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 후회 없는 싸움 (1)
일단 고천수는 강 주변을 따라 내려갔다.
“아, 망할.”
불행히도 강을 건너갈 마땅한 수단이 보이지 않았다.
‘유속도 다시 빨라진 것 같은데.’
군인들이 고무보트를 세워 뒀을 때는 잠시 느려졌던 유속이 다시 빨라져 있었다. 폭발이 끝났는데도 물이 불어나 있는 걸 보면 강 상류에 또 환경에 영향을 주는 몬스터가 나타난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살 수 있는 아이템도 없고.’
젠이 모자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허리춤에 있는 도끼로 시선이 갔다.
역시 너무 무리해서 도끼를 손에 넣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애써 고개를 저었다.
이 도끼가 없었으면 헤쳐 나오지 못했을 난관이 많았다. 온리원이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다고 하긴 했지만, 고천수는 그럴 생각 따윈 없었다.
[띠링! 한도초과 님이 1젠 후원! - ㅜ,ㅜ]
보다 못했는지 또다시 후원이 들어왔다.
고천수는 헛웃음을 뱉었다.
“형님, 괜찮습니다.”
후원하면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 한도초과에게는 그럴 수가 없었다.
“여기선 제가 알아서 해 보겠습니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에게서 계속 이득을 취하고 싶다면, 그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무턱대고 쏘지는 못하는 걸 보면 시청자들에게도 젠이 상당한 값어치가 있는 게 분명했다.
서로 오랫동안 붙어먹으려면 누가 무리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우구우우우우.
어디선가 불안한 소리가 들렸다.
-뭐지?
-그놈 소리 아냐?
-어디어디!
채팅창이 소란스러워짐과 동시에 고천수는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설마……!’
그 설마였다.
물속에서 우드 좀비가 기어 나오고 있던 것이다.
“제발.”
겨우 물에 빠졌다고 쉽게 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고천수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어떻게 하지?’
우드 좀비는 아직 위로 완전히 올라오지는 않았다. 우드 좀비가 태세를 잡으면 그때부터는 도망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했다.
그러니 이 틈에 어디로 도망갈지 정할 필요가 있었다.
‘북쪽? 남쪽?’
여기서 강을 건너지 못하면 선택할 곳은 단 두 군데밖에 없었다.
하지만 두 쪽 다 정보가 너무 없었다.
‘강을 건너야 하는데……!’
바로 동쪽으로 가는 게 베스트였다. 청주 공항으로 가는 길은 7.5사단의 군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테니, 그쪽으로 가서 정보를 얻고 몰래 꼽사리를 껴서 이동하는 게 최선의 시나리오였다.
우구우우우우.
하지만 우드 좀비는 고천수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쾅.
우드 좀비의 육중한 팔이 강변의 알림판을 부수며 땅을 짚었다. 곧 몸을 일으킨 우드 좀비는 어느새 고천수가 있는 길 위로 올라서 있었다.
“하.”
탄식한 고천수는 어쩔 수 없이 뛰기 시작했다.
방향은 남쪽이었다.
[어그로 1 - 09 : 59]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아는 그 순간이 왔다.
고천수가 뒤를 살짝 돌아보자, 역시나 우드 좀비가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아아아아!”
고천수는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르며 두 다리를 더 힘껏 움직였다. 그러자 우드 좀비도 더 빠르게 속도를 올렸다.
‘뭐가 저렇게 빨라?’
고천수도 일반인은 아니었다. 속력이 남들보다는 훨씬 높을 수밖에 없는데도, 우드 좀비에게 간신히 붙잡히지 않을 정도로만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큭!”
이판사판이었다.
고천수는 서쪽으로 몸을 틀었다.
-야, 뭐 해.
-다시 돌아가려고?
돌아가려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곳에 있는 뭔가가 떠올랐을 뿐이었다.
-야! 이쪽으로 가면 위험해!
시청자들도 그게 무엇인지 눈치 챈 듯했다.
우구우우우우.
우드 좀비의 소리가 들렸다. 고천수는 숨을 삼키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 5층 건물의 위로 올라갔다.
“헉, 헉.”
창밖을 내다보자니 우드 좀비가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다행히 고천수가 건물로 들어가는 걸 보지 못한 듯했다.
-겨우 살았네, 시바.
-와, 우드 좀비 피지컬 지리긴 한다.
-꿈에 나올 듯.
일단 피하기는 했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돌겠네. 강가로만 가는 건가?’
고천수가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한 우드 좀비는 몸을 다시 돌려세웠다. 그건 다시 강가로 가는 방향이었다.
“후.”
고천수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얼른 옥상까지 올라갔다. 그러고는 가방에서 캔 통조림 캔 하나를 따서 허겁지겁 먹었다.
-뭐야.
-갑자기……?
시청자들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 사이 고천수는 우걱우걱 내용물을 다 먹고서는 통조림 캔을 세게 밖으로 내던졌다.
깡까강!
