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60화 (60/224)

060. 양아치들 (3)

“괴물들이 쫙 깔려 있어요.”

남자는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는지 와이셔츠 단추를 몇 개 풀면서 말했다.

“땅에서 솟아난 가시넝쿨 같은 놈들인데, 지나가는 것들을 전부 붙잡아서 찢어 버려요.”

“가시넝쿨?”

여태 만난 적이 없던 몬스터 묘사에 고천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것들이 쫙 깔려 있다는 겁니까? 저 앞에?”

“네. 제가 멀리서 봤어요. 사람들이 그것들한테 잡혀서 죽는 걸.”

남자는 그때를 떠올린 듯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이대로 앞으로 가면 죽어요. 적어도 차가 있어야…….”

“무슨 소리입니까, 그건.”

설명이 부족했다. 고천수는 남자를 닦달했다.

“차가 있으면 몬스터가 피해 가기라도 하는 겁니까?”

“예? 예! 바로 그거예요!”

남자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지나가는 차는 공격하지 않았어요. 그냥 지나가게 나뒀다고요.”

고천수는 일행을 돌아보았다. 장서연이나 양민철도 갑작스러운 얘기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김하령만은 별 생각 없이 서 있는 듯 보였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귀찮게 됐네.’

고천수도 남자가 한 말에 살짝 동요했다. 차가 필요해서 이동 중이었는데, 도리어 이곳을 안전하게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차가 필요하다니 어불성설이었던 것이다.

“형님들 중에 지금 감 좀 오시는 분 있죠?”

이럴 땐 시청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가시넝쿨이라는 거, 어떤 놈입니까?”

-디텍터야.

기다렸다는 듯 답변이 돌아왔다.

“디텍터?”

-과속 탐지기 알지? 그 반대의 역할을 하는 놈이라고 보면 돼.

-느리면 죽여.

-거북이한텐 실로 무서운 놈이라 할 수 있지.

어이가 없는 설정이었다.

보통은 빨리 움직이는 것에 몬스터가 더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던가?

“그놈은 무슨 동체시력에 문제라도 있답니까?”

-설마.

-빠르면 못 보는 건 아니고, 그냥 체력 소모 안 하려는 거야.

-식충 식물 생각해 보셈.

대략적으로 이해는 했다. 먹이 하나 잡는 데 드는 에너지가 많이 드니까, 빠른 건 그냥 재낀다는 의미였다.

‘망할.’

그렇다면 차가 필요하긴 했다. 설령 느리게 가더라도 차가 있으면 몸을 보호할 수 있을 테니까.

“고천수, 어떡하지?”

장서연이 가만히 서 있는 고천수에게 물었다.

“앞에 그런 괴물이 있는 게 사실이면, 적어도 방비는 하고 가야 하잖아.”

“그러게요.”

들은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볼 수도 없었다. 남자가 거짓으로 보지도 않은 걸 떠들었다면 시청자들이 디텍터란 몬스터를 떠올리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그럼…….”

고천수는 남자에게 물었다.

“그 괴물이 목격된 건 우리가 가려고 했던 방향뿐입니까? 반대편이나 다른 쪽은요?”

“다른 쪽으로 가려는 거면 그만두세요.”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저는 여러 방향에서 온 사람들하고 같이 있었는데, 안전한 곳이 없다고 했어요. 반대편에도 가시넝쿨이 있다고 했고요. 사정은 어디든 비슷할 거예요.”

“흠.”

남자도 정확히 아는 건 아닌 듯했다. 하지만 고천수는 침음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반대편하고 이쪽엔 가시 넝쿨이 있는 거라면…….’

남은 건 북쪽하고 남쪽밖에 없었다.

북쪽은 수목원이 있는 곳이었다. 더 위로는 기찻길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쪽으로는 다시 못 가.’

엔티들이 많아서 위험한 것도 있지만, 기찻길 근처는 원래부터 안전한 구역은 아니었다. 기차가 달리고 나면 레일에 진동이 남기 마련이었다.

그 울림이 멀리서부터 몬스터를 불러들인다는 건 공포 게임에서 종종 등장하는 요소였다. 군인들도 피해야 하니 그쪽 방향은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남는 건 남쪽뿐.’

남쪽엔 블랙 타투가 있었다. 디텍터와 블랙 타투 중에 뭐가 더 위험하냐고 하면 당연히 디텍터였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몬스터와의 전투는 어떻게 될지 몰랐다.

“형, 그래도 저쪽으로 가는 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양민철이 남자가 가리켰던 방향을 돌아보며 말했다.

“형의 실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놈들도 운동 좀 했던 부류들이 몰려있는 거라서요. 바보 같아도 잔인하긴 하니까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 봤자 양아치지.”

