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 양아치들 (7)
“……!”
구용현은 고천수를 돌아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망할……!”
상황 파악은 빠른 인간이었다.
“날 치려고 매수까지 했다고?”
“좀 자의식 과잉인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해 줄게.”
고천수는 도끼를 높게 치켜들었다.
“간다. 팔다리 다 무사하긴 어렵다는 거, 알아 두고.”
“개소리 마!”
날카로운 쇠파이프를 매섭게 세운 구용현이 크게 소리쳤다.
“감히 날 공격해? 너희들 오늘 다 걸레짝 될 줄 알아!”
카앙!
구용현이 바로 휘두른 쇠파이프를 도끼날로 막아 내며 고천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막았는데?”
“이, 이 개새끼가!”
캉! 카앙!
흥분한 구용현은 미친 듯이 쇠파이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
공격은 제법 매서웠다. 고천수가 대응하는 속도가 느렸다면, 어디 한 군데는 진즉에 베였을 것이었다.
“뭐야.”
물론 베일 일은 없었지만.
“이게 최선이야?”
쇠파이프를 계속해서 튕겨 내며 고천수가 하는 말에, 구용현은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뭐, 뭐야, 넌.”
생긴 거에 비해 말도 안 되는 피지컬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훤히 보여서 고천수는 헛웃음을 흘렸다.
“뭐긴 뭐야. 양민철한테 고용된 놈이지.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
카앙!
고천수의 도끼가 구용현의 손목을 잘라 버릴 듯이 쇠파이프 하단을 쳤다. 깜짝 놀란 구용현이 놓친 쇠파이프가 그대로 요란스레 바닥을 굴렀다.
“자, 잠깐!”
구용현은 곧장 뒤로 주춤대며 손을 들었다.
“오, 오지 마!”
“부하랑 똑같은 얘기를 하네.”
고천수는 이죽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교육은 참 잘 시키는 타입인가 봐. 그치?”
“얘, 얘들아! 얘들아!”
도움을 청하듯 뒤늦게 시선을 이리저리 돌린 구용현이 순간 멈칫했다.
“어……?”
이미 다 정리돼 있었다.
농담이 아니었다. 구용현의 부하들은 대부분 바닥에 늘어져 몸을 떨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유일하게 서 있던 놈 하나는, 놀랍게도 오영준에게 붙잡혀 있었다.
“끄악! 끄아아아악!”
심지어 오영준에게 목을 물어 뜯겨서 비명을 지르는 것을 보며 구용현은 큰 외침을 쏟아냈다.
“으아아아악! 시발!”
부하들은 전부 당했고, 오영준은 좀비처럼 되어 버렸다. 도망가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사람일 터였다.
“으아아아아아!”
하지만 구용현은 한 조직의 두목이라기엔 꼴사납게도, 미친 듯이 내지르며 혼자 내빼 버렸다.
“……수준 떨어지긴.”
고천수는 혀를 차면서 오영준을 돌아보았다.
크아아아아아!
조직원 한 명을 물어뜯어서 내팽개치는 오영준을 보면서 고천수는 고개를 저었다.
-보내 줄 때가 왔나?
-남자답게 보내 주자!
-목 딱 노리고!
그 말대로 고천수는 도끼를 치켜 든 채 오영준에게 다가갔다.
“오영준 씨,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으어?”
“작별입니다.”
그렇게 고천수가 도끼를 휘두르려고 할 때였다.
“잠깐!”
김하령이 달려와 외쳤다.
“천수 님, 잘 보세요!”
고천수는 잠시 동작을 멈춘 상태로 오영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영준도 고천수를 마주보았다.
잠깐의 정적.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깊었다.
“아직……인가?”
완전히 감염된 건 아닌 듯했다. 오영준은 바로 달려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크, 어.”
오영준이 살짝 고개를 저었다. 말은 못하게 되었지만 아직 의식은 확인됐다.
-그래 봤자 끝이네.
동감이었다.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며 도끼를 내렸다.
“할 수 없지.”
그래도 지금 끝을 내기에는 찝찝했다. 고천수는 곧장 일행에게 요청했다.
“고민은 나중에 하자. 차는 여기에 있으니까, 어차피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야.”
그러면서 그는 냉동 탑차로 가 운전석의 문을 열었다.
“오영준 씨, 마지막으로 일 한번 안 해 보겠습니까?”
***
블랙 타투 본거지 근처의 폐허 안.
도망친 구용현은 1층 구석에 숨어 이를 딱딱대고 있었다.
