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 양아치들 (1)
척.
고천수는 도끼를 사선으로 꺾어 들었다.
“안 꺼진 걸 후회하게 해 줘야지.”
적은 고작 셋이었다. 뒤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고천수가 상대하지 못할 수가 아니었다.
“아나, 크크큭.”
장신남은 기괴하게 웃어 보였다.
“정신 못 차리는 건 양민철이나 너나 똑같네. 하긴 그러니까 같이 어울려 다니고 있는 거겠지?”
그는 쇠파이프를 치켜들고 위협적으로 휘둘러 댔다.
“야, 민철아.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서 셋까지만 셀게.”
자비로운 척하는 그의 입에서 천천히 숫자가 새어나왔다.
“하나.”
고천수는 도끼를 꽉 붙잡았다.
“둘.”
양민철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셋…….”
의외로 맥 빠지는 소리로 숫자를 전부 센 장신남이 빠르게 걸어왔다. 그가 팔을 들어 올리자 쇠파이프가 하늘을 향해 높게 세워졌다.
깡!
그대로 궤적이 그어졌다. 하지만 장신남이 쇠파이프를 휘두른 것은 아니었다.
“뭣……!”
고천수의 도끼가 먼저 쇠파이프를 때린 것이었다.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장신남에게 달려들어 고천수가 한 번 더 도끼를 휘둘렀다.
콰직!
“끄아악!”
팔뚝이 베인 장신남이 쇠파이프를 놓치고 뒤로 주춤거렸다.
“뭐, 뭐야!”
“이 자식!”
뒤에 서 있던 문신남들이 일제히 달려왔다. 고천수는 이번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마주 달려서 도끼를 크게 휘둘렀다.
까앙!
쇠파이프를 들어 공격을 막아낸 둘이 힘에 밀려 비틀거렸다. 고천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그들의 팔뚝에 횡으로 도끼를 휘둘렀다.
촤악!
“끅!”
“끄악!”
문신남들은 장신남과 마찬가지로 쇠파이프를 놓치고 뒤로 넘어졌다. 고천수는 다시 장신남에게 걸어갔다.
“이, 이런 시발……!”
장신남은 바닥에 떨어뜨린 쇠파이프에 손을 가져가고 있었다.
“뭐라고? 시발?”
고천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장신남의 어깨를 도끼로 찍어 버렸다.
“꺽?”
송곳에 찔린 벌레처럼 움찔거린 장신남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옆으로 넘어졌다.
“꺽, 끄억.”
“농담하냐.”
고천수는 신음을 흘리며 몸을 들썩거리는 장신남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존나 대단한 척하더니 뭐 하는 거야.”
몇 번 휘두르지도 않았다. 그런데 벌써 나가떨어진 것이었다.
“일어나.”
고천수는 장신남을 툭툭 발로 쳐 댔다.
“일어나. 바닥 청소하지 말고.”
-ㅋㅋㅋㅋ 바닥 청소.
-이 참에 잡부 고용 어떰.
잡부로 쓰기에도 너무 모자라다고 고천수가 중얼거리는 사이, 장신남은 바닥을 기어서 쇠파이프를 붙잡았다.
훙!
그러고는 그 쇠파이프를 어설프게 휘두르며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다, 닥쳐! 이 개새끼야!”
그 모습을 보며 고천수는 한숨을 쉬었다.
“이런 새끼들은 꼭 닥치래. 내가 닥치면 솟아날 구멍이라도 생기나?”
“다물라고!”
장신남은 흥분한 표정으로 고천수를 노려보았다.
“이 개새끼! 우리가 누군지 알고! 너 지금 엄청 큰 실수하는 거야!”
“넌 내가 누군지 알고?”
이 게임의 유일한 주인공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양아치 새끼가 우는 소리는 아주 수준급이네. 덤비려면 덤벼. 그거 쇠파이프가 아니라 깃발이냐? 들고 휘적거리고만 있게.”
“이, 이야아아아아!”
모욕을 견디지 못한 장신남이 다시 달려들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어지는 쇠파이프를 피해 몸을 회전시킨 고천수는, 그대로 도끼를 휘둘러 장신남의 허벅지를 찍어 버렸다.
“끄악!”
“아직이야.”
고천수는 쓰러지려는 장신남을 굳이 발로 차 버렸다.
땡그랑!
장신남은 쇠파이프를 놓치며 아주 성대하게 바닥에 넘어졌다.
“이, 이 새끼!”
“죽어어어어!”
그사이 정신을 차린 문신남들이 다시 쇠파이프를 주워들고 고천수에게 달려들었다.
-천수야, 이번에도 봐줄 거야?
아니, 그렇지 않았다.
콰직!
고천수는 아주 세게 도끼를 휘둘러, 앞서 오던 문신남 1의 가슴을 찍어 버렸다.
“컥?”
가슴이 파인 그가 기우뚱하며 문신남 2를 덮쳤다.
“끄악!”
