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76화 (76/224)

076. 쫓고 쫓기는 자 (1)

바로 선택해 구매하자, 갑자기 운전석 천장에서 아이템이 떨어져 내렸다.

팍!

누가 던진 것처럼 빠른 속도로 떨어진 아이템에 얼굴을 얻어맞은 고천수가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아, 개…….”

하지만 그 이상을 입 밖에 꺼내진 않았다. 옆에 있는 흑구가 눈에 밟혔던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 와. 욕 참은 거?

-개구리라고 하려던 거 아님?

-개새끼만 아니면 상관없을 듯.

고천수는 맞은 부위를 쓸어내리며 허벅지 위에 떨어진 아이템을 노려보았다.

분노의 가속 페달 덮개.

그냥 면으로 된 게 아니고 미끄럼 방지 철제가 붙어 있어서 상당히 아팠다.

“후.”

고천수는 가시지 않은 아픔을 겨우 달래며 덮개를 잡은 뒤 좌석을 뒤로 밀었다.

그리고 덮개를 가속 페달 위에 끼워 넣었다.

“진짜 쓸 데는 있을지 이게…….”

이왕 이렇게 된 거 시험할 것도 있어서 사 버렸다지만, 못 미더운 부분은 있었다.

‘일단 아이템이 어떻게 떨어지는지는 알았네.’

튜브가 하늘에서 떨어지기에 진짜 하늘에서만 떨어지면 어쩌나 했다.

하지만 아이템은 그냥 구매자 머리 위에 천장이라고 인식되는 곳에서 떨어지는 듯했다.

‘무게가 무거운 물건은 어떻게 떨어지려나.’

밖에서 망치 같은 걸 샀을 때, 그게 높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면 굉장히 위험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모르겠다.”

나중에 그런 아이템이 나오면 시험해 볼 일이었다.

고천수는 일단 몸을 일으키고 다시 좌석의 위치를 조정했다. 부착해 놓은 내비게이션을 켜고 목적지로 청주 국제공항을 설정해 놓았다.

『지금부터 안내를 시작합니다.』

기능했다.

고천수는 사이드브레이크를 풀고 기어를 넣었다.

부우우웅!

가속 페달을 밟자 고천수가 타고 있는 차가 힘차게 출발했다.

부웅!

하지만 작렬하는 엔진 소리와는 다르게 차의 속도는 거북이처럼 느리기만 했다.

고천수가 아주 살짝만 밟았던 것이다.

-뭐 함.

-밟을 줄 모름?

-ㅋㅋㅋㅋㅋㅋ

그런 건 당연히 아니었다.

하지만 차를 가지고 정문으로 나가려면 서관의 대합실을 지나쳐야 했다. 짧긴 하지만 내부에서 사고가 나지 않게 천천히 움직여야만 했다.

“형님들 이 차 원박스 카예요.”

요컨대 어디 제대로 박으면 그냥 찌그러져 버린다는 뜻이었다.

“조심해서 나가겠습니다.”

물론 아무리 조심해도 마주쳐야 하는 난관이 있기는 했다.

“후.”

정문에 계단이 있었다.

여기서 제대로 못 내려가면 차가 전복될 게 뻔했다.

“계단 안전하게 내려가는 아이템이나 나오지.”

고천수는 정문 방향으로 차를 세우고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했다.

준비는 그걸로 끝.

가속 페달을 밟자 차가 빠르게 정문으로 달려 나갔다.

“형님들, 꽉 잡으십쇼!”

부아앙!

날았다.

한순간이지만 지면에서 떨어진 차가 계단을 넘어 인도에 떨어졌다.

콰앙!

차가 순간 앞으로 쏠리며 범퍼가 아스팔트에 끌렸다.

콰드드득!

무게중심이 계속 앞으로 쏠리던 차는 고천수가 밟은 브레이크에 잡혀 허공에 살짝 들린 채로 멈춰 섰다.

