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73화 (73/224)

073. 급행 2번 버스 (2)

-아.

-에바임.

-지금 알면 안 돼에에에엣!

예상외였다.

방송 매니저라고 하자마자 시청자들이 격한 반응을 쏟아냈다.

“뭐죠, 형님들?”

마치 그 단어를 말하지 않길 바랐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못 할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열혈 팬이 있다면 방송 매니저가 있는 것도 당연했다. 당연한 걸 얘기했을 뿐인데 어째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고천수는 알 수 없었다.

“아.”

그러다가 고천수는 헛웃음을 뱉으며 말했다.

“형님들 설마 제가 힘을 갖게 되는 게 두려우신 겁니까?”

방송 매니저는 포지션만 따지면 스트리머의 편이었다. 몇몇 시청자들에게는 조금 짜증나는 존재일 수도 있었다.

“이 고천수가 갖게 될 힘이…… 두려우신 거군요.”

-ㅋㅋㅋㅋㅋ 아.

-망했자너.

-두. 렵. 다.

고천수는 시청자들을 놀리듯이 눈썹을 들썩거리다가, 순간 손을 내저었다.

“에이, 형님들. 그게 무슨 걱정입니까.”

아직까지 선을 넘는 시청자는 없었다. 방송 매니저가 있다고 해서 당장 누가 걸러질 일은 없던 것이다.

“제가 형님들을 뭐 어떻게 하고 싶겠습니까?”

시청자들은 고천수의 조력자였다. 서로에게 재미와 도움을 주며 상생하는 게 최고였다.

-그러니까 돈줄은 놔두겠다 이 말?

-오우, 그거면 된 거자너. ^^ 난 부자니까 안전!

-돈 없어도……! 없어도 난 받아 줄 거지? 할짝.

아직 진행된 얘기도 없는데 다들 호들갑이었다.

고천수는 더 기다릴 것 없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 그럼. 방송 매니저에 대해서 설명해 주실 분? 열혈 팬도 어떤 기준으로 들어가는지 알려 주시면…….”

끼이익!

그때였다.

버스가 갑자기 요동치며 고천수는 옆으로 넘어졌다.

“큭?”

바닥에 쓰러진 고천수는 버스의 움직임을 따라 사방으로 몸을 굴렀다.

-디스코팡팡!

-어어? 일어나일어나.

-아기처럼 기네.

탁!

고천수는 기둥을 세게 붙잡아 멈추고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기사님! 뭡니까!”

“왼쪽에 늑대들이 나타났어!”

크라아아아!

순간 고천수의 눈으로 창문에 날아든 그레이 울프 한 마리가 보였다.

콰창!

그레이 울프가 창문에 충돌했다.

“이런……!”

깨진 창문 조각이 고천수에게 날아들었다.

-벌써 쫓아왔어?

고천수는 조각들을 피해내고 다시 상황을 살폈다.

버스 속도가 있어서 빗겨 맞은 것인지, 다행히 그레이 울프가 창문을 뚫고 들어오진 못했다.

거미줄을 치듯 깨진 창문을 보며 고천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사님! 몇 마리나 붙었습니까!”

“몰라! 한 2마리?”

고천수는 창문에 달라붙어 서둘러 밖을 살폈다.

“하나, 둘…….”

그리고 추가로 하나 더 발견됐다.

총 3마리.

“뒤를 쫓아온 건가……?”

하지만 흉터를 가진 놈은 보이지 않았다.

리더를 빼고 쫓아왔다는 건데, 그건 좀 이상했다.

‘리더가 쓰러지니까 다들 멈췄었는데.’

고천수가 의아해 하는 사이 버스가 그레이 울프들과 멀어졌다.

“이제 안 따라오나? 최대한 빨리 밟고 있네만!”

기사의 외침에 고천수는 살짝 신음을 삼켰다.

‘안 따라온다……?’

