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 대전역에 갈까 말까
『치이익…… 차량…… 응답 바랍니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모두가 몸을 흠칫했다.
『누가 거기에 타고 있습니까.』
소리가 뭉개져 들리긴 했지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해?”
장서연이 고천수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고천수는 장서연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로 손바닥을 올려 보였다.
『……탑승자는 응답 바랍니다.』
고천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누가 거기에 타고 있냐고?’
질문에서 생략된 것이 많아 보였다.
-쟤네 군인들이 탑승한 건지 확인하는 거임?
-검문소랑 교신 제대로 안 됐나?
-정보가 별로 없어서 저러는 것 같은데.
순간 고천수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네, 탑승자입니다.”
그러자 장서연과 양민철이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고천수는 입술에 검지를 올리는 것으로 둘에게 조용히 해 주기를 당부했다.
『탑승자, 신원을 밝혀 주길 바랍니다.』
“민간인입니다. 이 열차의 출발지에서부터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고천수의 대답에 저쪽에서는 잠시 답이 없었다.
그러더니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검문소에서 검문 절차를 밟았습니까?』
그 물음에 고천수는 숨을 삼켰다.
‘떠보는 건가?’
검문소에서 아무런 교신을 하지 않았을 리는 없었다. 적어도 습격자가 있다 정도까지는 보고를 했을 터였다.
『열차를 세운 적이 있습니까?』
질문이 바뀌었다. 이 질문을 통해서 만큼은 고천수도 저쪽에서 뭘 확인하려는지 알았다.
‘그래, 안 세웠으면 말이 안 맞겠지.’
여태 멈추지 않고 그대로 검문소 옆을 지나쳤으면, 시간상 이 기관차는 지금 다른 분기선으로 옮겨간 뒤에 벌써 고꾸라진 상태여야 했다.
검문소에서 세웠다면 탑승객이 군인이어야 할 테고.
“예, 세운 적이 있습니다. 검문소에 도착했을 때, 그리고 그 전에도 한 번.”
고천수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대답했다.
『검문소에 가기 전에는 왜 세웠습니까?』
마치 취조라도 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고천수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마저 상황을 설명했다.
“간이역에서 이미 전달받으셨죠? 기관차가 고장 나 있었는데, 어느 순간 멈췄습니다.”
『고장으로 멈췄다?』
“기관사가 다시 수습하고 달렸는데 검문소가 웬 괴한들이랑 좀비들하고 교전하고 있더군요. 아시죠? 좀비가 뭔지는.”
여기서부터는 창작이 가미됐다.
“괴한들은 다 죽었는데 좀비의 수는 워낙 많았습니다. 그래서 군인들이랑 같이 도망치려고 했는데, 잘 안 됐습니다.”
『왜…….』
“망할 군인들이 분기점에서 레일을 제대로 안 바꿔 놨더라고요. 같이 레일 바꾸고 소란 좀 떨다 보니까 다 죽고 저 혼자 남았네요.”
그러자 저쪽에서는 다시 침묵했다가 조금 지난 뒤에야 목소리를 흘렸다.
『혼자 살았다는 말입니까?』
“네. 기관사도 다 죽었어요. 저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고천수는 우는 소리를 냈다.
“아는 건 브레이크밖에 몰라요. 저, 이대로 대전역에 갈 수 있습니까?”
『……출발은 어떻게 시킨 겁니까?』
“기관사가 출발은 시켰는데, 이미 좀비한테 물린 상태라면서 혼자 자살해 버렸어요. 아시죠? 물리면 감염되는 거. 하, 진짜 미쳐 버리겠어요.”
-ㅋㅋㅋㅋ 연기파.
-미춰버리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의 반응도 반응이지만, 장서연의 표정도 볼 만했다.
“누가 자살…….”
말하려는 장서연의 입을 손으로 가로막으며 고천수는 수화기에 다시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저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그쪽, 7.5사단인지 거기 부대원 맞으시죠?”
『맞긴 합니다만 정말 혼자 살아 남았…….』
“앗, 저기요? 말이 잘 안 들려요!”
고천수는 갑자기 외쳤다.
“빨리 어떻게 할지 말씀해 주세요! 통신이 이상해요!”
