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67화 (67/224)

067. 인생은 원래 혼자야 (1)

『고천수! 야!』

어디선가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렸다.

『고천수! 왼쪽으로 가!』

“어푸억!”

물이 입 안으로 들어찼다. 고천수는 허우적거리며 두 팔을 뻗었다.

떨어지면서 한쪽 가방끈이 찢겨나간 것인지, 가방이 왼팔에만 어중간하게 매달려있었다. 헤엄치기가 어려웠던 고천수는 가방을 그냥 버려버렸다.

『왼쪽! 왼쪽으로 가라고오오오!』

그 와중에 지시를 내리는 목소리가 있어서 고천수는 무의식적으로 그 방향으로 움직였다.

쾅! 풍덩!

다리가 마저 붕괴되는 소리와 함께 잔해가 방금 전까지 그가 있던 곳에 떨어졌다.

“어푸! 푸악!”

물살에 밀려 고천수는 가라앉았다가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좀 더 빨리! 이제 오른쪽으로 헤엄쳐!』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그나마 고천수가 의지할 것은 그 목소리뿐이었다.

추락 충격과 호흡 부족으로 계속 희미해지는 의식을 붙잡으며, 고천수는 온 힘을 다해 강변으로 움직였다.

“헉, 허억…….”

『고천수, 좀만 더! 다 왔어! 좀만 더…….』

“쿨럭! 커헉!”

물을 삼키면서 전진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고천수는 급격하게 느려진 속도로 허우적거렸다.

『괜찮아!』

그때, 목소리가 소리쳤다.

『잠깐만 버텨!』

잠깐만 버티긴 뭘 버틴단 말인가.

허무한 끝이 떠오른 고천수는 곧 온몸이 굳어버렸다.

풍더엉!

뒤에서 자신을 떠미는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고천수는 이내 움직임을 멈췄을 것이다.

“아.”

거대한 잔해가 만든 물결이 고천수를 강변으로 쏘아냈다.

***

『고천수!』

또 다시 들린 목소리.

『고천수, 일어나아아아!』

일어나?

시야가 깜깜했다. 고천수는 앞을 보기 위해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고 했다.

“끄, 응…….”

하지만 입이 먼저 열리며 신음이 튀어 나갔다. 격통이 온몸을 내달렸다.

『일어났다!』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한도초과인 것을 알아챘지만, 고천수는 바로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망할…….’

기억을 천천히 되짚어 보았다.

다리가 무너지고 나서 고천수는 그대로 물속에 빠져 버렸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잔해들을 피해 미친 듯이 허우적대던 것까지는 어떻게든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었다.

“으윽…….”

그 상황에 고천수를 도와줬던 목소리가 있었다. 바로 이 한도초과였다.

“아.”

고천수는 이제야 눈을 뜨고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강 옆 둔덕에 자신의 몸이 걸쳐 있었다.

쿠궁.

멀리서는 아직도 폭음이 울렸다. 넘실거리는 강물이 발치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형님이…… 도와주신 거네요.”

물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는 시야를 확보하기 어렵다. 한도초과가 대신 시야를 확인해 확성기 기능으로 길을 안내해 줬던 게 틀림없었다.

“감사합니다, 형님.”

힘이 하나도 없었다. 수영을 그렇게 잘하는 편도 아니다 보니 체력이 훨씬 많이 떨어진 듯했다.

-후, 진짜 알거지됐어.

다시 채팅창으로 돌아온 한도초과의 불평을 들으며 고천수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쿠궁.

무너지는 여러 개의 다리가 눈에 보였다. 고천수는 고개를 돌려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확인했다.

“어디야, 여기…….”

떠밀려서 좀 더 하류 쪽으로 내려온 듯했다.

“후.”

심지어 강을 건너지도 못했다.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별로 길지도 않은 강인데…….’