속도가 느린 녀석들도 아니었다. 조금 전에는 저돌적으로 공격까지 하지 않았던가.

불안감이 엄습하는 가운데, 고천수는 순간 그레이 울프 한 마리가 고개를 치켜드는 모습을 보고 탄식했다.

“매복이다……!”

아우우우우우우우!

하울링이었다.

고천수는 그레이 울프의 숫자가 한두 마리가 아님을 알아챘다.

“기사님! 최대한 빨리 이곳에서 빠져나가 주세요!”

“뭐? 하지만 들를 곳들이……!”

“여기서 죽으면 어차피 아무도 못 태워요!”

고천수는 급하게 외쳤다.

“녀석들이 생각보다 더 많아요! 일단 가야 합니다!”

그레이 울프의 서식지에 들어왔다면 서둘러서 빠져나가야 했다.

아우우우우우!

버스 앞쪽에 하울링을 하고 있는 또 다른 그레이 울프가 나타났다.

“제기랄!”

고천수는 서둘러 가방을 살폈다.

남아있는 캔이라고는 고작해야 2개뿐이었다.

크라아아아아!

전면으로 그레이 울프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콰창!

박창식이 운전대를 꺾으면서 그레이 울프가 유리창 프레임에 몸을 빗맞았다.

“꽉 잡아!”

그레이 울프를 튕겨내고는 박창식이 버스를 빠르게 몰았다.

“자네 말대로 일단 여기부터 벗어나 볼 테니까!”

부우우우웅!

버스가 힘차게 엔진을 돌렸다.

하지만 크기가 큰 버스가 날렵한 몬스터의 추격을 벗어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우우우우!

벌써 몇 마리나 달라붙었다.

빠르게 세어 보니 좌우로 합해서 여섯 마리였다.

콰창! 콰장창!

그리고 그레이 울프들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버스에 몸을 박기 시작했다

-돌았나 봐. ㅎㄷㄷ

-깨고 안으로 들어오겠다!

-고천수!

시청자들이 대비하기를 외쳤지만 고천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지?’

이 안으로 그레이 울프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면 공간이 좁아 상대하기 힘들었다.

‘탈출은…….’

아직 어그로도 끌리지 않았다. 지금은 그레이 울프들이 버스만 노리고 있으니, 이대로 버스를 미끼 삼아 탈출할 수도 있었다.

‘안 돼.’

탈출했다가 그레이 울프가 더 몰려오면 답이 없었다. 새로 탈것을 구하기도 마땅치 않았으니까.

쿵!

“이런 망할!”

그때, 버스가 크게 흔들리며 박창식이 외쳤다.

“바퀴에 뭔가 맞았어!”

카드드득!

뭔가 잘못됐다. 장애물에 바퀴가 찢긴 것인지 버스가 휘청거리고 있었다. 이 상태로 전복되기라도 하면 끝장이었다.

-고천수! 뭐 해!

-흑구를 빨리 밖에 버려!

-미끼 투척밖에 없어……!

고천수는 흑구를 돌아보았다.

흑구가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고천수를 올려다보았다.

“제기랄.”

그딴 짓을 해 봤자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영리한 그레이 울프들이 흑구 하나 잡자고 다 떨어져나갈 것 같지도 않았다.

“저쪽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다면…….”

이쪽에서 확실한 무대를 마련해야 했다.

“기사님!”

고천수는 크게 소리쳤다.

“뒷문 열어 주세요!”

-뭐?

-뒷문 열라고?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박창식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벌렸다.

“문 열면 저놈들이 들어올 거 아냐! 죽을 생각이야?”

“여세요!”

고천수는 몸을 풀었다.

“죽을 생각 없으니까!”

그럼에도 박창식은 문을 열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요청이었던 것이다.

“기사님! 열라고요!”

“하, 하지만 열면……!”

