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 급행 2번 버스 (1)
“뭐야.”
고천수는 멍하게 중얼거렸다.
-오우, 이런 때에도 버스가 다니다니 개꿀.
-교통카드가 어디 갔더라.
-손부터 들어야지, 새끼들아.
아직 버스 앞으로 나설 때는 아니었다. 고천수는 인상을 찌푸린 채로 입을 열었다.
“형님들, 확인이 먼저입니다.”
딱 봐도 수상했다.
뭐 하는 버스인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끼이익.
그때였다.
빠르게 달려오던 버스가 갑자기 정류장 앞에 멈춰 서며 문을 열었다.
덜컹.
그렇게 운전석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웬 뚱뚱한 버스 기사였다.
“……이봐!”
그는 정류장 뒤쪽에 서 있는 고천수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얼른 타!”
“예?”
고천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음표를 그렸다.
그러자 남자가 급하게 손짓했다.
“얼른 타라고! 살고 싶으면!”
순간 고천수는 고개를 돌려 버스 뒤쪽을 바라보았다.
뭔가가 쫓아오지 않는 이상 이런 반응을 보일 리가…….
크라아아아아!
“뭐야.”
쫓아오고 있는 게 있었다.
“늑대……?”
거대한 크기의 회색 늑대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고천수는 지체할 것 없이 버스에 올라탔다.
-야! ㅋㅋㅋㅋㅋ
-흑구도 태워, 이 시부럴 놈아!
고천수는 바로 다시 몸을 돌려 흑구에게 손짓했다.
“새꺄! 빨리 타!”
다행히도 흑구는 역시 머리가 좋은 녀석이었다. 손짓 한 번에 상황을 이해했는지 바로 버스 안으로 달려들었다.
덜컹.
기사가 바로 레버를 움직여 문을 닫았다.
“꽉 잡으라고!”
부우웅!
버스가 바로 출발했다. 고천수는 균형을 잃고 옆에 부딪혔다.
『카드를 다시 대 주세요.』
“아나, 망할!”
카드 단말기를 밀어내며 겨우 중심을 잡은 고천수는 옆에 있는 의자로 가 겨우 몸을 앉혔다.
“후.”
덜커덩덜커덩!
버스는 빠른 속도로 달리며 계속해서 흔들렸다.
고천수는 사이드미러로 시선을 가져갔다.
늑대들이 미친 듯이 쫓아오는 게 보였다.
-그레이 울프라.
-진짜 귀찮은 놈들이 달라붙었네.
얼마나 귀찮은 놈들인지는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버스가 직선 구간에 들어서서 빠르게 달리고 있는데도 그레이 울프들은 고개를 뒤흔들며 쫓아오고 있었다.
-흑구 내리자…….
“언젠 태우라면서요.”
고천수는 그렇게 대답하며 옆을 돌아보았다.
흑구가 고천수를 바라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놀린 거 아님?
-뒷문 열어라.
“진정하세요.”
도와준 녀석을 미끼로 집어던질 수는 없었다.
고천수는 일어나 손잡이들을 붙잡고 뒤로 천천히 걸어갔다.
“뭐 하려고!”
기사가 걱정스러운 듯 외쳤다.
“붙은 놈들 좀 처리하겠습니다!”
고천수는 뒷좌석으로 가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흑구가 그쪽에 고개를 내밀고 바람을 맞았다.
-흑구 뭐 하냐?
-ㅋㅋㅋㅋㅋ 바람 쐼?
-이런 미친 새낔ㅋㅋㅋㅋ
“개는 주인을 닮는다더니.”
고천수는 고개를 내저으며 흑구의 목덜미를 끌어당겼다.
“그렇다고 아직 네 주인인 건 아니지만.”
그러면서 고천수는 가방을 열어 내부를 살폈다.
밀봉돼 있는 몇 개의 약제와 주사기, 봉지 과자, 통조림 캔이 있었다.
‘얼마 있지도 않은데…….’
고천수는 참치 캔 하나를 꺼내 들었다.
질소가 든 과자들이 무게를 상쇄해 주었다지만, 애초에 이 캔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면 몸이 너무 무거워서 강에서 헤엄칠 수도 없었을 터였다.
그렇게 조금밖에 없는 통조림을 또 소모하자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먹이 주려고?
“아뇨.”
고천수는 참치 캔을 꽉 쥐었다.
“조져 버리려고요.”
그레이 울프는 현재 버스를 쫓고 있었다. 아직 고천수를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야!”
그렇다면 이제 완전히 표적으로 삼게 도와줄 필요가 있었다.
“이쪽이다아아아아!”
순간 그레이 울프들이 고천수를 쳐다보았다.
[어그로 7 - 09:58]
한 번에 모든 어그로를 끌었다. 그레이 울프들이 고천수를 바라보며 이빨을 드러냈다.
