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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61화 (61/224)

061. 양아치들 (4)

고천수는 채팅창을 쳐다보았다.

“형님들, 미션 요청입니다.”

그리고 곧장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 팔 잘라도 잠시 동안은 괜찮을 수 있게 도와주시겠습니까? 후유증 지연 같은 걸로.”

팔을 그냥 자르면 십중팔구 멀쩡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가지고 있는 약이 그 뒷일을 감당할 정도로 넉넉하지도 않았다.

어떤 활용성이 있을지 모르는데 일행이 아닌 이에게 그만큼의 투자를 할 수는 없었다. 가지고 있는 물량을 생각해서 신중히 결정해야 했다.

-미션?

-또 뭐 맡겨 놓은 것처럼.ㅋㅋㅋ

-얘 데리고 가게?

다만 시청자들을 구슬리면 지금 가지고 있는 약을 투자하지 않고도 뭔가를 시도해 볼 수는 있었다.

‘그냥 거머리 같지는 않으니까.’

망설임 없이 팔을 잘라 달라고 하는 걸 보면, 오영준은 보통 성격은 아니었다. 게다가 블랙 타투를 향한 분노까지 서려 있으니 잘만 하면 도움이 될 것이었다.

-큰 돈 안 걸고 배팅해도 되는 거지?

시청자가 여유롭게 걸 수 있는 한도라면 고천수는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당장은 이쪽 생존에 필요한 부분도 아니고, 이미 사경을 헤매고 있는 사람을 병까지 치료해서 소생시켜 달라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인 것도 아니었다.

적용될 부위만 협소하게 한정한다면 적당한 가격에 떼어 올 만한 효력이 있을 테니, 이런 실험 콘텐츠를 원하는 시청자가 있다면 한 번 참여해 달라는 것뿐이었다.

-근데 천수, 그거 열릴 때쯤 안 됐나?

-그러게. 제안이랑 상점 기능 뜰 때 된 것 같은데.

새롭게 얻을 다른 기능이 있다? 고천수가 고개를 갸웃하려니, 곧 알림이 하나 생겨났다.

[띠링! 울부짖는정신병자 님이 효력 보상 미션을 설정하였습니다.]

[울부짖는정신병자 님의 미션 - 오영준 팔 자르기. 무슨 물건을 사용하든, 반드시 10번 신체를 찍어서 자를 것.]

[울부짖는정신병자 님의 보상 - 1시간 동안 오영준이 팔 절단 후유증 없이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과연 본인의 이름값을 하는 미션이었다. 고천수는 설정된 미션을 보고는 바로 오영준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정말로 그 정도의 각오라면 잘라 드리겠습니다.”

“고천수……!”

옆에서 장서연이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고천수는 개의치 않고 오영준에게 말했다.

“한 번만 더 묻습니다. 진짜 자르실 겁니까?”

“네……!”

오영준은 결연한 표정으로 외쳤다.

“이대로 죽긴 싫어요!”

“좋습니다.”

고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행을 돌아보았다.

“자르기로 했으니 다들 여기서 기다리도록.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천수 님!”

김하령이 손을 들며 끼어들었다.

“저도 같이 환자를 살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 따라와.”

솔직히 지금은 김하령이 필요 없었지만, 두고 가면 장서연과 양민철에게 의문을 남길 게 뻔했다.

고천수는 오영준, 김하령과 함께 근처의 건물로 들어갔다.

준비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높이가 어깨까지 올 만한 무거운 테이블 하나를 찾아 가져다 두었을 뿐이었다.

“자, 팔 올리세요.”

고천수는 그러면서 김하령에게 도끼를 내밀었다.

“하령아, 소독 좀 부탁한다.”

“네네!”

김하령은 그냥 이런 일을 하는 게 즐거운지 시키는 대로 도끼를 소독해 주었다. 고천수는 그녀에게서 다시 도끼를 받아들고 오영준을 쳐다보았다.

그는 테이블 위에 자신의 감염된 팔을 얹어 두고 있었다.

“저, 근데…….”

도끼를 휘둘러 잡는 고천수를 보며 오영준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대로 자르시려는 건 아니겠죠?”

“아, 내 정신 좀 봐.”

고천수는 다른 곳으로 가 커튼을 하나 찾아왔다.

“자리를 좀 옮겨야겠네요.”

그러고는 테이블을 건물 기둥이 있는 자리까지 옮겨 놓았다.

“오영준 씨, 여기로 오세요.”

“으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오영준은 얌전히 그 말에 따라 주었다.

