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 잡목을 기르는 사람들 (7)
양민철은 쫓아온 노인에게 그대로 삽을 휘둘렀다.
퍼억!
삽이 노인의 골반을 때렸다.
“꺽?”
순간 비틀거린 상대는 신음을 토해내며 입을 벌렸다. 양민철은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까앙!
일어나면서 한 번 더 삽을 휘둘러 팔꿈치를 때렸다.
그 공격에 뼈를 맞은 노인이 비명을 뱉어내며 소리쳤다.
“자, 잠깐!”
“잠깐 같은 소리 하네!”
양민철은 노인을 세게 걷어찼다.
그는 그대로 땅바닥에 몸이 처박혔다.
“끄으윽.”
하지만 고통에 비명을 지른 이는 노인뿐만이 아니었다. 양민철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살갗이 벗겨져 있었다. 노인이 내리 찌른 삽을 통해 손의 결박을 풀어냈을 때 생긴 부상이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삽을 붙잡고 있자니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잠깐! 잠깐 기다리게……!”
노인은 그사이 손을 내밀고 양민철에게 호소했다.
“오해가 좀 생긴 것 같은데, 말로 푸는 게 어떤가?”
“말?”
양민철은 반문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말이라고?”
엽독을 먹고 생매장 당할 뻔했던 걸로도 모자라 어깨와 손이 박살 나 버렸다. 이 구덩이에서 살아 나간다고 해도, 양민철은 치료를 하지 않으면 위험한 상태였다.
“설마 살려주면 도와주겠다는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런 게 아닐세!”
“듣기 싫어.”
양민철은 뾰족한 삽을 높이 치켜들었다.
“당신 같은 인간쓰레기는 여기에 그냥 매장되는 게 나아.”
“잠…….”
노인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삽 끝이 복부에 박힌 것이었다.
“끄, 끄아아아아아!”
미친 듯이 소리치는 노인을, 양민철은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설마 얌전히 죽일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양민철은 자신을 그대로 생매장하려고 했던 사람을 곱게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팍.
삽을 거칠게 빼어 들고 다시 들어 올리는 양민철을 보며 노인이 손을 급하게 내저었다.
“잠깐만! 잠깐마안!”
“시끄러.”
여기까지 오면서 양민철은 몬스터들과 싸우며 망설이지 않는 법을 배웠다.
적이라고 판명되면 기다려 줄 필요가 없었다.
“얌전히 벌이나 받아.”
그렇게 다시 삽을 내리 찍으려고 할 때였다.
“네 일행!”
노인이 예상치 못했던 말을 외쳤다.
“네 일행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어?”
양민철은 잠시 멈칫하고 노인을 노려보았다. 그 틈에 노인은 빠르게 다음 말을 내뱉었다.
“날 죽이면 네 일행은 찾지 못해! 살리고 싶으면 내 말을 들어야 한다고!”
“내 일행?”
양민철은 그 말에 자신이 왜 다시 수목원 안쪽으로 돌아왔는지 그 이유를 상기했다. 그리고 물었다.
“어디에 있는데.”
“어?”
“어디에 있냐고.”
고천수는 찾아야 했다. 그는 이런 거지같은 세계에서 자신과 함께해 줄 확실한 아군이었다.
아직 무사하다면 이쪽에서 구해내 야만 했다.
“가, 가르쳐 줘도 잘 모를 거야. 여기, 길이 복잡하니까……!”
노인은 손으로 자신을 툭툭 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날 데려가! 그럼 구할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
“드, 듣고 있는 거야? 날 데려가라고!”
그러자 양민철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대. 당신 말대로면 난 알려줘도 어차피 모를 거 아냐.”
“모를 텐데 왜…….”
“대라고.”
양민철이 다시 삽으로 위협하자 노인이 서둘러 소리쳤다.
“화, 활엽수 전시관!”
“활엽수 전시관?”
“그래! 거기로 가면 되네!”
“정문 기준으로 어느 쪽인데.”
“그건……. 북서쪽인데 왜?”
양민철이 내지른 삽이 노인의 어깨에 박혔다.
“끄아아아아! 왜!”
“장난해?”
그쪽에 있는 건 상록수로 만들어진 가로수길뿐이었다.
“난 다 외웠어.”
약도를 한 번만 보고 다 외웠단 말이다.
“무, 무슨 말이야. 그쪽엔 전시관이…….”
“아무거나 대면 모를 줄 알았지?”