크라아아아!
준비를 마친 고천수는 참치 캔 하나를 꽉 잡고 힘을 주었다.
“간다.”
후욱!
고천수는 숨을 끌어 모은 뒤, 참치 캔을 선두에 있는 그레이 울프에게 던졌다.
깽!
명중이었다.
깨갱깽!
선두가 넘어지며 다른 그레이 울프들과 뒤엉켰다.
“다음.”
동료들이 넘어졌음에도 4마리가 아직까지 뛰어오고 있었다. 그중에 주둥이에 흉터가 있는, 리더로 보이는 놈을 노리고 고천수는 캔 하나를 더 꺼내 자세를 잡았다.
“친구들 넘어졌는데도 계속 쫓아오는 거냐?”
진짜 늑대와는 달리 의리 없는 녀석들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럼……!”
고천수는 캔을 세게 내던졌다.
“너도 똑같이 만들어줘야겠지!”
콰작!
이번에는 리더의 다리를 맞혔다.
크르륵!
마치 찰나의 고통을 감내하듯 신음을 흘린 리더가 고천수를 바라보며 입을 크게 벌렸다.
크라아아아아아!
“아, 망했나?”
순간, 리더가 갑자기 뒤늦게 앞으로 고꾸라지며 나뒹굴었다.
-왓!
-먹혔다!
촤아아아아!
리더가 땅을 미끄러지다가 멈춰 섰다.
그러자 일어난 반응.
다른 그레이 울프들이 추적을 그만두고 서둘러 발을 세웠다.
크라아아아아아아!
이렇게 멈추게 된 게 억울해서일까.
리더가 고개를 치켜들고 크게 괴성을 뱉었다.
“후. 겁나 무서웠지. 그치?”
고천수는 몸을 창문 안쪽으로 들여놓으며 흑구에게 눈짓했다.
왈!
흑구가 진짜 그랬냐는 듯이 경쾌하게 한 번 짖었다.
고천수는 버스 후면창으로, 멀어져 가는 그레이 울프들을 눈에 담았다.
“이대로 끝이면 좋겠네.”
원한을 담은 눈빛으로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그레이 울프들을 보며, 고천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난 대전 2번 급행 버스 기사인 박창식이라고 하네.”
고천수가 다시 앞좌석으로 향하자니 버스기사가 자신을 소개하며 말했다.
“자네는 어디서 온 거지?”
웃긴 질문이었다.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사람을 태운 것이었으니까.
“저는 강을 건너서 왔습니다.”
“강을 건너서……?”
박창식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멀리서 보니까 다리들이 무너지고 있던데. 그렇게 되기 전에 건너왔던 건가?”
“아닙니다. 헤엄쳐서 왔습니다.”
“헤엄쳐서……!”
고천수는 어깨를 으쓱였다. 박창식이 듣기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짜 말도 안 되는 건…….’
이런 상황에서 운행할 리 없는 버스를 가지고 이곳에 온 것이었다.
“기사님.”
고천수는 앞문 쪽에 있는 좌석에 앉으며 박창식에게 물었다.
“기사님은 어디서 오신 겁니까?”
“나 말인가?”
고천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박창식은 그리 어렵지도 않은 질문이라는 듯 답했다.
“당연히 차고지에서 왔지.”
-장난하나. ㅋㅋㅋㅋ
-인간은 흙에서 왔다.
한숨을 쉰 고천수가 다시 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버스 운행을 정상적으로 할 리는 없고, 다른 데에 들렀다 오셨을 것 같은데요.”
“아, 그거.”
박창식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대전복합터미널 쪽에서 군인들과 만난 뒤에 왔네.”
“군인들?”
“그쪽에서 군인들이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거든. 곧 어디로 떠난다고, 사람들을 여러 버스에 나눠서 태우고 있네.”
여태까지 7.5사단이 한 짓을 보면 대전복합터미널에 도착한 모든 인원을 데리고 갈 리는 없었다.
서로 다른 버스에 나눠 태우고 있다는 점에서 고천수는 좀 싸한 기분을 느꼈다.
“그럼 기사님은…….”
“나는 군인들이 떠나기 전에 한 명이라도 더 태워서 그쪽으로 데려가려고 나왔어.”
박창식은 선글라스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난 여기서 평생을 살아 왔어. 대전역과 대전복합터미널을 오가는 이 2번 버스로, 많은 귀향객과 여러 사연을 가진 손님들을 모셨지. 그게 내 사명이니까.”
그는 거기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지금도 사람들의 목적지가 내가 버스를 몰던 중요 노선과 겹치는 이상, 두고만 볼 수는 없었네.”
-와우, 이타심 쩌네.
-천수에게는 볼 수 없는 마음……!
-울었다.
“형님들, 저도 이타심 쩔거든요.”
다만 본인을 먼저 생각할 뿐이었다.