“이 상태로 가다가 버스 멈춘 다음에 둘러싸이면 더 답이 없습니다! 문 열어서 유도할 수밖에 없어요! 한 마리가 들어오면 문 닫으세요!”

그제야 박창식은 고천수의 계획을 이해한 듯 입을 아, 하고 벌렸다.

“자, 자네, 그럼……! 하지만 자네가 저것들을 당해낼 수 있을 리가……!”

박창식이 주저하자 고천수는 앞문으로 가 뒷문 레버를 당겼다.

“열라고 했잖아요.”

“자, 잠깐……!”

크라아아아아!

문이 열리자 그레이 울프들이 그쪽으로 모여들었다.

“뭐, 뭐 하는 거야!”

“기다리세요!”

믿지 못하면 보여 줄 수밖에 없었다. 고천수는 뒷문을 향해 소리쳤다.

“자식들아! 한 판 붙자!”

[어그로 1 - 09:59]

눈이 마주친 그레이 울프 한 마리가 뒷문으로 달려들었다.

탁!

순간 고천수는 레버를 당겨 뒷문을 닫았다.

-한 마리!

-들어왔다!

계획대로 한 마리가 들어왔다.

“으아아아악!”

박창식이 비명을 질렀다

크라아아아아!

그사이, 그레이 울프가 고천수를 보며 괴성을 내질렀다.

“문에 끼게 만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랬다간 적외선 센서 때문에 문이 다시 열릴 테니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역시 한 마리를 가두고 싸우는 수밖에.

크라아아아아아!

“알았어! 형 지금 도끼 들고 간…….”

그때였다.

그레이 울프가 고천수에게 달려들었다.

크라!

그레이 울프는 바로 이빨을 들이밀었다.

고천수는 거기에 맞춰 도끼를 횡으로 휘둘렀다.

콰악!

적중했다. 그레이 울프의 볼을 도끼가 파고들어갔다.

깩!

그레이 울프가 새된 소리를 뱉으며 의자 사이에 처박혔다.

“큭!”

하지만 균형을 잃은 건 그레이 울프뿐만이 아니었다. 고천수도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넘어졌다.

“젠장!”

바닥을 짚고 일어난 고천수가 다시 그레이 울프에게 다가가 도끼를 휘둘렀다.

콰악! 콱! 콰직!

그레이 울프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도끼를 얻어맞았다.

“어디서! 함부로! 뛰어드는 거야!”

10.

파아악!

숫자가 전부 차자 그레이 울프의 머리에 도끼가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절단.

그레이 울프의 머리가 그대로 날아갔다.

-와, 시바.

-이렇게 잘 잡을 수가 있는 거임?

“척하면 척이죠, 형님들.”

그레이 울프는 딱 봐도 유연성이 높고 발이 빠른 몬스터였다.

링이 있다면 모서리에 몰아서 못 움직이게 해 사정없이 타격해야 했다.

“의자 사이에 끼게 한 것부터가 다 계산된 행동이라는 겁니다.”

고천수는 도끼를 치켜들고 우수에 찬 표정을 지었다.

-하여간 좀만 치켜세워주면. ㅋㅋㅋㅋㅋ

-이제 한 마리잖아!

그랬다. 나머지도 하나씩 끝을 내야 했다.

“기사님! 뭐 하세요!”

“어, 엉?”

“문 다시 여세요!”

고천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얼른!”

“어, 어……!”

조금 전의 일로 증명은 끝났다.

박창식은 레버를 당겨 뒷문을 열었다.

크라아아아아!

크르르르르르!

이번엔 두 마리가 거의 동시에 달려왔다.

[어그로 3 - 08:21]

“아, 망할.”

덜컹!

타이밍이 나빴다. 두 마리가 탔을 때 박창식이 뒷문을 닫았던 것이다.

-두 마리는 오바 아님?

-ㅋㅋㅋㅋㅋ 가능?

불가능.

두 마리는 들어오자마자 함께 달려와 고천수를 공격하려고 했다.

