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 쫓고 쫓기는 자 (2)
그때였다.
곧장 새로운 알림이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한도초과 님이 열혈팬이 되었습니다!]
열혈팬 1.
채팅창 한편에 열혈팬의 숫자가 생겨났다.
그러자 채팅창은 삽시간에 난리가 나 버렸다.
-40젠?!
-한도초과 역시 거덜났었잖아……?
-진짜 내질러버린 거야!?
채팅창에는 계속 물음표와 느낌표가 반복적으로 올라왔다. 한도초과가 저지른 일에 대해 다들 경악한 모습이었다.
“한도초과 님 진짜로……!”
현재 자기 자산의 30%를 던지면 한 번에 열혈팬이 될 수 있다.
말이 쉽지 30%면 결코 적은 수준이 아니었다. 그것도 심지어 지금 투척한 젠이 40이면 총 재산 자체가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40젠! 형님, 감사합니다!”
일단 인사를 잊으면 안 됐다. 현재 재산의 30%라고 했을 때는 40젠이 그렇게 크지 않을 수 있지만, 고작 2젠만 들고 있던 스트리머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큰 후원이 있을 수가 없었다.
“대가로 소원 하나 달아 두겠습니다!”
운전 중이라 리액션은 어려웠다.
하지만 그거로도 충분했는지 채팅창이 흥분으로 가득 찼다.
-오오오오, 소원 하나!
-겁나 무리수인 거 주면 어쩌려고. ㅋㅋㅋ
-아 소원이 40젠은 좀 에반데.
어차피 한도초과는 그런 무리수 따위는 던지지 않는다.
고천수는 한도초과의 캐릭터를 잘 알고 있었다.
-[한도초과] : 흡ㅜ,ㅜ
오래잖아 한도초과의 채팅이 올라왔다.
다만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다.
“형님, 그건…….”
한도초과의 채팅에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열혈팬 특수효과 생겼네.
-부럽.
-너도 30% 후원하셈.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첫 열혈팬 생겼다고 아주 지랄이 났죠?
이놈부터 내보내는 게 관건이었다.
“형님, 방송 매니저부터 뽑아야 할 것 같은데, 도와주시겠습니까?”
-[한도초과] : 알았당.
[띠링! 열혈팬, 한도초과가 방송 매니저 선정을 제안했습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열혈팬이 되면 이런 기능도 쓸 수 있는 걸까.
고천수는 눈앞에 뜬 알림창을 눌러 보았다.
그러자 수용, 거절 버튼이 떠올라 바로 수용을 선택했다.
[방송 매니저 선정을 위해서는 방송 매니저 추천이 필요합니다. 누구를 추천하시겠습니까?]
채팅창이 곧장 황금색으로 변했다.
-와우, 드디어 시작!
-나나! 나 시켜 줘!
-지금 들어온 미꾸라지 추천하면 대박. ㅋㅋㅋㅋ
방송 매니저는 중대사항이었다.
고천수는 아무나 막 고를 생각이 없었다.
“형님.”
고천수는 한도초과를 불렀다.
“혹시 방송 매니저를 겸하는 것도 가능하십니까?”
-[한도초과] : 불가능해. 방송 매니저는 열혈팬 중에서는 뽑을 수 없어.
고천수는 미간을 팍 찌푸렸다.
뭐 그딴 법이 다 있단 말인가.
“좋습니다. 그렇다면 형님을 믿고 묻겠습니다.”
지금 시청자들 중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건 한도초과였다.
그렇다면 한도초과에게 한 번 더 일을 맡길 필요가 있었다.
“매니저 추천 부탁드립니다.”
고천수는 다른 시청자들에 대한 정보가 적었다.
한도초과도 마찬가지일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시청자의 입장에서 다른 시청자를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었다.
-매니저 추천……?
-나! 나 추천해 달라고!
-애쓰네, 다들.
게다가 고천수는 채팅을 치고 있는 시청자들의 닉네임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 상태에서는 한도초과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것이다.
-[한도초과] : 혹시 네 방에 들어와 있는 시청자의 정보를 알고 싶으면 지금 채팅창 꾹 눌러 봐. 그러고 말로 추천하면 돼.
그때, 한도초과의 조언이 있었다.
고천수는 그 말대로 채팅창을 꾹 눌러 보았다.
“아……?”
그러자 지금까지는 열람할 수 없었던 정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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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시청자 수 : 1천 5백 명.
* 채팅 시청자 수 : 77명.
* 대기 시청자 수 : 142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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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초과] : 거기서 채팅 시청자를 또 눌러 보면 나올 거야.
“형님, 대기 시청자 수는 뭡니까?”
