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 양아치들 (5)
“아이, 시바.”
고천수가 있는 건물의 밖.
길에 놓여 있는 화물차를 발로 차며, 녹색 복면을 쓴 문신 남자가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다.
“시발,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진정해.”
“뭘 진정해!”
그는 옆에 있는 땅딸보 동료가 내미는 손길을 뿌리쳤다.
“대체 어디서 멀쩡한 것들을 구해 오라는 거냐고!”
성난 외침이었다.
고천수는 안에서 그 모습을 살피며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따라온 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순찰을 돌고 있던 또 다른 블랙 타투의 조직원들인 걸까.
“왜 꼭 그 트럭을 고쳐서 가져가야 하는 건데! 멀쩡하게 굴러가는 다른 차도 갖고 있잖아!”
진정하기는커녕 목소리를 높이는 복면을 보며, 땅딸보가 황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조, 조용히 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듣긴 누가 들어! 어차피 다 차 부품이나 찾고 있을 텐데!”
복면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발 그게 무슨 부적이라도 되는 거야? 두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냉동 탑차잖아, 냉동 탑차.”
“그게 왜, 시발.”
“지금 상황에서 움직이는 냉장고를 구하기가 쉽겠어?”
둘의 대화만 보면 블랙 타투의 두목은 다른 차를 가지고 있는데도 이곳을 떠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냉동 탑차라.’
고천수는 살짝 침음했다. 크기가 작지 않다면 분명 그건 욕심을 부릴 만한 것이기는 했다. 조직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꽤 요긴하게 쓰일 만한 기능을 갖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경우에 따라 버리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냉장고가 중요해도 그렇지, 그걸 보물처럼 생각하니까 이 꼴이 났잖아.”
복면은 이가 빠진 듯 이곳저곳 부품이 뜯겨 나간 화물차를 가리켰다.
“멀쩡하게 굴러갈 수도 있던 이 차를 작살내고 두목한테 부품을 가져간 거잖아, 다른 멍청한 놈들이.”
“아니, 그건…….”
“심지어 또 떼어 가야 해.”
복면은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우리도 여기서 뭐라도 떼어 가서 열심히 부품 구해 온 척해야 돼. 이게 말이 되냐?”
고천수가 듣기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 두목이라는 놈은 조직원들을 고압적으로 대하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 이런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일 터.
“진짜 시발, 돌아 버리겠네.”
복면은 분을 못 이기겠는지 자신의 머리칼을 강하게 쥐어뜯었다.
고천수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일행에게 향했다.
“밖에 그놈들이 있어.”
고천수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숫자는 둘.”
일단 머릿수만 따져 보면 이쪽이 우세했다.
“지금 나가서 치면 어렵지 않게 해치울 수 있을 테지만, 미행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어차피 블랙 타투의 본거지를 알아낼 필요성이 있었다. 밖에 있는 저 둘은 이쪽을 쫓아온 인원이 아니었다.
본거지에 돌아갈 테니 이만큼 최적의 상황이 있을 수 없었다.
“좋네요. 그럼 몰래 따라가 보죠.”
“저도 찬성이에요.”
“잠깐.”
긍정적인 답을 내놓는 양민철과 김하령과는 다르게, 장서연이 손을 들며 말했다.
“미행은 한 명만 하는 게 좋지 않아? 여러 명이면 들킬 수도 있잖아.”
그건 맞는 얘기였다. 고천수는 손을 턱에 올리며 잠시 고민하다가 슬쩍 시선을 움직였다.
그 시선의 끝에는 오영준이 서 있었다.
***
“헉, 헉…….”
10분 뒤, 오영준은 가로수 뒤에 몸을 숨기며 숨을 헐떡이는 처지가 되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이유는 간단했다. 팔 하나가 없는 사람이 더 몸을 숨기기 쉬울 거라는 의견에서였다.
솔직히 꼭 그럴 것 같지만은 않지만, 오영준은 자신을 도와준 고천수에게 보답을 하기 위해서 그 의견에 따라 이렇게 나섰다.
그래도 그쪽 일행이랑 통성명까지 하고 왔으니 버림패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후우.”
오영준은 떨리는 숨을 고르며 잠시 가만히 기다렸다.
“이상하다. 진짜 무슨 소리 못 들었어?”
“꺼림칙한 소리 하지 마. 아직 그 나무 괴물이 돌아다닐 시간도 아닌데.”
앞서 가고 있던 블랙 타투 조직원 두 명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땅딸보가 오영준의 기척을 느낀 것이었다.
“그런가…….”
