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80화 (80/224)

080. 쫓고 쫓기는 자 (5)

끽! 끼익!

고천수가 탄 차가 스키드마크를 그리며 휘청거렸다.

“도와줘!”

몰려나온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차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고천수는 그들을 피해 차를 움직여야만 했다.

끼이이익!

넘어질 뻔했던 차의 균형을 간신히 맞추며 고천수는 다시 가속 페달을 밟았다.

부우우웅!

“하아.”

사람들이 빅 바디에게 잡혀서 삼켜지고 있는 게 백미러를 통해 보였다.

“개새끼들.”

아무리 살아남기 위해서라지만 끔찍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근데 사람들 겁나 빨리 내리네.

-수류탄이라도 깠다고 구라 쳤나.

-으, 나한텐 너무 잔인함.;;

시청자들의 의견도 고천수와 비슷했지만, 처지는 그와 달랐다.

“제기랄…….”

고천수는 아직 위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차량의 수명이 10분 남았습니다.]

‘역시 이 정도밖에 안 남았나.’

군인들이 공항 사거리에서 시간을 너무 썼다.

속도를 좀만 높여도 청주 공항까지 가는 게 여유롭기는 했지만, 문제는 앞서 가는 군인들의 속도가 그다지 빠르지 않다는 점에 있었다.

시속 114km.

현재 승합차에 찍힌 속도는 느리지는 않지만 도착까지는 좀 아슬아슬하기는 했다. 한 번만 장애물을 더 맞닥뜨려도 남은 시간이 부족해질 테니까.

-[한도초과] : 근데 천수야, 방법은 마련한 거?

“방법? 뭐 말입니까. 아.”

고천수는 한도초과가 그렇게 물은 의도를 알아챘다.

“공항에서 말이죠…….”

몇 가지를 생각해 두기는 했다.

가장 바라고 있는 경우는 이 앞에 녹색 라인, 즉 분기점이 있어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정보창만 갱신된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급격히 높아질 테니까.

하지만 그건 운이 좋을 때나 가능했다.

“상점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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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 동아줄(1젠) : 제법 단단한 10m 길이의 동아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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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갱신이 없는 것을 보고 고천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상태에서는 요행에 기댈 수 없었다.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섞여 들어가는 것밖에 없는 것 같네요.”

대전복합터미널에서는 군인들이 사람들을 속아낼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럴까?

“지금은 절 구분해낼 시간이 없을 거예요. 화물칸이든 어디든 섞여서 들어가겠습니다.”

미끼를 선정해서 데려갈 때부터 이런 상황이 생길 것이란 사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남은 건, 실제로 섞여 들어갈 수 있는 실행력을 갖추고 있냐는 것뿐.

-공항이다!

-이제 다 왔어!

조금 더 달리자니 공항이 가까워졌다.

고천수는 숨을 한 번 크게 몰아쉬었다.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몰라.’

군인들은 이곳에 몬스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다.

다만 그래스퍼의 존재는 미리 알지 못했다.

모순.

대전복합터미널에서 미리 현장 답사를 나간 인원이 있는 거라면 이렇게 중간 루트에 대한 정보만 비어 있을 리 없었다.

답은 하나였다.

‘청주 공항에 있던 누군가.’

처음부터 청주 공항에 있던 누군가가 몬스터를 발견하고 원거리 통신으로 정보를 전달한 것이었다.

‘7.5사단 병력이 더 있을지도…….’

거리만 따지면 장거리 무전을 사용했을 텐데, 공항 직원이나 군인들이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한도초과] : 공항에 사람들이 더 있을 수 있어.

한도초과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스포일러를 던졌다.

‘이미 알고 있어.’

더 구체적인 정보를 주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다면 괜찮았다.

“갑니다.”

고천수는 다시 운전대를 꽉 잡았다.

목표는 공항을 앞두고 나눠지는 갈림길이었다.

부웅!

가속 페달을 밟았다. 군인들이 예상대로 공항의 입구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로 들어섰을 때였다.

“내가 더 빨리……!”

내비게이션 지도를 통해 길은 이미 다 확인했다.

우회로를 선택했으니 남은 건 군인들보다 빨리 달려서 거리를 상쇄하고, 안전하게 앞서나가 공항에 먼저 들어가는 것이었다.

바아아아아아앙!

차가 미친 듯이 떨렸다.

곧장이라도 넘어질 듯했지만 고천수는 공포심을 억누르며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만 집중했다.