고천수는 일단 양민철을 안심시키기로 했다.

“내가 셋을 처리했으니까 남은 건 열일곱뿐이야. 너하고 김하령, 장서연 씨가 도와준다면 크게 무리 없이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 무, 물론 형은 강하니까 어떻게든 해낼 거라고 보긴 하지만요.”

양민철은 그러면서도 살짝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신중하게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거였어요.”

“네 과거 때문에 괜히 내가 과잉 반응하는 건가 싶어서 걱정하는 거면, 그럴 필요는 없어.”

고천수는 블랙 타투에게 질까 봐 이렇게 이동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애초부터 맞붙어야 되면 맞붙을 계획이었어. 꼭 이런 문제가 아니더라도.”

“……그런가요?”

“그래.”

나지막이 답하며 고천수는 양민철의 어깨를 살짝 쥐었다 놓았다.

“그러니까 힘 빼고 있어. 긴장할 것 없으니까.”

의연한 고천수의 모습에 일행은 다소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여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대단하신 분인가 보네요. 처음 봤을 때부터 그런 것 같기는 했지만요.”

-이욜~. 천수~.

-힘 빼고 있어. 긴장할 것 없으니까.

-크. 위압감 지렸죠.

과잉 반응에 표정이 살짝 흔들린 고천수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어쨌든 할 수 없네요. 그쪽 말대로라면 그냥 동쪽으로 갈 수는 없으니까.”

이 구역을 벗어나려면 남쪽으로 가야 했다.

대전복합터미널이든 대전역이든 여기서 가려면 남동쪽으로 향해야 했다는 점에서, 어차피 남쪽으로 가긴 해야 했다.

그게 지금이 됐을 뿐.

“이름, 뭡니까?”

정보를 알려 준 사람의 이름 정도는 알아두는 것이 예의였다.

고천수의 물음에 남자는 화색이 되어 답했다.

“오영준이요!”

“예, 오영준 씨,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이 알아 가네요.”

고천수는 일행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오영준 씨도 잘 살아남으시길 바랄게요.”

“예? 자, 잠시만요!”

오영준이 고천수에게 따라붙으며 외쳤다.

“그럼 저는요? 같이 안 가나요?”

“…….”

고천수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래 드리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게 됐거든요.”

“그, 그게 무슨 말인지…….”

“손등!”

김하령이 오영준의 손등을 가리켰다. 그러자 오영준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흐악!”

그의 손등에 있는 상처가 덧난 것처럼 커져 있었다.

“이, 이게 뭐야!”

그는 손등을 움켜쥐며 뒤로 주춤거렸다. 고천수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거, 그냥 어디에 부딪혀서 난 상처는 아니죠?”

처음에는 고천수도 일반적인 상처로 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태가 나빠지는 것을 보며 눈치를 챘던 터였다.

-연기 잘하네, 천수.

-정보 다 얘기할 때까지는 기다리려고 말 안 하고.

상대방에게 절망적인 사실을 알려 주면 갑자기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돌발 상황을 막기 위해서, 고천수는 여태 모른 척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 이건……!”

오영준은 당황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자 김하령이 그의 옆에 붙어서 말했다.

“진정하세요. 흥분하면 상태가 더 나빠져요.”

“저, 전…….”

“심호흡하세요. 자, 천천히. 천천히요.”

김하령은 오영준이 하는 말은 아랑곳 않고 천천히 위아래로 손짓을 해 보였다.

“후, 후우.”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오영준은 숨을 천천히 몰아쉬려고 애쓰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공포가 가득 차 있었다.

“제, 제기랄.”

약간이나마 진정한 그는 억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싸우다 벽에 부딪혀서 생긴 줄 알았는데…….”

“하령아, 네가 보기엔 어때 보여.”

고천수는 그에게 확실히 확인시켜 주기 위해 물었다.

“일반적인 상처 같아?”

“아녀, 아녀.”

김하령은 크게 고개를 저었다.

“감염 증상 같아요. 완전 확실.”

‘같아요’와 ‘확실’을 같이 쓰는 이상한 어법은 무시하고, 고천수는 오영준에게 말했다.

“들으셨죠? 그 친구는 간호학과생이니까 저보다 더 잘 알 겁니다.”

“저, 저는……!”

“아이, 진정해요. 덧나는 거 좋아하는 거예요?”

또다시 흥분하려는 그를 김하령이 말렸다.

덕분에 그는 겨우 숨을 삼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

“싸, 싸우긴 했어요, 감염자들이랑. 근데 그냥 싸우다가 벽에 부딪혀서 상처가 난 줄 알았어요.”

“그렇게 추측만으로 괜찮다고 생각하시면 안 되죠.”

