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71화 (71/224)

071. 후회 없는 싸움 (2)

“푸학!”

또다시 고통스러운 시간이 시작됐다.

“풉!”

빠르게 내리치는 물살에 고천수는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옆으로 떠밀렸다.

‘아직……!’

3분의 2 지점은 아직 조금 남아 있었다. 고천수는 뒤를 살짝 돌아보았다.

-와, 뒤까지 돌아보는 여유!

우구우우우우!

여유가 있어서 돌아본 건 아니었다. 뒤에서 계속 얼핏얼핏 괴성이 들리고 있어서였다.

‘제기랄……!’

우드 좀비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물에 가라앉아 있는 상태인 건 맞는 듯했다.

“푸우!”

하지만 기척이 멀어지질 않았다. 우드 좀비는 숨 쉬는 것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물속에서 괴성을 뱉으면서 따라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고천수, 조금만 더!

-얘 지금 가라앉고 있는 것 같은데.

-뒤는 왜 돌아봐가지고. ㅋㅋㅋㅋ

한 번 뒤돌아본 것 때문에 자세가 망가졌다. 그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고천수는 허우적대며 겨우겨우 앞으로 나아갔다.

우구우우우!

우드 좀비가 바로 지척까지 따라붙은 게 느껴질 때였다.

“푸아아아아아!”

[미션을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을 부여합니다.]

[정보는 채팅창의 $으로 확인 가능합니다.]

도달했다.

고천수는 바로 상점창을 외쳐 카탈로그를 띄웠다.

“튜브 내놔!”

튜브를 누르자 ‘구매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당연히 예스다!”

클릭.

하늘에서 순간 빛이 번쩍했다.

후우웅!

튜브가 빠른 속도로 강하해 고천수의 앞에 떨어졌다.

파악!

머리를 살짝 스친 탓에 고천수는 잠시 눈을 감았지만,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튜브를 잡아낼 수는 있었다.

우구우우우!

“으악!”

그와 동시에 고천수의 발끝에 무언가 닿았다.

직감적으로 그것이 우드 좀비의 손끝이라는 걸 알아챘다.

“꺼져어어어!”

고천수는 발을 휘저으며 튜브를 타고 몸을 물살에 맡겼다.

쏴아아아아.

튜브는 물살을 따라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고천수?

-안 건너가?

-포기하지 마라!

“포기?”

고천수는 탄식을 뱉었다.

“그딴 건 안 합니다.”

튜브를 얻었다고 해서 추진력을 얻는 건 아니었다. 우드 좀비가 물속에서 움직이는 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빨라서 그대로는 목적지까지 도망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우구우우우우!

떠내려가는 속도로 우드 좀비부터 멀찍이 떨어뜨려야 했다.

“설마…….”

하지만 우드 좀비는 고천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행동을 보였다.

우구우우!

물살을 타고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간간히 떠올라 부표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우드 좀비를 보면서 고천수는 경악했다.

“뭐야, 수영 못 하는 거 아니었어?”

물론 물살을 타고 내려오는 거니까 수영하고 다르기는 했다.

게다가 우드 좀비는 물 위로는 제대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으니 엄밀히 말하면 수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아, 오바잖아.”

하지만 물살을 탈 수 있다는 것만으로 고천수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우드 좀비도 어지간히 화 났나 봄.

-천수가 빈 캔만 던져서 그런 듯.

-그러게 참치 좀 나눠먹지.

고천수는 주위를 살폈다. 가지고 있는 젠도 없으니 다른 수단을 강구해야 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그리고는 뒤를 확인하고 눈을 크게 떴다.

“어?”

무너지고 있는 또 다른 다리가 있었다. 고천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원래라면 저기까지 갈 생각도 없었지만……!’

우드 좀비가 추격을 멈추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고천수는 자세를 바꿔 스켈레톤 선수처럼 몸을 펴 일자로 만들었다.

-뭐 하는 거임?

-진짜 뭔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닼ㅋㅋㅋㅋ

고천수는 튜브를 붙잡고 균형을 맞췄다. 물살을 타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뒤쪽으로 발을 뻗어 키와 같은 역할을 함으로써 방향을 잡았다.

-아, 저기 통과하려고?

무너지는 다리 사이에는 작은 통로가 있었다.

튜브를 탄 사람 한 명 정도는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우드 좀비가 지나가기에는 턱없이 좁아 보였다.

-지나갈 수 있냐?

-조금만 잘못 틀어도 잔해에 처박힐 것 같은데.

-아냐, 돼!

의견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고천수는 어차피 부정적인 의견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오로지 긍정.

