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 잡목을 기르는 사람들 (6)
“자, 잠깐……!”
유기성이 반발했지만 방독면은 곧 벗겨져 저 멀리 날아갔다.
“이 자식! 컥?”
방독면을 날리는 게 끝이 아니었다. 고천수가 목을 꽉 틀어쥐자 유기성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고천수는 그런 그를 비웃듯이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어때. 너도 좀 숨쉬기 힘들지?”
“이이이이이익! 으아아아아!”
순간 괴성을 뱉으며 몸부림을 친 유기성이 고천수의 얼굴을 물어뜯으려고 할 때였다.
깡!
참치 캔 하나가 날아와 유기성의 입 안에 꽂혔다.
“읍?”
고천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유기성의 볼에 강력한 주먹을 먹였다.
카자작!
이가 한꺼번에 박살나며 유기성의 몸이 옆으로 넘어갔다.
쿠당탕!
성대하게 넘어진 유기성이 비명도 신음도 아닌 무언가를 내지르는 사이, 장서연이 다가와 발을 뻗었다.
“이 미친 새끼!”
그녀는 유기성의 손목과 목, 얼굴, 어디 할 것 없이 죄다 밟아 대기 시작했다.
“죽어! 죽으라고!”
고천수가 일어나지 못했으면 꼼짝없이 당할 뻔했다. 그 울분을 담아 몇 번이나 발길질을 하고 있자니, 어느 순간 고천수가 어깨를 붙잡았다.
“그만.”
이미 유기성은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고천수는 장서연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만하세요.”
“그렇지만……!”
화를 내려던 장서연이 순간 현기증이 난 듯 비틀거렸다.
“아.”
“거 봐요.”
고천수는 장서연을 부축하며 말했다.
“무리했잖아.”
장서연은 더 이상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고천수는 장서연을 앉히고, 혼자 날뛰고 있는 고무 호스를 붙잡아 그녀의 손에 물을 뿌렸다.
“통조림통 만졌죠? 저 자는 사이에 사고를 치셨네, 아주.”
“사, 사고는 네가…….”
장서연이 하는 말을 듣고 고천수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필요할 때 일어났잖아요. 맞죠?”
“…….”
장서연은 당당히 말하는 고천수를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뭔가 분하긴 한데, 그래도 밉지는 않았다.
고천수는 정말 필요할 때 일어나 주긴 했었으니까.
“자, 그럼.”
고천수는 장서연을 놔두고 유기성에게 향했다.
“이놈을 이제 어떻게 요리해 볼까요.”
-사형.
-사형을 선고합니다.
-판사님, 범죄자의 인권도 생각해 주셔야죠!
시청자들의 의견은 과연 참고할 만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참고에 그칠 뿐이었다.
“형님들, 제 생각엔 말이죠…….”
고천수는 유기성의 발목을 붙잡았다.
“일단 어디로 도망치지 못하게 해 놓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뿌득.
이번엔 발목이 돌아갔다.
“끄아악!”
그리고 기절한 것처럼 보였던 유기성도 비명을 질렀다.
“아, 뭐야. 깨어 있었어? 그러지 말지.”
고천수는 유기성의 다른 쪽 발목에도 손을 뻗었다. 그러자 유기성이 손을 뻗으며 외쳤다.
“잠깐! 자, 잠깐 기다려!”
“왜?”
고천수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 어차피 시간만 끌려는 속셈이잖아.”
뒤늦게 일어나긴 했지만 시청자로부터 얘기는 다 전해 들었다. 고천수는 잠들어도, 시청자는 잠들지 않으니까.
“자기 몸에 불을 붙인 놈이, 겨우 이 정도에 굴복할까?”
어차피 유기성은 죽음도 불사했다. 그것도 가장 고통스럽다는 화형으로. 그렇다면 고천수도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었다.
뿌득.
“그러니까 괜찮지?”
“끄아아아아아아아!”
유기성은 전부 박살 난 손목과 발목을 흐느적거리며 괴성과도 같은 비명을 질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그런데 거기에는 고천수가 예상치 못했던 말도 섞여 있었다.
“할아버지?”
고천수는 몸부림을 치는 유기성을 붙잡으며 물었다.
“할아버지가 누구야. 너 혼자만 여기에 있는 게 아니냐?”
“할아버지! 이쪽이야! 할아버지!”
“묻잖아.”
“할아버…… 컥!”
고천수의 주먹이 한 번 더 유기성의 광대에 작렬했다.
콰드득!
뼈가 함몰되면서 유기성의 얼굴이 그대로 구겨졌다.
