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 양아치들 (8)
부우우웅.
강렬한 엔진 소리.
정신을 잃었던 구용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끄응…….”
뒷목에 통증이 남아 있었다. 구용현은 그쪽에 손을 가져갔다가 작게 탄식했다.
“응?”
차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창밖으로 풍경이 지나갔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복면을 쓰고 있는 운전자가 보였다.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차에 타고 있는 건, 자신을 포함해 둘 뿐이었다.
“이럴, 수가.”
살았다. 뒷목을 맞고 그대로 끝난 줄 알았는데, 복면을 쓴 부하가 자신을 구해낸 것이었다.
“날 살려낸 거야?”
구용현이 운전석을 돌아보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복면과 땅딸보. 짝이 되어 함께 움직이는 이 둘은 블랙 타투가 습격받기 전 구용현에게 크게 꾸지람을 받았던 터다.
이유는 별 것 없었다. 냉동 탑차를 수리하는 데 그다지 쓸모없는 부품을 구해 왔다는 게 전부였다.
억하심정을 가졌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두목을 구하다니, 충성도 하나만큼은 분명했던 것이다.
“하하! 내가 진짜 끝내주는 부하를 뒀어! 근데 그 땅딸보 자식은? 설마 당했…….”
호쾌하게 웃음 짓던 구용현은 갑자기 멈칫했다.
“……어?”
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안전벨트 때문인가 하여 고개를 내렸더니, 예상과는 조금 다른 문제를 맞닥뜨리게 됐다.
“뭐야.”
노끈 같은 걸로 몸이 묶여 있었다. 그 위로 안전벨트가 채워져 있었는데, 결합부에 버클을 억지로 반대 방향으로 꽂아 놓아서 빠지지 않게끔 해 놓은 상태였다.
“뭐야!”
구용현은 몸을 뒤틀면서 소리쳤다.
“뭐냐고! 야! 이거 뭐야!”
크으으으.
순간 들린 소리에 구용현은 입을 다물었다.
부우우우웅.
엔진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그것 때문에 잘못 들은 건가 싶었지만, 곧 구용현은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크으으.
괴성이었다. 복면이 신음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구용현은 그제야 복면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셔츠 차림이었다. 복면이 원래 입고 다니던 옷과는 달랐다.
“어, 어……?”
거기다가 결정적으로, 팔이 하나였다.
“어어어어?”
오른손으로만 운전하고 있는 복면을 보며 구용현은 놀라서 소리쳤다.
“으아아아악! 시바알!”
부하의 목을 물어뜯었던 그 외팔이였다. 구용현은 몸을 미친 듯이 들썩였다.
“시발, 뭐야! 뭐야뭐야뭐야!”
크르르르.
난리를 치는 구용현을 옆에 두고도 복면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마치 운전하는 것에만 집중하겠다는 모습이었다. 구용현은 계속해서 비명을 질러대면서 앞을 돌아보았다.
“으아……!”
차는 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떤 군부대가 라디오로 추천해 준 방향이었다.
“어디! 어디로 가는 거야!”
하지만 지금 운전자는 감염됐다. 아직 사고력이 남아 있다면 굳이 사살될 위험이 있는 그곳으로 갈 이유가 없었다.
크으으으으.
그런데도 불구하고 운전자는 차를 멈추거나 돌리지 않았다. 이쪽으로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일 정도였다.
“풀어 줘! 어디로 가든 말리지 않을게! 풀어 줘!”
운전자는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몰랐다. 냉동 탑차가 아무리 소중해도 목숨만큼은 아니었다. 구용현은 몸을 결박한 줄을 풀어내기 위해 제자리에서 계속해서 발악했다.
끼꾸구구구구.
순간, 구용현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야, 잠깐……!”
그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말했다.
“뭐가 있어. 야! 뭐가 있다고!”
그러자 갑자기 차의 속력이 줄어들었다. 구용현은 곧장 사색이 되었다.
“왜 줄여! 지, 지금은 아니야! 나중에 풀어 줘!”
크으으으으.
귀찮은 놈이라는 듯 운전자가 다시 속력을 높였다. 어이가 없지만 그 순간, 구용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 그래, 일단은 여기서 벗어나서…….”
덜컹.
그때였다.
차가 갑자기 옆으로 꺾이며 기울어졌다.
“어……!”
운전자가 핸들을 틀어 버린 거였다. 구용현은 다음에 일어날 일을 직감하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새…….”
하지만 그 외침이 이어질 일은 없었다. 차는 바로 전복되어 옆으로 미끄러졌다.
구용현의 몸이 마구 떨리는 동안 차의 속력은 삽시간에 줄어들었다.