고천수는 그런 오영준을 붙잡아 기둥에 커튼으로 동여 메기 시작했다.

“저, 이건…….”

“고통스러울 테니까요.”

고천수는 고개를 저으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말씀드렸던 대로 마취제가 부족해요. 마취가 되는 시간을 기다릴 수도 없고요. 5분만 지나도 감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네? 하지만 조금은…….”

“오영준 씨.”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며 고천수는 도끼를 치켜들었다.

“해 줄 수 있는 만큼 해 드리는 겁니다. 싫으면 그만두세요.”

“아뇨, 그건…….”

“좋습니다.”

고천수는 가져온 테이블 위에 오영준의 팔을 올려 두었다.

“하령아, 그다음에 필요한 건 알지?”

고천수의 말에 김하령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오영준의 옆으로 향했다.

탁.

김하령은 천진한 표정으로 오영준의 두 눈을 자신의 손으로 가렸다. 고천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뭐 하는 거야?”

오영준의 팔을 붙잡고 있으라는 얘기였건만.

“앗, 그랬군요. 착각했네요.”

-착각.ㅋㅋㅋㅋ

-하여간 만만찮어, 얘도.

-왜. 귀여운뎅.

김하령은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는 품 안에서 띠를 하나 꺼냈다.

그걸로 그녀는 오영준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고천수가 원했던 대로 테이블 위에 놓인 그의 팔을 손목 부근에서 붙잡아 주었다.

“후.”

준비는 마쳤다. 고천수는 도끼를 위로 치켜들었다.

그렇게 잠시 가만히 있는 동안 고천수는 오영준의 팔을 살폈다.

‘10번…….’

한 번에 잘라 봤자 의미가 없었다. 고천수는 김하령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녀가 왜 그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령아, 커튼 하나만 더 가져올래?”

“커튼이요? 네.”

의문이 생길 법도 하건만 김하령은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커튼을 하나 떼어내 왔다. 고천수는 그걸로 테이블 위에 오영준의 팔을 묶었다.

“천수 님, 제가 안 잡고 있어도 되나요?”

“직접 잡고 있어 봤자 안 될 것 같아서.”

팔을 자르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김하령도 날뛰는 환자를 경험해 본 적은 없을 테니 위험했다.

‘그리고…….’

고천수는 오영준의 팔을 깔끔하게 잘라낼 생각이 없었다.

“하령아, 테이블이라도 꽉 잡고 있어.”

10번.

조건은 반드시 충족해야 했다.

-과연.

-이거 진짜 미친 미션 아니냐.ㅋㅋㅋㅋ

-야금야금 자른다니 미쳤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같은 부위를 굳이 10번 찍으면 나중에 부상이 잘 낫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다른 선택이 필요했다.

“오영준 씨, 갑니다.”

그렇게 고천수는 도끼로 오영준의 손가락을 찍었다.

***

아아아악!

건물 안에서 뻗어 나오는 비명을 들으며 양민철은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자르고 있나 봐요.”

“그럼 안 자를 줄 알았냐.”

장서연은 한숨을 쉬듯 말했다.

“진짜 무서운 놈이야, 고천수.”

인정은 있는 듯하지만 고천수는 무언가를 실행하기로 결심하면 거리낌 없이 움직였다. 마치 무언가 확신이 있는 것처럼.

“이번에는 또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걸지.”

장서연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고천수의 행동을 지지했다.

어차피 그냥 놔두었으면 죽어서 괴물이 됐을 사람이었다. 고천수는 그를 위해서 최소한의 도움을 주는 것뿐이었다.

“……일단 천수가 일 끝내면 수고했다고나 해. 팔 잘린 사람이 어떻게 됐든 간에, 천수가 굳이 나서서 우리까지 못 보게 하고 다 떠맡아 준 거잖아.”

“후우, 네.”

그녀의 말에 양민철이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안에서 비명이 멎었다.

쿵!

다만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는 들렸다.

쿵!

잠시 물음표를 그리던 장서연은 그 소리가 무엇인지 곧 깨달았다.

“도끼질 소리…….”

그냥 비명만 멎은 것뿐이었다. 도끼질은 계속되고 있었다.

“기절한 건가?”

아니면 양말이라도 물렸을 수도 있었다. 소리가 너무 크긴 했으니까.

쿵! 쿵!

심장을 울리는 소리가 계속됐다.

두근두근.

장서연은 숨소리를 죽이며 모든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콰자작!

큰 소리가 나더니 더 이상 도끼질이 이어지지 않았다.

“……끝난 걸까요?”