“넘어가지 마! 넘어가지 마!”

쿵!

들렸던 뒤가 떨어지며 차가 잠시 튀어 올랐다가 완전히 멈춰 섰다.

“……하아.”

겨우 살았다.

고천수는 의자에 몸을 늘어뜨렸다.

-ㅋㅋㅋㅋㅋ 실신.

-천수는 이런 짓을 안 하면 살아갈 수가 없는 듯.

-젠 안 줘도 잘도 하넼ㅋㅋㅋㅋ

그 말에 고천수가 채팅창을 빤히 바라봤다.

[띠링! 그런건무서워 님이 1젠을 후원하셨습니다. - 날 그렇게 보지 마. 미안해.]

“형님들, 제가 무섭습니까?”

-ㅋㅋㅋㅋㅋㅋ

“웃지 말고 대답하세요.”

-ㅋㅋㅋㅋ 표정이 웃기잖아.

-젠 줬으니까 진정하셈.

고작 1젠.

아니, 1젠이어도 소중하기는 했다.

“형님들, 전 진정했습니다. 우리 흑구나 챙겨 주세요.”

흑구는 방금 전의 상황에 놀란 듯 고천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 탈 때 이런 건 이미 경험해 봤잖아. 뭘 새삼스레.”

그러면서 고천수는 백미러로 뒤를 돌아보았다.

정문 앞에 펜스가 있던 흔적이 있었다.

그게 남아 있었다면 이 차는 그대로 순두부처럼 뭉개졌을 것이었다.

‘운이 좋았네.’

하지만 지금부터는 운만으로는 갈 수 없었다.

“이제 벨트 메고.”

고천수는 안전벨트를 맸다.

-너만 차냐.

-흑구는?

“개는 어차피 그냥 채울 수가 없어서요.”

-ㅋㅋㅋㅋㅋ

-아니, 차려면 차로 점프하기 전부터 차라고.

“앞으론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부아앙!

차가 방향을 맞춰서 도로를 달려 나갔다.

『전방에서 우회전입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시작했다.

‘길은 별 문제 없겠지.’

GPS가 아직 기능한다면 막혀있는 길을 맞닥뜨려도 우회로를 찾을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군인들이 앞서 정리한 길을 따라가야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부우웅.

군인들은 이미 서관을 빠져나갔다.

애초에 고천수는 군인들이 빠져나간 것을 확인하고 나왔으니까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는 게 당연했다.

“준비됐냐?”

고천수는 흑구를 바라봤다.

“지금부터 살금살금 뒤따라가 보자.”

***

경부고속도로.

대전복합터미널에서 출발한 차량들이 넓은 도로를 내달리고 있었다.

“조용하네.”

“군인들이 길을 잘 잡았나 봐.”

“다행이다.”

그중에서 1번 버스에 탄 승객들은 아직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에 안도하고 있었다.

“솔직히 불안했어. 맨 앞이라.”

“근데 뭐, 군인들이 우릴 버릴 리는 없으니까…….”

1번 버스는 버스들 중에 가장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심지어 군인들이 탄 차량들도 1번 버스가 먼저 가게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기사님. 저희 너무 앞으로 가는 거 아니에요?”

맨 앞자리에 앉은 남자가 버스기사에게 물었다.

“……글쎄요.”

“조금 천천히 가야 할 것 같은데. 군인들보다 앞서고 있잖아요.”

옆에는 군인들이 탄 작은 트럭 하나가 나란히 달리고 있을 뿐이었다.

가장 먼저 앞서나가고 있는 이 버스에, 호위라고는 달랑 그게 전부였다.

“걱정 마세요. 군인들도 다 생각이 있어서 뒤쳐져있는 거겠죠.”

버스 기사는 그렇게 답하면서도 뭔가 초조한 듯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남자는 좀 더 질문을 던지려고 했지만,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버스 기사의 모습이 말문을 막히게 했다.