고천수는 전면 유리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길에는 여기저기 멈춘 차량들과 잔해가 많았다. 박창식은 능숙하게 장애물을 피해 가급적 깨끗한 도로를 찾아 버스를 몰고 있었다.
“기사님, 여기서 터미널까지는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정류장 몇 개는 돌아봐야 해서 약간은 걸릴 거야.”
이 버스는 원래 노선에 속하지 않는 곳에도 멈췄다.
너무 많은 지점을 도는 것은 고천수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럼 근처에 있는 정류장은 다 돌 생각이십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터미널에 모인 사람들이 알려준 정보로 버스를 몰아도 될 곳만 몇 군데 뽑은 것뿐이야. 아까 전에 그 괴물들이 나타난 건 좀 놀랐지만.”
박창식은 고천수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네, 대단하던데. 덕분에 괴물들을 떨어뜨릴 수 있었어.”
“그렇군요.”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었다. 다만 위협이 완전히 없어졌다고는 할 수 없었다.
-울프들 또 쫓아오는 거 아니냐?
-그러게, 거의 천수 너 잡히면 뒈졌다 이 수준이었는데.
-응, 어차피 천수 못 쫓아와.
낙관은 판단력을 흐릴 수 있었다. 혹시 그레이 울프들이 쫓아올 때를 대비해야 했다.
“…….”
가만히 쳐다보자니 흑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ㅋㅋㅋㅋㅋ 고기 방패 안 쓴다며.
-전투견으로 쓰려는 거 아님?
-혹시 아냐? 갓독일지.
“형님들, 얘 쓰려는 거 아니니까 진정하세요. 갓독은 또 뭡니까?”
흑구는 그냥 영리한 개라서 데려온 것뿐이었다. 위기에 처했을 때 잔심부름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했다.
“일단 지금 중요한 건 따로 있으니까…….”
당장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우선이었다.
고천수는 다시 박창식을 향해 물었다.
“기사님, 정류장을 다 들르면 정확히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글쎄. 그래도 15분 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길을 좀 돌아가야 돼서 확신은 못 하네.”
그다지 많이 남지는 않았다.
고천수는 의자에 푹 몸을 늘어뜨렸다.
“후.”
잠시나마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됐다.
피곤에 눈이 감길 것 같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혹시 모르니까…….’
동료가 없으니까 문제가 되는 게 있었다.
고천수는 박창식을 돌아보았다.
‘좋은 사람인 것 같다만.’
그렇다고 안심하고 쪽잠을 잘 수는 없었다. 믿을 수 있었던 동료들이 없으니 이런 문제가 있었다.
촵.
흑구가 옆에서 슥 손을 핥았다.
이 흑구라도 잘 훈련시켜서 위험 상황에서 알림을 줄 수 있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도초과가 목소리를 내준다고는 하지만, 실체적으로 접촉할 수 없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형님들, 이럴 때 얘기 좀 하나 해 봐도 될까요?”
어차피 여유롭게 잠을 못 잔다면, 이참에 해 둘 얘기나 꺼내 보는 게 좋았다.
-뭔 얘기?
-버스비 달라고?
“그건 아니고, 열혈 팬이요.”
여기까지 오면서 잠깐 나왔던 얘기였지만, 충분히 고천수의 흥미를 끌 만한 내용이었다.
“열혈 팬이 있다는 건, 제가 알고 있는 다른 시스템도 있다는 거겠죠?”
-눈치 빠르네.
-벌써부터 나올 건 아니었는데.
-한도초과가 너무 나대가지고 그럼.
“나대신 건 아니고, 애정.”
고천수는 바로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상처 받지 마십쇼, 한도초과 님. 뭔지 알죠?”
-이 새낔ㅋㅋㅋ 시청자 차별 시작함. ㅋㅋㅋㅋㅋㅋ
-야! 한도초과는 지갑도 이제 얇아!
-ㅜ,ㅜ 우린 버리는 거임?
“그럴 리가요.”
다만 열혈 팬이 되고 싶어 하는 한도초과는 고천수의 구원 투수였다. 편애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특별 취급은 필요했다.
“그냥 위로 한 번 해 드린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형님들 제발 좀 진정하시고요.”
고천수는 서둘러 말을 돌렸다.
“중요한 건 이게 아니잖습니까. 열혈 팬이 있으면 다른 것도 있다! 바로 그거! 있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그거?
-음, 그거 말이군.
-뭐임? 나만 모르는 거임?
확실하게 말해 주지 않으니까 시청자들도 혼란에 싸인 모습이었다.
고천수는 헛웃음을 뱉었다.
“방송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게 하나 있죠.”
그러면서 손가락을 들자 채팅로그가 물음표로 가득 찼다.
고천수는 다들 많이 기다렸다는 듯 툭 말했다.
“방송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