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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49화 (49/224)

049. 간호학과생 김하령 (1)

“아 씨, 이거……!”

양민철은 어깨에 뭔가를 두르고 있었다. 고천수는 그 거적을 걷어내고 부상을 자세히 확인했다.

“이걸 숨기면 어떻게 하냐!”

뭔가에 깊게 파인 부상이었다. 피가 고여 있는 것을 보고 고천수는 한숨을 흘렸다.

‘손만 엉망인 줄 알았더니.’

어떤 할아범과 격렬하게 치고받고 싸우다가 난 상처라고 했다. 그것만 해도 큰 부상이긴 했지만, 숨기고 있던 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빨리 치료해야겠어.”

장서연이 함께 양민철의 부상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건 고천수도 알고 있었다. 다만 병원에 갈 일이 걱정일 뿐이었다.

“장서연 씨, 이 근처에 있는 병원 혹시 아십니까? 가장 가까운 곳으로요.”

“나도 잘은 몰라.”

하지만 장서연은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수목원 앞쪽에는 그냥 공연장이나 큰 길만 있는 걸로 알고 있어. 치료할 곳을 찾으려면 조금은 이동해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고천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 창고 같은 곳을 발견했다.

쾅!

자물쇠로 잠겨 있기에 조금 전에 얻은 도끼로 한 번 내리쳤다.

‘뭐야, 이건.’

빗맞은 자물쇠에 붉은색 자국이 생겼지만 마음이 급한 고천수는 일단 다시 도끼를 휘둘렀다.

콰직!

자물쇠가 박살났다. 고천수는 안으로 들어가 외발 수레를 하나 찾아냈다.

“장서연 씨!”

곧장 외발 수레를 끌고 가자 장서연이 별 미친놈을 다 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걸로 옮기려고?”

“네.”

업고 뛰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체력 소모가 클 게 분명했다. 안 그래도 전투를 치르느라 진이 다 빠졌는데 병원을 찾는 데만 체력을 다 쓴다면 본말전도였다.

“얼른 태워요. 가야 하니까.”

“아니…….”

장서연은 당황하면서도 별 수 없는 걸 알았는지 한숨과 함께 양민철을 들어올렸다.

“고천수. 너랑 나는 진짜 벌 받을 거야.”

덜컹.

양민철이 수레 위에 올려졌다.

“양민철.”

고천수가 한 번 불러보았지만 양민철은 반응이 없었다. 보니까 숨은 쉬고 있는 게 분명한데, 의식이 없었다.

‘쇼크 같은데.’

이쪽으로는 고천수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일단 수레를 끄는 것뿐이었다.

덜커덩덜커덩.

균형이 좀 불안하긴 했지만 밀고 달리는 데는 이상 없었다. 고천수는 수레를 밀며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외쳤다.

“장서연 씨! 앞장서서 길 좀 안내해요!”

양민철만큼 감각이 있지는 않았지만 장서연이 먼저 앞으로 뛰어가 길을 봐주는 것만 해도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장서연은 몇 미터 앞에서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고천수에게 손짓하는 행동을 반복했다.

‘아무도 없나.’

수목원 바깥으로 나오자 고천수의 눈에 보인 건 정말로 커다란 도로와 공연장만 가득한 블록들이었다. 시야가 탁 트인 건 좋았지만, 이렇게 휑한 환경과 맞닥뜨리게 된 것에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고천수!”

멍 때리고 있는 사이 저 멀리 앞서간 장서연이 크게 손짓했다. 고천수는 얼른 손수레를 끌고 가 그 앞에 멈춰 섰다.

“의원……인가.”

눈앞의 건물 2층에 의원이 하나 있었다. 쓰는 층은 하나인 주제에 입간판에 세워 놓은 진료 과목은 몇 개나 되는 의원이었다.

“이런 데, 괜찮은 겁니까?”

“찬밥 더운 밥 가릴 처지야? 민철이 안 업을 거면 내가 업을게.”

고천수는 얼른 손을 저으며 자신의 배낭을 장서연에게 넘기고 양민철을 들쳐 멨다.

“괜히 또 계단에서 놓쳤다간 큰일 나니까요. 망이나 봐 주세요.”

장서연이 부탁을 받고 먼저 계단을 올라갔다. 몬스터가 없는 걸 확인한 그녀가 다시 손짓을 보냈을 때, 고천수는 천천히 뒤를 따라갔다.