“아니, 참…….”

남자는 기가 찬 표정을 지었지만 더 따지지는 못했다. 괜히 버스 기사에게 부담만 줄 듯했던 것이다.

승객들의 긴장이 풀리며 왁자지껄해진 버스 안에서, 버스 기사와 그 사이에만 적막이 흘러갔다.

마치 무언가 터지기 직전의 불안한 분위기였다.

“앞에 몬스터가 나타났다!”

그때였다.

운전석의 열린 창문 사이로 군인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몬스터?”

운전석 뒤 남자가 미간을 찌푸릴 때였다.

크아아아아!

인간처럼 생겼지만 근육이 뒤틀려 있는 4족 보행 괴물이 앞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으아아악!”

남자가 소리치는 사이, 트럭에 탄 군인들이 앞을 향해 총구를 들어올렸다.

투다다다다다!

총격이 시작되자 괴물이 몸을 뒤틀며 주춤댔다.

대응이 먹히고 있었다. 문제는 괴물의 수가 한 마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저게 뭐야.”

남자는 똑같은 괴물이 몇 마리나 더 나타난 걸 보며 기겁했다.

“머, 멈춰요! 앞에 괴물들이 엄청 많아!”

남자는 버스 기사를 향해 소리쳤다. 당장 버스를 세우고 군인들이 앞에서 대응할 수 있게 해야 됐다.

부우우우우우우웅!

하지만 이게 어찌된 일일까.

버스는 오히려 빠르게 속도를 높였다.

“뭐, 뭐 하는 거야! 멈춰!”

크아아아아아!

버스는 어느새 괴물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옆에 있는 분기점으로 빠져서 달리기 시작했다.

“뭣……!”

남자가 식겁한 표정을 짓는 사이, 괴물들이 죄다 이 버스를 따라왔다. 심지어 앞에 새로 나타나고 있는 괴물들까지도.

“뭐 하는 거야!”

“멈춰!”

“괴물들이……!”

사람들이 외칠 때는 이미 늦었다.

괴물들이 버스에 달라붙어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엄마!”

콰창!

유리창이 깨졌다.

그것도 사방에서.

버스는 이내 가드레일을 박으며 옆으로 전복됐다.

***

콰앙!

멀리서 뭔가 대차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고천수는 멀리 보이는 차들을 쫓아가며 미간을 찌푸렸다.

“터졌나, 벌써?”

분명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는데 다른 차들은 멀쩡히 달려가고 있었다.

-하나 버렸네.

-레알?

-겨우 하나? 우리 천수였으면 기냥…….

왈!

흑구가 외치는 소리에 고천수는 전방을 다시 주목했다.

멀리서 이쪽으로 빛이 비추는 게 보였다.

“들켰네.”

렌즈에 반사된 빛으로 보였다.

군인들이 고천수를 발견한 것이었다.

“뭐, 잘 보고 있으라지.”

들킬 것은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일단 거리가 결코 가깝지 않았다. 총을 쏘기에도 애매할 거고, 애초에 그럴 이유도 없을 것이었다.

‘그냥 뒤늦게 쫓아오는 일반인 정도로 생각하겠지.’

별로 위협이 되지도 않는 승합차는 별 신경도 안 쓸 게 뻔했다.

콰앙!

계속해서 차를 달리자니 어느덧 분기점을 지나칠 수 있었다.

근처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무시무시한 새끼들이고만.

-이거 들림? 비명소리.

-오지네…….

고천수도 들었다.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한꺼번에 귓속으로 쏟아졌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차를 몰고 약간 더 이동하자 소리들은 곧 저 멀리로 사라졌다.

-역시, 천수.

-비명 따위는 클래식처럼 즐기는구먼.

-인성 없는 고아 새끼인 듯.

순간이었다.

여태까지 못 보던 유형의 채팅이 올라왔다.

-하이. 고아 새끼.

-??>?

-뭐냐, 이건?

