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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59화 (59/224)

059. 양아치들 (2)

“뭐야, 이게.”

다섯 명의 문신남들이 한 가로수 앞에 서 있었다.

“이 새끼 왜 이렇게 된 거야.”

그 중에서 흉터가 있는 한 남자의 말에 다른 문신남들이 답했다.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 같습니다.”

“다른 생존자 그룹인 것 같은데…….”

“두목한테 보고해야 할까요?”

흉터남은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래야겠지. 그 전에,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알아내야겠지만.”

수액이 마구 뿜어져 나오고 있는 가로수에는 장신의 남자가 죽은 채 묶여 있었다. 그는 블랙 타투의 조직원 중 하나였다.

“후.”

블랙 타투의 행동대장인 흉터남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입맛을 다셨다.

“대체 어떤 새끼야.”

장신남의 몸에는 도끼 흉터가 잔뜩 남아 있었다. 누군가 원한이라도 갖고 있지 않은 이상 이런 짓을 벌이기는 힘들었다.

아니면…….

“고문?”

누군가 장신남을 심문이라도 한 것일까.

“대장!”

순찰을 나갔던 또 다른 문신남 하나가 돌아와 보고했다.

“저기에 다른 시체가……!”

흉터남은 그가 안내해 준 곳으로 갔다가 그만 탄식을 흘렸다.

“이건 또 뭐야.”

거기에는 시체가 더 있었다. 둘은 블랙 타투의 조직원이고, 나머지 하나는 다른 그룹의 생존자로 보였다.

“이놈 그룹이 죽였을까요?”

문신남들의 물음에 흉터남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랬다면 동료의 시체를 이렇게 너저분하게 내버려두고 갔을 리 없었다. 제3자가 개입되어 있는 게 확실했다.

“골치 아프게 됐네.”

두목이 이 일을 알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었다. 감히 블랙 타투에 도전한 자가 있다며 노발대발할 것이 뻔했다.

흉터남은 손으로 자신의 볼을 쓸어내렸다. 두목이란 놈이 제 화를 못 이겨서 내놓았던 상처가 아직도 쓰라린 듯했다.

“죽은 놈들에게 아직 온기가 남아 있다. 근처에 있다는 얘기니까 샅샅이 찾아. 못 찾으면 우리 다 두목한테 미친 듯이 깨질 테니까.”

“네!”

블랙 타투의 인원들은 크게 외치며 그대로 사방에 흩어졌다.

흉터남은 시체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오늘 여럿 장례 치르겠군.”

***

그 시각, 멀지 않은 거리.

“주상진이라고 해요.”

양민철이 일행과 함께 걸으면서 자신이 있었던 그룹에 대한 정보를 털어놓았다.

“행동대장격인 사람이었고, 얼굴에 흉터가 있었어요.”

“흉터라…….”

“제가 있을 때는 그룹명이 딱히 없었으니까 아직도 그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다소 확신이 없는 표정이었지만 고천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냐. 있을걸?”

그도 그럴 게 양민철의 얼굴을 알고 있는 조무래기가 있지 않았던가. 그자보다 더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자라면 아직까지 그룹에 남아 있을 확률이 높았다.

“있으면 있는 대로 문제네요.”

양민철은 표정을 구겼다.

“대부분이 운동 좀 한 인간들이라서요. 저 때문에 형이 고생하게 되는 게 아닌가 모르겠어요.”

“아니야.”

어차피 양아치 같은 인간들과는 늘 조우할 수밖에 없었다. 고천수는 오히려 태연하게 답했다.

“네가 아니었어도 나한테 방해되는 놈이었어. 그러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정말요?”

“그래.”

고천수는 나머지 정보도 물었다.

“보니까 한꺼번에 다니지는 않는 것 같던데, 알려 줄 만한 그룹 특성이라도 있어?”

“음…….”

잠시 고민하던 양민철이 곧 입을 열었다.

“두목이 각기 따로 팀을 만들어서 그룹을 운영하는 걸 좋아했어요. 순찰대, 기동대, 호위대 이런 식으로요.”

“팀이라.”

장신남은 순찰대 중 하나로 보였다. 주상진이라는 놈은 여전히 행동대장을 맡고 있다면 기동대를 거느리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순찰대는 여럿이야? 우리가 만난 건 몇 안 되잖아.”

“네, 맞아요.”

고천수의 물음에 양민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목이 임무를 주면 그걸 수행하는 순찰대가 있고, 그냥 주변 망이나 보는 순찰대가 있는데요. 형한테 죽은 사람은…….”

“다른 그룹을 찾거나 약탈하는 거였겠지, 뭐.”

뻔했다.

“아무튼 너무 걱정하지 마. 이 정도 나한테 알려 줬으면 충분해.”

