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 간호학과생 김하령 (2)
-미친. 제정신 아닌가 봐.
-무섭다.
-아, 근데 얘 설마…….
굳어 있는 고천수의 눈앞으로 채팅이 빠르게 지나갔다.
-야, 천수야. 얘 걔다.
갑자기 걔라고 해도 알 리가 없었다. 고천수는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형님들.”
스포 방지 차원에서 시청자들이 정보를 모두 푸는 것을 꺼리는 건 고천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청자와 스트리머는 상생의 관계였다.
무조건 지켜보기만 하는 건 도리에 맞지 않았다.
“가끔씩은 훈수 좀 두세요, 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지금 상황에서 뭘 알아 두면 좋은지, 함께 스토리를 진행하기 위해 조금은 오지랖을 부리며 알려 줘도 괜찮았다.
“얘, 누군데요.”
그러자 잠시 얼어 있던 채팅창에 하나의 말이 올라왔다.
-사실 모름.
장난 같지도 않은 말에 고천수의 얼굴이 완전히 찌그러졌다.
-야. ㅋㅋㅋㅋ 화내지 마.
-단역은 얼굴이 바뀌어서 나올 때도 있는데 어떻게 기억해.
-그럼 한번 떠봐.
그때, 한 채팅이 고천수에게 조언을 던졌다.
-알겠다고, 도와달라고 그랬는데 약국으로 가면…… 내가 알기론 거의 서포터야.
아니면?
-다른 데로 말하면 그냥 걸러. 귀찮아져.
그 말에 고천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모 아니면 도라니 끔찍했다.
‘하지만…….’
김하령이 진짜 도움이 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고천수는 그냥 넘겨 버릴 수는 없었다.
‘양민철은 필요해.’
헌신적인 동료는 도움이 된다.
혼자서 위기를 탈출해서 돌아왔다는 점에서 능력도 뛰어났다.
‘어차피 아니라고 해도 내가 끝장낼 수 있어.’
그 정도의 능력은 있었다. 고천수는 생각 끝에 입을 열었다.
“도와주겠다고요? 계속 살 수 있게?”
“네.”
김하령은 고개를 까딱이더니 갑자기 손톱을 깨물며 또다시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살리려면 약품이 필요해요. 지금 이 상태에서는 필요한 것들이 꽤 있거든요.”
“그걸 그냥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는 겁니까?”
“의심.”
김하령은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굉장하다. 왜 못 믿죠?”
“못 믿는 게 아니라…….”
“저 간호사복도 입고 있는데.”
“야.”
지켜보던 장서연이 입을 열었다.
“너 같으면 너 믿을 수 있겠냐? 갑자기 이렇게 나타나 놓고서는.”
“갑자기 나타난 건 그쪽이에요.”
김하령은 뒤로 손을 뻗었다.
“제가 먼저 저기 들어가 있었어요. 데스크 아래도 뭐 있나 해서 들어갔던 거고요. 그쪽이 나중에 온 거예요.”
“아니, 그건 그런데…….”
“그래서, 시간 더 끄실 거예요?”
김하령은 아예 도끼날에 자신의 볼을 갖다 댔다.
“보니까 저한테 약간 혹하신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천수는 등이 점점 축축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방법은 하나였다.
“안내하세요.”
고천수는 도끼를 치우며 고개를 까딱했다.
“필요한 데로 앞장서서 안내하라고요.”
장서연이 놀란 표정으로 고천수를 쳐다보았지만, 이미 결정은 내렸다. 고천수는 김하령이 지나갈 수 있게 길을 터 줬다.
“오, 현명한 선택이에요.”
그러자 계단을 쭉 타고 내려가는 김하령을 보며 장서연이 한숨을 쉬었다.
“진짜 괜찮을지…….”
어차피 양민철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고천수는 장서연에게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김하령을 따라 내려갔다.
***
“패혈증 오면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길을 가는 도중 김하령이 또 저 좋을 대로 떠들었다.
“패혈증은 상처로 인해서 감염이 일어나서 면역 반응이 심하게 오는 거예요.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
“걸리면 고열 생기고 심박수 올라가고 호흡량도 증가해요.”
김하령은 뒤로 돌아 걸으면서 말없이 외발 수레로 양민철을 옮기고 있는 고천수를 바라보았다.
“어땠나요? 양민철 씨 상태는, 그랬나요?”
벌써 양민철의 이름표를 확인한 듯했다. 고천수는 김하령에게 놀아나지 않고 반문했다.
“그건 그쪽이 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지금 민철이가 패혈증 같다는 건지?”
“글쎄요.”
