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 인생은 원래 혼자야 (3)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정확히 어떤 정보를 원하는 거야?”
군인은 고천수와 눈을 맞추며 물었다.
“전부 답해 주지는 못하지만, 네게 필요한 정도는 넘겨줄 수 있을지 몰라. 일단 뭐라도 물어봐.”
“정말?”
그렇다면 사양할 것 없었다. 고천수는 바로 입을 열었다.
“7.5사단은 뭐 하는 집단이야?”
너무 직접적인 질문이긴 했지만 고천수가 가장 궁금한 부분이었다.
“뭐 하는 집단이냐고?”
군인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전투 요원으로 뽑혔다더니, 진짜 제대로 들은 게 없나 보네. 우릴 반란군이라고 하질 않나.”
“그래, 다 너희 탓이지. 내가 암호도 잊어버렸으면 어쩔 뻔했어.”
고천수는 군인의 상태를 살짝 살폈다. 다리와 팔만 노리긴 했지만 부상이 심하긴 했다. 시간을 오래 끌면 좋을 것이 없었다.
“어쨌든 물은 거에 답이나 해 봐. 7.5사단은 뭐 하는 곳이야?”
“뭐긴 뭐 하는 곳이겠어. 구호 기관이지.”
군인은 태연하게 말했다.
“7.5사단은 국가 비상시에 움직이는 특수 부대야. 필요한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수집해서 무너진 사회를 수복하는 게 주된 임무야.”
“……?”
고천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너진 사회 수복?’
왠지 우산의 영문명인 그 회사가 겉으로 멀쩡한 척하는 것과 비슷한 듯했다.
‘지금 이걸 믿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천수야, 표정 펴자. ㅋㅋㅋ
-군인한테 정보는 다 들어야지.
-ㅋㅋㅋㅋ 천수 진짜 감정 존나 못 숨김.
고천수는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까지 한 짓만 봐도 도저히 신용할 수 없는 말을 들었지만 지금은 대화 중이었다.
경계심을 보일 때가 아니었다.
“뭐지? 뭔가 잘못됐나?”
아니나 다를까, 군인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고천수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갑자기 벌레가 입에 들어가서.”
-벌렠ㅋㅋㅋ
-둘러대도 꼭. ㅋㅋㅋㅋ
다행히 군인은 납득한 듯 탄식을 뱉었다.
“그랬군. 벌레도 조심해. 이상한 것들 많으니까.”
“알려줘서 고마워. 그럼 일단 하던 얘기를 마저 하자고.”
기묘하게 훈훈해지는 분위기에 질색하며 고천수는 다음 질문을 던졌다.
“7.5사단이 통째로 여기에 와 있지는 않을 텐데, 대전에 있는 건 일부인가?”
“일부긴 하지. 어느 정도로 일부인지는 알려 줄 수 없지만.”
역시 접근할 수 있는 내용에는 한계가 있었다. 고천수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여기에 있는 부대원들은 이제 뭘 하려는 거야? 필요한 인원은 다 모았다고 했나? 어디로 가려고.”
“…….”
군인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뭐야.”
고천수는 그런 군인을 닦달했다.
“왜 대답을 안 해.”
“어디에 가는지는 알려 주기 어려우니까.”
별로 알려 준 것도 없으면서 입을 다물려는 군인을 보고 고천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알려 줘야지. 그래야 내가 따라잡을 거 아냐?”
“뭐, 그렇기는 한데…….”
“목적지는 어차피 제주도 아니야?”
택시회사에서 들었던 그곳이 최종 목적지일 가능성이 높았다.
“거기가 안전하다고 소문 다 났던데. 여기서 너희가 어떻게 제주도로 움직이려는 건지만 알려줘. 간단하잖아?”
“으음.”
제주도까지 꺼낸 고천수를 보며 군인은 신음을 흘리다가 결국 다시 입을 열었다.
“청주 공항.”
“청주 공항?”
“그쪽으로 이동할 거야.”
전혀 예상외의 행선지였다.
‘뭐야, 이거…….’
고천수도 모든 공항 정보를 알지는 못했다. 청주공항은 고천수가 알지 못해 놓치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럼 KTX는? 위로 올려 보낸 KTX도 있잖아.”
분명 청주 공항 쪽으로 간 건 아닐 것이었다.
“인천이나 김포로 보낸 사람들은 없는 거야? 그쪽에서 제주도로 내려가진 않는 거냐고.”
“지, 진정해.”
군인은 마른침을 삼키며 답했다.
“KTX에 태워서 보낸 건 대부분 부대원들이야. 영등포역까지 기찻길이 깨끗하게 열려 있고 김포공항까지도 생각보다 안전하다는 제보가 있어서 확인 차 간 거야.”
“뭐?”
미끼가 아니었다.
