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79화 (79/224)

079. 쫓고 쫓기는 자 (4)

“터미널?”

장서연이 말꼬리를 높이자 양민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형은 분명 거기로 갔을 테니까요.”

“으음.”

살짝 신음을 내뱉은 장서연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고천수가 진짜 거기로 갔는지를 모르니까…….”

“아.”

고천수의 생각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일행이 이렇게 흩어지는 것까지 계획에 두지는 않았을 터.

양민철도 그 점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형은 계획대로 가지 않았을까요?”

“터미널에는 군인들이 있어.”

장서연은 우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도 알겠지만 거기에 있는 군인은 일반적인 군인이 아니야. 어떤 위험을 가지고 있을지 몰라.”

“그건…….”

“솔직히 지금은 고천수가 없으면 그 군인들이랑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장서연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살짝 헝클어뜨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점에 대해서 좀 더 대화를 나눠 보는 건데. 갑자기 사라지니까 난감하기만 하고.”

“저도 난감하기는 해요.”

리더 역할을 했던 고천수가 없어졌다는 건 이래저래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도 여기까지 오기는 했잖아요.”

사람에게는 관성이라는 게 있었다.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고 해도, 갈 방향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형이 없어도 형이랑 같이 잡았던 진행 방향을 수정할 것까지는 없어요. 현재로서는 그게 최선이기도 하고요.”

“……너.”

장서연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생각보다 심지가 굳구나? 고천수가 없어진 거에 그렇게 당황하지도 않은 것 같고.”

“당황했어요.”

하지만 이미 한 번 자신을 도와주던 친구들을 도중에 잃었을 때 위험하게 갈팡질팡했던 경험이 있는 만큼, 이번엔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것뿐이었다.

“당황했지만 형도 아직 살아 있고,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그렇다면 서로 잠시 떨어져 있을 뿐, 달라질 것은 없었다.

“계획대로 터미널에 가요. 거기에 가면 형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후.”

장서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천수가 우리 죽었다고 생각하고 가 버린 거면, 괜히 따라갔다가 문제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차피 달리 갈 데도 없잖아요. 가서 생각해요.”

양민철은 젖어 있는 교복 소매를 짜내며 물었다.

“아, 혹시 그 옷은 어디서 났나요?”

“옷?”

장서연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이미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아, 이거. 저쪽에 가니까 매장이 좀 있더라.”

“저 좀 안내해 주세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

그러면서 장서연은 시선을 돌려 김하령에게 소리쳤다.

“야! 우리 갈 거야!”

“…….”

김하령은 대답이 없었다.

“갈 테니까 준비해! 너도 가서 옷 좀 갈아입고!”

“…….”

“고천수 보러 안 갈 거야?”

그러자 김하령은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성큼성큼 장서연에게 걸어왔다.

“뭐, 뭐야.”

“가요.”

당황하는 장서연을 지나쳐서 김하령은 먼저 걸어가기 시작했다.

“뭐야, 대체.”

“저희도 가요, 누나.”

양민철은 장서연의 팔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더 뒤처지면 안 되잖아요.”

“어? 어, 그래.”

그렇게 셋은 고천수를 쫓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

“형이 여기에서 버스를 타고 사라졌다고요?”

옷을 갈아입은 뒤, 일행은 한 버스 정류장 앞에 서 있었다.

“떠났죠. 늑대처럼 생긴 것들한테 쫓기다가, 휙 하고 말이에요.”

김하령이 떨리는 음색으로 자신이 봤던 상황을 설명했다. 양민철은 주위를 살펴보았다.

“털…… 같은 게 있네요.”

늑대처럼 생긴 것들이라고 했던가.

그 말은 사실인 듯했다.

“저쪽으로 갔나 봐요.”

마치 털갈이를 하듯 어떤 길을 쭉 따라 털이 흩뿌려져 있었다.

“헨젤과 그레텔도 아닌데, 그거 따라가려고?”

장서연이 의문을 표했지만, 양민철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답했다.

“바람이 불고 있지는 않잖아요. 일단 이 털은 바람에 잘 날릴 것 같지도 않아요.”

무겁진 않지만 약간의 점성이 있는 털이었다. 그 때문에 바닥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어차피 저희 목적지는 터미널이니까요. 참고 정도만 하면 되겠죠.”

“그래, 뭐. 맞는 말이긴 하네.”

장서연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답했다.

“근데 가다가 무기부터 구해야 할 것 같아. 우리, 있는 거 다 잃어버렸잖아.”

