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 양아치들 (6)
콱!
고천수의 도끼가 주상진의 팔을 찍었다.
“으아아아아악!”
“사과해.”
“으으으으윽!”
비명을 질러대는 주상진의 모습에 아랑곳 않고, 고천수가 윽박질렀다.
“네가 한 행동에 대해서, 사과하라고.”
“이, 이 미친 새끼야……!”
“사과해.”
고천수는 단호했다.
“사과하라고.”
-사과 방송이었냐.ㅋㅋㅋㅋ
-미친.ㅋㅋㅋ
-한 번 더 찍자.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에, 고천수는 다시 한번 도끼를 치켜들었다.
“사과해.”
“자, 잠깐…….”
주상진은 몸을 떨며 손을 들어올렸다. 도끼에 연속으로 얻어맞아 만신창이가 된 그는 이미 전의를 상실한 모습이었다.
“사, 사과할게. 그만해.”
“잘 안 들려.”
“사과한다고……!”
주상진은 살기 위해 발악하는 듯이 외쳤다.
“미안해! 됐지……?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
“아니.”
고천수는 주상진의 머리채를 잡아 쥐었다.
“끄악!”
“내가 아니라 저쪽이지.”
피해자는 오영준과 양민철 두 명이었다. 고천수는 주상진의 머리를 그들을 향해 돌렸다.
“그리고 사과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콱!
“이렇게 하는 거야.”
콰직!
고천수는 주상진의 머리를 위아래로 잡아 흔들며 땅에 여러 번 처박았다.
“컥? 자, 잠…….”
주상진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고천수는 망설이거나 멈추지 않고 주상진의 머리로 방아질을 계속했다. 잠시 팔을 내저으며 반항하던 주상진은, 곧 움직임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고천수.”
어느새 다른 조직원들을 정리하고 다가온 장서연이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고천수, 그만해.”
퍼억!
“그만!”
그녀가 팔을 잡았을 때에야 고천수는 움찔하고 멈춰 섰다. 주상진은 피떡이 된 상태로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후우.”
고천수는 크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양민철과 김하령은 오영준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천수 님!”
김하령의 외침에 고천수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가 가까이 가서 보려니 오영준의 부상은 꽤나 심각했다.
“끄윽.”
칼을 맞은 부위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걸로 끝이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영준의 목 부위에 심상찮은 검붉은 핏줄이 보였다. 고천수는 곧장 오영준의 잘린 팔을 내려다보았다.
옷을 들춰 보자, 오영준의 팔 쪽에서부터 뭔가가 퍼져 나가는 것이 확인됐다.
“천수 님. 감염 진행이 빨라지는 것 같아요.”
팔을 잘라서 감염이 늦춰졌던 건 분명한 듯했다. 하지만 이미 전신으로의 감염은 일부 시작되었고, 새로운 부상이 생겨 면역이 저하되자 곧장 몸이 악화되는 것으로 보였다.
“끄으윽, 망할.”
오영준이 신음을 토해내며 고천수를 올려다보았다.
“죄, 죄송합니다.”
그가 사과를 할 건 없었다. 일을 망친 건 주상진이었다.
고천수는 머리를 살짝 긁적였다. 실험을 망친 건 아쉽지만 여기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부상에 따라 감염 속도가 달라지는 건 알았으니까.’
다만 고작 이걸 얻어내려고 팔을 잘라 주는 노력을 한 건 아니었다.
고천수는 오영준에게 물었다.
“오영준 씨, 블랙 타투 위치는 알아냈습니까?”
“위치…….”
오영준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네, 보고 왔습니다.”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면 정보라도 받아내야 했다. 냉철한 표정을 짓는 고천수를 보며 오영준이 마른침을 삼켰다.
“저, 어쩔 수가 없는 거군요.”
“도와드리고 싶어도 이 이상은 방법이 없습니다. 해 줄 수 있는 거라고는…….”
고천수가 말을 흐리자 오영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무슨 뜻인지 알고 있습니다. 더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러더니 오영준은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서연과 양민철, 김하령이 모두 손을 뻗었으나, 그는 더 크게 고개를 저으며 도움을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움직일 수 있어요.”
그 모습에 고천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움직일 수 있다고?
-회광반조야.
-좀비화 되면 부상이 의미가 없어지니까.
이성을 잃기 전까지는 오히려 일반인보다 강하다는 의미였다. 가슴에 부상을 입어서 좀비화가 빨라졌지만, 최초로 감염된 시작된 부위를 미리 자른 덕분인지 아직은 진행이 더뎠다.