고천수는 채팅창을 흘깃 바라봤다.

노려보는 것에 가까운 표정을 짓자, 또 다시 반응이 있었다.

-그렇게 보면 뭐 어쩔 건데. 잘생겼다고 하길래 와 봤더니 와꾸 와. 실화임? 차도 지 같은 거만 타고 있넼ㅋㅋㅋ

“형님.”

고천수는 나지막이 말했다.

“이 차 귀여운 차예요. 그러니까 저도 그렇다는 거겠죠?”

-ㅋㅋㅋㅋㅋ 뭐랰ㅋㅋㅋ

“그렇게 알아듣겠습니다.”

상황을 넘기려고 했지만 악성 시청자는 그만두지 않았다.

-와꾸 박살이라고 존못아.

-아, 이 새끼.

-재미없으니까 그만해, 병신아.

결국 시청자들끼리 사달이 나 버렸다.

-재미없긴? 난 재미있는데? 글고 얘 존못 맞는데?

-지금 중요한 시점이라고. 재미있는 구간인데 이 슈발럼이 초치고 있네.

-꺼져, 좀.

고천수는 눈썹을 찌푸렸다.

‘새끼가 존나 깝죽거리네.’

집중해야 될 시점에 괜한 어그로 시청자가 하나 끌렸다.

고천수는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참 형님들, 매니저 있죠. 그거 어떻게 뽑으면 될까요?”

-왜? 나 내보내게? 와, 역시는 역시네. 관상 오지고요.

-그거 아직 못 뽑아. 열혈팬부터 하나 만들어야 됨.

-맞음. 적어도 권한 가진 둘이 선정하고 동의해야 하거든. 너 말고는 열혈팬뿐임.

“예?”

말도 안 됐다.

“열혈팬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요? 그런 법이 있습니까?”

-응, 있어. 그러니까 넌 나 못 내보고요.

고천수는 숨을 한 번 들이쉰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내보내는 방법은 있습니까? 스트리머한테도 권한이 있잖아요.”

-이 게임은 그게 없어.

-강퇴. 곤란.

거지같은 상황이었다. 설마 그런 시스템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 참.’

무시하면 되지만 기분이 나쁜 건 맞았다.

고천수는 한도초과를 불렀다.

“한도초과 님? 계십니까?”

-응, 있어. 미안해.

“예? 형님이 왜 미안하십니까. 것보다 열혈팬 어떻게 되세요.”

-ㅋㅋㅋㅋㅋ 열혈팬 어떻게 되녜.

-본격 스트리머가 열혈팬 만드는 법!

-고천수 조급한 거 개웃기넼ㅋㅋㅋ

시청자들이 뭐라고 시끌벅적 떠드는 와중에, 채팅에 한 마디가 툭 올라왔다.

-현재 자기 재산의 30%를 한 번에 너한테 후원하면 바로 열혈팬이 돼.

“예?”

고천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30%요?”

-다른 방법도 있긴 한데 이게 가장 현실적임. 한도초과는 원래 그 다른 거 노리긴 했을 거야.

-근데 다른 방법은 사실 거의 불가능.

“다른 방법이 뭔데요.”

-불가능.

-불가능.

-불가능.

약속한 것처럼 하나같이 똑같은 답변뿐이었다. 고천수가 마른침을 삼키는 사이, 악성 시청자의 채팅이 계속됐다.

-ㅋㅋㅋㅋ 이제 알겠냐? 멍청하긴. 아무고토 못하죠?

다른 시청자들이 그만하라고 아무리 뭐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지저분한 채팅창을 보며 고천수가 현기증을 느끼려고 할 때였다.

-ㅜ,ㅜ

딱 봐도 한도초과로 보이는 채팅이 올라오더니 바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

[띠링! 한도초과 님이 40젠을 후원하셨습니다! - ㅜㅜㅜㅜㅜㅜㅠㅜㅜ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