-와, 미친! ㅋㅋ
-출력 실화냐?
신체 능력이 처음보다 2배 가까이 강해졌다는 건 단순히 수치상의 놀음에 그치지 않았다. 온몸의 기능이 동반 상승하면서 근력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잠깐 흥분해서 주먹을 날렸던 고천수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물었다.
“할아버지, 누구냐고.”
하지만 이번에는 유기성이 진짜 의식을 잃어버렸다. 아니, 단순히 잃은 정도가 아니었다.
유기성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얼굴이 박살나면서 그대로 끝장난 모습이었다.
“고천수.”
뒤에서 장서연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놈 말고 다른 미친 사람이 또 있다는 거야?”
“그런 것 같네요.”
그렇다면 양민철이 살아 있다고 해도…….
“장서연 씨.”
고천수는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
“잡목 좀 뽑고 오죠.”
***
한편, 또 다른 지하실의 근처.
따사한 아침햇살이 내리쬐는 가운데, 나무들 사이에 자리를 잡은 노인이 열심히 삽질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날이 좋구먼.”
노인은 자신의 목 부근까지 땅이 깊게 파인 것을 보며 이마의 땀을 닦아 냈다.
“기성이 이놈은 뭘 하길래 이렇게 늦는지.”
“으음…….”
옆에서 들린 신음에 노인이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손이 뒤로 묶인 양민철이 누워 있었다. 노인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젊은 것들은 좋단 말이야.”
엽독을 쓰면 이 시간에도 일어나기 어려웠다. 예전에 실수로 자신이 엽독을 흡수했을 때는 종일 깨지 못한 적도 있었다.
“좀 더 서둘러 볼까.”
삽질을 조금 더 빠르게 했다. 그러자 이내 나무의 뿌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되겠군.”
구덩이에서 기어 올라온 그는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양민철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
“컥?”
꽤나 컸던 충격에, 양민철이 드디어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여, 여긴…….”
그는 온몸을 치달리는 격통에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양옆으로 돌렸다. 흙과 돌멩이 그리고 나무뿌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직 보지 않은 곳을 찾아 자연스레 시선을 위로 들어 올리니, 구덩이 위쪽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노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일어났는가.”
인자한 미소의 노인을 보며 양민철은 눈을 크게 떴다.
“하, 할아버지? 이게 무슨……. 어디예요, 여긴!”
“어디긴. 구덩이 안이지 않은가.”
노인은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가. 침대보다 거기가 편하지 않은가?”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여기서 꺼내 주세요!”
“그건 안 되지.”
노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자넨 비료로 준 거여서 말이네.”
꿈틀.
순간 옆에서 뭔가가 움직인 것을 느낀 양민철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꿈틀꿈틀.
나무뿌리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흐, 흐아아아!”
간밤의 악몽이 떠오른 양민철이 구덩이의 벽에 의지해 몸을 일으켰다.
“저게 뭐예요! 설마 어제 그놈들인 건……!”
“정답일세.”
노인은 감탄한 듯 삽으로 콱 하고 땅을 찧었다.
“자네를 쫓았던 바로 그 녀석들이지.”
“젠장! 낮에도 움직이는 거였어?”
“걱정 말게. 뿌리뿐이니까.”
옆에 있는 나무를 만지며 노인이 허허 하고 웃음을 흘렸다.
“양분을 흡수하는 일 외에는, 그다지 격한 행동은 하지 않을 걸세.”
“양분……?”
양민철은 사색이 되었다.
순간 노인이 비료로 줬다고 한 말이 기억났다.
“설마 당신! 나를 먹이로 주려고……!”
“낮에 주질 않으면 양분을 제대로 흡수하질 못해서 말이야.”
노인은 갑자기 흙을 떠서 구덩이 안으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시간을 맞춰서 비료를 주고 있네. 고생스럽긴 하지만, 나무들이 아주 잘 자라.”
“미쳤어? 뭐 하는 거야!”
양민철은 흙을 얻어맞으면서 소리쳤다.
“꺼내 줘! 꺼내 달라고, 이 미친 새끼야!”
“어린 친구가 그렇게 욕을 막 해서 쓰나.”
노인은 평화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래서 내가 식물을 좋아하지. 식물은 불평을 하지 않거든. 양분이 있으면 자라고, 없으면 조용히 죽지.”
“그만해! 그만……!”
날아오는 흙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면서도 양민철은 구덩이 위로 뛰어오르려고 방방 점프했다.
“소용없는 짓을 하는구먼.”
깡!