강폭이 아주 넓지는 않았다. 어림잡아서 500m 남짓. 걸어서 쉽게 건널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물이 불어나 있다는 게 문제였다. 연속된 폭발 때문인지 유속도 빨라 보였다.

-다시 헤엄쳐서 건너긴 무리?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빠르니까 이런 일도 생기네…….

-오리배라도 찾아보는 게 어떰?

당장 강을 건너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이 있었다.

“근데 다들 어디 간 거죠?”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장서연, 양민철, 김하령 셋 다 전부.

-휩쓸려가던데.

-찾기 어려울 듯.

-이게 바로 낙동강 오리알인가.

고천수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여기까지 데려오면서 함께 호흡을 맞춘 인원이었다. 대전에 있는 군인들과 마주칠 일을 눈앞에 두고, 나름 안정적인 파티를 만들었다고 생각했건만.

“하.”

그런데 한순간에 동료들을 잃게 된 것이었다.

“돌겠네…….”

고천수는 다시 한번 주위를 살펴보았다. 동료들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응?”

그러다가 발견한 게 있었다.

고천수는 고개를 아래로 내리며 바닥에서 무언가를 주워 들었다.

“하령이 거인가?”

빨간색 십자 마크가 새겨진 가방이었다. 고천수는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위생백에 담긴 약품과 음식들이 보였다. 가방 지퍼가 열려 있어서 남은 게 몇 개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남은 것은 다 사용할 수 있어 보였다.

고천수는 전부 없어진 자신의 짐들은 잊고 지금 주운 김하령의 가방을 착용했다.

“형님들, 저는 지금 고난에 처해 있습니다.”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시다시피 남은 게 이 가방뿐입니다. 동료들은 죄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네요. 다들 휩쓸려서 어딘가로 떠내려갔나 봅니다.”

-우리가 이미 했던 얘기잖아. 떠내려갔다니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형님들의 위로가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고천수는 엄지와 검지로 힘겹게 동전 모양을 만들면서 말했다.

“혹시 고천수를 위로하고 싶다면 구독, 좋아요, 알람 설정 대신에 젠으로 된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ㅋㅋㅋㅋㅋ 에바야.

-천수 선 넘네.

-네 동료들 죽었을지도 모른다니깐?

안다.

알아서 더 이러는 것이었다.

“형님들, 저 농담하는 거 아닙니다.”

동료들을 잃은 건, 들고 있던 패가 없어진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면 그걸 보완할 게 필요했다.

“지금 급한 상황이라고요.”

강을 건너는 것도 일이고 앞으로 군인들을 상대하는 것도 일이었다. 당연히 젠이라도 많으면 아이템이라도 수색하고 갈 게 아닌가.

-천수 멘붕했네.

한 시청자가 얘기한 대로, 그 말이 정답이었다.

고천수는 순간 우뚝 서서 입을 다물었다.

-괜찮냐?

-동료는 금방 또 생김.

-맞아맞아.

고천수는 흘러가는 강물을 다시 바라보았다.

시청자들이 하는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다만…….

-천수, 아싸였자너.

-충격받은 게 당연. ㅋㅋㅋㅋ

“형님들, 저 자발적 아싸였거든요. 구분 잘해 주세요.”

고천수는 뇌까리듯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시청자들에게 놀림이나 받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정신을 차리는 시간이 늦어질수록 손해를 보는 건 고천수뿐이었다.

‘그래도 팬 하나는 확실히 있어서 다행이지…….’

한도초과는 저번부터 고천수를 살리는 데 적극적이었다.

젠을 어디서 벌어 오는 족족 써 버리는지, 종종 진짜로 한도초과가 되는 듯하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래도 덕분에 최악의 결과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천수야, 뗏목이라도 만들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팬심이 눈에 보이기에, 말투만 봐도 지금 한도초과가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뗏목이요?”

다만 지금 강을 건널 수 있는 도구가 보이지는 않았다. 여기서는 선택이 필요했다.