약도를 봤더라도 일반적인 사람은 급박한 상황에서 지형이나 표식을 전부 외우지는 못한다. 없는 전시관 이름을 대면 약도의 어느 부분을 확인했든 혹할 수밖에 없었다. 미처 알아 두지 못한 장소를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테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도를 전부 외우지 못했을 때의 일이었다.
팍!
양민철은 삽을 뽑아내 노인의 목을 겨눴다.
“이, 이보게.”
노인은 마지막 발악을 하듯 말했다.
“어린 나이에 이래서야 되겠나. 노인을 좀 더 공경해야…….”
“미안하지만 나, 어린 나이 아냐.”
체구로만 판단하면 오산이었다. 양민철은 학교를 안 다니다가 재입학했던 거라 나이만 따지면 만 19세였다.
“뭐든 해도 되는 나이라고.”
교복을 입고 있으니 그냥 다시 학생처럼 살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세상이 이렇게 되고, 이런 노인네까지 만나 버렸다.
“유감스럽게도 당신한테 배울 건 없어 보여.”
슥.
순간 옆으로 나무뿌리가 다가왔다. 양민철은 삽을 휘둘러 나무뿌리를 쳐 버렸다.
촤악.
삽 끝에 베이며 수액을 뿌린 나무뿌리가 괴로운 듯 몸을 비틀었다.
“으, 으으으으.”
양민철이 나무뿌리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노인은 손으로 땅을 짚고 기어갔다. 이 안에 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그런 그에게서 시선을 돌린 양민철은 빠르게 발을 굴렀다.
그리고 그대로 뛰어가 그를 밟고 위로 뛰어올랐다.
팍!
삽으로 구덩이 밖을 찍고 기어오른 양민철은 구덩이 안에 혼자 남은 노인을 내려다보았다.
“이젠 위치가 바뀌었네?”
“이, 이놈……!”
노인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너 혼자만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 내 가족이 절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예.”
양민철은 삽으로 흙을 한 번 퍼서 노인의 머리에 던져 주었다.
“큭……! 너 이 자식!”
“당해 보니까 기분 나쁘죠?”
양민철은 삽질을 멈추고 나지막이 말했다.
“기분 나쁘면 기어 올라와 보세요.”
“이이이이아아아아아!”
분노한 노인이 괴성을 지르며 구덩이 밖으로 올라오려고 했다.
쾅!
양민철은 그런 노인 머리 위로 삽을 휘둘렀다.
쾅! 콱!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구덩이 밖으로 손을 내민 노인을 양민철은 계속해서 삽으로 때려댔다.
“악! 아아악!”
노인은 바닥을 기어오는 나무뿌리를 돌아보며 더 절박하게 위로 손을 뻗었다.
“으아아아아아! 제발!”
양민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남을 비료로 써서 키울 만큼 애지중지하는 식물인데, 자신이 먹이가 되어도 불만은 없어야 할 것이 아닌가.
퍽!
“아아아악!”
퍽! 퍽! 퍼억!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노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뿐이었다.
스륵.
나무뿌리가 마침내 노인의 다리를 감싸 안았던 것이다.
“안 돼! 안 돼!”
노인이 발버둥 쳤지만 달려든 나무뿌리가 너무 많았다. 노인은 여러 개의 나무뿌리에 붙잡혀 밑으로 끌려 내려갔다.
“으아아악! 으아아! 이 개새끼!”
끝까지 양민철에게 분노를 드러낸 노인이 나무뿌리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절망적으로 외쳤다.
“내가 너희를 어떻게 길렀는…….”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노인의 입에 나무뿌리 하나가 박혔던 덕이었다.
“으으읍! 으으으으읍!”
비명도 더 이상 바깥으로 새어나오지 않았다. 노인이 그렇게 나무뿌리들에게 온몸이 구겨지는 것을 보다가 양민철은 고개를 돌렸다.
“쿠엑!”
역시 멀쩡한 사람이 저렇게 되는 건 좀비가 터져나갈 때와는 달랐다.
구역질과 같은 기침을 내뱉은 양민철은 삽을 붙잡고 겨우 몸을 지탱했다.
“형……!”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같은 위기에 처해있는 거라면 곤란했다.
“지금 갈게요.”
***
“양민철…… 어디에 있는 거야!”
고천수는 양민철을 바로 찾지 못하고 길을 헤매고 있었다.
“망할, 길을 알 수가 있어야지.”
중간에 약도를 발견하고 좀 살펴보고 돌아다니고는 있지만 수목원이 넓은 편이라 방향을 잡기가 힘들었다.
애초에 양민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래서 길을 더 헤매게 되는 것이었다.
“고천수!”
그때, 장서연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응?”