“근데 왜 지금은 청주 공항으로 가는 거지?”
“KTX 연락이 진즉에 끊겼거든.”
군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KTX 열차 밑에 뭐가 붙은 거 같아. 제대로 속력도 못 낸 것 같더라고. 연락도 곧 끊겼어.”
일부러 속력을 늦춘 게 아니었단 말이었다.
“저, 근데 말이지.”
군인이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 응급 처치나 그런 것 좀 필요할 것 같은데.”
고천수는 그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렸다. 군인의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살리려면 확실히 어떤 조치가 필요해 보이긴 했다.
“그렇네.”
응급 조치라고 하면 역시 김하령이 떠올랐다. 그녀가 있었다면 뭐라도 하고 싶어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고천수가 사라진 일행을 떠올리며 입술을 움찔하는 사이, 군인은 더 조급한 모습을 보였다.
“일단 이거부터 풀어 줘. 이제 여기로 올 보트도 없을 테니까 빨리 뗏목이라도 만들어서 같이 뜨자고.”
“아, 더 올 게 없구나?”
고천수는 군인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그럼 더 말하기가 힘든 것 같으니까 빠르게 하나 더 묻는 건데, 너희는 ‘효율적으로 사람을 수집’한다고 했지?”
“어? 어…….”
“그럼 다리를 끊어 놓은 거는 여기서는 더 사람이 필요 없어서 그런 거야?”
고천수의 물음에 군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그렇지. 일반인들은 조금만 있으면 되니까. 다 데려가려고 하면 오히려 통제하기도 어렵고.”
“통제.”
좋은 말이 나왔다.
“장난 치냐?”
갑자기 고천수가 싸늘한 표정을 짓자 군인이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뭐, 뭐가.”
“통제하기 쉬울 정도로만 사람들을 모은다. 그럴 듯한 이유를 대기는 하네. 혼란 방지, 뭐 그런 거라면 설명하면 간단하긴 하겠지.”
극단적으로 효율성만 따지면 이해하지 못할 방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상적인 군대가 실행하는 계획이라기엔, 문제가 너무 컸다.
“근데 다리를 끊어 놓는 거 말이야. 너희들이 데려갈 사람만 데려갈 거라도 좀 잘못되지 않았냐?”
여기에 남겨져서 다리를 못 건너면 죽을 사람들도 있을 터였다. 이렇게 이기적일 수가 있을까.
“냄새가 나네, 이거.”
고천수는 군인의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수복이 아니라 전복시키려는 냄새.”
“뭐, 뭐라는 거야, 너!”
군인은 표정을 구기며 소리쳤다.
“또 반란군 같은 거로 생각하는 거냐? 우리는 이 나라를 위해 애쓰고 있는 거라고!”
“진심이냐?”
“못 믿겠다는 거냐?”
군인은 눈을 벌겋게 뜨고 고천수를 노려보았다.
고천수는 그런 그를 빤히 마주보며 한 마디를 흘렸다.
“미친놈.”
고천수는 군인에게서 알 수 없는 신념 같은 것을 느꼈다.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면서도 자신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위선자들이 주로 가지고 있는 그런 것을.
“뭐에 빠졌는지는 몰라도, 대화는 이제 됐어.”
7.5사단에 대해서 물었을 때 태연하게 헛소리를 할 때부터 알아봤다. 이 군인에게서 알아낼 수 있는 건 이 정도뿐이었다.
“너한테 필요한 건 다 들었어.”
고천수는 총구를 들어올렸다.
“더 얘기할 거 있으면 얘기해 봐. 7.5사단의 진짜 정체라든지.”
그러자 군인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원하는 대로 답을 다 해 줬는데…… 이런 식으로 사람을 엿 먹이는 거냐?”
“먼저 엿 먹인 건 너희 아냐?”
멀쩡한 다리를 무너뜨린 탓에 같이 여기까지 온 일행을 잃어버렸다.
몬스터가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다리를 끊은 거라면 그래도 이해는 했겠지만, 답을 들어보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역시 너희랑은 친하게 지낼 수가 없어.”
“이, 이 자식……!”
“마지막 기회다.”
고천수는 군인을 노려보았다.
“얘기해. 더 할 게 있으면.”
총구를 들이밀었지만 답은 없었다. 군인은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듯 완전히 입을 다물었다. 마치 고장 난 기계라도 된 듯했다.
크아아아아!
그때 들린 소리가 있었다. 고천수는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좀비 하나가 비척비척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가 하나 왔네.”
고천수는 걸어가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어그로 1 - 09:59]
좀비가 고천수를 발견하고 걸어왔다.
고천수는 다시 군인에게 돌아갔다.
“아직도 얘기할 생각 없어?”
군인은 고천수를 올려다보았다. 적의가 가득한 눈빛이었다.