“직접 안내하겠습니다. 그 정도는 아직 할 수 있으니까요.”
이성을 잃기 전에 이 모든 일을 일으킨 원흉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겠다는 듯, 오영준이 결심을 굳힌 표정을 지었다.
“……좋습니다.”
분노에 차 복수심이 생겼다고 해도 이 정도의 냉철함을 가질 수 있는 것에는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과연 일반적인 엑스트라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고천수는 일행들에게 요청했다.
“시간이 별로 안 남았어. 빨리 움직이자.”
그러면서 고천수는 양민철의 어깨를 붙잡았다.
“각오는 됐지? 악연 같은 건 여기서 정리하는 거야.”
“네, 형.”
양민철은 쓰러져 있는 주상진을 돌아보며 굳게 말했다.
“같이 부숴 버려요.”
***
블랙 타투의 본거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헉, 허억.”
이번에는 다른 이유로 가쁜 숨을 내뱉으며 오영준이 고천수 일행을 이끌었다.
“거의, 다 왔어요.”
“괜찮은 거 맞아요?”
옆에서 장서연이 묻자 오영준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하령이 그 모습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곧 좀비 될 거라서 그래요.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야.”
장서연이 인상을 구기며 한숨을 내쉬는 사이, 고천수와 양민철은 저 앞에 있는 트럭 두 대를 확인하고 서로 시선을 맞췄다.
“다 있네, 저기.”
냉동 탑차와 화물차였다. 고천수는 먼저 골목에 몸을 숨기며 일행들을 불러들여서 말했다.
“다 잘 들어. 남아 있는 인원은 많아도 11명이야.”
총원에서 셋과 여섯은 앞선 전투에서 전부 해치웠으니까.
“11명이면 솔직히 정면으로 들어가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약간의 준비는 필요해. 두목을 자극할 시에 무슨 반응이 나오는지부터 확인하면 좋겠지.”
어떤 돌발 변수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니, 누군가 상대를 유인하고 위급 시 대응 방식을 확인해 줄 필요가 있었다.
-야, 이거.ㅋㅋㅋㅋ
-천수 진짜 알뜰하네.
-인성 진짜.ㅋㅋㅋㅋㅋㅋ
고천수의 시선은 오영준에게 가 있었다. 그는 상황을 이해한다는 듯,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래 줄 수 있겠습니까?”
기다렸다는 듯 대답하는 고천수를 보며 오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약속해 주세요. 꼭, 저 개새끼들을 박살내 주겠다고.”
“약속하죠.”
이미 실력은 다 보여 주었다. 오영준도 그 사실을 믿는 듯,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좋아, 우리도 가자.”
고천수는 나머지 일행들을 데리고 골목길을 통해 움직였다.
이미 본거지 위치는 확인했다. 최대한 눈에 안 띄는 길로 접근할 요량이었다.
“나와! 이 새끼들아!”
그 와중에 오영준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확실하게 블랙 타투의 조직원들을 유인해 주려는 것이었다.
“형, 두목 이름은 구용현이에요. 항상 붉은 머리로 염색했으니까, 지금도 그 상태일 거예요.”
두목이 누군지 특정할 수 있도록 양민철이 옆에서 정보를 주었다. 고천수는 도끼를 꽉 쥐어 잡고 마침내 이동을 멈추고 골목 밖을 살폈다.
“나오라고!”
오영준이 차들이 보이는 바로 앞까지 가서 소리쳤다.
그러자 이내 블랙 타투 조직원들이 나타나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뭐야, 이 외팔이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대던 그들은, 곧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주춤거렸다.
“어? 이 새끼 감염된 거 아냐?”
“뭐? 감염?”
“진짠가 봐! 상태가 이상해!”
소란이 계속되자 조직원을 뒤쪽에서 누군가 한 명 걸어 나왔다.
“뭔데 이렇게 시끄러워.”
붉은 머리를 한 남자였다. 굉장히 지저분한 인상을 가진 그는, 다른 조직원들을 밀치며 앞으로 나와 오영준을 노려보았다.
“뭐야, 넌.”
두목 구용현은 오영준의 등장 자체가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뭐긴, 뭐야…….”
하지만 상대방을 불쾌해하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동료가 죽고 본인마저 감염된 오영준에게 구용현은 그저 죽이고 싶은 핵폐기물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다.
“너 죽이러 온 놈이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오영준을 보며 구용현은 주위 조직원을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잔뜩 억누른 듯한 웃음기가 가득했다.
