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 인생은 원래 혼자야 (2)
-???
-뭐야.
-뭐임.
채팅창이 물음표로 가득 찼다.
고천수의 도끼는 가시넝쿨에 ‘1’이라는 숫자를 새긴 참이었다.
파악!
그는 한 번 더 도끼질을 해서 가시넝쿨을 끊어냈다.
우구우우우우우!
우드 좀비가 괴성을 내지르며 자기 손에 남은 나머지 가시넝쿨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동시에 어그로 스킬이 점등했다.
-고천수? 뭐 하는 거야?
뭐 하는 걸까.
대답은 간단했다.
‘내가 있는 걸 알아챘어.’
잠깐이지만 우드 좀비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군인이 워낙 허둥거려서 관심을 끌었기에 가시넝쿨이 먼저 저쪽으로 향했던 거지, 그도 우드 좀비의 먹잇감 목록에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개망할.’
원래라면 군인이 죽은 뒤에 우드 좀비가 돌아가면 나가는 게 제일 안전한 생존법이었다. 하지만 수풀 속에 숨어 있다는 걸 눈치 챘다면 얘기가 달랐다.
들킨 채로 혼자 남게 되면 더 생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였다.
기회가 있을 때 원거리 무기부터 끊어내 버린 것은.
우구우우우우!
그렇다고 해서 가시넝쿨을 완전히 짧게 잘라내 버릴 수 있던 건 아니었다. 우드 좀비가 흥분해서 남은 부분까지 내던져 버린 것이 행운이었다.
“오지 마!”
고천수가 소리쳤지만 우드 좀비는 결국 그에게 달려왔다.
“으아아아아!”
수풀 쪽으로 내려오는 우드 좀비를 보며 고천수는 아슬아슬하게 강변을 내달렸다.
다행히도 경사가 있었기에 우드 좀비는 밑으로 내려오다가 낙석처럼 옆으로 굴러 버렸다.
첨벙!
우드 좀비가 강물에 빠져 버렸다.
우구우우우!
우드 좀비는 물에서 제대로 떠오르지 못하고 허우적댔다.
“나무가 물에 잘 뜬다는 건 편견이지.”
다듬지 못한 나무는 생각보다 쉽게 가라앉는다.
고천수는 우드 좀비가 원래 있었던 곳으로 올라가 희생자가 바닥에 떨어뜨린 총 하나를 주워들었다.
“거기서 뒈져 버려.”
타앙! 타앙!
연발은 쓸모없었다. 고천수는 우드 좀비의 얼굴 부분을 노렸다.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어 급소 적중은 어려웠지만 운 좋게도 눈가에 상처 하나는 낼 수 있었다.
우구우우우!
고통이 있었는지 우드 좀비가 눈을 감고 괴성을 질러대며 발악했다.
고천수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나머지 총에서 탄창과 장전된 총알을 빼내 챙기고는, 들고 있는 총으로 고무보트 위에 있는 군인을 겨눴다.
“야!”
그 외침에 군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헤엄쳐서 이쪽으로 건너와!”
우구우우우우!
고무보트 근처에서는 우드 좀비가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중이었다. 고무보트에서 내려서 강변으로 헤엄쳐오다가 우드 좀비에게 잡힐 것이 두려웠는지, 군인은 사색이 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빨리 와, 새끼야!”
동료들도 잃어버리고, 자기들끼리만 뭔가 알고 있는 군인이 등장하고, 거기에 더해 엿 같은 몬스터가 나타나서 기분이 안 좋았다.
고천수는 눈썹을 꽈악 구겼다.
“인생 종료하고 싶냐?”
이쪽은 방송 잠깐 끄고 스트레스라도 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군인은 계속해서 망설이고 있을 뿐이었다.
타앙!
“하나.”
고천수는 고무보트 옆에 총을 당기면서 말했다.
“둘.”
타앙!
순서는 엉망이었다. 그점 때문인지 쉽게 결정을 못 내리는 군인을 보며 고천수는 이번엔 총구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치이이이익!
총알이 고무보트를 뚫고 들어갔다.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우구우우우우!
우드 좀비가 그 소리를 따라 허우적대며 이동했다. 가장 가까이에 들리는 소리라 그러했을 것이다.
“으아아아!”
그 광경을 보고 놀란 군인이 결국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으아아! 살려…….”
군인은 우드 좀비를 피해 개처럼 강변까지 헤엄쳐왔다.
고천수는 겨우 물 밖으로 기어 올라온 그에게 총구를 들이밀며 미소를 지었다.
“일어나. 아직 산 거 아니니까.”
***
다리 근처의 옷가게.
고천수는 젖은 옷을 갈아입으면서 물었다.
“어디서 왔어. 대전역? 대전복합터미널?”