‘건너냐 마느냐.’

시청자들이 미리 얘기했던 바를 종합해 보면 이쪽의 다리들은 원래 무너지는 것으로 예정돼 있던 게 분명했다.

이게 스토리상 존재하는 흐름이라고 한다면, 이쯤에서 힌트가 나오기는 해야 했다.

부우웅.

그때였다.

어디선가 난 소리에 고천수는 고개를 돌렸다.

부아아아아아!

먼 곳에서 고무보트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뭐야.”

고천수는 순간 놀라며 바로 옆의 수풀 속에 몸을 숨겼다.

부우우우우…….

고무보트가 그 근처에서 속도를 줄였다.

조심스럽게 밖을 내다본 고천수는, 고무보트에 타 있는 인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건…….’

군인들이었다.

다리들이 무너진 광경은 자신들의 계획대로라는 듯 기지개나 켜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고천수는 이를 갈았다.

‘저 개새끼들이……!’

고천수의 동료들을 어딘가로 날려 버린 원흉들이었다. 고천수는 분노에 차 빠드득 이를 갈았다.

-오, 탈것이 제 발로 찾아왔네.

다만 후일을 위해 고천수는 그 이상의 흥분을 자제했다.

지금은 게임방송 중.

너무 감정을 이입해서는 플레이에 지장이 있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후우.”

겨우 숨을 고른 고천수는 날카로운 표정으로 군인들을 노려봤다.

“대충 이쪽은 다 폭파된 것 같은데?”

“다른 쪽 다리도 다 폭파했나?”

“건너올 길은 다 막은 것 같은데.”

안전한 장소니 자기들이 찾아오라고 해 놓고 사람들이 건너올 길을 부숴 버렸다. 대체 무슨 이유에서 그런 건지 고천수는 의문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바스락.

수풀 속에서 소리가 났다.

“뭐야!”

군인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쪽을 돌아보며 총을 들어 올렸다.

-천수 걸렸냐?

아니었다. 군인들이 총구를 향한 방향은 다른 수풀 쪽이었다.

바스락.

군인들의 외침에 놀란 듯 수풀 속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뭐야…….”

군인 한 명이 맥 빠진 목소리를 내뱉었다.

“개잖아.”

길거리에서 가끔 볼 법한 검은 잡종견 하나가 눈치를 보며 수풀 밖으로 걸어 나갔다. 군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난 또 그놈인 줄 알았네.”

“여기서는 이미 한바탕하고 다른 데 갔다고 하잖아.”

“다리 터진 건 확인했으니까 그만 가자고.”

군인들은 고무보트를 돌려 이곳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아.”

고천수는 작게 탄식했다. 이대로 저들을 돌려보내면 얻을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떻게든 잡아서 심문을 하든지 보트를 뺏든지 해야만 했다.

‘젠장. 기다려……!’

그렇게 고천수가 수풀 속에서 주먹을 꽉 쥐는 순간이었다.

우구우우우우!

어디선가 커다란 괴성이 들리며 가시넝쿨 하나가 날아왔다.

“꺽?”

넝쿨은 바로 고무보트에 날아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엔진을 치고 방향이 꺾이더니 군인 한 명을 가시로 꿰뚫기까지 했다.

“커, 헉.”

가슴이 뚫린 군인이 비틀대며 피를 토해냈다.

“으아아아악!”

“시발!”

나머지 군인들이 외침과 동시에 고천수도 고개를 돌렸다.

‘설마……!’

가시넝쿨이면 떠오르는 몬스터가 하나 있었다. 하지만 디텍터가 사는 구역은 이미 지나지 않았던가.

“어?”

디텍터가 아니었다. 고천수는 고무보트에 던진 가시넝쿨을 당기며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괴물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뭐, 뭐야, 저게!”

엔티였다. 아니, 좀비였다.