김하령은 다시 앞으로 몸을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옆에서 걷고 있던 장서연은 그게 못마땅했는지 고천수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허튼짓하는 거 같으면 나한테 맡겨. 내가 끝장낼게.”
꽤나 살벌한 선언이었지만 고천수는 한숨만 쉬었다.
‘허튼짓할 시간이나 있을는지.’
딱 봐도 양민철의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안 그래도 멀쩡하지 못한 방법으로 옮기고 있기 때문에 우려가 될 수밖에 없었다.
-환자 이렇게 옮기게 놔두는 것부터가 탈락 아님?
-그래서 ‘거의’ 서포터라고 했나 봄.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보는 사이에 김하령이 어딘가에서 걸음을 멈췄다.
‘약국……!’
고천수는 도착한 곳의 간판을 보고 한시름을 놓았다.
‘긴장해서 위장병 걸리는 줄 알았네.’
물어봐도 목적지를 제대로 얘기 안 하기에 그냥 때려눕혀야 하나 고민했었다.
“데려오세요.”
김하령이 먼저 약국 안으로 들어갔다. 고천수는 양민철을 업고 장서연과 함께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쾅! 콰당탕!
김하령은 요란스레 뭔가를 찾으며 돌아다녔다. 그러더니 주사기 하나를 꺼내와 자신의 품 안에 있던 병에 꽂아 넣었다.
“그건 뭡니까?”
약국에서 찾은 게 아니었다. 고천수가 묻자 김하령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항생제요.”
“그럼 이미 가지고 있던 겁니까?”
“네. 근데 주사기는 안 들고 왔었으니까요.”
김하령은 고천수에게 손짓했다.
“거기 좀 눕혀 주시겠어요?”
고천수가 양민철을 긴 의자에 눕혀 놓자 김하령이 주사기를 가지고 바로 옆에 자리했다.
“아직도 살아 있어. 대단해요.”
김하령은 마치 감상하듯 양민철을 내려다보더니, 한손으로 그의 몸을 살짝 훑었다.
“야……!”
장서연이 놀라며 나서려고 했다.
고천수는 바로 그녀를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기다리세요.”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의식을 잃은 양민철을 치료할 방법이 둘에게는 없었다. 완전히 돌팔이가 아니라면, 고천수는 김하령이 보이는 돌발 행동쯤은 애교로 봐줄 수 있었다.
-자기 몸에 저랬으면 기겁했을 거면서. ㅋㅋ
-양민철도 결국 남 아님?
-빨리 치료 못 하면 어차피 짐만 됨. 뭐든 옳은 선택임.
“형님들, 너무 호도하지 마십쇼.”
고천수는 양민철을 아끼는 마음이 분명히 있었다. 이성적인 판단이 우선이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양민철을 기계적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았다.
“전 인성 빼면 시체니까.”
-뭐래.ㅋㅋㅋㅋㅋ
고천수가 시청자들의 웃음을 사는 사이, 김하령은 주사를 놓고 양민철의 옷을 벗겼다.
“와.”
부상에 덮여 있는 거적을 발견한 김하령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박이네요.”
그녀는 거적을 벗겨내더니 안쪽의 부상을 확인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예요? 괴물한테 당한 건가?”
“설명하자면 깁니다.”
고천수의 대답에 김하령은 어디선가 소독약을 찾아서 가져오더니 그대로 양민철의 부상에 부어 버렸다.
“아…….”
왠지 아쉬워하는 표정을 보고 고천수는 한숨을 쉬었다.
“설마 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겠죠?”
“앗. 정답이에요.”
김하령이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양민철을 보며 시무룩한 기색을 보였다.
“원래 으아아악! 하고 소리 지르는 맛이 있는 건데…….”
“맛은 나중에 찾으시고 치료에 집중을 부탁드립니다.”
김하령은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고천수는 그런 그녀를 보며 흥분하진 않았다.
‘뻔하니까.’
시청자의 말대로 김하령이 서포터라면, 성격 같은 건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살려낼 수만 있으면 돼.’
능력이 우선이었다. 어차피 일반적인 치료 과정 따위는 고천수도 잘 알지 못했다. 상식에서 벗어나는 정도만 아니라면,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했다.
“아, 맞다.”
김하령은 뭔가 떠오른 듯 약국에 설치되어 있는 기기를 이용해 양민철의 혈압을 측정했다.
“헐. 역시.”
기계에 떠 있는 수치를 함께 보며 고천수가 인상을 구겼다.
‘낮은 것 같은데.’
군인이 될 때 혈압 측정 같은 건 고천수도 다 해 봤다. 지금 떠 있는 수치는 고천수가 보기에도 낮아 보였다.
