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 무너진 다리
[분기점을 통과하였습니다.]
그곳을 지나가자 알림이 떴다.
[지금부터 새로운 스킬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킬창을 통해 상세한 내용을 확인하십시오.]
‘새로운 스킬 기능?’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지금부터 제안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두 명령어 ‘Offer’를 사용해 상세한 내용을 확인하십시오.]
[지금부터 상점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상점창을 통해 상세한 내용을 확인하십시오.]
시청자들이 언급했던 기능들도 추가되었다. 고천수는 한꺼번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알림 문구를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살았다…….’
다른 쪽으로 갔으면 이쪽 분기점을 밟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물론 다른 분기점이 존재했을지 모르지만, 고천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오, 천수 능력 드디어 열렸나?
-얼른 확인해 봐.
-기대기대.
기대가 되는 건 고천수도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대출 잔액을 갚기 전에는 새로운 보급함을 볼 수가 없어서 간 떨리던 차였다.
‘어디…….’
아이템이 없으면 역시 지력과 스킬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고천수는 스킬창부터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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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ill 1
-주의사항: 총 3개만 소유할 수 있습니다.
* 어그로(10분): 자신을 노리는 몬스터가 많을수록 강해집니다. 마릿수마다 본래의 자신을 기준으로 신체 능력이 10% 추가 상승. 발동하고 나서 종료 시점까지 마릿수는 누적으로 계산됩니다. [삭제]
* 기록 누적: 종료된 최고 어그로 기록에서 해당 상승분의 10%는 기본 신체 능력으로 합산됩니다. 즉, 본래의 자신이 강화되며, 이 수치는 기록이 바뀔 때마다 경신 적용됩니다. [삭제]
※ Skill 2
-주의사항: 총 3개만 소유할 수 있습니다.
* 새로운주인 님의 보상: 접촉한 대상의 시야를 10분 동안 훔쳐보기 스킬 1회. 발동 시점은 자유로움. [사용]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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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ll 1, 2?’
기존의 스킬이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 기준은 나와 있지 않지만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Skill 1은 ‘지속성’을 띠며 계속해서 활용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Skill 2는 ‘일회성’을 띠는 스킬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둘 다 동일한 주의사항이 있다는 점이었다.
‘총 3개만 소유…….’
주의사항만 보자면 이번 분기점 업데이트로 인해서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
-천수 표정 개썩었는데? ㅋㅋ
-솔직히 빡친 듯.
-그래도 삭제 버튼 있잖아.
그렇긴 했다. 그냥 그렇기만 하다는 게 문제였다.
‘뭐야, 이거.’
스킬을 초과 습득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안 나와 있었다. 추가된 스킬은 기존 스킬을 사용하기 전까진 비활성화되는 건지, 아니면 그게 추가되는 시점에 기존 스킬의 삭제 의사를 묻는 건지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
“형님들, 이거 소유 개수 초과해서 스킬 얻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물어도 됩니까?”
-기존 스킬 삭제하고 집어넣어야 됨.
-그때 안내 메시지 뜰걸?
그 말에 고천수는 머리를 살짝 쥐어 잡았다.
“조졌네요, 이거.”
-ㅋㅋㅋㅋㅋㅋ
-꼭 그런 건 아닐걸. 다른 기능이나 살펴봐.
그랬다. 업데이트된 다른 기능들도 있었다. 고천수는 제안 기능을 먼저 떠올렸다.
‘Offer라고 했던가.’
구두 명령어라고 했으니 입으로 발음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터였다.
“Offer.”
망설이지 않고 입 밖으로 뱉어 보자니, 빨간색 마이크 하나가 시야 구석에서 점등했다.
‘뭐야, 이거.’
어떤 식으로 쓰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 입 밖으로 낼 말을 시스템이 경청하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밥 먹기.”
아무거나 하나 내질러 보자니 마이크 아래에 ‘밥 먹기’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어떻게 쓰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고천수는 손뼉을 탁 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보상은 100젠. 끝.”
그러자 ‘밥 먹기. 보상은 100젠’이라는 말이 새겨지고는 빛나기 시작했다.
-존나 양아치. ㅋㅋㅋㅋ
-지 밥 먹는 거에 뭔 100젠이야.
-똘구 새꺄!
시청자의 반응이 매우 폭발적이었다. 이제 어떻게 되나 보고 있자니, 갑자기 허공에 숫자가 떠오르며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10, 9, 8, 7…….