끼익.

의원의 문을 열자 낡은 경첩에서 소름끼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장서연은 자신의 역할을 척후병으로 인식했는지, 고천수보다 앞서서 먼저 의원으로 들어갔다.

“없어.”

그렇게 의원 안의 방들을 하나둘 열어 본 장서연은 이곳에 눈에 띄는 위험이 없다고 확인해 주었다.

“후.”

고천수는 작은 수술실 침대 위에 양민철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장서연 씨,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압니까?”

일단 데려다 놓기는 했지만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는 고천수도 알지 못했다.

그건 피차일반인 듯 장서연도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도 잘 몰라.”

“큰일 났네요.”

“대충 꿰매고 약을 좀 먹이면 되지 않을까?”

대충 그러자고 해도 어떤 과정대로 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했다.

“형님들, 좀 아는 거 있으십니까?”

시청자들에게 물어보았지만 별다른 답변은 없었다. 장서연이 말한 것과 비슷한 내용들뿐이었다.

“망할.”

일단 급한 대로 주변을 돌아보던 고천수는 순간 침음을 삼켰다.

“뭐야, 이거.”

있는 게 없었다. 수술용 도구도, 붕대도, 주사기도 없었다.

“다른 방에 있나……?”

고천수는 수술실에서 나가 다른 방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거기에도 필요한 물건은 없었다.

있는 거라고는 몇 개의 알약뿐이었다.

“아…….”

땡그랑.

탄식할 때였다. 어디선가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고천수는 정체도 모를 알약을 챙기고 바로 밖으로 나가 복도를 살폈다.

‘뭐지?’

워낙에 작은 소리였기에 확신은 가지 않았다.

“형님들, 무슨 소리 못 들으셨습니까?”

-글쎄.

-뭔 소리 난 것 같긴 함. 나 귀 밝음.

-느낌 구리구요.

인상을 찌푸린 고천수는 빠르게 수술실로 돌아갔다.

“왜? 무슨 문제 있어?”

고천수의 얼굴을 본 장서연이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고천수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 내렸다.

“빨리 나가야겠어요.”

“왜? 또 뭐 들어왔어?”

“모르겠어요. 느낌도 안 좋고, 약도 없고요.”

항생제가 있기는 한데 직접 먹어야 하는 것이라 의식이 없는 양민철에게 어떻게 투약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가죠, 일단.”

여기를 벗어나서 약국이라도 찾아야 할 듯했다.

고천수가 등을 갖다 대자, 장서연은 빠르게 양민철을 거기에 업혔다.

“망볼게.”

장서연은 이번에도 앞장섰다. 고천수는 수술실을 나가 출입구로 향하다가 몸을 흠칫했다.

땡그랑.

갑자기 또 소리가 났던 것이다.

-야, 천수야. 뒤!

그때였다.

순간 보인 채팅에 고천수는 뒤로 고개를 돌렸다.

“어?”

누군가 안내 데스크 안쪽에 서 있었다.

“뭐…….”

하얀색 옷을 입은, 젊은 여자였다.

“뭐야.”

워낙에 놀란 탓에 고천수는 제대로 반응도 못 하고 굳어 있었다.

-사람이다.

그건 고천수도 알고 있었다.

“고천수, 빨리…….”

문을 열고 뒤를 돌아보던 장서연도 고천수가 보고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어……?”

놀란 표정을 짓는 장서연에게 고천수가 급하게 손짓했다.

‘자극하면 안 돼!’

또 어떤 사람이 엮인 건지 몰랐다. 고천수는 장서연에게 반응을 자제하라는 신호를 주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냥 오해한 걸지도 몰라!’

안내데스크 안쪽은 들어올 때 미리 살피지 않은 곳이었다. 그곳에 있던 사람이 이쪽을 침입자라고 생각해서 노려보고 있는 거라면 그냥 얌전히 나가 주면 될 일이었다.

탁.

그 여자가 발을 움직였다.

가까이 다가오는 여자를 보며 고천수는 장서연을 밀고 함께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하지만 여자는 그런 고천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따라붙었다.

“잠깐!”

고천수는 결국 뒤돌아서며 여자에게 말했다.

“저흰 여기서 나갈 겁니다. 그러니까 따라오지 마세요.”

“…….”