“망할! 망할……!”
순식간에 부하들을 다 잃었다. 대체 뭐 하는 놈들인지 모르겠지만, 블랙 타투를 아예 궤멸시켜 버렸다.
“양민철, 이 새끼……!”
예전에 갖고 놀던 녀석들 중 하나였다. 친구랍시고 성가신 놈들이 곁에 붙어서 어쩔 수 없이 놔주긴 했지만, 다시 만나면 진짜 가만 두지 않으려고 벼르고 있었다.
세상이 이렇게 됐으니 괴롭히는 건 더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리어 이쪽이 이런 꼴을 당하다니.
“누나, 이쪽으로 가 봐요.”
“저쪽이 먼저야.”
“전 저기로 가 볼게요!”
얇은 창을 통해 바깥에서 나누는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구용현은 당황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 어디로…….”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했다. 밖에서 얘기하는 저 세 사람은 그렇다 치고, 양민철에게 고용됐다고 한 그놈은 뭔가 일반적인 사람과는 결이 달랐다.
솔직히 부하들이 전부 나자빠지게 된 것도, 그놈이 선두에서 미친 도끼질로 분위기를 가져간 것이 컸다.
‘차가 필요해.’
걷거나 뛰어서 도망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차를 가져가야만 했다.
그리고 가져가야만 한다면, 애마로 여기는 냉동 탑차를 선택해야 했다.
‘그것만 있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움직이는 냉장고는 그에게 무척이나 중요했다. 음식을 오래 갖고 있을 수 있으면 조직원을 모으기 쉬울 테니까.
뭐든 신선한 게 좋았다. 미성년자를 노려 조직원에 편입시킨 것도 그런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신선한 것은 항상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게 되어 있었다. 남들이 뭐라 하건 적어도 구용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가져갈 거야……!’
쓸데없는 집착이든 뭐든 알 바 아니었다. 모든 걸 다 잃은 마당에 겨우 고쳐 낸 냉동 탑차를 넘겨 줄 수는 없었다.
양민철이 그 남자와 함께 그 차로 새 조직을 만드는 것도 참아 줄 수 없었다.
“저기?”
“네, 저기 아직 안 뒤져 봤어요.”
“같이, 같이!”
창밖을 슬쩍 보려니 양민철과 두 명의 여자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 남자는 없었다.
‘어떻게 하지?’
저 셋이라면 상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양민철부터가 자신이 알던 양민철이 아니었다. 무슨 일을 겪었는지 저쪽 그룹과 합을 맞추는 데 아주 익숙한 모습이었다. 미친 여자 둘까지 합한 전투력을 따진다면, 좀 위험했다.
탁탁탁.
구용현은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향했다. 계단이라면 다수를 상대하기에 적합했다. 상대보다 고지대를 점하고 있으면 전투에 유리한 것도 기본 중에 기본이었다.
“무기도 하나 겟.”
계단으로 가는 중에 운 좋게 구부러진 철근 하나를 주워 들었다. 그 셋이 이쪽으로 온다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후.”
2층과 3층 사이에 있는 층계참에서, 구용현은 숨을 고르며 적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렸다.
끼익.
그리고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2층 문을 열고 들어온 양민철과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양민철……!”
구용현은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네가 날 배신해?”
“…….”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양민철이 곧 싸늘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배신? 그게 인사인가요?”
“그래, 배신! 이 비겁한 놈!”
구용현은 철근을 휘적대면서 소리쳤다.
“내가 널 얼마나 잘 대해 줬는데!”
“학교도 제대로 못 나가게 한 게, 잘 대해 준 건가.”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두 번 잘 대해 줬다가는 이 교복도 빼앗기겠어요.”
“뭐야?”
구용현은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를 패 버릴 것처럼 철근을 치켜들었다.
“건방진 것도 정도가 있다, 양민철!”
“건방진 건 그쪽이겠죠.”
양민철은 나지막이 말했다.
“당신이 뭐라고 제 삶에 끼어들어서 그렇게 훼방을 놨던 건가요.”
“너……!”
“심지어 여기서는 또 다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죠. 심지어 끔찍하게 죽게 만들었어요.”
“이 새끼가!”
구용현은 양민철에게 삿대질했다.
“착한 사람 흉내라도 내는 거야? 어? 너도 우리 조직에 들어와 있었잖아!”
“담배나 좀 배웠던 거지 사람을 해치진 않았어요. 알겠어요?”
