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78화 (78/224)

078. 쫓고 쫓기는 자 (3)

부우우우웅!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한 차량의 엔진소리. 하지만 군인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뭐 해! 저쪽에서 또 오잖아!”

투다다다다다!

군인들은 각기 들고 있는 총으로 지척에서 다가오는 거미 몬스터를 잡기 위해 부단히도 애썼다.

“제기랄!”

1소대장은 2번 버스의 밑으로 들어가려는 거미 몬스터를 겨우 총으로 맞히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들 정신 차려! 버스 밑에 들어갈 뻔했잖아!”

1번 버스는 그렇다 치고 2, 3번까지 잃을 수는 없었다. 이들 버스는 미끼로 사용될 공간이 따로 정해져 있었다.

미끼로 쓰지도 못한 이런 방식으로 허무하게 내어줄 수는 없었다.

투두두두두!

거친 총성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거미 몬스터가 계속해서 따라붙었던 것이다.

“이, 이대로는……!”

“속도를 높여야 합니다!”

“누가 그걸 모르냐?!”

소대장은 미간을 팍 찌푸렸다.

2, 3번 버스에 더 빨리 달리라고 이미 지시했다.

그에 맞춰서 뒤의 행렬도 더 빠르게 속도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람을 많이 태우고 있는 차량이 속도를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거미 몬스터를 완전히 따돌려 버릴 만큼은 힘들었던 것이다.

끼이이익!

그때였다.

후미에 있던 지프차 하나가 갑자기 균형을 잃으며 조금씩 뒤쳐졌다.

“저건…….”

소대장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이 지프차는 갑자기 옆으로 넘어졌다.

쾅! 드드드드드득!

충돌과 함께 바닥에 미끄러지던 지프차는 이내 폭발과 함께 불길에 휩싸였다.

“제기랄!”

폭발까지 했다.

소대장은 대전역에서 공유했던 정보를 떠올렸다.

7.5사단이 만들고 있는 몬스터 도감에 최근에 수록된 녀석.

달리는 기계 밑에 달라붙어서 속도를 저하시키다가 자폭하는 몬스터였다.

부여된 이름은 그래스퍼.

“또 옵니다!”

소대원들이 수 마리의 그래스퍼가 다가오는 것을 소리쳤다.

소대장이 마른침을 삼키며 2, 3번 버스의 수호를 위해 총구를 들어 올릴 때였다.

부아아아아앙!

찰나의 순간, 이질적인 엔진소리가 그의 귓속에 쑤셔 박혔다.

“응?”

그는 반사적으로 다시 행렬의 후미로 시선을 돌렸다.

검은 연기.

폭파되며 연기를 피어 올리는 지프차 때문에 그쪽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바아아아아앙!

검은 연기를 뚫고 달려오는 것이 있었다.

“뭐야.”

소대장은 순간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투다다다다다!

옆에서 울려 퍼지는 총소리에 가려서 더 이상 엔진소리가 뚜렷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소대장은 이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차 한 대가 이쪽으로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다고.

“어떻게…….”

저 멀리서 이쪽을 간신히 쫓고 있기나 했던 바로 그 작은 승합차가, 불가사의할 정도의 속도로 가깝게 다가오고 있었다.

“말도 안……!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끼이이익!

승합차가 행렬의 뒤를 따라잡은 순간, 소대장이 탄 차가 균형을 잃었다.

***

끼이익! 끼이이익!

몇 대의 차량이 앞에서 흐느적거리며 S자를 그렸다.

왈왈!

조수석에 타 있는 흑구가 놀란 듯 계속해서 짖어댔다.

-야, 시발! 이건 안 된다!

-잠깐 멈춰!

-못 피한다고!

그럴 수는 없었다.

여기서 브레이크를 잘못 잡았다간 오히려 차가 속도를 못 이기고 전복되게 돼 있었다.

“쉿.”

고천수는 한 마디를 던지고 눈앞의 상황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몇몇 군인들의 차가 그래스퍼에게 잡혀 균형을 잃고 슈팅게임의 장애물처럼 고천수가 갈 길을 방해하고 있었다.

부아아아아아!

속도 270km.

‘200km 후반대……!’

아슬아슬했다.

아직 제대로 된 후반대라고 할 수 없었다.

고천수는 오히려 가속 페달을 더 세게 밟았다.

-이 미친놈!

-이런 식으로 죽으려는 거야?

그럴 리가.

고천수는 눈을 부릅떴다.

한계까지 속도를 높여 보면서 고천수는 깨달았다.

‘돼!’