여자는 걸음을 멈춘 채로 고천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머리는 산발에, 눈두덩에는 다크서클이 가득한 그녀를 보면서 고천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정상…… 맞나?’

그녀의 눈빛은 흐리멍덩했다. 입고 있는 옷도 평상복은 아닌 듯했다. 비슷한 것을 찾자면…… 병원에서 입는 복장?

고천수는 혼란스러워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따라오지 마세요. 나갈 겁니다.”

어차피 엮이지만 않으면 그만이었다. 아직 공격하지 않은 대상을 굳이 선제 공격할 필요는 없었다.

혼자 여기에 있었을 가능성은 적다는 점에서, 혹시 건드렸다가 여자의 동료가 있다면 괜히 일을 키우는 꼴이 될 수 있었으니까.

“……안 돼요.”

그렇게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였다.

여자가 작게 입을 열었다.

“나가면 죽을 테니까.”

그러면서 빤히 쳐다보는 여자를 보며 고천수는 몸을 흠칫했다.

“뭐라고요?”

“나가면 죽는다고요.”

고천수는 계단 출입구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거기에 특별히 보이는 것은 없었다.

“무슨…….”

“죽어도 괜찮아요?”

여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고천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말입니까?”

그냥 되는대로 지껄이는 것 같기는 했지만 고천수는 내심 불안해졌다.

“야, 고천수.”

장서연이 고천수의 팔을 끌어당겼다.

“그냥 가자. 이 여자, 조금 이상한 것 같아.”

동감이긴 했지만 당사자가 바로 앞에 있는 상태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는 눈동자를 대록 돌려 장서연을 쳐다보았다.

“이상한 것 같은 게 아니라 이상해요. 다들 그렇게 말하긴 했어요.”

“뭐야.”

장서연은 인상을 찌푸리며 한 번 더 고천수를 닦달했다.

“이상해. 얼른 가자니깐.”

“가면…….”

순간 여자가 다가왔다.

“죽는다니까요?”

“오지 마세요!”

고천수는 한손으로 도끼를 빼어 들었다.

“오면 목숨 장담 못합니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몰라도 그만두세요. 저희는 여기에서 나갈 겁니다. 그걸로 끝. 알겠습니까?”

“걔 목숨도 끝일 텐데.”

여자는 고천수의 등 쪽으로 시선을 향하며 말했다.

“쇼크 왔나 보네요. 가여워라. 그대로 죽게 생겼네요.”

“야!”

장서연이 화를 못 참고 소리쳤다.

“너 뭐 하는 년이야!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말고 꺼져!”

“뭐 하는 년인지 알고 싶어요?”

여자는 갑자기 자신의 품을 뒤적거렸다. 고천수가 긴장하며 도끼를 치켜드는 사이 여자가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뭐야, 저거.

-학생증인데?

학생증.

이 상황에서 뜬금없는 물건이 등장했지만, 고천수는 그걸 보고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간호학과……라고?’

학생증에는 여자의 초췌한 얼굴이 박힌 사진이 존재했다.

이름은 김하령. 학년 표시를 보아하니 4학년이었다.

그 사실이 믿기지 않는 고천수가 멍한 표정을 짓는 사이 김하령은 학생증을 품에 집어넣고 말했다.

“확인했죠? 저도 여기 뭐 더 있나 보러 왔던 거예요. 이제 환자 봐도 돼요?”

다시 가까이 다가서려는 김하령에게 고천수가 반사적으로 도끼를 들이밀었다.

“잠깐! 이렇게 멋대로 보려는 건…….”

“그럼 죽게 놔둘 거예요?”

김하령은 짐짓 초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곧 죽어요. 쇼크 제대로 처치 못 하면 끝이에요. 그 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세요? 여기 남아 있던 아무 알약이나 그냥 입에 쑤셔 넣을 거예요? 기도나 막히게. 숨도 못 쉬는 사람한테 나중에 붕대나 묶어 주고 할 일은 다했다고 하시겠죠. 그렇죠?”

자신의 목을 그러쥐는 김하령을 보며 고천수는 입을 다물었다. 그건 장서연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어이없게도 김하령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던 것이다.

“살아 있을 때가 좋아요. 겨우 살아 있는 환자 발견했는데.”

김하령은 옅은 미소를 띤 얼굴로 말했다.

“계속 살게 만들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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