끼이이익!

마침내 공항 입구를 바로 앞에 둔, 주차장 한편에 도달했을 때는 빠르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차를 멈춰 세웠다.

쾅!

매끄럽지는 못했다.

결국 기둥에 차를 박은 고천수는 탄식과 함께 휘청거렸다.

“헉…….”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시간이 없었다. 고천수는 아픈 머리를 쥐어 잡으며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흑구야, 나가.”

다행히 다친 곳이 없던 흑구는 그의 말에 따라 문 밖으로 성큼 내려섰다.

“일단, 총성은 없네요.”

-ㅋㅋㅋㅋㅋ 천수야…….

-너도 미끼가 있었구나.

어쩔 수 없이 흑구를 먼저 내리게 하긴 했지만 총에 맞기를 바랐던 건 아니었다.

“가자, 흑구야.”

차에서 내린 고천수가 흑구와 함께 공항 건물로 향해 뛰어갈 때였다.

부우웅!

멀지 않은 곳에서 군인들이 탄 차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더 빨리!

-쟤네들도 거의 다 도착했다!

“알고 있습니다.”

고천수는 건물 안에도 흑구를 먼저 들여보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의 자락으로 허리춤의 도끼 머리도 가렸다.

‘있나……?’

그러면서 빠르게 내부를 살폈지만 별다른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고천수는 숨을 한 번 삼키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위험해도 어쩔 수 없었다. 군인들이 너무 가까이 따라붙어 있었다.

왈!

먼저 앞서나간 흑구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짖었다.

“뭐…….”

멈칫한 고천수는 흑구가 짖은 방향에서 사람 한 명을 발견했다.

녹색의 복장을 입고 있는, 한 남자였다.

“요구조자!”

남자는 갑자기 고천수를 향해 소리쳤다.

“요구조자입니까? 저희한테 구조 요청을 보낸……!”

“예?”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고천수는 그의 가슴 부근으로 시선을 향했다.

거기에는 날개 마크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공군……?!’

고천수가 놀라는 사이, 남자가 다시 외쳤다.

“시간이 없습니다! 그 괴물들이 따라붙었죠?”

“예? 예.”

“더 이상 그 괴물들과 싸우는 데 쓸 탄약이 없습니다! 서두르세요!”

남자가 고천수를 향해 손짓했다. 그사이, 군복에 같은 마크를 달고 있는 공군들 몇이 주변을 지나갔다.

“진 소령님!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서두르셔야…….”

그중 남자를 진 소령이라고 부르며 다가오던 공군이 고천수를 바라보며 눈을 크게 떴다.

“저 사람은……?”

“지금 막 도착한 요구조자다! 데리고 가야 하니 얼른 합류시켜!”

그러자 명령을 받은 공군이 탄식을 뱉고는 고천수를 끌어당겼다.

“어, 음.”

고천수는 엉겁결에 그 군인의 손에 이끌려 어딘가로 뛰어가게 됐다.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공군이 고천수를 안내하면서 소리쳤다.

“이름?”

“예!”

“고천수입니다.”

“네, 고천수 씨! 저희 부대는 지금 괴물들의 습격을 받아 급하게 이륙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저기 보이시죠!”

군인은 탑승구 하나를 가리켰다.

“들어가셔서 바로 착석해 주시면 됩니다! 시간이 없으니 필요하신 설명은 나중에 들으시길 바랍니다!”

워낙에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돼 뭐라 따져볼 수도 없었다.

“얘는…….”

기껏해야 꺼낸 말이 흑구는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데려가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냥 빨리 들어가십시오!”

군인은 그렇게 말하며 뒤돌아섰다. 이걸 같이 타지는 않는 듯했다.

“……잠깐!”

고천수가 그런 그의 어깨를 급하게 붙잡아 세웠다.

“읏? 뭐, 뭡니까!”

“드릴 말이 있습니다.”

“예? 지금 상황에 뭘…….”

“제 뒤로 도착한 군인들은 엄청나게 위험한 그룹입니다.”

이쪽 공군과 어떻게 연락해서 도움을 받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둘은 서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군인이 아니었다.

“오면서 민간인들을 미끼로 써서 여기까지 오는 걸 봤습니다. 일반적인 부대가 아니에요.”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상관한테 전하세요.”

고천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태우더라도 경계하라고.”

지금 상황에서 안 태우고 출발하는 건 불가능했다. 여기서 군인들끼리 교전이라도 벌어졌다간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갑니다.”