“그렇긴 하네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허우적대다 보니 가지고 있던 짐을 다 잃어버렸다. 당연히 괴물들을 상대할 만한 무기가 있을 리 없었다.

“공구점이라도 한 곳 있으면 들르도록 해요.”

양민철은 대꾸하면서 다시 바닥의 털로 시선을 가져갔다.

“그리고 이 털들을 따라가도록 하죠.”

“참고만 하자면서.”

장서연은 살짝 탄식을 흘리며 김하령을 돌아보았다.

김하령은 정류장 안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그곳에서 고천수의 잔상이라도 찾고 있는 듯 보였다.

“거기에 있을 리가.”

장서연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고천수는 이곳을 떠나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셋 중 그 누구도 아직은 알지 못했다.

***

그 시각, 청주 국제공항의 길목인 공항사거리 앞.

“이것 참…….”

고천수는 먼 곳에서 군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뭔가 불안한데.”

공항 사거리는 다른 차들로 꽉 막혀 있었다. 군인들은 그 차들에 본인들의 차를 연결해 끌어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네 차 움직일 수 있는 시간 지나는 거 아니냐.

-뭔가 좀 그렇네.

-공항 사거리니까 여기서부터는 걸어갈 수 있는 거 아님?

내비게이션을 통해서 본 지도를 통해서 보기엔, 그냥 걸어가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그냥 걸어가다가는 군인들 총에 맞을 수도 있어요.”

지금도 군인들 중에서 몇몇이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게 보였다.

“그나마 멀리서 제가 가만히 구경하고 있으니까 괜찮은 겁니다.”

물론 공격하려고 하면 시도할 수는 있겠지만, 고천수는 일부러 차를 나무 뒤에 세워 두고 있었다.

-총 맞기 싫어서 엄폐물 뒤에 숨어놓곤. ㅋㅋㅋ

-구경이라기보다는 피신 아닐지요. ㅋㅋ

“형님들, 그게 그거죠.”

입씨름이나 하고 있으려니 고천수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허겁지겁 왔는데 이러고 있으니까 답답하네…….’

그건 군인들을 통솔하는 지휘관도 마찬가지인 듯, 멀리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야! 이것 하나 빨리 못 해? 버스에 연결해서 옆에 작은 차 몇 개 치워내! 바로 공간 나올 거 아냐!”

고천수는 그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주위에 있는 군인들의 수를 생각했을 때, 그는 중대장일 확률이 높았다.

‘대전역에도 이 정도의 병력이 있던 건가?’

대전역의 인원이 대전복합터미널로 넘어와서 합류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을 듯했다. 대전에서 꽤나 중요한 지점인 대전역을 관리하는 인원이 일개 소대였을 가능성은 낮을 테니까.

각각 따로 중대 인원이 배치돼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했다.

‘그럼 그쪽은 다른 길로 가는 건가.’

KTX를 영등포역에 보낸 작전은 실패한 듯한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모르겠군.’

어차피 고천수는 이쪽 길을 선택했다. 여기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제주도로 떠나야만 했다.

부우우웅!

버스들과 트럭들이 길을 막고 있던 작은 차들을 치워냈다.

“빨리빨리 준비해!”

-지휘관이 다혈질인가 봄.

-목소리통만 보면 기차라서 대전역이 어울리는데 여기에 있네.

-급해서 그런 거 아님?

고천수는 뒤를 바라보았다.

뭔가 쫓아오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마음이 흔들리는 듯했다.

쿵.

아니었다.

“뭐야.”

흔들리는 건 마음이 아니었다. 실제로 땅이 흔들리고 있던 것이다.

“서둘러어!”

지휘관이 크게 소리쳤다.

군인들이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형님들, 이거 뭐예요.”

고천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글쎄.

-여기선 알려줘도 되나?

“아니, 무슨 스포 못 하는 병에라도 걸렸어요?”

-ㅋㅋㅋㅋㅋ 왜 화내.

-스포 잘못했다가 신고당하면 제재 먹을 수도 있단 말야.

“예?”

어쩐지 아무리 재미없어진다고 해도 너무 스포를 안 한다 했다. 여태껏 시청자들이 두루뭉술하게 미래에 대해 얘기했던 데는 나름대로 다른 중요한 이유도 있던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말하라고요!”

-아나, 미친놈. ㅋㅋㅋㅋ

-빅 헤드 같은 거라도 오나 보지.

빅 헤드.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고천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빅 헤드?”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몬스터 중 하나였다.

