의 골반이 걸쳤던 것은.

“으아아아아!”

허리 아래를 잡았기에 꼬마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고천수는 바로 꼬마를 당겨 메이플라이의 몸에 붙여 주었다.

주륵.

불균형한 자세였기에 잠시 삐끗하기는 했지만, 꼬마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결국 메이플라이의 몸을 잡아냈다.

-와.

-뭐임.

해냈다.

-와아아아아아!

-이 미친 새끼!

불타오르는 채팅창.

고천수는 목 밑까지 차오르는 짜릿함을 느끼며 젖은 한숨을 뱉어냈다.

“하, 하아.”

-미쳤다!

-기적 아님?

-일부러 골반 잡은 거 아니지? 그런 거면 넌 진짜 레전드.

충격을 가장 잘 흡수할 수 있는 부위를 노렸던 건 맞지만, 굳이 신경 쓰진 않았다.

잡지 못했으면 꼬마는 어차피 비명횡사했을 테니까.

[미션을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을 부여합니다.]

[정보는 채팅창의 $으로 확인 가능합니다.]

꼬마 구하기 완료.

이제 땅에 내려서서 추락 극복 미션도 끝내면, 재산은 총 73젠으로 멋들어진 숫자가 만들어질 예정이었다.

“하아하아.”

아직도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고천수는 바로 옆으로 고개를 돌려 꼬마를 쳐다보았다.

꼬마는 거의 울 듯한 얼굴로 고천수를 마주보고 있었다.

“울지 마, 새꺄.”

고천수는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어떻게 하는지 알려 줬더니 왜 기어나오고 지랄이야, 지랄이! 진짜 뒈지려고 환장했냐?”

“아, 안에 괴물들이 들어와서…….”

“됐어, 인마! 나중에 설명해!”

고천수는 꼬마의 볼따구를 잡았다가 놓으며 말했다.

“정신이나 차려, 알았냐? 아직 안 끝났으니까 어리광은 접어 두라고.”

날개 가진 놈에게 붙어서 안전하게 떨어져도 추락은 추락이었다.

목적지에는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

고천수는 바다가 보였던 지평선 너머로 시선을 향했다.

“명심해. 살고 싶으면, 한 사람 몫은 꼭 해내야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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