이런 상황을 해쳐나가는 힘은 100% 본인이 할 수 있다는 신뢰에서 나오게 돼 있었다.

“아, 썅!”

중간에 물살이 틀어지며 몸이 튜브가 옆으로 돌았다.

고천수는 팽이처럼 회전하면서 비명을 질렀다.

“아 망하아아아알!”

-ㅋㅋㅋㅋㅋ 진짜 이 새낔ㅋㅋㅋ

-왜 항상 뭐 하나가 어설프냐.

-야! 부딪히겠다! 빨리 정신 차려!

고천수는 한쪽 발로 튜브의 회전을 멈춰 세우며 앞을 살폈다. 어느새 무너진 다리가 시야 가까이에 들어와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이젠 운에 맡겨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운에 모든 걸 기댈 수는 없었다.

고천수는 양발로 물장구를 쳐 튜브를 최대한 통과 예정 지점 가까이로 몰았다.

우구우우우우!

그사이 우드 좀비는 또 다시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좀!”

우드 좀비가 내민 다리에 살짝 닿았다.

“큭?”

놀라서 다리를 움츠리자 방향이 다시 틀어졌다. 튜브는 그 상태로 빠르게 통로 쪽으로 흘러갔다.

-야, 고천수! 앞!

쿵!

늦었다.

고천수는 통로 옆에 있는 잔해에 몸을 부딪쳤다.

“푸헉!”

바로 튜브 아래로 미끄러지면서 고천수는 물에 빠져 버렸다.

“아!”

그나마 다행인 건 튜브에 있던 손잡이는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우구우우우!

우드 좀비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고천수는 온몸을 허우적거리며 다시 통로 쪽으로 가기 위해 발악했다.

“푸학! 푸하악!”

추하게 입 안에 들어온 물을 뱉어내며 고천수가 통로로 움직일 때였다.

콱!

우드 좀비가 팔을 뻗어 고천수의 신발을 붙잡았다.

우구우우!

마치 잡았다는 듯 우드 좀비가 포효를 내질렀지만 아직이었다.

고천수는 발을 휘둘러 신발을 벗어 버렸다.

“그만 좀 꺼져, 이 스토커 새끼야!”

후웅.

튜브가 잔해더미에서 벗어나 통로를 흐르는 물살을 탔다.

우구! 우구우우우!

튜브를 잡고 있는 고천수가 통로로 빨려 들어가자 우드 좀비가 급하게 팔을 뻗었다.

콰앙!

하지만 통로는 우드 좀비가 지나가기에는 너무 좁았다. 무너진 다리의 잔해들만 건드린 우드 좀비의 위로, 벼락과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쿵! 콰드득!

이미 무너진 다리였지만, 붕괴는 아직 계속되고 있었다.

우구우우우!

우드 좀비의 머리 위로 잔해들이 떨어졌다. 우드 좀비는 그 상황에서도 좁은 통로를 통과하기 위해 온몸을 비틀었다.

콰각! 콰가가각!

그러자 겨우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잔해들이 모조리 우드 좀비의 위로 쏟아 내렸다.

우구! 우구우우……!

우드 좀비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겠다는 듯, 고천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 우드 좀비를 향해 고천수는 주먹을 내밀었다.

“이거나 먹어.”

콰앙!

순간 우드 좀비에게 거대한 철근이 처박혔다.

***

“…….”

느려진 유속.

튜브가 정처 없이 흘러가는 가운데, 고천수는 한숨을 토해내며 하나도 남김없이 무너져 내리는 다리를 지켜보았다.

“살았다…….”

튜브 위로 몸을 올리고 고천수는 몸을 늘어뜨렸다.

“겁나 힘드네.”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지만, 쉬고 있을 수는 없었다.

“후.”

고천수는 튜브를 붙잡고 옆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더 떠내려가면 좋을 게 없었다. 일단 강부터 건너야 했다.

-천수 10년은 늙은 듯.

-응? 뭐지, 저거?

-쫓아왔던 건가?

채팅창의 내용을 보고 고천수는 급하게 고개를 들어올렸다.

“헉…….”

쫓아왔다기에 몬스터인지 알고 식겁했건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응?”

웬 검은 개 한 마리가 물길을 헤엄쳐서 건너가고 있었다.

“뭐야.”

수풀 속에 숨어 있다가 나왔을 때 봤던 그 개인 듯했다. 고천수는 멍한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소리쳤다.

“야!”

그러자 개가 가던 길을 멈추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나 좀! 데려가!”

-ㅋㅋㅋㅋㅋ 뭐임.

-뜬금없네.