같이 넘어진 문신남 2가 놀라며 버둥거렸다.
“이, 이 시발!”
“욕 좀 그만해.”
고천수는 밑에 깔려 있는 문신남 2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존나 약해 보이잖아.”
“자, 잠깐…….”
콰직!
그의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고천수는 피 묻은 도끼를 빼서 휘적거리며 숨을 크게 뱉어냈다.
“후.”
썩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피로는 확실히 가셨다. 스트레스 덩어리들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제, 젠장……!”
모든 걸 지켜본 장신남이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무척이나 추한 모습이었기에 고천수는 그에게 다가가 그러지 말라고 일러 주었다.
“야, 그러지 마. 못나 보여.”
“흐, 흐아악!”
장신남은 기겁한 얼굴로 소리쳤다.
“꺼져! 오지 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분명히 꺼져 주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러지 말라고 한 건 분명히 장신남 쪽이었다.
“네가 바란 게 이거 아니었어?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흐아아아아! 저리 가라고!”
난감하게 지켜보고 있자니 김하령이 오종종 다가와 입을 열었다.
“저, 천수 님.”
“왜.”
“이 사람은 환자로 봐야 할까요, 아닐까요. 나쁜 사람이니까 참 아리송하네요.”
별 게 다 아리송했다. 고천수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답했다.
“글쎄, 쓰레기니까 환자로 전직하지는 못하지 않을까?”
그 모습을 보며 장신남이 숨을 헐떡이며 탄식했다.
“미, 미친놈들…….”
그제야 자신이 건들면 안 되는 인간을 건드렸다는 사실을 알아챈 듯, 장신남은 혼란스럽게 시선을 돌리다가 양민철을 보았다.
“미, 민철…….”
그는 양민철을 급하게 불렀다.
“민철아! 뭐 해!”
양민철이 놀라며 시선을 마주치자 장신남은 동아줄이라도 잡듯이 호소했다.
“우리 아는 사이잖아! 이 미친놈 좀 말려 봐! 빨리!”
“…….”
하지만 양민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혐오하는 눈길로 장신남을 내려다보았다.
“어……?”
장신남은 자신 위에 그림자가 졌다는 것을 알아채고 시선을 천천히 돌렸다.
거기에는 피 묻은 도끼를 들고 눈을 크게 뜨고 서 있는 고천수가 있었다.
“흐아아아! 흐아아아아!”
“닥쳐 봐, 좀.”
고천수는 발로 장신남의 얼굴을 짓눌렀다.
“나도 닥치라고 해서 미안하긴 한데, 좀 닥치라고. 주위에 몬스터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이렇게 소란을 떠는 거야?”
다행히도 주변에 보이는 몬스터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신남을 계속 떠들게 놔둘 수도 없었다.
고천수는 양민철을 바라보았다.
“민철아.”
“…….”
“민철아?”
“……네.”
마침내 입을 연 양민철을 향해 고천수가 나지막이 물었다.
“이놈 너랑 무슨 사이냐?”
시청자들이 딱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 보면 네임드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양민철과 악연이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게…….”
“괜찮으니까 얘기해. 오히려 숨기다가 대화 꼬이게 만들지 말고.”
그러자 양민철은 침을 꼴깍 한 번 삼키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제가 한때 어울려 다녔던 사람들 중 하나예요.”
“어울려?”
“네. 그, 그런데 잠깐이었어요!”
양민철은 고천수가 오해할 것을 우려한 듯 흥분해서 소리쳤다.
“나중에 좋은 사람들 만나서 학교에 다시 돌아갔어요! 정말로 잠깐이었어요!”
“좋은 사람들이라.”
고천수는 예전에 양민철이 해 줬던 말을 떠올렸다.
“네가 살 수 있게 도와줬다는 그 사람들?”
“네, 네!”
“근데 이 녀석 꼬락서니를 보니까 널 가만히 내버려뒀을 것 같진 않은데?”
그러자 양민철이 눈을 크게 뜨며 해명했다.
“절 도와줬다는 사람들 친척 중에 경찰도 있었거든요! 귀찮아서 절 내버려뒀던 거예요!”
경찰이라. 고천수는 괜히 허영웅을 한 번 떠올리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럼…….”
그러면서 장신남의 얼굴을 더 세게 짓이겼다.
“이젠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까, 껄떡거렸다 이건가?”
“자, 잠깐…….”
장신남이 고통스러운 듯 표정을 일그러뜨리면서 말했다.
“잠깐 진정하고 얘기를…….”
“진정하고 자시고, 방금 민철이가 한 말. 사실이냐?”
“그건…….”
꾸득!
“사, 사실이야! 사실이라그!”
발음까지 뭉개지는 장신남의 절규를 들으며 고천수는 도끼를 치켜들었다.
“형님들, 한 번에 단죄한다. 아니다, 십도끼를 만들어서 단죄한다. 둘 중에 골라 주십쇼.”
-이대로 버려 둔다.