군인은 의자에 앉혀져 벽 앞에 있는 기둥에 묶여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위치기에 뭐라도 해 보려고 몸을 버둥거리는 그를 보며, 고천수는 헛웃음을 뱉었다.
“내가 너 살려 줬잖아. 뭐라도 알려 줄 수 있는 거 아냐?”
군인의 어깨에는 아무런 부대 마크가 존재하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바로 그점 때문에 고천수는 그가 어디 출신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7.5사단. 대체 뭐 하는 단체냐?”
아무것도 모른 채 탈영하고 장렬히 죽음을 맞이했던 조용진과 이 군인은 결이 달랐다.
고천수는 새로 걸친 후드집업의 모자를 올려 쓰며 군인에게 향했다.
“어디 볼까.”
-나이는 20대 초반.
-얼굴은 못생김.
-전형적인 학업, 사회 도피형 아싸 입대자.
고천수는 채팅창을 무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어? 천수랑 비슷한 경우였나?
-뼈 때렸으면 미안.
-ㅋㅋㅋㅋㅋ 표정.
“하.”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형님들, 뼈는커녕 살도 못 때렸거든요? 제 얼굴 안 보이시나요?”
동료들을 잃어 초췌한 표정임에도 불구하고 거울로 보이는 얼굴이 제법 분위기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아싸가 이 정도면 아깝지.”
-뭐래. ㅋㅋㅋㅋ
-충격받은 거 맞냐, 얘?
충격은 받았다.
하지만 본분을 잊지도 않았다.
방송인은 언제나 광대처럼 떠들어야 했다. 딴 길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렇게 본인을 다잡는 게 최고였다.
“일단…….”
고천수는 다시 군인과 얼굴을 마주했다.
“이름도 없냐?”
명찰이 없었다. 그 외에 어떤 소속임을 알려 줄 수 있는 정보가 아무것도 군복에 새겨져 있지 않았다.
“인상은 제법 날카롭네.”
긴 얼굴형에 날선 눈매를 가졌다.
우드 좀비에 비명을 지르던 것이 무색하게 지금은 그 눈으로 고천수를 무섭게 바라보고 있었다.
“뭘 봐.”
푹.
고천수는 그의 눈을 브이 자를 그린 손가락으로 찔러 버렸다.
“끄악!”
군인은 순간 눈을 감으며 비명을 질러댔다.
“끄윽! 이 미친 새끼!”
“그래, 미친 새끼지.”
하지만 어느 쪽이 더 미쳤냐고 하면 다리를 날려 버린 쪽이지 않을까.
“미친 새끼가 묻겠는데, 다리는 왜 날려 버린 거냐? 진짜 그대로 뒈질 뻔했잖아.”
열혈팬이 있지 않았으면 진짜 수장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왜 다리를 날려 버린 거냐고. 너희들이 건너오라고 했잖아.”
“…….”
말이 없었다. 참고로 고천수는 이런 부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타앙!
다리부터 쐈다.
“꺽?”
군인이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타앙!
지체하지 않고 다른 다리를 쐈다.
탕!
그 다음은 팔이었다.
탕!
그리고 그 다음은 다른 팔…….
“잠…….”
군인이 몸을 떨면서 뭐라고 입을 벌렸다. 고천수는 총구를 내려놓았다.
“잠깐 뭐. 기다려 달라고?”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말해 주는 게 있어야지.”
일반적인 군인이면 이렇게 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7.5사단은 사람들을 구호해 주는 척하며 오히려 사지로 내몰았다.
“라디오로 이리로 오라고 잔뜩 떠들어 놓고 왜 다리를 막았냐고. 장난하냐?”
다리가 끊겨서 죽을 인원들은 대체 무슨 죄란 말인가.
“그, 그건…….”
“말 안 할 거면 그냥 죽어. 다른 데 가서 알아 보려니까.”
여기서 이러고 있을 틈은 없었다. 옷 갈아입는 김에 잠깐 시간을 냈을 뿐이었다.
“자, 잠깐! 알았어! 알았다고……!”
군인이 재차 총구를 들이미는 고천수를 보며 빠르게 외쳤다.
“7.5사단! 7.5사단 부대원이야……!”
“그건 알아.”
고천수는 방아쇠를 당겼다.
“빵.”
덜컥.
남자가 몸을 크게 떨었다. 하지만 총은 발사되지 않았다. 고천수가 입으로 소리를 냈을 뿐이었다.
“조정간 안전.”
고천수는 싸늘하게 미소를 지었다.
“잠금 걸어 놓고 당긴 거니까 안심하라고. 아직 몸 멀쩡할 거야. 아, 이미 몇 방 맞았던가?”
“미친……놈!”
“그래, 나 미쳤지. 그러니까 너희도 얼마나 미친놈들인지 설명해 보라고. 똑같은 미친놈한테.”