헤엄치는 건 질렸다. 고천수는 개를 향해 계속 소리쳤다.

“이것 좀 끌어 보라고!”

개가 고천수의 말을 들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웃기게도, 개는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다가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뭐야.

-진짜 오네.

-놀리러 오는 거 아님?

시청자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개는 고천수가 있는 튜브 옆까지 와서 뱅글뱅글 돌았다.

“흑구야, 나 감동받았다.”

자연스럽게 이름을 붙여 주며, 고천수는 흑구의 허리를 톡톡 쳤다.

“자, 튜브 좀 밀어 봐.”

그러자 흑구는 앞장서서 헤엄쳐가기 시작했다.

“아니, 야!”

길 안내를 해 달라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흑구는 고천수의 외침에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튜브 밀어 달라고!”

-천수야, 그냥 본인이 헤엄치자…….

-흑구 쟤도 너까지 책임지기 힘들 듯.

-어른답게 살자…….

“에휴.”

할 수 없었다. 고천수는 흑구를 따라 헤엄치기 시작했다.

다행인 건 흑구의 안내가 전혀 도움이 없던 건 아니었다는 것이다.

‘물살이 약한 쪽으로 안내하네.’

지능이 나쁜 편은 아닌 듯했다.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자니 외형은 진돗개와 비슷했다.

왈!

강변에 먼저 올라선 흑구가 고천수를 향해 짖었다.

“자기가 이겼다는 거야 뭐야.”

그런 건 아니겠지만 고천수는 많이 지쳐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흑구가 다시 물에 뛰어들어 튜브를 밀어 주었다.

“진즉에 좀 해 주지 쨔샤.”

그래도 덕분에 큰 도움을 받았다.

고천수는 강변에 올라가 그대로 퍼질러졌다.

“후우.”

어떻게 강을 건너오긴 건너왔다. 어찌 보면 그다지 긴 거리도 아니었지만, 물의 흐름 때문에 정말 개고생을 한 느낌이었다.

“형님들, 도움 감사합니다.”

늦었지만 시청자들에 대한 감사 인사는 잊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고천수는 연속된 제안 실패로 개인 미션은 수행할 수 없는 상태였다.

시청자들이 대신 연합 미션을 내주지 않았다면, 좀 위험했을 수도 있었다.

왈!

흑구가 고천수 옆을 돌며 한 번 짖었다.

“좀만 쉬자.”

고천수가 중얼거리자 흑구가 그의 가방을 주둥이로 툭하고 쳤다.

“아, 보상 달라고?”

가방을 내려서 연 고천수가 캔 하나를 따서 흑구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흑구는 주둥이를 처박고 내용물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겁나 배고팠나 보네.”

고천수도 공복감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게 가방까지 짊어지고 물에 뛰어들었던 터다.

많지도 않은 내용물을 버리기 싫어서 그냥 강화된 신체만 믿고 무리해 버렸으니, 칼로리 소모가 엄청났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제 어디로 감?

-너무 많이 쉬는 것도 좀 그럴 듯.

-군인들 언제 떠날지 모르잖아.

“그렇게 많이 쉬지도 않았어요, 형님들.”

고천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찌뿌듯한 몸을 풀었다.

“어휴, 갈게요, 가. 형님들 말씀 들어야죠.”

-ㅋㅋㅋㅋ 삐졌냐?

-다 돕자고 하는 얘기지.

-옷 매장 또 들러야겠네.

젖은 옷을 입고 이동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고천수는 흑구처럼 젖은 몸을 터는 걸로 끝낼 수 없었다.

“일단 가 보죠.”

고천수는 강변을 따라 올라가 가까운 옷 매장부터 찾았다.

거기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고천수는 근처의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어디 보자.”

목적지는 대전복합터미널이었다.

정류소에 붙어 있는 대략적인 노선을 살펴보면, 여기서 대전복합터미널까지 얼마나 떨어져 있을지 추측을 해 볼 수 있었다.

“터미널이…….”

왈!

그때였다.

흑구가 낸 소리에 고천수는 고개를 돌렸다.

“뭐지?”

어디선가 차 소리가 났다. 고천수는 도끼를 빼내 들고 정류장 근처에 몸을 숨겼다.

부우우웅.

버스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급행 2번’이라고 표시된 빨간색 버스 하나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버스……?”

생각지도 못한 버스의 등장에 고천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흑구도 고천수를 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저건.

-급행 2번이라고 써져 있는데?

-급행 2번?

노선도에 있던 버스는 아니었다.

‘아니, 근데…….’

정차 여부와 관계없이 웬 버스란 말인가.

고천수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 버스는 근처에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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