무턱대고 자가 진단을 내렸다간 남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었다. 지금은 고천수의 그룹이 그럴 뻔했다.

“어쨌거나 이제는 이해하시겠죠? 버리고 싶어서 버리고 가는 건 아닙니다.”

물론 애초부터 고천수는 필요 이상으로 인원을 늘릴 계획이 없었다. 그러니 그룹의 일원으로 받아 줄 생각도 없었던 게 사실이었다.

다만 일정 구간까지는 동행할 수 있었던 게, 지금은 그것조차 하지 못하게 됐을 뿐.

“도움은 감사했습니다. 필요하시면 저희가 가지고 있는 음식이라도 하나 드리겠습니다.”

“…….”

고천수의 제안에 오영준은 침묵했다. 그의 얼굴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저…….”

그렇게 오래잖아 다시 입을 연 오영준은 갑자기 팔뚝의 소매를 걷어붙였다.

“도, 도와주세요.”

“설마…….”

“자르면 될 거예요!”

고천수가 채 묻기도 전에 말을 이은 오영준은 드러난 자신의 맨팔을 붙잡았다.

“감염이라고 했죠? 역시 감염이야! 그러면 자르면 되잖아요! 도와주세요! 전력으로 힘이 되어드릴게요!”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모두가 각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흥미롭게 보고 있는 거라면 김하령뿐.

-이거 이거, 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네.

-팔을 자르겠다고? 여기서?

-이런 깡 보이는 엑스트라는 처음 보네.ㅋㅋㅋㅋ

얼핏 들으면 우스갯소리였지만, 고천수에게는 아니었다.

‘뭐? 잘라 달라고?’

그건 좀 예상외의 반응이었다.

‘엑스트라 맞나?’

팔을 자르는 건 엑스트라가 시도할 일은 아니었다. 그것도 감염됐다고 하자마자 팔을 자르려고 하고 있지 않은가.

심상찮은 캐릭터 조형에 숨을 삼키며, 고천수는 김하령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와 눈을 마주치더니 뭘 어떻게 이해한 건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오영준에게 말했다.

“그럼 죽어요.”

미래의 사인(死因)을 말해 주라고 알아들은 듯했다. 그녀는 오영준을 뱅글뱅글 돌면서 견해를 쏟아냈다.

“팔을 자르면 있잖아요? 과연 이후의 경과가 원하는 대로 돌아갈까요? 새로운 부상이 생기는 건데?”

“아, 아니…….”

“감염원이 들어가는 길이 따로 있나요. 절단된 혈관이 그대로 드러나면 거기로 들어가는 거지? 안 그래요? 괴물만 안 되면 그만이에요?”

김하령은 눈꺼풀도 깜박이지 않고 오영준을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마취제도 부족해요. 길거리에서 쇼크에 제대로 대비할 수도 없고요. 신체가 진정될 동안 기다려줘야 하는데 그럴 시간도 저희한텐 없죠. 부족하고 난감하고 모든 게 어수선해요.”

“아, 아…….”

“이 모든 걸 감안하고서도 해 보고 싶으신가요? 네? 어차피 시체나 다름없게 되더라도?”

오영준의 표정이 괴로움으로 일그러졌다. 이대로 놔두면 비명이라도 지를 참이었다.

“하령아.”

고천수는 나지막이 말했다.

“그만해. 더 하면 난감해질 것 같으니까.”

“앗……!”

김하령은 놀란 표정으로 옆으로 물러섰다.

“죄송해요, 천수님. 수술 동의를 받으시라는 줄 알고…….”

“부작용 설명을 그렇게까지 할 건 없잖아.”

말을 듣다가 쇼크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아무튼 그렇다고 하네요.”

고천수는 오영준에게 경고했다.

“잘라 드릴 수는 있는데, 물린 지도 좀 된 거면 죽음만 앞당기는 꼴일 겁니다. 그래도 하실 겁니까?”

모든 건 오영준의 선택에 달렸다. 고천수도 그 선택을 존중함으로써 보답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저, 저는…….”

오영준의 눈빛에 공포심이 깃들었다. 확실히 이런 얘기를 듣고도 흔들리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오영준도 보통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살고 싶어요! 아니, 뭐라도……! 뭐라도 할 거예요!”

그는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악물었다. 한이 깃든 표정이었다.

“그놈들……! 이건 다 그놈들 때문이니까……!”

오영준은 뜨거운 온도가 느껴지는 외침을 내뱉었다. 눈알에는 감염과 상관없는 핏발이 서렸다.

“억울해요! 절대 이대로 죽는 건 싫어요……!”

엄청났다. 적어도 생각만큼 징징이는 아니었다. 고천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오영준 씨. 진짜 그렇다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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