“응? 뭐라고?”
그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리며 말했다.
“날 죽이러 왔다고?”
두목이 키득거리자 주변에 있는 다른 조직원들도 오영준을 향해 비웃음을 흘렸다.
“그 꼴로 우리 두목을 죽이러 왔다고?”
“네 몸뚱이나 좀 챙기지 그랬냐?”
“팔도 없는 병신이 간까지 밖으로 나왔네.”
사방이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엄청나게 모욕적인 상황이었지만 그저 오영준은 차분하게 서 있었다.
“……하.”
그게 구용현에게서 웃음을 앗아갔다.
“뭐야, 이 새끼.”
계속해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오영준을 보며 구용현이 눈썹을 치켜떴다.
“안 그래도 시한부인 새끼가, 조금이라도 빨리 황천길 가고 싶다는 건가?”
둘은 서로를 향해 강렬하게 시선을 맞췄다. 주변 조직원들의 웃음소리도 잦아들었다.
현장에 남은 건 정적뿐이었다.
‘기억하마, 오영준.’
고천수는 그 현장을 내다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불붙은 복수심 때문인지 아니면 좀비화가 되고 있는 몸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영준의 얼굴에는 더 이상 초조함이 없었다.
-붉은 머리와 좀비(진).
-진짜 세계관 최강자들의 싸움이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며 고천수는 헛웃음과 함께 일행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곧 나갈 준비를 하라는 뜻이었다.
‘괜찮아. 무장 상태는 똑같으니까.’
여태까지 상대해 왔던 다른 조직원들과 비교할 때 특별히 들고 있는 무기가 다르지는 않았다. 오영준이 이곳에 있는 전체 조직원의 시선을 끌어 준 덕분에 면밀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습격 타이밍을 재는 것뿐이었다.
“안 되겠네. 얘들아, 이놈은 내가 직접 처리한다.”
구용현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하며 손을 옆으로 뻗었다. 그러자 조직원 중 하나가 끝이 날카롭게 제련된 쇠파이프 하나를 가져왔다.
“드디어 부품을 다 모아서 차를 다 쳤는데 말이야. 이런 모지리 하나가 축하 분위기를 망치려고 하네?”
고천수가 건물 앞 화물차에서 보았던 조직원들 외에 다른 인원이 정말 멀쩡한 부품을 찾아낸 듯했다.
귀중한 정보였으나, 지금은 더 신경 써야 할 일이 있었다.
“넌 오늘 뒈졌다.”
그렇게 구용현의 손에 쇠파이프가 쥐어질 때였다.
고천수는 일행들에게 손짓했다.
그리고 함께 조용하고 빠른 걸음으로 조직원들 곁으로 다가갔다.
“으아아아아아!”
그 모습을 본 오영준이 또 한 번 이목을 끌기 위해 크게 소리쳤다.
커다란 외침에 놀란 구용현이 주춤댔다.
“뭐야, 이거. 돌았나?”
“크악!”
그 순간, 조직원 중 한 명이 장서연이 휘두른 쇠파이프를 맞고 나가떨어졌다. 그제야 구용현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 뭐야!”
그가 놀란 표정을 짓는 건 아랑곳하지 않으며 고천수 일행은 조직원들 사이를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컥?”
“으악!”
장서연과 페어를 짠 양민철은 종횡무진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조직원들의 정신을 빼어 놓았다.
“크아아악! 내 눈!”
김하령은 둘의 비호를 받으며 소소하게 단검을 내지르며 다녔다. 세심한 손놀림이 발휘되는 건지, 별 거 아닌 듯 보이는데도 타격점은 항상 눈이나 인중 같은 치명적인 부위뿐이었다.
“스, 습격이다!”
“두목을 지켜!”
조직원들이 뒤늦게 경보를 울리듯 외쳤지만, 말 그대로 뒤늦었을 뿐이었다.
콱! 콰직!
고천수 일행의 필두는 당연히 고천수였다.
그는 다가오는 조직원들의 손을 모두 도끼로 찍어 버려 다시는 무기를 들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곳곳에 비명이 가득했다.
방금 전까지 오영준을 해치려다가 습격을 받게 된 구용현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뭐냐고, 시발!”
욕을 내뱉던 그가 순간 멈칫했다.
“어?”
그의 시선은 양민철에게 향해 있었다.
“양민철?”
“너냐?”
그런 그에게 다가가며 고천수가 말했다.
“우리 민철이 괴롭혔다던 허접 새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