그렇게 숫자가 0가 되자 ‘밥 먹기’ 라는 문구 자체가 없어지며 마이크 표식도 사라졌다.
“뭡니까.”
고천수가 물음표를 그리며 잠시 멍하니 있자니, 채팅창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뭐냐고요.”
미간을 찌푸리던 고천수는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달았다.
“아.”
그래서 Offer였다. 선택권이 시청자에게 있는 것이었다.
“형님들 중에 누가 제 제안을 받아야 최종적으로 미션 설정이 되는 거군요.”
너무 쓸데없는 제안은 이런 식으로 시청자들이 걸러 버릴 수 있는 듯했다.
“그럼…….”
이런 제안은 어떨까.
“Offer. 밥 먹기.”
다시 제안을 설정하고, 보상은 이것으로 정했다.
“고천수 무적.”
-적당히 해, 새꺄! ㅋㅋㅋㅋ
-그런 게 될 것 같냐?
기다리고 있자니 ‘밥 먹기. 보상은 고천수 무적.’이라고 새겨진 문구에 가격표가 하나 달렸다.
“응?”
측정된 가격은 1,000,000젠. 고천수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뭐? 백만 젠?”
보상을 젠이 아닌 효력으로 걸면 시청자들이 내야 될 비용이 설정되는 듯했다. 고천수는 말도 안 되는 액수의 가격표를 보며 허탈한 표정으로 탄식을 뱉었다.
“하……. 더럽게 비싸네요.”
-무적이면 당연한 거 아니냐. ㅋㅋㅋ
-추하다, 천수야.
-나 그만큼 젠 없어. 힝.
됐다. 어차피 진짜 무적이 되길 기대한 건 아니었다. 카운트다운이 지나자 이런 알림까지 떠올랐다.
[제안 무효 2회. 1회 더 참가자 없이 무효화될 시, 하루 동안 모든 개인 미션 수행 불가.]
‘3회 실패 페널티까지 있던 거였나. 뭐, 그래도 어떻게 쓰는지는 알았으니까.’
일단 구두 명령으로 제안과 보상을 설정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다만 젠이 아닌 효력 보상을 상정하면, 시청자가 내야 할 비용이 측정된다는 점을 머릿속에 새겨 둬야만 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상점뿐이었다.
제안 기능이야 고천수가 빠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먼저 시청자들에게 미션을 제안할 수 있는 편의 시스템에 불과했다.
소유할 수 있는 스킬 숫자에 제한이 걸린 지금, 생존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바로 이 상점 기능으로 보였다.
“상…….”
그렇게 입을 열어 상점창을 띄워 보려고 할 때였다.
덜컹.
장서연이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차가 크게 흔들렸다.
“……!”
안전벨트에 한 번 붙잡힌 고천수가 놀란 표정으로 장서연을 돌아보았다.
“뭡니까, 장서연 씨……?”
가시넝쿨에 당했을 리는 없었다. 차의 속도는 빨랐다. 오영준이 당한 블록 옆으로 이미 지나쳐 오기도 했다.
“앞을 봐, 천수야.”
그 말에 고천수는 정면으로 시선으로 향했다.
“앞을 보라니 뭐가…….”
그러던 그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뭐야.”
부서진 바리케이드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뭐죠?”
양민철이 탄식을 뱉듯 물었다.
“누가 여기 있던 걸까요?”
“글쎄.”
고천수는 잠시 침음하다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군대는 없는데.’
이미 이곳에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간 듯했다. 군대를 포함해서 주변에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포트홀이 왜 이렇게 많지?’
주변 아스팔트에 이곳저곳 파인 흔적이 많았다. 제법 무게가 있는 무언가와 격돌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천수야.”
장서연이 운전석에서 내려서 다가오더니 물었다.
“계속 이쪽으로 차 타고 갈 수 있을까?”
“아뇨.”
고천수는 더 먼 곳을 내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앞에는 물이 잔뜩 불어나 있는 강이 하나 지나가고 있었다. 당연히 위로 건너가야 하는데, 그 앞에서부터 바리케이드로 이 난리가 나 있다면 뒷일은 뻔했다.
“저길 보세요.”
고천수는 다리 쪽으로 손가락을 내밀었다.
약간 거리가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차들이 마구 뒤엉켜 있는 것까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막혔어요.”
무슨 일이 있던 건 확실했다.
“차량 통행로는 봉쇄당했다고 봐도 무방할 듯싶습니다.”
방법이 있다면 다른 다리로 가는 것이었다.