양민철이 조심스레 물었다. 장서연은 잠시 기다리다가 건물의 문으로 향했다. 조용했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 뒤에야 궁금증에 귀를 대 보자니, 갑자기 문이 확하고 열렸다.

“으아!”

장서연이 놀라며 주춤거리는 사이 문을 연 김하령이 손짓했다.

“들어오세요.”

그러면서 다시 안으로 들어가는 김하령을 보며 장서연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뭐야……. 잘된 거야?”

그녀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걸음을 옮기자 테이블과 피가 묻은 천 조각들이 보였다. 그녀는 시선을 돌리다가 도끼를 든 채 서 있는 고천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고천수?”

그에게 다가가던 그녀는 바닥에 누워 있는 한 사람을 또 발견했다.

“저건…….”

오영준이었다.

장서연은 잘린 팔에 붕대가 묶여 있는 걸 보며 탄식을 뱉었다.

“잘랐구나, 진짜로.”

자른 팔은 근처에 있었다. 위에 천이 덮여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삐져나온 엄지만은 잘 보였다.

“아, 보지 마세요.”

고천수는 고개를 돌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손가락은 엄지밖에 안 남았으니까.”

“뭐?”

“엄지 척, 최고의 수술이었다는 의미예요.”

김하령이 놀라는 장서연의 옆으로 다가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머지 손가락은 다 천수 님이 잘랐어요.”

“뭐, 뭐야, 그게.”

장서연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손가락을 다 잘랐다니, 역시 고통에 떠는 사람의 몸에 정확히 도끼질을 하기는 쉽지 않았던 걸까.

김하령의 말 때문에 진짜 ‘엄지 척’으로 보여 장서연은 애써 그쪽에서 시선을 돌렸다.

“……형, 이 사람 괜찮은 걸까요?”

“글쎄.”

그사이 오영준의 상태를 살핀 양민철의 물음에, 고천수가 나지막이 답했다.

“대략 5분 내에 못 일어나면 두고 가야지.”

기다려 줄 시간은 없었다. 그걸 모르지 않을 양민철이 한숨을 쉬듯 입을 열었다.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괜히 형이 고생만 하신 건 아닐지…….”

벌떡.

그때였다.

오영준은 거짓말처럼 상체를 일으켰다.

“응?”

그리고 그 사실이 본인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것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 어, 어떻게 된 거죠?”

놀라운 일이었다. 정신을 차린 그를 보며 고천수를 제외한 모두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 반응을 보며, 오영준은 뭔가를 깨달은 듯 급하게 잘려 있는 자신의 팔로 시선을 가져갔다.

“자, 잘렸다…….”

팔은 어깨 아래로 깔끔하게 잘려 있었다. 멍하게 중얼거리던 그는 곧 고개를 들어 고천수를 올려다보았다.

“잘라…… 주셨군요.”

“네. 잠깐 기절하긴 했지만요.”

10번째에 팔을 깨끗이 잘라내기 위해서 일부러 손가락부터 잘랐더니, 심한 고통이 계속 누적됐는지 오영준은 의식을 잃었던 터다.

하지만 그건 충격으로 인한 단순한 기절이었다. 고천수가 미션을 완료했기 때문에 그에게 나타날 팔 절단 후유증이 뒤로 밀리면서, 당장은 이렇게 정신만 차리면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하하!”

아무것도 모르는 오영준은 그저 환하게 웃었다.

“됐습니다! 저 멀쩡해요!”

아직 감염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신체 활동이 자유롭다는 사실에 만족했는지 기쁜 표정으로 외쳤다.

‘용케 버텼네.’

고천수는 그런 그를 보면서 쓴웃음을 뱉었다.

솔직히 미션을 완료하기 전, 기절이 아니라 아예 맛이 가 버렸으면 그대로 비명횡사였다. 감염 증세가 나타났어도 마찬가지고.

미션에 걸린 건 고작해야 팔 절단 후유증 유예였으니까.

“고천수 씨! 정말 감사합니다!”

오영준이 바로 고천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고천수 씨 덕분입니다!”

“네, 근데 진정하세요.”

아직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고천수의 말에도 오영준은 흥분한 표정을 거두지 못했다.

“그래도 역시 감사를…….”

“쉿!”

순간 고천수는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올렸다. 오영준이 멈칫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동안, 고천수는 고개를 돌리며 귀를 기울였다.

쿵.

밖에서 소리가 나고 있었다. 고천수는 일행에게 전부 가만히 있으라고 손짓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설마…….’

그렇게 작은 창을 찾아 먼지를 닦고 밖을 내다본 고천수는, 순간 두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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