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74화 (74/224)

074. 급행 2번 버스 (3)

물론 흑구가 함께 합을 맞춰서 싸워 주길 바랐던 건 아니었다.

“기사님! 제가 뛰어내리면 5초 뒤에 경적 좀 울려 주세요!”

“뭐, 뛰어내리면?”

“설명할 시간 없습니다! 이제 문 여세요!”

크라아아아아!

박창식이 급하게 다시 뒷문을 열자 그레이 울프 한 마리가 빠르게 달려들었다.

[어그로 4 - 07:46]

“친구들 어떻게 죽었는지 못 봤냐?”

콰직!

고천수는 그레이 울프가 뒷문 안쪽으로 채 들어오기도 전에 도끼로 머리를 찍어 버렸다.

크라아아아!

그레이 울프가 손톱을 뻗어 뒷문에 걸쳤다.

고천수는 그레이 울프의 머리를 한 번 더 찍은 뒤, 팔을 쳐서 떨어뜨렸다.

“못 봤나 보네.”

그레이 울프는 그대로 땅을 굴러 버스와 멀어졌다.

[띠링! 후회남 님이 3젠 후원! - 진즉에 이렇게 하지.]

“감사합니다, 형님!”

하지만 아까 전에는 버스는 속도가 빨라서 여기서 방어를 하기는 어려웠다.

잘못하다가 잡혀서 밖으로 떨어지면 큰 부상도 입고 포위당할 수도 있었으니까.

“속도가 진짜 많이 느려졌네요.”

조향이 제대로 안 되는지 박창식은 버스 속도를 많이 줄인 상태였다. 남은 두 마리의 그레이 울프가 뒷문으로 빠르게 뛰어왔다.

“학습 지능이 떨어지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고천수는 그레이 울프들이 뒷문으로 달려들려는 순간, 바깥으로 뛰었다.

크라아?

그레이 울프들이 깜짝 놀라며 급하게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콰당탕!

그사이 고천수는 바닥에 제대로 착지하지 못하고 넘어져 앞으로 몇 바퀴를 굴렀다.

-아닠ㅋㅋㅋㅋㅋ.

-허를 찌르는 거 아니었냐고.

-돌겠네, 진짜.

“크윽!”

고천수는 빠르게 몸을 일으키며 도끼를 치켜들었다.

[어그로 6 - 06:24]

“그래도 뒤는 잡았습니다, 형님들……!”

-농담하냐. ㅋㅋㅋㅋ

-대체 왜 이런 거야?

그건…….

빠앙!

간단한 전술 하나를 준비했기 때문이었다.

크라아아!

그레이 울프들이 길게 울리는 경적을 듣고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왔다!’

고천수는 바로 뛰어가 1번 그레이 울프의 뒷목을 찍었다.

크라아아!

놀란 1번이 급하게 몸을 돌렸다.

콰직!

고천수는 바로 또 도끼를 휘둘러 1번의 턱을 찍어 버렸다.

“다음.”

비틀거리며 옆으로 쓰러지는 1번을 놔두고 걸음을 옮기는 순간, 2번이 몸을 움직였다.

깽!

하지만 2번은 채 고천수를 노리기도 전에 신음을 뱉으며 멈춰 섰다.

으르르르르.

흑구가 2번의 뒷다리를 물었던 것이다.

아까 전처럼.

“어딜 보냐?”

고개를 돌린 2번의 주둥이에 고천수는 도끼를 내리찍었다.

콰직!

또 한 번의 타격.

휘청거린 2번이 위기를 직감한 듯 앞발을 치켜들어 고천수를 발톱으로 치려고 할 때였다.

으르르!

흑구가 뒷발을 더 세게 물어 당겼다. 그러자 흠칫거린 2번에게 고천수가 도끼를 다시 세차게 휘둘렀다.

콰작!

그러자 2번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콱! 콰작! 콰악!

장작패기를 하듯 2번을 확실히 찍어 버린 고천수는 부들대는 1번에게도 가 확인 사살까지 끝냈다.

“후.”

크게 숨을 들이쉰 고천수는 고개를 돌려 흑구를 돌아보았다.

“너, 뭐냐, 대체.”

일 하나 같이 하자고 했지만 흑구에게 의존하지는 않았다.

처음 만난 사이에 흑구가 지시대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훈련돼 있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확실한 건, 흑구는 알아서 고천수를 돕는다는 것이었다.

“턱 힘도 엄청나고 말이야.”

흑구는 헥헥거리며 고천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레이 울프의 피가 묻은 상태였다.

고천수는 채팅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형님들, 얘도 혹시 아이템이에요?”

-아이템. ㅋㅋㅋㅋㅋ

-그럴 리가 있겠음?