하지만 땅딸보는 복면보다는 자기주장이 적었다. 그냥 고개를 한 번 갸웃댄 그는 다시 짐을 고쳐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데구르르르.
그때였다. 바퀴를 굴리면서 가고 있던 복면이 정면을 보며 몸을 흠칫했다.
“응?”
놀란 그가 놓친 바퀴가 그대로 앞으로 굴러가 허무하게 넘어졌다.
“……부품이라도 구해 오는 건가?”
바퀴가 넘어진 곳에는 문신한 여러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복면에게 그렇게 물은 사람은, 그들 중 얼굴에 흉터가 있는 자였다.
“고생이 많군.”
“아, 주상진 대장.”
복면은 그를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여긴 어쩐 일로…….”
“걱정 마라. 부품 잘 구해 오고 있는지 감시하러 온 건 아니니까.”
주상진이라고 불린 그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바퀴를 보며 말했다.
“그냥 뭣 좀 찾고 있었다.”
“뭘…… 찾고 있었다고?”
복면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땅딸보와 눈을 한 번 맞추고는 그에게 물었다.
“뭘 찾고 있었는데?”
“적.”
그는 고개를 까딱이며 답했다.
“근처에 우리 조직원에게 엿을 먹인 놈들이 있다.”
“뭐, 뭐?”
“습격당해서 셋이나 죽었더군. 근처를 뒤져 봤는데 아직 찾지 못했다.”
그 말에 놀란 복면이 몸을 떨며 주춤댔다.
“잠깐, 그거 아직 두목은 모르는 거지? 알면 나 지금 못 가! 엄청 갈구고 있을 거 아냐!”
“그런 상황이었으면 우리도 여기 있지는 못해.”
주상진은 걸어가 진정하라는 듯 복면의 어깨를 잡았다.
“우리가 조용히 처리할 테니까 너는 부품이나 잘 가져다 둬. 두목이 다른 데 신경 못 쓰게 재롱이라도 좀 부리고.”
“재, 재롱?”
“다 같이 깨지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화물차 앞에서는 그렇게 떽떽거리던 복면은 지금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주상진은 그런 그를 놔두고 걸음을 옮겼다.
“그럼 좀 이따 보자고.”
그를 따라 5명의 문신남이 움직였다. 거리에는 다시 복면과 땅딸보만 남았다.
‘이런…….’
그 광경을 지켜보았던 오영준이 마른침을 삼켰다.
‘저쪽으로 가면 안 되는데.’
주상진이 향한 곳은 고천수가 있는 장소였다. 잘못하면 그들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돌아가야 하나?’
하지만 아직은 블랙 타투의 본거지를 알지 못했다. 오영준은 이를 악물었다.
진즉에 알아 뒀으면 좋았을 텐데 팔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진 아무것도 못 하고 제 몸을 사리기만 했다.
이제 와서는 후회가 되는 대목이었다.
“겁나 불안해지네, 또.”
“그러게. 일단 가자고.”
그사이 복면과 땅딸보는 저들만의 대화를 나누며 다시 몸을 추스르고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오영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 둘을 따라갔다.
‘이쪽 먼저 확인하자!’
꼭 본거지까지 따라갈 필요는 없었다. 단초가 될 만한 뭐라도 보이면 바로 뒤돌아서 고천수에게 위험을 알리러 가면 되는 일이었다.
‘빨리빨리!’
복면과 땅딸보는 본거지에 돌아가기 싫은지 느리적느리적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속이 타긴 했지만 여기서는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으윽!’
서두르자니 왠지 팔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저기다……!’
멀리에 차가 두 대 서 있는 게 보였다. 하나는 냉동 탑차로 보이는 것이고, 하나는 일반적인 화물차였다.
그걸 보자마자 오영준은 몸을 뒤로 돌렸다. 될 수 있는 대로 빠르게 일행에게 돌아가야 했다.
골목을 돌아 복면과 땅딸보가 볼 수 없는 곳으로 들어간 오영준은 바로 발걸음에 힘을 주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고천수 씨!’
오영준은 자신이 무엇을 보게 될지도 모르고 전력으로 뛰어갔다.
***
“아……?”
이미 소란은 벌어진 뒤였다.
“으악!”
“컥!”
“으아아아!”
비명이 터져 나오는 현장을 확인하며 오영준은 탄식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럴 수가…….”
화물차 앞에서 전투를 벌이게 된 고천수 일행은 블랙 타투 무리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조직원 한 명의 손목을 꺾은 채 정강이를 차 넣고 있는 장서연, 어린 나이답게 조직원들에게 힘차게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있는 양민철, 그리고 메스로 조직원의 눈을 찔러 버린 김하령까지.