“일단 강변으로 이동해서 상황을 살펴보죠.”
차에서 김하령과 양민철도 내렸다.
함께 짐을 챙긴 고천수는 일행과 가장 가까운 다리 쪽으로 이동했다.
“후.”
지척까지 다가간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은 건가?”
다리 위는 지저분했다. 깨진 조준경이나 피아식별 띠 등 군대에서 쓰일 만한 물건들이 몇 개 떨어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현재 다리 위에서 보이는 위협은 없다는 점이었다.
“형, 건너갈 거예요?”
옆에서 양민철이 물었다. 고천수는 살짝 신음을 흘렸다.
“가긴 가야지.”
어차피 여기서 다른 데로 가기도 애매했다. 망설이고 있는 사이 더 큰 위험에 처할 수도 있으니, 움직이기는 해야 했다.
-근데 이쪽에 있는 다리들 원래 다 부서져 있지 않음?
-천수가 진짜 빨리 오긴 했나 보다.
-수영 안 해도 되고 좋네, 뭐.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니 다리가 멀쩡하게 있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은 듯했다. 고천수는 깨진 조준경을 주워서 다른 다리들이 있는 방향을 살폈다.
‘연기…….’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차량들이 이리저리 뒤엉켜 있는 건 이곳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불이 붙은 차들이 많아 이쪽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아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다리들을 무너뜨릴 만한 뭔가가 발견되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가자.”
고천수는 일행에게 손짓했다. 다리가 무너지면 강을 건너기가 훨씬 힘들어질 게 분명했다. 운 좋게 다리들이 멀쩡할 때 왔으니, 빠르게 이동해야 했다.
콰앙.
그렇게 반쯤 이동했을 때였다.
갑자기 폭음이 들렸다.
다른 다리들에서 난 소리였다.
“천수 님, 뭐가 터지고 있나 봐요.”
김하령이 천진하게 말했다. 고천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그를 엄습하고 있었다.
쿠웅!
순간 느껴진 엄청난 울림에 고천수가 멈칫하며 시선을 돌렸다. 같이 걸음을 멈춘 일행들도 고천수가 본 곳을 함께 돌아보았다.
쿠우우우웅!
저 멀리 보이는 다른 다리들 중 하나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뭐야.”
붕괴였다.
어디선가 폭음이 몇 번 더 이어지더니 다른 다리들도 하나둘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시발, 꼬였다.
-망했네, 와…….
“큰일 났다! 다들 서둘러!”
어떻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운이 나빴다. 하필이면 지금이 무너질 타이밍이었던 것이다.
쿠구구구!
진동이 몰려오는 것을 느끼며 고천수는 급하게 외쳤다.
“Offer! 저 앞에 불길 통과하기! 보상은 속력 두 배로!”
효력 미션 제안을 하자 바로 가격표가 붙었다.
“이런, 제기랄……!”
100젠이었다.
그나마 가격표가 낮게 붙게끔 불렀는데도 이 정도였다.
“형님들, 빨리!”
카운트다운.
하지만 그 시간이 다 지나도록 구매한 시청자는 없었다. 너무 비쌌던 것이다.
[페널티 부여. 하루 동안 모든 개인 미션 수행 불가. 제안 실패 횟수 초기화.]
“시발!”
그냥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천수는 알고 있었다. 이런 보상에 시청자가 내야 할 비용이 100젠이나 걸렸다는 건, 다음에 일어날 일이 결코 사사롭지 않다는 뜻이었다.
파바박!
순간 저 멀리 어디선가 빨간 불이 반짝였다.
“어……?”
기폭제였다.
콰아아아아아앙!
다리가 기우뚱했다. 고천수는 곧장 옆으로 넘어졌다.
“큭……!”
콰앙! 쿠아앙!
바닥이 주저앉았다. 다리 기둥에서도 폭탄이 터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천수 님!”
우측으로 급격하게 기울고 있는 다리에서 김하령이 겨우 버티면서 손을 내밀었다.
“형!”
“고천수!”
양민철과 장서연도 위기였다. 고천수는 크게 탄식했다.
“망할……!”
일단 가장 가까운 건 김하령이었다. 고천수는 한손으로 도로의 틈을 붙잡고 도끼를 거꾸로 내밀어 그녀가 잡을 수 있게 하려고 했다.
쿠궁.
하지만 모든 게 너무 늦어 버렸다.
수십 도가 꺾인 다리 위에서 버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
고천수는 일행과 함께 물속으로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