“수액…… 필요할 것 같은데. 승압제가 필요하려나…….”
김하령이 뭐라고 중얼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양민철의 손에도 소독약을 뿌리더니 붕대를 가져와 말기 시작했다.
그다음은 어깨였다.
똑같이 소독을 진행한 그녀는 품 안에서 의료용 도구를 꺼내 부상 부위를 꿰매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마치고 붕대를 감은 김하령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고천수에게 말했다.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와서?”
고천수는 한숨과 함께 김하령을 노려봤다.
“지금 장난치시는 건 아니겠죠?”
“걱정 마세요. 안 죽을 거예요.”
갑자기 말을 바꾼 김하령이 약국 데스크 안쪽에서 수액과 그걸 놓을 수 있는 기구를 꺼내들었다.
“이거 원래 여기에 있으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혹시나 했어요. 뭐라고 안 그러실 거면 사용할게요. 네?”
“네. 사용하세요.”
애초에 그딴 걸 누가 지적하겠는가. 고천수가 나지막이 말하자 김하령은 살짝 밝아진 표정으로 양민철에게 수액을 놓기 시작했다.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거예요.”
김하령은 양민철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대며 말했다.
“얘가 살지 죽을지는 이제 운명에 달렸다고 보시면 돼요.”
참으로 희망적인 얘기였다.
“……괜찮을까?”
장서연이 옆에서 물었다. 고천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다.
***
바깥에서는 해가 높게 떠올랐다.
한 줄기 햇살이 약국 안에 들어올 무렵, 작은 신음이 터졌다.
“아.”
그건 고천수, 장서연, 김하령 셋 중에 한 명이 낸 게 아니었다.
-야!
-와, 개쩜.ㅋㅋㅋㅋ
-진짜 깼다.
양민철이 눈꺼풀을 살짝 들어 올리며 옅은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양민철……!”
고천수는 바로 양민철의 상태를 살피며 탄식을 뱉었다.
“살았구나, 너!”
“형……?”
“야!”
장서연도 큰 한숨과 함께 옆에서 한 마디 거들었다.
“진짜 죽는 거 아닌가 했잖아!”
-훈훈.
-동료의 생환 축하.
분위기는 금방 화기애애해졌다. 고천수는 점점 정신을 차리고 있는 양민철을 보며 한시름을 놓았다.
“으, 음…….”
양민철은 고천수의 부축을 받고 몸을 살짝 일으키면서 중얼거렸다.
“여기는 어디예요?”
“약국.”
고천수의 대답을 들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던 양민철이 순간 흠칫했다.
“뭐, 뭐죠?”
양민철의 시선은 김하령을 향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예요?”
“김하령이에요.”
본인이 직접 끼어들며 대답했다.
“제가 살렸어요. 쇼크 와서 위험했었는데 제가 잘 처리해서요. 감사 인사는 그다지 하지 않아도 돼요. 해야 할 일을 한 거니까.”
“아, 음…….”
양민철은 고천수를 돌아보았다. 고천수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어 주었다.
“감사 인사나 해. 그거면 충분한 걸로 보이니까.”
“아, 가, 감사합니다.”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양민철은 김하령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인사를 받은 김하령은 무척이나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결과가 나쁘진 않네.’
고천수는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데려가도 나쁘지 않을라나?’
조금 이상해 보이긴 했지만, 아니, 실제로 이상한 건 맞지만 그냥 환자에 대한 요상한 집착이 있는 듯했다.
‘하지만…….’
이상한 성격의 캐릭터의 경우, 주도권을 넘겨주면 항상 일이 피곤하게 돼 있었다. 고천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좋아. 민철이도 깨어났으니까 이제 장소를 좀 옮겨 보자.”
약국은 쉬기에 썩 좋은 장소는 아니었다. 고천수는 유리창 밖을 가리켰다.
“민철아. 넌 저거 타면 된다. 내가 밀어줄게.”
“저 저걸로 태워가지고 온 거예요……?”
양민철이 놀라는 사이에 고천수는 등을 내밀었다.
“장서연 씨, 민철이 좀 부축해서 제 등에 업혀 주세요.”
그렇게 고천수 일행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김하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 김하령 씨.”
고천수가 양민철을 업은 채로 돌아보자, 김하령이 고개를 갸웃했다.
“짧지만 고마웠습니다.”
고천수의 눈짓에 장서연이 배낭에서 식료품 몇 개를 꺼내서 건네주었다.
그게 답례의 전부였다.
“그럼.”
그걸로 끝이었다. 떠나가는 고천수 일행을, 김하령은 쓸쓸하게 내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