시속 30km, 20km…… 10km.
끼꾸구구구구.
그리고 이상한 소리가 지척에서 들렸다.
“아.”
창밖으로 가시넝쿨 같은 게 비췄다. 구용현이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탄식을 흘리고 약 1초 뒤, 그 가시넝쿨이 차의 문 옆을 뚫고 들어왔다.
“으아아아아아! 으아아악!”
꾸득! 꾸드득!
사방에서 달려든 가시넝쿨이 차체를 마구 뜯어갔다. 그 과정에서 구용현의 몸도 뜯겨나갔다.
“커, 컥.”
희미해지는 시야로, 구용현은 겨우 운전석을 바라보았다.
그쪽에도 가시넝쿨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크으으으.
그렇게 구용현이 마지막으로 보게 된 것은, 자신을 향해 중지를 들어 올리고 있는 운전자의 모습이었다.
***
콰앙!
멀리서 들리는 폭음을 들으며 고천수는 경탄해 마지않은 표정을 지었다.
“대단한데.”
정말로 차를 끝까지 끌고 가 디텍터가 있는 곳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아까운 사람이었어.”
의지가 굉장했다. 감염만 되지 않았다면 좋은 동료가 됐을지도 모르지만, 덕분에 감염 진행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걸 알아냈으니 헛된 일은 아니었다.
연기가 높게 솟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양민철이 옆으로 다가왔다.
“형, 저희 저 차는 필요 없던 거예요?”
단순한 질문이었다. 고천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있어 봤자 쓸모없었으니까.”
냉동 탑차는 여기에 있는 4.5t짜리 화물 트럭보다 크기가 컸다. 5t짜리였다는 얘기인데, 그런 건 당연히 기름도 많이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인원에 그런 사치는 낭비였다. 기름을 구하기도 어렵고.
“것보다 너는 어때.”
고천수는 양민철의 심정에 대해 물었다.
“아는 사람 없어져서 섭섭하지 않냐?”
“농담하시는 거죠?”
양민철은 한숨을 푹 쉬었다.
“없어져서 매우 좋아요.”
“그래?”
그렇다면 더 이상 물을 것도 없었다. 고천수는 화물 트럭 옆에 서 있는 장서연에게도 다가갔다.
“차는 좀 마음에 듭니까?”
“당연하지. 네가 이미 다 좋은 차라고 확인도 했잖아.”
장서연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작은 차는 나랑 안 맞아서 말이야.”
“기름 구하기가 어려우니까 안전 운행 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탈 준비나 해.”
그녀가 뱅글뱅글 돌리는 쇠파이프를 붙잡으며, 고천수는 잊지 않고 공치사했다.
“덕분에 민철이 괴롭히던 놈을 끝장내 줄 수 있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장서연 씨.”
“네 덕분이지.”
장서연은 고천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역시 실력 어디 안 가더라. 도대체 뭐 하고 살았기에 그렇게 잘 싸우는 거야?”
-백수.
시청자의 말에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고천수는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며 한 번 더 미소를 지었다.
“격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천수 님!”
김하령이 다가와 자신의 팔뚝에 찬 여러 개의 시계를 자랑하며 말했다.
“전리품으로 모았어요! 어때요?”
“시체들한테서 모은 거야?”
“네!”
칭찬해 달라는 듯했지만 조금 미묘했다. 고천수가 살짝 침음하자니 김하령은 얼른 시계를 풀어서 다 버려 버렸다.
“아, 근데 저도 쓸모없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잠깐 기분만 내 보려고……!”
“괜찮아. 잠깐이지만 꽤 멋졌어.”
그리고 시계 하나쯤은 차고 다녀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유용했다.
“내 거 하나만 골라 줘 봐.”
고천수가 손목을 내밀자 김하령이 급하게 바닥에 주저앉아 시계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그의 손목에 하나를 채워 주었다.
번쩍번쩍.
이런 세계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금시계였다. 고천수는 다시 풀어서 김하령에게 건네주었다.
“이거 말고 좀 더 유용하고 편한 걸로.”
그러자 김하령은 산악인들이 쓸 만한 전자시계를 고천수의 손목에 채워 주었다.
“그래, 이거지.”
방위와 고도, 온도, 기압까지 나오는 시계였다. 이렇게 유용한 물건이 여기에 있었다니, 김하령이 아니면 모를 뻔했다.
“고마워, 하령아.”
“앗, 네!”
배시시 웃는 모습을 보니 고천수는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지금 이 파티는 서로 손발이 잘 맞았다.
“천수야, 다 했으면 이제 가자.”
장서연이 운전석에 올라타며 말했다. 역시 운전은 본인이 하려는 듯했다.