경고는 이 정도면 충분했다.

고천수는 흑구와 함께 탑승구로 향했다.

덜커덩.

탑승구로 들어가 통로를 달려가는 그때, 비행기의 문을 닫으려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만요! 사람 들어갑니다!”

-다급한 거 보겤ㅋㅋㅋㅋ

-ㅋㅋㅋㅋㅋ 출입문 열어! 우리 모지리 들어간다!

-천수 얘는 타이밍도 좋다니깐.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일단 이곳에서 뜰 수만 있다면, 고천수는 더 바보처럼 굴 수도 있었다.

“뭐, 뭐야!”

다시 열린 문으로 흑구가 들어가려니 문을 잡고 있던 군인이 놀라 기겁했다.

“탑승객 두 명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고천수는 군인의 어깨를 살짝 붙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건…….’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정말로, 많이.

마치 피난민이 가득 들어찬 방공호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왈!

흑구의 외침을 따라 복도를 걸으며 고천수는 탄식을 흘렸다.

‘구해낸 사람들인 건가……?’

군인들도 있지만 일반인으로 보이는 탑승객이 훨씬 더 많았다.

‘그렇구나.’

이곳에 남아 있는 공군이 왜 대전복합터미널에서 오는 군인들을 기다려 줬는지 알 수 있었다.

서로 목적이 같았던 것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빨리 자리에 착석해 주세요! 출발합니다!”

군인 중 누군가가 외쳤다. 고천수는 서둘러 근처를 둘러보았다. 다들 급하게 앉았는지 순서 없이 띄엄띄엄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였다.

고천수는 통로 쪽 한 자리에 얼른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일로 와.”

복도를 헤매던 흑구는 얼른 불러서 옆에 자리에 앉혀 놓았다.

위이이잉.

비행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마른침을 삼키며 기다리고 있는 사이, 비행기를 끌어 주던 토잉카가 이탈했다.

스스로 택싱을 시작한 비행기가 필요한 활주로 위에 올라섰다.

동! 동! 동!

이륙 안내 방송도 없이 안전벨트 착용 경고음만이 내부에 울려 퍼졌다.

위이이이이이이이잉!

순간 비행기의 엔진이 출력을 높였다.

비행기는 빠르게 활주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괴물들이…….”

“무서워, 엄마.”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고천수도 창문으로 시선을 향했다.

“……아?”

공항 근처로 빅 헤드들과 빅 바디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게 뭐야.”

고천수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연출 같은 거라고 생각하셈.

-원래 급박하게 이륙하는 게 국룰이잖음.

-어차피 안 잡힘.

연출이고 뭐고 고천수에게는 실제였다.

“…….”

등줄기를 스치는 서늘한 느낌에 고천수는 입을 다물고 몸을 늘어뜨렸다.

‘뒈질 뻔했네.’

지금 저런 데서 갇혔으면 십중팔구 사망이었다.

‘당장은 살았지만…….’

7.5사단의 군인들은 어쩌지 못했다. 상대할 수 있는 인원이 아니었으니 이것만 해도 최상의 결과를 받은 것이었지만 못내 찝찝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같은 목적지로 날아간다면 착륙 이후가 또 문제일 테니까.

우우우웅!

하지만 그딴 건 나중에 생각하라는 듯, 비행기가 이제 활주로 위로 날아올랐다.

“하아.”

순간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감.

비행기에 탔다는 것도, 여기 수많은 사람들과 같이 있다는 것도 너무 갑작스러워서 믿기지 않았지만 일단은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았지만…….

‘아냐.’

수많은 아포칼립스 게임을 해 온 고천수는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임이 끝날 때까지는,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과 평화를 반드시 의심해야만 했다.

-천수 왤케 불안해보이냐.

-탔잖아. 일단 쉬어.

-숨넘어가겠다.

고천수는 시청자들의 반응에 아랑곳 않고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엔 몬스터들을 보는 게 아니었다.

“왜…….”

비행기는 날아오르며 방향을 선회하고 있었다.

-뭐 보는 거야?

-하여간 불안장애라니까. ㅉㅉ

시청자들의 반응에 고천수는 오히려 눈썹을 치켜떴다.

“형님들. 잠시만 조용히.”

고천수는 안전벨트를 풀고 아예 창가 자리로 옮겨서 밑을 살폈다.

“아.”

비행기가 남쪽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아챈 순간, 창가가 구름으로 가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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