신체가 강화되면서 집중력, 순발력, 지각력이 전부 향상돼 있었다.

아이템의 효과 덕분인지 300km까지 달릴 수 있게 된 차체는 그런 고천수를 지원할 수 있을 만큼 기능이 업그레이드된 상태기도 했다.

“갑니다!”

부웅!

고천수는 곡예 운전을 하고 있는 차량들을 하나둘씩 앞지르기 시작했다.

슉! 슈욱!

“으아아아아아!”

도중에 비명도 들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고천수는 오로지 살아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만 집중했다.

콰창!

어디선가 날아든 총알이 뒷좌석 유리창을 깨부숴 놓았지만 거기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게랴악…….

시속 299km.

밑에 달라붙으려고 달려들었던 그래스퍼가 허공만 휘젓고 멀어져갔다.

슈악!

마침내 제일 앞에 있던 버스, 그리고 근처에서 휘청거리고 있던 트럭을 지나쳤다.

콰아아앙!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터지는 트럭을 백미러로 지켜보며 고천수는 눈썹을 움찔거렸다.

“이제 누가 1등이지?”

-아니, 미친 새꺄!

-ㅋㅋㅋㅋㅋㅋㅋ 무슨 그랑프리 나왔냐?

-앞에 봐!

고천수는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더 이상 앞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젠…….’

선택해야 됐다.

-군인들 앞질렀는데 이제 어캄?

-원래는 이런 계획 아니었을 텐데.

“형님들께서 달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일단 살기 위해서 달리긴 했다지만 이 이후가 문제였다.

‘여긴 아냐.’

군인들이 버스를 미끼로 삼으려고 했던 이유가 있을 터.

하지만 여기서는 버스를 버리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직 앞에 이보다 더 큰 위험 요소가 있는 것이었다.

부우우웅…….

한참을 밟자니, 군인들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지는 듯해서 고천수는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발에서 살짝 힘을 뺐다.

[차량의 내구도가 급속히 떨어집니다.]

그러자 예정돼 있던 페널티가 찾아왔다.

[이 차는 앞으로 60분밖에 달릴 수 없습니다.]

“60분…….”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

그래도 위기를 벗어난 값으로 생각하면 나쁘지는 않은 대가였다.

-무조건 공항까지는 들어가야 하는데.

-1시간이면 초여유 아님?

-이대로 그냥 갈 수 있어야 초여유지.

맞는 말이었다. 이대로 갈 수 있어야 여유가 있었다.

‘근데 이대로 갈 수는 없단 말이지…….’

앞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차로 몬스터를 맞닥뜨리면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형님들.”

결국 해야 될 일은 하나뿐이었다.

“좀만 기다렸다가 가겠습니다.”

고천수는 졸음자 쉼터 쪽으로 차를 돌렸다.

-응? 뭐하는 거?

-졸린가 봄.

-하긴 졸음운전은 위험하지.

“먼저 가면 위험하니까요.”

컨테이너 옆쪽에 차를 숨긴 고천수는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근데 형님들, 그래스퍼가 여기까지 오진 않겠죠?”

여기까지 따라온다면 멈춰 있는 게 위험할 수도 있었다.

-따라오긴 할 텐데 걱정마셈.

-그래스퍼는 움직이고 있는 거에만 반응함.

-멈추고 있으면 그냥 지나갈걸.

그렇다면 안심이었다.

‘애초에 군인들이 여기까지 온다면 그래스퍼를 떨쳐낸 이후겠지만.’

떨쳐내지 못하면 그래스퍼에게 당해서 여기까지 오지도 못할 테니 너무 걱정할 건 없긴 했다.

부우우웅!

얼마나 지났을까.

멀리서 차량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한도초과] : 온다……!

고천수는 자세를 바로 잡고 정면을 살폈다.

부아아아!

6대의 버스와 다른 차량들이 쉼터를 지나쳐 달려 나가고 있었다.

‘버스는 다 살았나?’

고천수는 눈썹을 움찔거렸다.

운이 좋은 수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무서운 녀석들이네.’

일부 희생이 있긴 했어도 최대한으로 살아남은 것이었다.

‘꼭 살려야 될 이유가 있었나.’

버스들 중에는 미끼용도 분명 섞여 있었다. 그런데도 버린 게 없다는 건, 역시 이 길 앞에 무언가 있다는 뜻이었다.

무조건 미끼를 써야 하는 무언가가.

“가죠, 형님들.”

승합차가 다시 출발했다.

***

고천수가 지나 왔던, 무너진 다리들이 있는 강의 하류.

그 근처의 강가에는 위로 걸어 올라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헉…… 헉.”