고천수는 양민철, 김하령과 함께 뒤따라 차에 탑승했다. 자리가 모자라 김하령은 좌석 뒤에 있는 짐칸으로 넘어갔다. 말이 짐칸이지 간이 침대가 있어서 편해 보이는 곳이었다.
-상전 같은데.
-천수 네가 누워 있어야 하는 곳 아니냐?
“형님들, 저는 앞이 잘 보이는 자리가 좋습니다.”
주인공 중심의 일부 시청자의 의견은 부드럽게 넘기고 고천수는 장서연을 바라보았다.
“자, 어디로 갈까요.”
“그건 리더인 네가 정해야 하는 거 아냐?”
“그렇게 반응할 줄 알았습니다.”
고천수는 잠시 이마를 붙잡고 고민했다.
‘이제 어떻게 한다…….’
오영준이 알려 준 사실대로만 하면 사방이 위험한 곳 천지였다. 계속 남쪽으로 향하는 게 좋은 방법일 수 있었다.
어차피 차도 얻었겠다, 굳이 동쪽으로 갈 이유도 없었다.
‘일단 큰 목적지라고 하면…… 제주도인데.’
택시 회사에서 단서를 들을 때 분명 제주도라는 말도 들었다. 최종 목적지를 거기로 잡는다면, 선택은 두 가지였다.
비행기를 타느냐 배를 타느냐.
대전을 어느 방향으로 빠져나갈지가 그에 따라 정해졌다.
“형님들, 제주도 가려면 비행기나 배 중에서 뭐가 낫겠습니까?”
뜬금없이 물었더니 시청자 채팅도 ‘?’나 ‘;;’, 또는 ‘ㅋㅋㅋ’으로만 가득 찼다.
알려 줄 수 없는 스포일러 내용이 확실했다.
‘뭔가 있나.’
이쪽으로 올 때 상행선으로 올라가는 KTX를 봤었다. 생각해 보면 무궁화호 기관차도 얻고 싶어 하는 7.5사단이 KTX를 내다버리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만약에 KTX를 미끼로 쓴 거라고 착각한 것뿐이라면…….
“고천수?”
장서연이 키를 꽂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천수는 살짝 한숨을 쉬고는 그녀에게 답했다.
“동쪽.”
“응?”
“동쪽으로 가 주세요.”
군부대가 사람들을 부르는 방향, 그리고 조금 전에 오영준이 최후를 맞으러 차를 몰고 갔던 쪽이었다.
“동쪽? 진짜 동쪽?”
“형.”
장서연이 당황하는 사이, 양민철이 차분하게 물었다.
“가장 안전한 방향은 현재로서는 남쪽이에요. 그런데도 그쪽에 가려는 거예요?”
“그래.”
고천수는 나지막이 말했다.
“그쪽으로 갈 이유가 생겼어.”
알고 있는 게 부족했다.
잠깐 확인해 봤던 정보창에는 새로운 내용이 떠올라 있지 않았다. 제주도를 향해 배로 갈 수 있는 곳은 인천을 비롯한 서해안 구역과 전라남도, 경상남도의 남해안이 있었다.
여객선이 아니어도 된다면 동해안까지 포함, 바다가 있는 전 구역에서 제주도로 갈 수 있었다.
비행기까지 고려한다면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았다.
“안전지대가 어디인지 알아야 해. 동쪽으로 가면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많이 몰려 올 테니까 들을 수 있는 것도 많아지겠지.”
고천수의 말에 일행들이 전부 탄식했다.
“확실히……. 남쪽으로 간다고 해도 어디로 내려가야 될지가 확실치 않으니까.”
“형 말대로네요.”
“천수 님, 근데 사람들 많아지면 위험한 거 아니에요?”
그럴 가능성이 없진 않았지만 군부대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거라면 대부분 피난민일 게 분명했다.
얌전히 섞이기만 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그래도 그쪽밖에는 없어. 남쪽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니까.”
고천수는 결심을 굳히며 대답했다.
게임에서도 블라인드 구역은 예상치도 못한 함정이 도사리곤 했다. 이런 세계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위험한 상황을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는 곳부터 공략해야 안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어차피 게임을 클리어할 때까지 위험이 아예 없는 곳은 존재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그럼 확실히 정해진 거지?”
장서연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이제 출발할게.”
부르릉.
엔진 소리가 시원하게 울려 퍼졌다. 동쪽으로 바퀴를 굴리기 시작한 차 안에서, 고천수는 살짝 숨을 삼켰다.
‘이쪽이 맞겠지?’
그렇게 의문이 들었지만 고천수는 곧 볼 수 있었다.
차가 지나갈 곳에 그어져 있는, 초록색 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