“그래서! 넌 다르다는 거야? 한 주먹거리도 안 될 게, 어디서 까부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내려와 보든가요.”
양민철은 2층 계단 문 앞에 서서 구용현을 노려보았다.
“내려와서 상대해 보라고요.”
“이게……!”
분노가 치솟았지만 구용현은 양민철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2층 계단 문 안쪽에 누가 숨어 있을지 알 수 없던 것이다.
“우, 웃기지 마!”
구용현은 2층 계단 문을 가리켰다.
“거기에 네가 매수한 녀석들 숨겨 놨지? 어?”
“매수?”
“그래! 내가 모를 줄 알아? 그년들 다 어디 있어! 어디…….”
그렇게 중얼거리던 구용현은 순간 멈칫했다.
“어디…….”
시선을 올린 구용현의 눈에,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 들어왔다.
“악!”
두 명의 여자가 위쪽에 있었다. 3층 계단 문을 열고 나와 있던 것이다.
“으아아!”
포위됐다. 여자들은 밖에 있는 외부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가, 남은 계단인 이쪽으로 온 것이 분명했다. 완벽하게 당해 버렸다. 절망감에 빠진 구용현은 그저 위아래로 철근을 휘적거리며 소리쳤다.
“오지 마! 오지 마, 이 새끼들아!”
하지만 여자들 쪽은 이미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구용현은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많이 놀랐나 보네요.”
양민철이 그런 구용현을 놀리듯 말했다.
“저는 그쪽이 어떻게 나올지를 이미 잘 알고 있어서요.”
“이……!”
“이왕 계단에 있을 거면 좀 더 올라가시지 그랬어요?”
구용현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마른침이 자연스레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위에서는 여자들이 내려오고 아래에는 양민철이 있었다. 둘 다 예전 같았으면 구용현에게 만만하게 보일 만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분위기부터, 구용현은 압도당하고 있었다.
“양민처얼!”
하지만 이대로 당할 이유는 없었다.
구용현은 한 가지 선택을 했다.
“네 새끼는 내가 꼭 데리고 간다!”
다른 이는 몰라도 이런 일을 만든 양민철에게는 꼭 복수해야 했다. 구용현은 바로 철근을 들고 양민철에게 달려들었다.
“죽…….”
하지만 철근을 휘두르기 전, 양민철은 문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덜컥.
심지어 문도 잠가 버렸다.
구용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 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구용현은 뒤에서 들리는 계단 밟는 소리에 고개를 훽 하고 돌렸다.
여자들은 변함없이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싸울지 내려갈지를 결정해야 했다.
“뭐냐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지만 구용현은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여자만 둘이라고 해도 그는 싸울 생각이 없었다.
무슨 꿍꿍이가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는, 역시 격돌을 피하고 도망치는 길을 선택하는 게 현명했다.
“헉, 헉…….”
긴장감에 숨이 빠르게 차올랐다. 구용현은 올라오는 현기증을 간신히 참아내며 1층으로 내려갔다.
‘없어!’
그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곳을 살펴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반색한 구용현은 곧장 건물을 벗어나 차들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근처에 다다라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살폈지만, 그 남자는 여전히 발견되지 않았다.
‘살았다!’
구용현은 냉동 탑차로 향했다. 달리 목적지가 없었다.
“어디 가?”
그때,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가 들렸다.
“…….”
달리며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구용현의 눈에 그 남자가 들어왔다.
“으아아아악! 이 미친 새끼!”
“미친 새끼가 아니라 고천수야.”
비명을 지르는 구용현의 뒤를 따라오며 고천수가 말했다.
“이름은 잘 기억해 둬. 자꾸 욕하면 기분 나쁘니까.”
“오지 마! 오지 말라고!”
구용현은 허벅지에 더 힘을 주었다. 어차피 얼마 안 남았다. 차에 타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었다.
“으아아아아아!”
한 번 넘어지며 철근까지 떨어뜨리는 우여곡절 끝에, 그는 결국 차에 도달해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운전석까지 돌아갈 시간은 없었다.
이쪽으로 들어가서 운전석으로 넘어갈 셈이었다.
덜컥.
그렇게 안으로 들어간 그는 예상치도 못한 상황과 마주했다.
“어?”
운전석에 이미 누가 타 있었다.
“너……!”
녹색 복면을 쓰고 있는 사람이었다.
“너 살아 있었…… 큭?”
부하의 생존에 놀라기도 잠시, 그는 뒷목에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