그 와중에 의문점이 있어서 고천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한도초과] : 말이 대기지 이 방송 다 보고는 있어. 채팅방에 제한이 있어서 그런 것뿐이야. 어쨌든 빨리 내가 말한 대로 해 봐.
뭔가 대충 넘기려는 듯한 느낌이 있었지만, 정말로 단지 그 내용뿐이라면 지금 신경 쓸 내용이 아니긴 했다.
고천수는 채팅 시청자 수라는 문장을 꾹 눌러보았다.
그러자, 닉네임 목록이 팍 하고 떠올랐다.
“와.”
이렇게 볼 수 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지금까지 후원을 해 줬던 이들의 닉네임이 다 이곳에 있었다.
붉은색으로 되어 있는 시청자가 하나 있었는데, 옆에 해골 표시와 함께 ‘부적절한 언행이 감지되었습니다’라고 뜨는 걸로 봐서는 바로 그놈인 듯싶었다.
-[한도초과] : 고르고 싶은 사람 혹시 있나?
없었다.
온리원을 고를까도 했었지만 이상하게 조금 꺼려졌다.
조력자보다는 관전자를 원해 추천에도 응하지 않을 듯하고, 웬만하면 고천수는 다른 시청자를 뽑고 싶었다. 순전히 감에서.
“추천은요?”
-[한도초과] : ‘울부짖는정신병자’를 추천할게.
울부짖는정신병자.
전혀 예상치도 못한 추천이었다.
-울부짖는정신병잨ㅋㅋㅋㅋ
-스읍. 걔 고를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서도.
-아 망할.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니 뭔가 있는 듯 보이기는 했다.
-[한도초과] : 봤지? 시켜 주면 잘할 시청자야. 이 부분은 보장해.
어떤 면에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는 확실했다.
“형님, 이거 방송 매니저 다시 바꿀 수도 있죠?”
-[한도초과] : 너랑 나랑 둘이 있으면 바꿀 수 있지.
뭔가 묘한 답변이었지만 당장은 그거면 충분했다.
지금도 채팅창에서 고아 새끼가 독재까지 하려고 한다며 떠들고 있는 미치광이를 내보낼 수 있다면.
“방송 매니저로 울부짖는정신병자 님을 추천하겠습니다.”
파앗!
그러자 다음과 같은 알림이 떠올랐다.
[울부짖는정신병자 님이 방송 매니저로 추천되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그러면서 동의 버튼이 옆에 나타났다.
고천수는 망설일 것 없이 버튼을 눌렀다.
[전체 동의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울부짖는정신병자 님이 방송 매니저로 활약합니다.]
한도초과도 즉각 동의를 누른 듯했다.
울부짖는정신병자는 바로 방송 매니저로 등극했다.
-아이고, 지들끼리 다 해 먹으려고 하네. 아무튼 고아 새끼들은 진짜…….
-[울부짖는정신병자] : 닥쳐.
쾅!
갑자기 큰 소리가 나면서 고천수에게 고아 새끼라고 한 채팅이 하얗게 지워졌다.
-[울부짖는정신병자] : 끝.
해결이었다.
“어, 음…….”
-천수 당황. ㅋㅋㅋㅋ
-감투 쓰면 제일 무서운 게 정신병자임.
-이제 다들 조심하셈.
조심하라고 하기에는 매우 냉철하고 빠른 판단을 내리는 매니저인 듯했다.
“아, 매니저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제재 부탁드려요. 도 넘는 거만.”
-[울부짖는정신병자] : 생각해 보고.
-ㅋㅋㅋㅋㅋㅋㅋㅋ
-후회 안 하길 바란다.
어차피 매니저 감투는 언제든 바꿔 끼울 수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이 정도로 고천수는 만족했다.
“형님들 덕분에 아주 다이내믹했습니다. 자, 이제 그러면 다시 원래 하던 일에 집중해야겠죠?”
잠시 이쪽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군인들의 행렬이 조금 멀어졌다.
군인들의 보호 아닌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는 게 좋았다.
“갑니다.”
고천수는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
***
“뒤에 따라오는 저거, 엄청 신경 쓰이지 않습니까?”
그 시각.
박살난 1번 버스 대신에 전면으로 나온 2번 버스의 옆에 있는 트럭에는, 1소대의 인원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중대장님이 그냥 놔두기로 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희가 가는 길에 무임승차하려는 것 같습니다.”
“무전이라도 넣어 보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소대원들은 저 멀리 쫓아오는 작은 승합차를 보고 껄끄러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니, 됐다.”
소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너희 말대로 기껏해야 우리 쪽에 무임승차하려는 일반 시민에 불과할 테니까.”
“하지만…….”
“어차피 청주공항에 도착해서 처리하면 돼.”