아니, 더 정확히는 엔티의 몸이 좀비처럼 변형된 것이었다.

-와, 시발, 뭐야! 저거 우드 좀비냐?

우드 좀비? 시청자의 외침에 고천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게 뭐냐고 제대로 묻기도 전에 우드 좀비는 가시넝쿨을 완전히 끌어당겨 군인 한 명을 가져갔다.

“사, 살려…….”

콰드득!

우드 좀비가 뻗은 줄기들이 군인의 몸을 파고들었다.

쭈욱.

그대로 체액이 빨려 마른오징어처럼 변한 군인을 우드 좀비가 완전히 씹어 먹어버렸다.

“저게, 뭐예요, 형님들!”

고천수는 놀라서 외쳤다. 예상치도 못한 몬스터의 등장에 그는 주춤댈 수밖에 없었다.

-우드 좀비라고, 우드 좀비!

-엔티가 좀비 너무 처먹으면 저렇게 됨.

-와, 시발 겹경사!

“지랄 맞네요, 이거 또.”

안 그래도 혼자 남아서 골치 아픈 판에 상대하고 싶지도 않은 놈이 나타나 버렸다.

-이걸 또 여기서 마주치냐.

봉쇄된 도로 앞에 흔적을 남긴 그 녀석인 듯했다. 이미 한차례 이곳을 휩쓸고 간 몬스터였을 텐데 이렇게 만나게 된 건 운이 안 좋았다.

우구우우우우우!

우드 좀비는 가시넝쿨을 휙 돌려 다시 고무보트에 던졌다.

“끄아아아아!”

투두두두두!

가시넝쿨에 꽂힌 군인이 허공에 총을 쏴 댔다.

“시발!”

고천수는 바로 납작 엎드렸다. 수많은 총알들이 그의 근처를 파노라마처럼 쑤시고 지나갔다.

“끄악! 끄아아아!”

꿰뚫린 군인은 앞서 잡혀갔던 다른 동료처럼 우드 좀비에게 끌려가 그대로 체액을 빨리고 씹어 먹혔다.

‘전투력 미친 거 아냐?’

고천수는 엎드린 채로 탄식을 뱉었다. 원래 눈과 청각이 없는 거나 다름없는 엔티가, 우드 좀비가 되면서 감각들을 모두 회복했는지 이젠 확실하게 먹잇감을 낚아채고 있었다. 그것도 아까 전에 고천수 일행이 피해 온 가시넝쿨을 따 와서 도구로 사용하면서.

‘합성 몬스터까지 나오다니, 장난하냐고!’

게임에서 몬스터가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두 종류 이상이 합쳐진 잡종의 경우 대부분 화려하고 강한 공격력을 지니기 마련이었다.

안 그래도 당황스러운 와중에 저딴 몬스터를 맞닥뜨리다니 고천수는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으, 으아아아아! 으아아!”

남은 군인은 하나.

우드 좀비가 다시 가시넝쿨을 뱅글뱅글 돌렸다. 군인은 첫 번째 동료가 당할 때 넝쿨에 맞아서 꺼진 엔진을 다시 돌리려고 허둥거렸다.

부두두두. 부두두두.

“제, 제발! 제발!”

하지만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우왕좌왕하다가 옆에 걸쳐 놨던 총을 물속에 떨어뜨리기까지 했다. 넝쿨은 그런 그를 노리고 보트 위로 다시 날아갔다.

“끄악!”

이어서 들린 비명 소리.

우구?

하지만 가시넝쿨은 군인의 몸을 꿰뚫지 못했다.

“헉?”

넝쿨은 방향이 조금 바뀌어 물 위에 떨어졌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그리는 군인의 시선이, 고천수가 있는 쪽을 향했다.

“시발.”

고천수는 도끼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무언가를 내리찍고 있었다.

사실 무언가라고 할 필요도 없었다.

가시넝쿨을 찍어 버린 상태였으니까.

-고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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