20명이라면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이제 17명 남았다. 따로따로 다니고 있다면 각개격파하면 그만이었다.

-천수야, 앞에.

갑자기 떠오른 채팅에 고천수는 정면을 살폈다.

“응? 저건…….”

5t급 화물차가 한 대 서 있었다.

“화물차잖아?”

장서연이 고천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너한테 죽은 놈이 말했던 그거 아냐?”

짐칸이 열려 있는 화물차를 보며 고천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한번 살펴보죠.”

주위는 조용했다. 사람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고천수는 천천히 화물차로 다가가 짐칸을 들여다보았다.

-비었는데.

-욱! 썩은 내!

-채팅창에 물 들어오는 소리 하네.

시청자들이 우스갯소리로 저들끼리 지껄이고 있었지만, 눈여겨볼 건 있었다.

“감염자들이 있었나?”

짐칸에는 핏자국이 가득했다. 살점도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걸로 봐서는 이곳에서 좀비가 생겼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천수 님!”

김하령의 외침에 고천수가 짐칸에서 몸을 돌렸다.

그러자 차량 전면으로 가 있던 김하령이 고개를 배꼼 내밀고 손짓했다.

“차 배 터졌어요!”

무슨 소리인가 하고 가본 고천수의 눈에 뜯겨나간 화물차의 보닛이 보였다. 안을 들여다보니 아주 엉망이었다.

“뭐야, 이거…….”

화물차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들이 억지로 보닛을 열려다가 박살내 버린 듯했다. 뭘 가져가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보닛 안을 걸레짝처럼 찢어서 헤집어놓기까지 했다.

‘화물차를 고치고 있다고 했던가…….’

블랙 타투의 순찰대원들이 부품을 찾아가려다가 이 지경을 만들어 놓았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고천수는 화물차의 옆으로 가 배터리가 있는 곳을 살폈다.

“이것도 뜯어갔네.”

배터리가 있어야 할 곳에 배터리가 없었다.

“배터리 찾다가 보닛 부숴먹은 건가.”

보닛 안은 박살만 나 있을 뿐 딱히 없어진 건 없었다. 고천수는 헛웃음을 흘렸다.

“어설픈 놈들만 잔뜩 몰려 있는 모양이네.”

하루 종일 방송만 보면서 살다 보면 화물차의 구조도 어느 정도는 알게 되는데 말이다.

-천수 눈빛.ㅋㅋㅋㅋ

-이까짓 화물차도 제대로 모르느냐는 표정.

-캬, 역시 방구석 잡학 사전은 모르는 게 없죠?

“예, 칭찬 감사합니다.”

어깨에 힘을 준 고천수는 화물차 바닥으로 들어가 밑을 살폈다. 양호했다. 그러고는 운전석으로 향했다. 피가 좀 튀어 있지만 역시나 딱히 훼손된 흔적은 없었다. 심지어 키까지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얘네, 진짜 뭐 한 거야?”

보닛 안이 원래는 어떻게 돼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 화물차는 전반적으로 깨끗했다.

키도 있으니 어쩌면 멀쩡하게 굴러갔을 차였는지도 몰랐다.

만약에 별 문제가 없는 차였다면, 블랙 타투의 인간들이 뻘짓을 저질렀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이 차, 그냥 감염자들한테 당한 건가?”

“일단은 그런 것 같네요.”

다가온 장서연의 물음에 답하며, 고천수는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그러고 난 뒤에 블랙 타투 놈들이 차에서 뭣 좀 뜯어간 것 같지만요.”

“그럼…….”

“쓸 수는 없는 차라는 거죠.”

무슨 메리호도 아니고 자기네들이 원래 가져왔던 차를 버리기가 싫어서 다른 멀쩡한 차에서 부품을 수집하고 있는 꼴이었다.

-머저리 같은 것들이 충성도만 높은 걸지도 모름.

-그냥 구해 오라니까 구해 오는 거지.ㅋㅋㅋㅋ

-이것이 1차원의 지능인가.

차라리 그런 거면 다행이었다. 두목의 정신세계가 이상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면 나중에 마주쳤을 때 어떤 귀찮은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이제 이동을…….”

그렇게 일행에게 말하던 고천수는 순간 멈칫했다. 저 앞에 골목에서 뭔가 옷깃이 튀어나왔던 게 보였던 것이다.

“잠깐.”

고천수는 일행에게 신호를 보이고는 천천히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스윽.

팔을 들어 올리자 도끼도 따라서 치켜세워졌다.

“자, 잠깐!”

그때, 골목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고천수는 그대로 굳은 채 눈앞에 나타난 이를 확인했다.

“응……?”