“이런……!”

고천수는 급하게 도끼를 휘둘렀다.

깽!

첫 번째 놈은 도끼에 턱이 찍혔으나 나머지 한 마리가 남아 있었다.

크라아아아아!

두 번째 놈은 고천수의 목을 노리고 뛰어올랐다.

고천수가 반사적으로 몸을 피하자 그놈은 박창식이 있는 곳까지 미끄러져나가 앞문 계단에 떨어졌다.

“으, 으아아아아!”

지척에 나타난 그레이 울프를 보며 박창식이 소리를 질렀다.

끼이이익!

당황한 박창식이 운전대를 돌리면서 내부가 심하게 요동쳤다.

콰앙!

고천수도 옆으로 떠밀려 의자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크윽!”

하지만 아픔을 달랠 시간도 없었다. 아직 살아있는 첫 번째 놈이 고천수에게 달려들었던 것이다.

콰악!

또 다시 휘두른 도끼에 첫 번째 놈의 목이 찍혔다.

울컥.

피를 토해낸 첫 번째는 그대로 비명횡사했다.

“한 마리 보냈고……!”

고천수는 서둘러 다른 그레이 울프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너도 이제 끝이다!”

계단에서 기어 나오는 그레이 울프에게 고천수가 도끼를 찍으려고 할 때였다.

콱!

팔을 크게 들었다가 도끼가 좌석 손잡이에 끼었다.

“뭐?”

크라아아아아!

그때, 그레이 울프가 달려들어 고천수의 목을 물어 버리려고 했다.

콰직!

뒤로 넘어지며 그레이 울프의 턱을 찼던 덕에 당장 목을 물어 뜯기지는 않았다.

크라아아아!

하지만 넘어진 게 문제였다.

그렇게 그레이 울프가 고천수를 다시 공격하려는 찰나,

콰득!

뭔가 씹는 소리가 들리며 그레이 울프가 몸을 뒤틀었다.

깨갱깽!

“뭣…….”

놀라는 고천수의 눈에 들어온 건 흑구였다.

흑구가 그레이 울프의 뒷다리를 물고 당기고 있던 것이다.

“나이스다!”

고천수는 바로 도끼를 빼내 당황한 그레이 울프의 주둥이에 박아 넣었다.

콰악!

“어디! 버스 요금도 안 내고 타서! 손님을 물려고 들어!”

콰아악!

고천수의 도끼가 그레이 울프의 이마를 쪼개 버렸다.

털썩.

쓰러지는 그레이 울프를 보며 고천수도 좌석에 몸을 앉혔다.

“후. 위험했다.”

“자, 자네, 괜찮나?”

다시 제대로 운전대를 잡은 박창식이 물었다.

“네, 뭐. 간신히 살았네요.”

“대, 대단해. 어떻게 그렇게 싸울 수 있는 거지?”

“저는 항상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거든요.”

-또 시작. ㅋㅋㅋㅋ

-강화된 신체 덕분이겠지.

-스킬이랑 아이템도 있고.

맞는 말이었다. 주어진 게 없으니까 일반 늑대와 다른 그레이 울프도 상대할 수 있는 것이었다.

뭐, 그건 그런데…….

고천수는 옆을 돌아보았다.

흑구가 혀를 할짝이며 고천수를 보고 있었다.

“너 진짜 물건이네.”

영리한 정도를 넘어서 밥을 준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담력도 있었다.

방금 전에는 도움이 없었다면 고천수도 부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흑구 덕분에 위기를 잘 벗어났던 것이다.

“기사님, 남은 녀석들이 또 따라붙으면 한 마리씩 들여보내 주세요.”

“또?”

“네, 너무 걱정 마시고요. 다행히 이 녀석들 늑대 모습을 한 것치고는 그렇게 영리한 것 같지는 않고요.”

고천수는 그러면서 흑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넌 나랑 일 하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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