-걍 똥개인데 영리한 듯.

그냥 개인 건 알겠지만 쓸 만해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적어도 절 따를 생각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잘 따르는 개면 어쨌든 데려가는 게 좋다.

-가끔 진짜 아이템 수준인 동물도 나타나긴 함.

-로또 확률이지만.

그 말에 고천수는 흑구를 다시 바라보았다.

흑구는 순진한 표정으로 침을 흘리며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그런 것까진 아닌 것 같고요.”

-빠른 포기. ㅋㅋㅋㅋㅋ

-우리 흑구는 그냥 정감 있게 생긴 것뿐이거든?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고천수는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버스는 멈춰 서 있었다.

고천수를 데려가야 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잔해를 잘못 넘어간 건가…….”

뒷바퀴가 완전히 아작 나 차체가 주저앉아 있었다.

그것도 타이어가 아니라 휠이 사방으로 깨져 있고, 차축까지 틀어져 있었다. 균열이 난 뒤 달리면서 끝내 어그러지고 박살 난 듯했다.

“기사님?”

열려 있는 뒷문에 오르며 묻자, 박창식이 한숨과 함께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난 괜찮아. 자네는?”

“저도 괜찮습니다.”

도끼를 들어 보이자 박창식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진짜 대단하네. 어떻게 그렇게 괴물들하고 잘 싸울 수 있는 거지?”

“그러게요. 근데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레이 울프가 다 없어진 것도 아니었다.

아직 흉터가 있는 그레이 울프가 발견되지 않은 걸 보면, 아직 처음에 봤던 무리가 남아 있을 확률이 높았다.

“나오시죠.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할 것 같으니까.”

“걸어간다고……?”

“네. 대전복합터미널까지는 이제 얼마나 걸리죠?”

고천수의 물음에 박창식이 신음하듯 답했다.

“글쎄, 저쪽으로 몇 분만 걸어도 나올 거야.”

“그렇군요.”

고천수는 다시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다면 빨리 가도록 하죠. 계속 여기에 있으면 위험합니다.”

“자, 잠깐. 자네가 다 죽인 게 아닌가?”

고천수는 고개를 저었다. 박창식은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라 나왔다.

“그럼 서둘러야겠군. 그놈들이 또 쫓아오면 곤란하니까.”

“네, 다만 저희는 군인들이 보이기 전까지만 같이 가기로 하죠?”

“응? 나랑 같이 안 가나?”

군인들에게 가서 민간인인 척 섞여 들어가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고천수는 괜히 위험을 부담할 생각이 없었다.

‘이 도끼도 뺏길 수는 없으니까.’

안전 보장이라는 이유로 무장해제를 시켜 버린다면 그것만큼 곤란한 일도 없었다.

“상점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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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 동아줄(1젠) : 제법 단단한 10m 길이의 동아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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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갱신은 없었다.

“망할.”

불시에 상인이 나타난다고 했으니, 젠도 어느 정도 손에 쥐고 있어야 할 듯했다.

이제 보급함도 보일 테지만, 발견하면 조금 신중하게 열어 볼 계획이었다.

아우우우우우!

하울링이 들렸다.

고천수는 멀리 손짓하며 외쳤다.

“흑구야, 가자!”

서둘러야 했다.

***

대전복합터미널.

대로가 보이는 정문 쪽에 수많은 군인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몰려 있었다.

“다들 서두르십쇼!”

“버스가 곧 출발합니다!”

“신속하게 절차를 밟으세요!”

그 주위로는 지금 막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뜨리며 서 있었다. 군인들은 그들을 재촉하며 몸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 뒤 통과시키는 중이었다.

“이, 이쪽부터 해 주세요!”

“저희가 먼저 왔어요!”

“여기 환자가……!”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물려든 탓에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상황을 통제하고 있는 군인들은 저들끼리 투덜거리는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그러게.”

“지금 분류 팀이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하더라고.”

터미널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은 여러 팀으로 나눠져 일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건 터미널을 지키는 1번 경계 소대였다.

“근데 이제 더 올 사람들은 없는 거 아냐?”

“뭐, 필요한 인원은 다 뽑았으니까. 수색 부대가 더 데려올 놈들은 없겠지.”

라디오를 듣고 몰려온 사람도 상당히 많은 상황이었다. 분류 팀에서 그 사람들을 솎아내서 필요에 따라 각기 다른 버스로 나눠 태우고 있는 중이었다.

“필요 없는 것들은 자기들이 어떻게 될지 알기나 할는지 모르겠네.”

“그러게.”

“고기방패들은 청주공항까지 길이나 잘 열어 주면 그만이지.”

그때였다.

갑자기 대로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도, 도와줘! 도와주세요!”