젖은 교복을 입고 있는 그는 다름 아닌 양민철이었다.

“다들 살아 있는 거겠지……?”

김하령도 장서연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를 여기로 데려온 고천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양민철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아냐. 살아 있을 거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고천수는 죽었을 리 없었다.

양민철은 분명 그렇게 믿었다.

쏴아아아.

위로 올라갈수록 강의 유속이 불안정한 게 보였다.

‘내가 살아남은 것만 해도 기적인가…….’

이런 강물에 휩쓸렸는데도 살아남았다.

유속이 확실하게 느려지는 하류에까지 떠내려가 강둑에 몸이 걸린 게 행운이었다.

‘형도 넘어왔겠지?’

다행인 게 하나 더 있다면 양민철이 강을 건너오긴 했다는 점이었다.

“형…….”

모습이 보이지 않는 고천수는 어디로 간 것일까.

살아남았다는 걸 가정한다면, 그가 갈 장소는 하나기는 했다.

“어……?”

그럼에도 혹시 강을 따라 올라가면 고천수가 발견될까 봐 계속 올라가던 양민철은, 익숙한 얼굴을 하나 발견하고 빠르게 뛰어갔다.

“누나!”

김하령이었다.

그녀가 멍한 얼굴로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던 것이다.

“누나! 살아 있었어요?”

계속 소리치며 다가가자 김하령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렸다.

“살았네요.”

“그럼요! 살았죠!”

그러면서 양민철은 주위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다른 사람은요? 다들 살아 있나요?”

“몰라요.”

그녀의 표정은 울적하기 그지없었다.

양민철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뭘 본 거예요?”

“…….”

김하령은 입을 꾹 다물었다.

마치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살아 있으면 살아 있다고 알려 주세요!”

빨리 일행을 찾아서 합류해야 했다. 이대로 시간을 버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알려 줘도 소용없을걸?”

김하령이 한숨을 내뱉듯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양민철이 미간을 찌푸리는 사이, 누군가 또 나타났다.

“야!”

장서연이었다. 언덕 위에서 나타난 그녀가 양민철을 보고 깜짝 놀라며 아래로 뛰어왔다.

“살아 있었어?”

그녀는 바로 다가와 양민철을 끌어 잡으며 소리쳤다.

“야이 씨! 죽은 줄 알았잖아!”

“자, 장서연 누나?”

양민철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곧 반색하며 소리쳤다.

“누나! 살아 있었네요!”

“그럼 살았지!”

그러면서 장서연은 양민철의 얼굴을 붙잡아 마주보았다.

“안 그래도 찾던 중이었어! 근데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왔는데 네가 안 보이더라고!”

“아, 그랬나요?”

양민철도 아래서 위로 올라온 것이었다.

아마 그가 더 아래로 떠내려 간 데다가 이제야 올라온 바람에 마주치는 게 늦은 듯했다.

“아, 맞다!”

양민철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형은요? 형은 어디에 있어요?”

“아…….”

장서연은 살짝 탄식하며 시선을 돌렸다.

“고천수는…….”

“형, 형이 어떻게 된 건데요!”

양민철이 불안한 표정을 짓자 장서연은 조심스럽게 답했다.

“뭐, 죽은 건 아니야.”

“예? 죽은 건 아니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살아 있는 건가요? 그럼 어디에…….”

“갔어.”

“예?”

“갔다고.”

장서연은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떠나버린 거 같아.”

그 말에 양민철은 숨을 크게 삼켰다.

떠났다니, 혼자서 말인가.

“나도 직접 본 건 아니야. 쟤가 봤대.”

장서연이 김하령을 가리켰다.

김하령은 여전히 풀죽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저러고 있는 거야. 고천수가 떠나는 걸 봐 버려서.”

“어디로 떠났는데요?”

양민철은 의문스럽게 물었다.

떠난 걸 봤다면 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무슨 버스를 타고 떠났대.”

장서연은 천천히 설명했다.

“몬스터한테 쫓기기는 했던 거 같아. 급하게 탔다고 하니까. 쟤는 그걸 멀리서 봤던 거고.”

“그런…….”

“어쩔 수 없었던 것 같긴 한데,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어.”

고천수는 혼자 떠났다. 그리고 이 셋은 남겨졌다.

“…….”

양민철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팀의 중심이던 고천수가 사라졌다. 리더가 없는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형은…….”

물론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있었다.

“형은 계획대로 갔을 거예요.”

그가 만들어 놓은 길이 있었다. 그렇다면 길은 결정되어 있었다.

“터미널로 가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