“빨리 말씀하셨어야죠!”

웃음으로 가득 차는 채팅창에서 시선을 돌리고 고천수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군인들이 출발하면 바로 따라갈 셈이었다.

아직은 빅 헤드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너무 긴장할 건 없었다. 심지어 지금은 차를 타고 있지 않은가.

쿵.

울림이 있었다. 고천수는 백미러로 뒤를 확인했다.

“응……?”

거대한 손이 땅 위로 올라와 있었다.

“빅, 헤드?”

그러기엔 손이 너무 컸다.

빠앙!

군인들 쪽에서 경적이 터져 나왔다.

실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고천수에게는 최악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쿵! 쿠웅!

몬스터가 땅 위로 기어 올라왔다.

고천수는 그제야 몬스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빅 헤드라고?”

아니었다.

머리는 빅 헤드랑 같았지만 몸이 훨씬 컸다.

-[한도초과] : 빅 바디. 빅 헤드의 성체야.

꾸우우우우우우!

웃음도 안 나오는 이름을 가진 몬스터의 등장을 보고 고천수는 탄식을 뱉었다.

“성체라고요?”

쿵! 쿵!

숨어 있던 곳에서 튀어나온 빅 바디가 이쪽으로 빠르게 쫓아오기 시작했다.

“이런, 망할!”

고천수는 얼른 브레이크를 풀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이러려고 놔둔 건가……!”

어쩐지 뒤에서 대놓고 신경 쓰이게 있는데도 공격하지 않는다 했다. 뒤에서 이런 게 쫓아오면 그냥 알아서 죽으라고 내버려 둔 것이었다.

부우우웅!

군인들의 차, 그리고 뒤를 쫓는 고천수의 차가 사거리를 지나 빠르게 달렸다.

‘저런 걸 달고 공항에 들어갔다간……!’

비행기가 뜨기도 전에 잡힐 수도 있었다.

“아!”

그제야 고천수는 깨달았다.

미끼용 버스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건, 비행기가 뜰 동안 먹이로 줄 것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끔찍.

-빅 바디면 버스로 만찬 준비할 만하지.

빅 헤드만 해도 먹성이 엄청 났다. 무려 집을 뜯어 먹을 정도가 아니었던가.

“버스, 준비할 만하긴 했네요.”

어떻게 정보를 수집했는지는 몰라도 참으로 적절한 미끼가 아닐 수 없었다.

쿵!

길 앞에 빅 바디가 하나 더 나타났다.

-샌드위치 가자아아아!

그때였다.

가장 앞에 있던 버스가 빠르게 앞으로 달려갔다.

“저건…….”

고천수가 눈을 크게 뜨는 사이, 버스는 앞쪽의 빅 바디 앞에 멈춰 서서 문을 열었다.

“으, 으아아아아아!”

버스 기사가 뭐라고 설명한 걸까.

그 버스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젠장!”

“멈춰! 태워줘!”

“차가 고장 났어!”

사람이 저렇게까지 크게 소리칠 수 있는지, 고천수도 처음 알았다. 절망에 찬 사람들의 옆으로 빅 바디가 다가섰다.

“아악! 아아아악!”

빅 바디가 사람 한 명을 들어 입가에 가져갔다.

-오우 쉣.

-식사가 좀 고어하네.

고천수는 표정을 굳혔다.

자신의 집 쪽에서 빅 헤드에 잡혔던 그 사람이 생각 났다.

-[한도초과] : 고천수!

살짝 정신이 멍해지는 사이, 한도초과가 말했다.

-[한도초과] : 정신 차려!

고천수는 이를 악물고 핸들을 꽉 잡았다.

“형님들, 꽉 잡으세요.”

뒤에도 빅 바디가 쫓아오고 있었다. 군인들은 앞쪽의 빅 바디가 사람들을 집어 먹는 사이, 옆쪽으로 우회해서 도망가고 있었다.

늦었다간 고천수는 식사를 마친 앞쪽 빅 바디와 뒤쪽 빅 바디에게 둘러싸일 수 있었다.

부아아아앙!

하지만 이 차가 어떤 차던가.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였다.

부우우웅!

그렇게 순조롭게 뒤따라 붙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끼이이익!

군인들 쪽에서 버스 한 대가 뒤로 빠지더니, 고천수가 갈 길을 가로막듯이 멈춰 서서 문을 열었다.

“아, 아악!”

“두, 두고 가지 마!”

앞쪽의 버스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시발.”

고천수의 차 앞에,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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