『예? 아니, 잠깐…….』
“뭐라고요? 잘 안 들려요! 대전역까지만 가면 돼요? 네? 빨리요! 예?”
『……대전역까지! 대전역까지 와서 브레이크만 잡으시면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들리십니까?』
“아, 네! 그럼 대전역까지 갈게요! 꼭 거기서 뵙…….”
고천수는 그렇게 말을 흐리며 입을 닫았다.
-황당. ㅋㅋㅋㅋ
황당한 건 저쪽도 마찬가지였는지 뭐라고 중얼거리다가 대전역에서 보자는 말만 남기고 교신을 끊었다.
딸깍.
고천수는 수화기를 바로 내려놓고 장서연을 쳐다봤다.
“후. 끝났습니다.”
“…….”
장서연은 고천수를 멍하니 마주보다가 입을 겨우 입을 열었다.
“뭘 한 거야?”
“예? 뭘 하긴요. 대전 가겠다고 한 건데.”
“우린 다 죽었다고 하고?”
장서연은 양민철과 자신을 가리키며 헛웃음을 흘렸다.
“왜?”
“그야, 혼자 살아남았다고 하는 게 더 극적이잖아요.”
고천수는 전면의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농담이고요. 저쪽에 정보를 덜 주려고 한 거예요.”
다른 생존자가 있다고 하면 수화기를 그쪽에 넘기라고 할 수도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서로의 말이 앞뒤가 맞는지 맞지 않는지를 확인했을 것이었다.
“같이 들었으니 아시겠지만 저쪽은 취조하듯이 질문했습니다.”
정보를 다루는 군인이었을 가능성이 컸다. 고천수는 어쩔 수 없이 혼자 살았다고 할 수밖에 없었음을 밝혔다.
“저 혼자 얘기하는 게 저쪽에 의심의 여지도 주지 않을 테니, 좋았어요. 너무 늦게 받으면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따로 상의도 안 한 거고요.”
“아니 그럼 아예 안 받으면 되는 거 아냐?”
장서연이 괜한 짓을 한 거 아니냐는 듯 물었다. 고천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받아야죠.”
안 받으면 저쪽에서 다른 방식으로 상황을 확인하려고 할 게 뻔했다.
“적어도 제가 대전역으로 간다고는 생각하게 해 두는 게 나으니까요.”
그럼 웬만하면 다른 짓은 안 하고 대전역에서 기관차를 맞을 준비를 할 것이었다.
“그렇기는 한데…….”
장서연은 뭔가 찝찝하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이번엔 양민철이 의문을 표했다.
“형, 어쨌거나 대전역에 가면 위험한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하지.”
고천수는 거기에는 바로 동의했다.
“그래서 대전역에 가기 전에 멈출 거야.”
“가기 전에요……?”
“장서연 씨.”
고천수는 장서연의 어깨를 붙잡고 기관실 의자에 앉혔다.
“일단 기관차 탈선할까 봐 무서우니까 앉아 주시고요.”
“아차.”
드드득.
장서연이 순간 놀라며 핸들을 당겨 기관차의 속도를 조절하는 동안 고천수가 말을 이었다.
“대전역에 도착하기 전에 기관차 세울 만한 곳 있습니까?”
“대전역에 도착하기 전에?”
장서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네가 말하는 장소는 대전 도심지랑 그리 멀지는 않으면서도 눈에 잘 띄지는 않을 법한 곳 말이지? 괴물이든 사람한테든.”
“네.”
“너,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냐?”
장서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갑자기 물어봐도 생각이 잘…….”
“기관사지 않습니까.”
“아이, 자식이. 기관사면 만능인 줄 아나. 싸움까지 시키고 아주.”
하지만 잠시 고민하던 장서연은 곧 답을 내놓았다.
“수목원.”
“수목원?”
“대전역에 도착하기 전에 초록 수목원이라고 하나 있어. 거기는 대전 번화가 중 하나인 둔산동이랑 가까워.”
수목원.
확실히 지금 상황에서는 군인들의 눈에 들 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그럼 우리는 거기 기관차를 세우고 이동하도록 하죠.”
“저기 말이야.”