-안 댐. 소리 지름.
-그럼 입을 박살내 놓자.
질문과는 다른 대답이었다. 고천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 형님들. 너무 잔인하시네요. 제가 묻는 거에만 좀 답해 주시겠어요?”
-아니.ㅋㅋㅋㅋ 자기가 한 짓은 생각도 않고.
-의견 줘도 뭐라 그래.ㅋㅋㅋㅋㅋ
그때, 장서연이 다가와 고천수에게 물었다.
“천수야, 혹시 죽일 거야?”
“네, 아무래도 그래야겠죠?”
“죽이기 전에 몇 가지 좀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장서연도 일행이 위협받은 것에 어지간히 화난 표정이었다. 고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 완전 찬성입니다.”
***
“뭐, 뭐 하는 거야! 살려 줘!”
옷가지로 근처의 가로수에 묶인 장신남이 몸을 떨며 소리쳤다. 고천수는 그런 그를 보며 검지를 입술 위에 올렸다.
“목소리 좀 낮추자. 뿌리라도 올라오면 어떡하려고 그래.”
“뭐, 뭐?”
“너도 그 괴물 알 거 아냐. 몰라?”
엔티.
이 근처에서 활동했다면 모를 수가 없었다. 장신남은 겁먹은 표정으로 눈알을 대록대록 굴렸다.
“해, 해가 떠 있으니까 괜찮을 텐데.”
“어, 알긴 아네. 근데 땅 아래에서 뿌리는 꿈틀거리고 있는 거 알지?”
고천수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가까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발버둥 치면 그 뿌리들 땅 위로 올라온다? 그건 알아?”
그러자 장신남이 놀란 표정으로 굳어 버렸다. 물론 거짓말이었지만 고천수는 뻔뻔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살고 싶으면 제대로 불어. 너 부상 있어서 체액 빨리기도 쉬워 보이니까.”
“사, 살려…….”
“그 사람도 그랬는데.”
고천수는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셔츠 입고 죽은, 그 회사원 같은 사람도 살려 달라고 했는데.”
그랬는데 장신남이 인정사정도 없이 머리를 깨 버리지 않았던가. 확인해 봤더니 그 회사원은 그냥 죽어 있었다. 김하령이 치료를 해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너희 그룹은 여기에 있는 생존자들 다 죽이고 돌아다니는 거야?”
“아니, 그건…….”
“일단 물어볼게. 너희, 그룹명은 뭐고 총 몇 명이나 있어.”
규모부터 파악할 셈이었다. 문신남들이 돌아가지 않으면 찾으러 나올 인원이 얼마나 있나 확인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우리는…….”
“빠르게 답해 줘.”
고천수는 도끼로 엔티의 줄기를 내리 찍으면서 말했다.
“이 괴물, 부상 생기면 양분을 빠르게 필요로 하거든.”
“뭐, 뭐 하는 거야!”
“빨리.”
도끼질을 몇 번 더 하자 장신남이 기겁했다.
“하, 하지 마!”
“하지 마? 그럼 너한테 할까?”
“흐아악!”
장신남을 대하는 고천수를 보며 일행은 옆에서 서로를 돌아보았다.
“천수, 완전 천직 찾은 거 같은데.”
“음…… 저 때문에.”
“치료해 주고 협박해도 되지 않을까요? 죄수들한테 원래 그러던데.”
그사이에 장신남이 고천수에게 토로했다.
“마, 말할게! 말할게, 살려 줘!”
이미 출혈이 너무 심했다. 이대로면 죽을 거라는 공포감에 질린 장신남은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로 고천수의 질문에 답했다.
“그, 그룹명은 ‘블랙 타투’야. 인원은 스무 명이고.”
“너랑 죽은 놈들까지 포함해서?”
“그래. 그러니까 살려 줘.”
장신남이 숨을 헐떡거렸다.
“이것도 풀어 줘. 너한테 얘기해서 난 어차피 못 돌아가.”
“그건 알았어. 알겠으니까 너희 목적이나 얘기해 봐.”
“딱히 그런 건 없어.”
장신남은 한숨을 쉬듯 말했다.
“그냥 우리가 타고 온 화물차가 전복돼서 정비 중일 뿐이야. 곧 안전지대로 이동할 거라고.”
“얘기만 들으면 건전해 보이네.”
솔직히 이런 놈들이 어디로 가든 상관없지만, 동선이 겹치는 건 상당히 귀찮은 일이었다.
“좋아. 덕분에 기본적인 정보는 얻었네. 고맙다.”
고천수는 장신남의 얼굴을 툭툭 치며 돌아섰다. 나머지도 그를 따라나섰다.
“어?”
장신남은 놀란 눈으로 입을 열었다.
“자, 잠깐! 뭐야! 두고 가는 거야?”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장신남은 절박하게 소리쳤다.
“야!”
“아, 맞다.”
고천수는 다시 뒤돌아 도끼를 치켜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