장서연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7.5사단에게 현혹돼서 모여들고 있었다. 기차를 같이 타지 못했던 그 시장도 생각하면, 아무래도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너희, 반란군 같은 거냐?”
조용진이 있던 부대는 세계가 이렇게 된 것에 맥을 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그만한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테니까.
아무리 평소에 훈련을 하고 있다고 해도 서로 심적으로 똘똘 뭉쳐 있지 않은 이상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힘들었다.
“반란군 같은 거면 말이 좀 되지.”
나라를 뒤집을 생각이 있는 놈들은 유사시에 어떻게 움직일지가 좀 더 철저하게 계획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몬스터가 나타나는 게 상정 외였다고 해도, 정상적인 군대보다 이런 때에 오히려 더 잘 대처하고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컸다.
“사람들 모아서 뭐 하려고 그랬냐? 다리 끊은 거, 일단 필요한 인원 다 모아서 그런 거라고 봐도 되겠지? 더 안 받으려고.”
추측일 뿐이었다.
하지만 고천수는 그것만으로도 군인을 사정없이 몰아세웠다.
“아니야? 아니면 아니라고 대답해 봐.”
군인의 얼굴은 잿빛이 되어 있었다. 총을 맞아서인지, 정곡을 찔려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고천수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그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디엔드. 대답 좀 하라고.”
그때였다.
군인이 놀란 표정으로 고천수를 올려다보았다.
“뭐……? 너 뭐라고…….”
역시 그냥 단어는 아니었다. 고천수는 무표정하게 답했다.
“뭐라니. 나도 들어가기로 했었으니까 알지.”
-이제 와서?
-ㅋㅋㅋㅋ 총알 몇 번이나 박아넣고.
고천수는 시청자들의 채팅에 애써 동요하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들어가기로 해서 암호를 받았었다고.”
“그, 그럴 리가…… 너도 중요 수집 인물이었던 거냐?”
중요 수집 인물?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뉘앙스로 추측할 수 있었다.
“그래. 고위급 인사랑 일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약속받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정확한 사정 알기도 전에 군인들한테 공격이나 받고, 꼬여 버렸다니까.”
“그런…….”
군인은 정말이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실수가 있었다니…….”
“그래, 그 실수 때문에 이 사달이 났잖아. 너희가 다리까지 끊어 놓는 걸 보면서 내가 무슨 생각이 들었겠냐?”
“…….”
군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말로 면목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니,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게 하면 일이 더 꼬일 뿐이잖아!”
갑자기 외치는 군인을 보며 고천수는 한숨을 흘렸다.
“어쩌라고.”
“뭐?”
“내가 뭐로 뽑혔을 것 같냐?”
고천수는 뻔뻔하게 말했다.
“전투 요원으로 뽑힌 거라고.”
“전투…… 요원?”
“그래. 용병 말이야.”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고천수는 군인을 내려다봤다.
“너도 겪어 봐서 알 거 아냐. 난 전투가 습관으로 몸에 배어 있어.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게 익숙하지.”
-뭔 소리야. ㅋㅋㅋㅋ
-너무 아무 말로 구워삶는 거 아냐?
-헐. 근데 먹힌 것 같은데?
납득한 표정을 지은 군인은 신음을 흘리며 답했다.
“하긴, 네 말이 사실이라면 그게 맞는 말이겠지.”
“‘사실이라면’이 아니라 사실이야.”
고천수는 군인의 멱살을 끌어 잡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더 피 보기 싫으면 내가 그쪽에 합류할 수 있도록 도와. 아니면 이후 계획이라도 털어놓으라고. 알아서 합류할 테니까.”
군인은 대답하지 못하고 숨만 삼켰다.
“이해는 하지만 넌 나를 공격했어. 일원으로 받아들이기가…….”
“그건 오해가 있었으니까 그런 거고.”
고천수는 군인의 멱살을 놔주었다.
“그래, 좋아. 지금 네 표정을 보니까 진짜 내 처지를 이해는 하는 것 같아. 난 거기에 한 번 더 기대를 해 보겠어.”
“기대……?”
“도와주면 널 데리고 다시 돌아가 주지. 너도 봤듯이 나는 야전에 있어서는 스페셜리스트야. 환자도 충분히 챙길 수 있어.”
-스페셜리스트. ㅋㅋㅋㅋ-다들 조용히 해. 천수 심취해 있다고.
고천수는 채팅창을 흘깃 바라본 뒤 다시 군인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할래? 네가 아는 걸 말해 주면 나도 도와줄게. 내 가입까지 도와주는 건 바라지도 않아. 선택은 너한테 달렸다.”
공은 이제 군인에게로 넘어갔다. 솔직히 그가 싫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
그는 대답이 없었다. 고천수는 조정간을 단발로 돌리며 총을 쏠 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정도로 괜찮을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