“고맙네, 그렇게 봐 줘서.”
덕분에 좀 더 쾌감을 누릴 수 있게 됐다.
“내 일행들의 복수다.”
크아아아아!
어느새 옆까지 다가온 좀비가 부리나케 달려들었다.
콰드드득!
물린 것은 고천수가 아니었다.
고천수가 그대로 자리를 뜨자, 건물 안은 군인의 비명 소리만이 단말마처럼 울려 퍼졌다.
***
밖으로 나와 강 근처로 온 고천수는 손을 뻗어 머리를 긁적였다.
‘골치 아프네, 이거.’
대충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알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를 결정하는 게 문제였다.
‘이거 그냥 건너도 되는 건가? 터진 보트도 사라졌고.’
우드 좀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일반 엔티는 물을 잘도 들이켜지 않았던가.
물에 빠졌을 때 딱히 물을 마시는 걸 보지는 못했으니 그 속성이 바뀌었다고 보는 게 맞겠지만, 익사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 조심해야 했다.
‘청주 공항이라.’
혼자 가기엔 낯선 곳이었다. 고천수는 머리 위에 있던 손을 내려 턱을 쓰다듬었다. 잠깐 동안 생각하다 보니 몇 가지 방안이 떠오르기는 했다.
고천수는 일단 상점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상점창.”
파앗!
눈앞에 반투명한 카탈로그 같은 잡지 하나가 나타났다.
“뭐지?”
어차피 가지고 있는 젠이 없어서 늦게 열어보게 됐다지만, 이런 형태를 예상하고 있던 건 아니었다.
“음…….”
고천수는 거기에 손을 대 보았다. 당연하게도 만질 수 있었다.
-오리배라도 있나 찾아 봐.
“오리배?”
그사이 자동으로 펼쳐진 책장을 보자니, 몇 가지 아이템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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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 동아줄(1젠): 제법 단단한 10m 길이의 동아줄이다.
* 튜브(2젠): 도넛 모양의 평범한 튜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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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가지라고 해 봤자 당장은 두 개뿐이었다.
사진까지 박혀 있는 아이템들을 보며 고천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오우, 대박 쓸모 있는 아이템~.
-튜브.
-튜브, 가즈아!
고천수는 직접 책장을 더 넘겨 보았다. 하지만 나와 있는 아이템은 이 두 개뿐이었다.
“뭐야…….”
카탈로그의 끝에는 ‘상품이 불시에 갱신됩니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심지어 빨갛고 조그마한 글씨로 하단에 ‘갱신 시 낮은 확률로 원래 있던 상품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라는 어이없는 경고도 적혀있었다.
젠이 없을 때 운까지 나쁘면, 구경만 하다가 필요한 아이템을 떠나보내게 될 수도 있는 카탈로그였다.
“형님들, 이거 뭐예요?”
-너, 알면서 물어보는 거지.
-튜브 가즈아!
“아나.”
튜브라니, 2젠밖에 안 하지만 그거 살 젠도 없었다.
“이런 건 좀 공짜로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카탈로그에 나와 있는 사진을 보니까 아무리 봐도 어린애들이나 쓸 법한 튜브였다.
“하…….”
웃는 소리로 가득 차는 채팅방을 보며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띠링! 한도초과 님이 1젠 후원! - ㅜ,ㅜ]
후원 알림을 보며 고천수는 살짝 신음했다.
‘또 한도초과인가.’
한 번에 많이는 못 하는 걸 보면 야금야금 젠을 쓰고 있는 듯했다.
[띠링! 불쌍한거못봄 님이 1젠 후원! - ㅜ,ㅜ]
[띠링! 비렁뱅이 님이 1젠 후원! - ㅜ,ㅜ]
[띠링! 울부짖는정신병자 님이 1젠 후원! - ㅜ,ㅜ]
“뭡니까, 이건.”
한도초과를 따라 후원이 이어졌다.
“활약할 때 안 주시고 왜 이럴 때 주셔요.”
한도초과가 짠했던 건지 웃겼던 건지 후원에 달린 내용마저 똑같았다.
-줘도 뭐라 그럼. ㅋㅋㅋ
-근데 한도초과 짠하네.
-열혈팬 되고 싶은가 보다.
‘열혈팬?’
이미 한도초과 정도면 열혈팬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아.’
하긴 방송 플랫폼에서는 ‘열혈팬’이라는 개념이 따로 있긴 했다. 후원한 금액이나 활동량으로 정해지는 것이었다.
‘여기에도 그런 게 있다면…….’
중요한 내용이긴 했지만 당장 알아 둘 필요는 없었다.
고천수는 가지고 있는 젠부터 확인했다.
‘갚아야 하는 대출이 앞으로 10젠…….’
혼자서 이 강을 건널 방법을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