옥상에서 떨어져 길바닥에 떨어진 통조림 캔이 요란스레 소리를 울렸다.
우구우우.
강가로 가던 우드 좀비가 다시 고개를 돌리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냥은 못 가.”
무너지기 전 다리 앞에 남아 있던 흔적도 그렇고, 우드 좀비는 별다른 자극이 없으면 계속 강가를 순찰하듯이 도는 게 분명했다.
“넌 여기서 잡을 테니까.”
지면에서 싸우면 이기기 힘들었다. 거대하게 불어난 엔티와도 싸워 이긴 적이 있기는 하지만, 우드 좀비는 격이 달랐다.
감각의 일부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엔티와 비교하는 것조차 실례였다.
“간다.”
고천수는 옥상을 내달려 담 앞에서 점프했다.
타악!
높이 떠오른 그의 몸이 옆에 있던 건물 옥상에 착지하며 나뒹굴었다.
“컥?”
멈춘 건 벽돌 기둥에 부딪히고서였다.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축 늘어졌다.
-ㅋㅋㅋㅋㅋㅋ
-파쿠르 할 줄도 모르면서 뛰고 있냐.
-항상 멋있으려다가 말음. ㅋㅋㅋ
놀림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천수는 머리를 털고 일어나며 근처의 다른 건물 옥상을 바라봤다.
“간다.”
그렇게 한 번 더 뛰어서 옆 건물의 옥상으로 넘어갔다.
쿠웅!
이번에는 제대로 바닥을 구르지도 못하고 바닥에 몸을 제대로 부딪쳤다.
“아, 썅……!”
바닥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고천수를 향해 시청자들이 의문을 토해냈다.
-대체 뭐 하는겨. ㅋㅋㅋㅋ
-도망치려면 다른 쪽으로 가든가.
-여긴 서쪽이잖아.
맞았다.
일부러 서쪽으로 온 것이었다.
“끄으응.”
고천수는 격통을 참아내며 비틀비틀 일어났다.
이번에는 운 좋게도 근처에 철근 같은 게 있어서 아까운 통조림 캔을 내던질 이유가 없었다.
까앙!
고천수가 던진 철근이 건물 밖으로 추락해 아스팔트 지면을 강하게 때렸다.
우구우우우.
우드 좀비가 그 소리에 이끌려 다시 근처로 걸어왔다.
-아, 이 새끼 설마…….
고천수는 다시 달려가 옆 건물로 몸을 날렸다.
타악.
제대로 된 착지. 더 이상 바보같이 어디에 처박지도 않았다.
“저기인가.”
고천수가 멀리 내다 본 곳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곳이 있었다.
디렉터에 의해 오영준이 몰고 간 트럭이 파괴된 장소가 분명했다.
땡그랑!
이 근처의 건물들은 다행히도 비슷한 크기로 나란히 연결돼 있었다. 옥상들을 통해 디렉터가 있는 장소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겠다고 판단한 고천수는 계속해서 그곳을 향해 이동하며 무언가를 떨어뜨렸다.
까강!
우드 좀비는 그 소리를 따라서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우구우우우.
그리고 마침내 부서진 트럭에서 얼마 떨어져있지 않은 장소에 우드 좀비가 도착했다.
-근데 이거 됨?
-우드 좀비가 첨에 들고 있던 거 생각해 봐.
-그거 그냥 주워 온 거 아님?
우드 좀비가 처음에 가지고 있던 걸 고천수도 모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모르는 일이야.’
우드 좀비에게는 가시넝쿨들에 몸이 뜯긴 흔적이 없었다.
둘이 싸운 적이 있다면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아직 둘은 붙어 본 적이 없을 거다.’
고천수는 그렇게 확신했다.
깡가가강!
야구공처럼 내던져진 작은 통조림 캔 하나가 부서진 트럭 쪽에 떨어졌다.
“선물이다.”
정확한 장소에 안착시키려고 이번엔 통조림의 내용물도 먹지 않고 그대로 무게를 담아 던졌다.
우드 좀비는 커다란 몸뚱이를 뒤뚱거리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구우우우.
빠르게 뜀박질한 우드 좀비는 트럭 앞에서 멈춰 섰다.
“자.”
트럭 근처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본 고천수가 두 팔을 벌렸다.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
결과라고 해야 할까, 사실 그런 걸 볼 틈은 없었다.
탁탁탁탁!
디렉터의 줄기인 가시넝쿨들이 나타나 우드 좀비를 끌어 잡은 순간, 고천수는 건물 아래로 뛰어 내려갔기 때문이다.
-호다닥!
-폼 잡는 시간, 단 1초.
“1초면, 충분하거든요!”
시간을 벌었다는 게 중요했다. 둘이 치고받고 싸우는 동안 고천수는 다시 강가로 돌아가 그곳을 넘어갈 방법을 찾을 셈이었다.
우드드득!
건물을 빠져나가서 돌아보자니 우드 좀비가 가시넝쿨에 붙잡혀 질질 끌려 다니고 있었다.