회사원이었다. 정확히는 장신남에게 죽었던 사람처럼 정장 차림의 남자였다.

“뭐…….”

인상을 찌푸리는 고천수를 보며 그는 손을 내저었다.

“잠시만요! 공격하지 마세요!”

갑자기 나타나 공격하지 말라니 고천수는 눈을 크게 떴다.

“누구신데요. 도끼 맞기 싫으시면 빨리 얘기하세요.”

“아, 아, 그게……!”

남자는 화물차를 가리켰다.

“저거 타고 이동 중이었던 사람입니다! 살아남아서 숨어 있었어요!”

“아?”

고천수는 여전히 도끼를 내리지 않은 채 물었다.

“그런데 왜 여기서 얼쩡거립니까? 수상하게.”

“얼쩡거린 게 아니에요! 다시 온 거예요! 다 설명하겠습니다! 제발 그것 좀…….”

남자의 호소에 고천수는 눈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당장의 위협 요소는 없어 보였다.

“민철아!”

그래도 확인은 필수였다.

“몸수색 좀 해 봐라.”

“네, 형!”

양민철이 달려와 남자의 몸을 뒤졌다. 그 와중에 고천수가 양민철에게 물었다.

“민철아, 이 남자는 네가 본 적 없는 사람이지?”

“네? 네, 본 적 없어요.”

문신도 없는 걸 보니 블랙 타투의 조직원은 아닌 듯 보였다. 정장을 입고 위장하고 있을 수도 있었지만, 그래서 얻는 실익은 딱히 없을 거라는 점에서 고천수는 도끼를 든 손을 내렸다.

“가, 감사합니다.”

손등의 작은 상처 외에는 신체 수색에서 아무런 것도 발견되지 않은 남자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고천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골목에도 다른 사람이 없었다. 여기에 있는 건 오로지 이 한 사람뿐이었다.

“딱 보고 알았어요. 그 사람들이랑은 다른 거. 학생도 있고 하니까요.”

“그 사람들?”

고천수가 물음표를 그리자 남자가 얼굴에 문신을 그리는 흉내를 냈다.

“왜, 그 사람들 있잖아요. 문신 가득한 남자들.”

“아.”

이 남자도 블랙 타투를 맞닥뜨린 적이 있는 듯했다.

“그 남자들이 뭔 짓이라도 저질렀습니까?”

“감염자들이 발생해서 쫓기고 있는데 도와주는 척 왔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저희 인원 머리를 다 깨 버리더라고요.”

고천수는 장신남이 살려 달라는 사람의 머리를 그대로 날려 버리던 걸 떠올렸다.

“제 직장 동료는 감염자들에게 쫓기다가 어딘가로 없어져 버렸어요. 저랑 비슷하게 입은 남자 못 보셨나요?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남자는 불과 몇 블록 거리에 동료가 죽어 있다는 걸 알지 못하는 듯했다.

“진정하세요. 돌아오셨다고 했는데, 그럼 여기서 일어난 일은 못 본 겁니까?”

블랙 타투의 인원들이 여기서 부품을 가지고 어느 방향으로 향했는지가 중요했다. 그 동선을 알고 있으면 적어도 서로 맞부딪히지 않게 노력이나마 해 볼 수 있었다.

싸우면 이길 자신이 있다고 해도, 고천수는 괜한 위험을 감수할 만용을 부릴 생각은 없었다.

“보긴…… 봤어요. 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좀 더 일찍 돌아왔거든요.”

“그랬군요.”

다행이었다. 고천수는 바로 정보를 캐물었다.

“그 문신남들이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저쪽……! 저쪽이에요!”

남자는 남쪽을 가리켰다. 동쪽으로 가고 있는 고천수 일행이 지날 곳은 아니었다.

“그렇군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천수는 나지막이 답하며 일행에게 손짓했다.

“출발.”

“어……?”

걸음을 옮기는 그들을 보며 남자는 급하게 소리쳤다.

“자, 잠시만요!”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저, 저는?”

“알아서 하셔야죠.”

일행을 더 늘릴 여유는 없었다. 고천수가 딱딱하게 답하자 남자는 블랙 타투의 조직원들이 사라졌다는 방향을 가리켰다.

“그럼 저기로도 안 가시나요?”

그건 워낙에 황당한 소리였기에 고천수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저기로?”

조직원들이 간 방향으로 가면 마주칠 확률이 높았다. 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차, 필요하잖아요.”

남자는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앞은 차 없으면 못 넘어가요.”

차를 구하기 위해서 이쪽으로 향하는 건데, 그게 없으면 못 넘어간다니 이런 개소리가 또 없었다.

고천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뭔 소리입니까, 그게?”

그리고 그는 꽤나 충격적인 답변을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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