도저히 일반인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그 모습들 속에서 단연 빛나는 건, 바로 고천수였다.
“주상진이라고 했나?”
그는 이미 몇 대를 얻어맞아 주춤거리고 있는 주상진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생각보다 별 거 아니네?”
“이 자식……!”
주상진은 손에 든 나이프를 높이 치켜든 채로 외쳤다.
“네가 우리 조직원들을 박살 낸 범인이냐?”
“아마도?”
고천수는 순간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아니, 맞아. 네 실력 보니까 괜히 간 볼 필요도 없겠네.”
이미 전세는 완전히 기울어 있었다. 고천수는 헛웃음을 흘렸다.
“습격 한 번에 무너지는 행동대장이라니. 그런 꼴로 잘도 우리 민철이를 괴롭혔었네?”
“크으윽.”
주상진은 시선을 옮겨 양민철을 노려보았다.
“양민철……!”
“야.”
고천수는 그런 그에게 툭 하고 내뱉었다.
“우린 우리끼리 하자. 대장은 대장끼리만 대화해야지.”
“하……!”
단검을 휘둘러 잡으며 주상진이 이를 으득거렸다.
“벌써부터 네가 이긴 것 같냐?”
“아니야, 그럼?”
고천수의 반문에 주상진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이 상태로는 위험하다는 것을 안 것이리라.
“아.”
그렇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주상진의 시선이 멈춘 곳은 바로 오영준이 있는 곳이었다.
“이런.”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뭔가 잘못됐음을 느낀 오영준이 뒷걸음질을 칠 때였다.
“으아아아아!”
주상진은 얼른 달려와 오영준의 팔을 붙잡았다.
“끄윽! 놔!”
“이봐!”
팔 하나밖에 없는 오영준을 쉽게 제압한 주상진은 단검을 횡으로 들며 고천수에게 소리쳤다.
“이놈도 너희랑 같은 편이지? 어?”
주상진은 오영준을 흘깃거리며 이를 갈았다.
“그래, 거기 죽어 있던 놈이랑 판박이잖아! 같은 편이겠지!”
“거기?”
고천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근처로 다가왔다.
“아, 그 너희 조직원 내가 조져 놓았던 곳. 그래, 확실히 네가 붙잡은 그 사람의 동료도 거기서 죽었지.”
의연한 태도긴 했지만 오영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리쳤다.
“고천수 씨, 걱정 마세요! 이 정도는 제가…… 컥.”
뒷목을 후려 맞은 오영준이 비틀거리며 탄식을 토해냈다. 주상진은 그런 그의 머리채를 붙잡아 끌어올리며 목젖에 단검을 가져다 댔다.
“가까이 오지 마! 안 그러면 그어 버릴 테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저급한데.”
고천수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행동대장이라서 무게감은 좀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었네.”
“뭔 개소리냐!”
“그냥 양아치라고.”
도끼를 치켜든 고천수가 차가운 눈으로 주상진을 바라보았다.
“양아치는 양아치답게 상대해 줘야겠지?”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주상진이 계속 소리쳤지만 고천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 이 망할……!”
도망칠 곳은 없었다. 주상진은 계속 뒤로 주춤거리다가 단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컥?”
오영준의 가슴을 찔렀다.
“끄, 꺽…….”
순식간에 무너지는 오영준을 옆에 버리고, 주상진은 조직원들을 두고 혼자만 몸을 내뺐다.
“…….”
고천수는 바닥에 쓰러져 몸을 떠는 오영준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 개새끼가.”
고천수의 눈에 분노가 서렸다.
-역린 건드렸네.
-헐. 천수의 실험체를 이렇게?
-십도끼형을 구형합니다.
이내 달음박질한 고천수가 주상진을 쫓아갔다. 그리고 그 속도는 일반인의 속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제, 젠장……!”
주상진은 미친 듯이 뛰었다. 그에게서 고천수를 상대할 의지는 엿보이지 않았다. 질 수 없는 싸움에서 졌다. 고천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그는 확실히 알고 있던 것이다.
“크악!”
어깨에 도끼가 찍혔다. 주상진은 바로 바닥에 나무토막처럼 패대기쳐졌다.
“……너, 방송에서 가장 어그로 잘 끌리는 소재가 뭔지 아냐?”
신음과 함께 바닥을 기는 주상진을 보며 고천수가 싸늘하게 말했다.
“지금부터 너한테 가르쳐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