“역시……!”
우드 좀비는 이전에 디렉터와 제대로 맞붙은 적이 없었다.
가시넝쿨은 어딘가에서 주워 왔거나 운 좋게 하나 뜯어 왔던 게 분명했다.
우구우우우!
“응, 고생하고!”
괴성을 내지르는 우드 좀비에게 시원하게 인사를 날리며 기분 좋게 뛰어갈 때였다.
콰드드드득!
심상찮은 소리가 들려서 고천수는 다시 우드 좀비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어……?”
그리고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뭐야.”
콰득! 콰드드득!
우드 좀비가 디텍터의 가시넝쿨을 붙잡아서 뜯어 버리고 있었다.
-엿됐다.
치솟는 불안감.
고천수는 양팔을 마구 휘저으며 강가로 뛰어갔다.
“얼른! 얼른 건너가야 돼……!”
물에서 익사하지는 않지만 우드 좀비는 헤엄을 잘 치지는 못했다. 심지어 반대편으로도 건너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던가.
“아!”
그새 강의 수위가 좀 낮아져 있었다. 유속도 느리게 보이는 걸 보며 고천수는 환희에 차 중얼거렸다.
“아, 제기랄.”
수영만 잘했으면 당장 뛰어드는 건데 고천수는 수영 실력이 맥주병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물에 빠져서 죽다 살아났던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상황이 조금 나아졌어도 뛰어들기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데드 보어 잡을 때 그 깡은 어디 갔냐!
-그때는 그냥 물에 뛰어 들었자너!
-뛰어! 뛰어라, 고천수!
“남 일이라고 쉽게 말하시는 겁니까!”
그때는 안전장치가 있었다.
우구우우우!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고천수는 그쪽을 돌아보고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이겼냐고!”
우드 좀비가 몸에 붙은 가시넝쿨을 떼어내 내던지며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런, 망할!”
할 수 없었다. 고천수는 우드 좀비를 향해 총을 겨눴다.
투다다다다다!
일단 살고 봐야했다. 총알을 아껴봤자 목숨을 잃으면 본전도 챙길 수 없었다.
“아.”
다만 이번엔 조금의 시간도 벌지 못했다. 영리하게도 우드 좀비는 팔을 들어 올려 얼굴을 보호하고 있었다.
한 번 눈가를 맞췄던 것도 운인데, 이제 고천수는 기적도 기대할 수 없었다. 총알들은 우드 좀비의 묵직한 몸뚱이에나 처박혀서 침묵했다.
‘피해야 돼……!’
시청자의 말대로 우드 좀비는 피지컬이 장난이 아니었다. 탄창을 갈아 끼우며 갖고 있던 총알을 전부 쏟아 부었는데도 소용없었다.
이젠 몸의 무게만 늘리는 총을 옆으로 내버리고 고천수는 이를 악물었다.
더 빠르게 달려야 했다. 이대로 잡히면 부서진다.
“형님들! 빨리 11젠만 좀!”
바로 대출을 갚고 튜브까지 사려면 11젠이 필요했다.
-어이어이, 도넛 튜브. 원하는 거냐고?
“원합니다!”
-그럼 도넛부터 구해와 봐. 여기 빵집 유명한 데 있잖아.
-거긴 도넛이 아니라 튀김소보로 파는 데 아님?
-공 모양 도넛 있음.
쓸데없는 말장난이 채팅창을 채우는 걸 보며 고천수는 소리를 질렀다.
“11젠 달라고요!”
-ㅋㅋㅋㅋㅋ
-진정해.
진정하게 생겼나.
우드 좀비가 바로 지척까지 따라와 있었다.
“시발!”
고천수는 바로 강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밖에서 가늠만 하던 유속이 온몸으로 체감되기 시작했다.
“끅!”
잠잠해진 줄 알았더만, 내부 유속은 빨랐다. 고천수는 떠내려가지 않게 계속 팔을 허우적거렸다.
[띠링! 한도초과, 온리원, 엠바고, 새로운주인, 바보자식, 울부짖는정신병자 님이 연합 보상 미션을 설정하였습니다.]
[연합 미션 - 강 3분의 2 건너기.]
[연합 보상 - 11젠.]
순간 미션이 나타났다.
“웁!”
입안에 밀려든 물을 삼키면서 고천수는 인상을 찡그렸다.
다 건너가야 젠을 주겠다니 장난하는 걸까.
게다가 온리원도 껴 있다니, 의문까지 폭발했지만 일단 효과는 좋았다.
“으아아아!”
말 앞에 당근을 둔 것처럼, 고천수는 온 힘을 다해 헤엄쳤다.
“튜브으으으으!”
힘이 다 빠져도 아이템만 있으면 빠져 죽지는 않는다.
고천수가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강의 반대편을 향해 가는 동안, 우드 좀비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우구우우우!
풍덩!
헤엄도 제대로 못 치는 주제에, 우드 좀비 또한 강에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