그렇게 큰 위협도 아니었다. 지금은 다른 일에 신경 써야 할 때였다.
“2번 버스 내부 상황은 어때?”
1번 버스가 내달려서 혼자 자폭하면서, 그걸 본 탑승객들이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1번 버스에 몬스터가 달라붙어서 그렇게 된 걸로 해 두었습니다.”
“2번 버스 기사가 잘 전해 두었을 겁니다.”
그 말에 소대장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순조로웠다.
탑승객들은 이게 어떻게 상황인지 전혀 모르니까.
“좋아. 이제 별 문제없겠어.”
버스 기사들은 전원 매수돼 있었다.
명령을 따르면 자기 가족들의 안전을 보장받는 식이었다.
실제로 1번 버스 기사의 가족은 뒤 번호 버스에 태워져 있었다.
1에서 3번 버스는 원래 청주공항 전에 위험한 구간으로 정보가 수집된 곳에서 미끼로 던질 셈이었지만, 하나를 먼저 내던졌어도 별 문제는 없었다.
“다들 태세 잘 유지하고 있으라고. 이렇게만 가서 2, 3번 버스만 나중에 잘 활용하면…….”
그때였다. 2번 버스가 갑자기 느려지며 휘청거린 것은.
“뭐야.”
끼이이이익!
아직 발견한 몬스터가 없는데도 2번 버스는 저 혼자 균형을 잃고는 가드레일로 향했다.
콰아앙!
그대로 직격.
2번 버스는 가드레일을 뚫고 바깥으로 추락했다.
“뭣…….”
소대장이 멍하게 있는 사이, 무전병에게 무전이 들어왔다.
『S1! 방금 전에 무슨 일이…….』
급하게 온 그 내용을 다 들을 여유는 없었다. 소대장은 2번 버스가 떨어진 곳으로 기어 올라오는 고양이만 한 거미 몬스터들을 발견하고 기겁했다.
“이런, 망할.”
***
콰앙!
저 멀리 앞쪽에서 연기가 치솟았다.
-또 뭔가 일 난 것 같은데?
-버스 하나 더 버린 듯.
-왠지 허둥거리는데?
고천수가 보기에도 그랬다.
‘속도를 높이고 있잖아.’
지금까지는 대열을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일정 속도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다들 미친 듯이 속도를 끌어올리는 모습이었다.
-속도 높이는 거 보니까 불안하다.
-너도 좀 높이는 게 어때.
시청자들의 반응에 고천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설마 또…….’
이미 디텍터라는 몬스터는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디텍터라면 가시넝쿨이 멀리서도 노출될 터.
저렇게 허겁지겁 군인들을 움직이게 하는 거라면, 뭔가가 전조도 없이 등장한 듯했다.
부웅!
고천수는 가속 페달을 세게 밟았다.
작은 차체가 이리저리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한도초과] : 그래스퍼야! 천수야, 더 달려!
갑자기 한도초과가 끼어들었다.
고천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예? 여기서요?”
이미 시속 120km를 넘어섰다.
여기서 더 빠르게 달리면 이 작은 차가 감당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더 세게 달렸다가 뭐라도 마주치면 위험합니다.”
-아, 헐. 아냐, 고천수.
-그래스퍼면 이런 기계 밑에 달라붙어서 제대로 못 달리게 하는 놈임.
-그렇게 해서 속도 떨어지면 폭사도 해!
“아.”
또 엿 같은 놈이 나타난 것이었다.
고천수는 핸들을 꽉 붙잡고 가속 페달을 더 세게 밟았다.
“얼마까지 밟아야 하는데요!”
애초에 이 차는 시속 140km가 한계였다.
투다다! 투다다다다!
멀리서 총소리가 들렸다. 군인들이 차에 따라붙고 있는 그래스퍼라는 몬스터를 공격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제기랄.”
이쪽은 몬스터가 따라붙으면 원거리에서 떨어뜨려 놓을 방법이 없었다.
-답은 속도뿐이다!
-그래스퍼가 밑에 달라붙는 타이밍 뺏는 방법밖에 없음.
-이 정도 크기면 200 후반만 되어도……!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 차는 그런 속도를 견디게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아.”
고천수는 가속 페달을 덮고 있는 덮개를 떠올렸다.
-드디어 너의 힘을 알아차렸구나.
채팅창이 순간 고천수를 격려하는 글로 가득해졌다.
-천수를 기억해줘!
-천수는 발할라로 갈 거야!
깨달았다.
고천수는 덜컹거리며 외풍에 뒤흔들리는 차 안에서 깊게 심호흡하다가 소리쳤다.
“가자아아아아!”
왈……!
불행히도 겁에 질린 흑구의 조용한 외침은, 이 미친 남자에게는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