누군가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소대원들은 급하게 총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돌렸다.

“뭐야, 저건.”

뛰어오고 있는 건 버스기사 복장의 웬 중년 남성이었다.

“도와주세요! 뒤에 괴물이……!”

그 외침에 소대원들이 다시 눈을 돌렸다.

그 말대로였다. 중년남성의 뒤로는 웬 늑대 같은 몬스터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에이 씨, 귀찮게.”

소대원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총구를 들어올렸다.

곧 떠날 참인데 몬스터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입장에서는 성가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멀리서 다른 민간인들이 보고 있으니, 일단은 이미지를 지켜야 했다.

탕!

소대장의 명령 아래 총구가 곧 불을 뿜었다.

탕탕! 투다다다다다!

단발, 연발이 섞여서 몬스터들을 공격했다.

깽! 깨갱!

몬스터라고 해 봤자 짐승일 뿐이었다.

20명이나 되는 소대원들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 몬스터들은 모두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클리어.”

소대장이 손짓하자 소대원들이 총구를 내렸다.

그리고 소대원 중 몇몇이 달려가 남자를 데리고 왔다.

“고,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혼자 오신 겁니까?”

소대장의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혼자입니다! 혼자 왔어요!”

“……그렇군요.”

소대장이 한 번 더 손짓하자 소대원들이 그를 버스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음.”

소대장은 옆에 있던 소대원들과 걸어가 몬스터들의 상태를 살폈다.

한 마리만 빼고 전부 죽어 있었다.

크르르르.

흉터가 있는 놈이었다.

소대장은 순간 입술을 깨물며 장전된 총을 들고 서둘러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이마에 총알이 박혔다.

표적의 생명 반응은 그대로 끊어졌다.

“보고해.”

소대장이 말하자 무전병이 서둘러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H1, H1. 여기는 S1…….”

그러는 동안 소대장은 죽은 몬스터들의 사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뭐지?’

뭔가 이상했다. 이곳에서 죽은 몬스터들은 상당히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합을 맞춰 훈련돼 있던 소대원들이 순식간에 끝내지 않았다면, 꽤나 위협이 됐을 것이었다.

‘그런데 혼자 여기까지 왔다고……?’

몬스터를 만난 지 얼마 안 된 걸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했다.

“소대장님, 왜 그러십니까?”

가만히 서 있자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소대원에게 소대장은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아니야. 그냥 뭔가 이상해서.”

“예? 뭐가…….”

“그 남자가 이 녀석들을 피해서 여기까지 온 게…….”

그러자 소대원이 별 거 아닐 거라는 듯 답했다.

“차림새 좀 보니까 버스 기사였지 않습니까? 그냥 근처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나온 거 아닐까 합니다.”

“그러려나.”

그럴듯하긴 했다.

소대장은 의문을 접고 원래 있던 장소로 복귀했다.

“……떠날 때가 됐는데도 주변이 시끄럽군.”

그때였다.

갑자기 나타난, 왼쪽 눈에 검은 안대를 쓴 군인을 발견하고 소대장은 손날을 눈썹에 붙였다.

“충성! 중대장님, 나오셨습니까.”

“……?”

중대장이라고 불린 군인이 흉터를 가린 안대를 살짝 고쳐 잡으며 싸늘하게 말했다.

“소대장, 전시에는 경례 안 하는 거 잊었나?”

“아, 그, 그게…….”

“예전에야 내가 경례를 좀 좋아해서 강조를 하긴 했다지만.”

중대장은 오른쪽 눈만으로 소대장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제는 하지 마. 나 상급자인 거 노출해서 뒈지게 하고 싶은 거 아니면.”

“예, 아, 알겠습니다.”

소대장과의 계급 차이는 고작 한 단계.

하지만 몸 여기저기에 전투의 흔적이 있는 그를 보며 군인들은 그 이상의 위압감을 느끼고 마른침을 삼켰다.

“승차 홈에 있는 소대원들에게서 보고를 받았다. 곧 있으면 청주 공항으로 출발할 거야. 소대장도 갈 준비를 하도록 해.”

“아, 네.”

“참, 그거 알지? 영등포로 올라간 부대는 연락 끊긴 거.”

중대장은 소대장의 어깨를 꽈악 붙잡았다.

“힘 좀 빠졌는지 대전역에 있는 놈들이 같이 움직이자고 하던데……. 어림도 없지. 공을 세우고 사단장님께 인정받는 건 우리가 될 거다.”

“…….”

“소대장. 내가 자네 가장 믿는 거 알지?”

대답 없는 소대장을 보며 중대장은 나지막이 말했다.

“1번답게, 청주 공항까지 잘 부탁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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