노인이 내리찍은 삽이 양민철의 어깨를 때렸다.
“끄악!”
바닥에 엎어진 양민철이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어깨가 푹 파여 버렸다. 삽이 비정상적으로 날카로웠던 탓이다.
꿈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무뿌리까지 양민철의 발목을 붙잡았다.
“으아아아아! 놔!”
양민철은 발길질로 뿌리를 걷어차고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드드득.
하지만 위기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땅을 뚫고 천천히 다른 뿌리들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아.”
“너무 힘을 빼진 말게.”
그 와중에도 노인은 양민철의 머리 위로 흙을 퍼붓고 있었다.
“비료로 쓰이면 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는 거니까.”
단지 다른 것의 일부가 될 뿐이라고 부연하는 노인을 보며 양민철은 탄식을 뱉었다.
“당신! 복수하는 거야? 당신 식물들을 내가 죽여 버려서?”
“그건 아닐세. 물론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죽은 녀석들도 다른 녀석들의 양분이 됐겠지. 난 남은 녀석들만이라도 신경 써서 기르면 돼. 그게 이 수목원을 관리하는 내 역할이지.”
“미쳤어, 당신!”
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쯤은 양민철도 알 수 있었다. 양민철은 손을 묶고 있는 줄을 풀기 위해 양팔에 힘을 꽉 주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렇게 굵은 줄은 아니야……!’
스카프와 비슷한 재질의 천 조각으로 묶은 듯했다. 양민철은 날아오는 흙을 털어내며 다시 방방 뛰어대기 시작했다.
“내보내 줘! 내보내 달라고, 이 미친 영감탱이야!”
“허허, 점점 예의를 잃어 가는구먼.”
그 말에도 아랑곳 않고 양민철은 계속해서 바락바락 소리쳤다.
“곧 늙어 죽을 너나 여기 들어오란 말이야!”
콰악!
그때였다. 가까이 다가온 양민철을 향해 또다시 깊게 삽을 내리찍었다.
찌익!
그 순간을 노리고 있던 양민철은 몸을 뒤로 돌렸고, 손을 묶고 있던 천이 조금 찢어졌다.
“으아아아아아!”
천금 같은 기회였다. 양민철은 양팔에 힘을 꽉 주고 손목을 돌렸다.
쫘악!
매듭이 끊겼다. 양민철은 어깨 부상에 몰린 격통에 울부짖듯 비명을 지르면서도 다음에 할 일을 잊지 않았다.
“죽여 버리겠어, 당신……!”
양민철은 분노에 가득 차 곧장 구덩이를 기어오르려고 했다.
“이, 이놈이……!”
당황한 노인이 삽을 들고 양민철을 내리찍으려고 했다.
탁!
“또 맞아 줄 줄 알았어?”
옆으로 피한 양민철이 삽의 기둥을 붙잡고 끌어내렸다.
“억?”
노인이 균형을 잃고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양민철은 그런 그를 붙잡아 구덩이로 끌어내렸다.
콰당!
바닥에 떨어진 노인이 고통에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벌렸다.
“이, 이 망할 놈이……!”
“왜. 직접 당하니까 좀 알 것 같아?”
양민철은 흙먼지가 묻은 머리칼 사이로 강렬하게 노인을 노려보았다.
“이제 입장 바뀌었다고.”
노인이 정상이 아닌 걸 보면 고천수도 이 수목원 어딘가에서 예상치 못한 위험에 처해있을 수 있었다.
양민철은 바로 노인에게 달려들어 무릎으로 가슴을 짓눌렀다.
“당신 말고 다른 사람도 있어? 내 일행은 어디 있어!”
“누, 누구.”
“내 일행 말이야! 어제 내가 얘기했잖아!”
그러자 노인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몰라. 내 가족들이 데려갔으면 몰라도.”
“……!”
양민철이 놀란 표정을 짓는 사이, 상대는 옆의 돌멩이 하나를 집어 양민철의 무릎을 때렸다.
“크악!”
“방심하면 쓰나!”
노인은 바로 상체를 일으키며 양민철의 어깨를 붙잡았다.
“끄아아아악!”
노인의 손이 양민철의 부상을 파고들었다. 일어나서 몰아붙이는 그에게 밀리던 양민철은 고개를 돌리다가 바닥에 내팽개쳐 놓았던 삽에 시선을 가져갔다.
꽈악!
이를 악문 양민철은 노인을 힘껏 한 번 밀쳐낸 뒤, 몸을 던져 삽을 잡아내고서는 외쳤다.
“이젠 뒈졌다, 이 노친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