고천수는 눈을 크게 떴다. 멀리 사람 한 명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교복 입지는 않은 듯.
-양민철이 아닌가?
-조심해라, 천수야.
그런 경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고천수는 사람이 보인 쪽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저쪽에서 이쪽의 기척을 눈치 채기 전에 가까이 접근해야 했다.
‘……저건!’
거리가 좁혀지자 고천수는 그 사람이 덩치 큰 남자이며 어느 구덩이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구덩이 옆에는 벌거벗겨진 채로 묶여 누워 있는 누군가와 삽이 놓여 있었다.
“양민철?”
신원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상황은 대충 알아낼 수 있었다.
“야 이, 개새끼야아아아아!”
고천수는 구덩이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남자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그가 놀라며 고천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파악!
고천수의 주먹이 남자의 인중을 때렸다.
“끄악!”
관성 그대로 주먹을 허용한 남자는 바로 뒤로 엎어지며 나뒹굴었다.
“이 미친 새끼!”
고천수는 묶여 있는 사람을 확인했다.
양민철은 아니었다.
-천수야, 삽 들어!
그때 남자가 고천수에게 달려들었다.
고천수는 삽을 들어 남자의 무릎을 때렸다.
“끄악!”
남자는 비틀거리다가 고천수를 노려보며 몸을 다시 곧추세웠다.
“뭐야.”
고천수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이 남자는 입가에 고인 피를 옆으로 뱉어냈다.
-맷집 좀 있나 보네.
-있어 봤자 아님?
그 말대로였다. 고천수는 남자에게 바로 달려들어 삽을 횡으로 휘둘렀다.
콰직!
삽이 부서졌다. 남자의 맷집을 이기지 못한 것이었다.
“흐으.”
남자는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겼다고 생가하면 오산이었다. 고천수는 남자의 발목을 세게 걷어찼다.
“끅?”
힘이 실린 공격에 남자가 곧바로 몸을 휘청거렸다.
“네 인중 그거.”
고천수는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 봐준 거야, 새끼야.”
입을 다 부숴 버리면 아무 말도 듣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아!”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는 듯 남자가 달려와 주먹을 내질렀다.
“큭?”
강하긴 했다. 스치긴 했지만 고천수는 이 남자가 그 마른 놈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파앗!
그렇다고는 해도 고천수 쪽이 훨씬 고른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다. 높게 뛰어오르며 몸을 회전시킨 고천수가 남자의 어깨를 붙잡고 물구나무를 섰다.
“으아!”
남자가 고천수를 잡기 위해 주먹을 풀고 위로 손을 뻗었다. 고천수는 뛰어내리며 남자의 손가락을 잡았다.
콰드득!
도중에 관절을 꺾어 버리자 남자가 비명과도 같은 외침을 뱉어냈다.
“아프지?”
고천수는 남자의 무릎을 차 넣었다.
“끄악!”
“이제 시작이야.”
제아무리 근육을 길렀어도 관절에는 약점이 있었다.
고천수는 무릎에 연속해서 발차기를 먹였다.
남자는 태세를 정비할 틈도 없이 무릎이 몇 번이나 꺾여 버렸다.
“끄아아아!”
콰직!
고천수가 더욱 강하게 무릎을 차자 남자가 마침내 무너졌다.
“양민철?”
뒤이어 도착한 장서연이 구덩이 옆에 누워 있는 사람을 향해 뛰어가며 외쳤다.
“양민철!”
하지만 그녀가 확인한 사람은 양민철이 아니었다. 눈이 풀린 채 이미 죽어 있는 웬 신원 모를 사람일 뿐이었다.
“고천수! 양민철이 아냐!”
“그건 저도 확인했습니다.”
애초에 눈앞에 있는 이 덩치 큰 남자도 마른 놈이 얘기했던 노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나이만 보면 아버지에 가까워 보였다.
“흐으.”
남자는 무서운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보았다. 고천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같이 노려보았다.
“흐아아아아!”
남자가 짐승과도 같은 소리로 울부짖었다.
“아, 망할.”
고천수는 그때 보았다. 저 남자는 혀가 없었다.
말을 들을 수도 없던 것이었다.
“혀는 또 어디로 날려먹…….”
그때, 남자가 일어나 고천수에게 달려왔다. 삐걱거리는 무릎 따위, 다 망가져 버려도 된다는 듯이.
“큭?”
그리고 고천수의 몸을 붙잡고 돌진했다.
“으아아아아!”
남자의 외침과 함께, 고천수는 그와 같이 구덩이 안쪽으로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