장서연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 다음 계획은 어떻게 되는 거야? 기관차를 두고 이동하면 한계가 있잖아.”
“그건 그렇죠. 근데 철길은 안 됩니다.”
지금까지만 봐도 기관차의 동선은 적들에게 확실히 파악되고 있었다. 애초에 철길이 정해져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저희는 차를 구해서 이동할 겁니다.”
“차?”
“도로도 봉쇄하려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이 상황에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죠. 그러니 차를 구할 겁니다.”
검문소의 인원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는 이상 적들이 굳이 이쪽을 수색하려고 나서지는 않을 것이었다.
기껏해야 철길 어딘가에 기관차가 놓여 있는지만 확인할 가능성이 컸다.
“후. 무슨 말인지는 알았어.”
“네. 그럼 일단 수목원까지 가죠.”
“형.”
양민철이 손을 들며 끼어들었다. 참으로 바른 학생이 아닐 수 없었다.
“근데 저희 출발역에 있을 때 KTX가 위로 올라갔잖아요. 그건 왜 그랬을까요?”
“갑자기 그건 왜?”
고천수의 반문에 양민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 말만 들으면 기관차 엄청 아끼는 것 같은데…… 엄청 중요할 것 같은 KTX는 위로 보내서요. 왜 대전에 두지 않고 올려 보냈을지 궁금해서.”
“아.”
그 부분은 고천수도 약간 고민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제주도.’
택시 회사에 갔을 때 무전에서 ‘제주도가 안전하다’는 소리도 나왔다. 그냥 지나가는 말이었을 수도 있지만, 최종 목적지가 제주도일 가능성도 충분했다.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방법도 있다면…….’
KTX는 단순 미끼로만 사용된 게 아니라, 실제로 상행선을 올라가기 위한 용도로 겸사하여 쓰였을 수도 있었다.
‘물론 대전에 가서 확인해 봐야겠지.’
정보는 일단 그곳에 있었다. 대전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이 위쪽에 있어서 KTX가 그쪽으로 향했을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었다. 당장은 남하해서 제주도로 가는 게 현실적으로 보였다.
“야, 고천수.”
기관차를 안정적으로 운용하며 장서연이 말했다.
“고마워.”
“갑자기?”
“아니, 뭔 갑자기야!”
장서연이 시선을 피하며 얼굴을 붉혔다.
“더, 덕분에 살긴 했으니까 고맙다고 하는 거지. 뭔 감사 인사도 못 하냐!”
“그런데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세요.”
“아니, 네가 갑자기라고 하니깐!”
민망한 듯 더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는 장서연을 보며 고천수가 헛웃음을 흘렸다.
“예, 뭐. 갑자기긴 하지만 인사 받으니까 좋긴 하네요.”
“처, 처음부터 잘 좀 받으라고!”
“네네. 앞으로는 그럴게요.”
고천수는 그러면서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단검을 넣어 놨던 수납함이 보였다. 고천수는 다가가 천천히 그 수납함을 열어젖혔다.
다행히 장서연은 이제 여기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잊고 안 가져가서 큰일 날 뻔했었지.’
소지하고 있다고 잠시 착각을 하고 갔었기에 고천수는 처음 군인들과 맞닥뜨렸을 때 위험했었다.
“형님들, 혹시 곰 인형 보신 분 있었습니까?”
무기 보충이 좀 필요할 듯했다. 양민철이 좀비들을 퇴치하는 데 사용했을 쇠파이프나 지금 여기 있는 단검도 좋긴 하지만, 몬스터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했다.
-곰 인형?
-아, 보급함 찾으려고.
-그러게. 너 젠도 많아서 열 수 있는 게 많을 듯.
지금은 특정 장소가 아니고 계속 기관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이라 발견하지 못하는 듯했다.
-근데 고천수, 알아 둬.
“뭘 말입니까?”
-젠이 많다는 건 열 수 있는 보급함의 수도 많다는 뜻이야. 근데 널 인도하는 곰탱이가 여러 마리 나타난다면 어떨까?
시청자들은 재미있겠다는 듯 키득댔다.
-천수 어렸을 때 보물찾기 잘했기를 바라야 할 듯.
“아, 예.”
미안한 얘기지만 보물찾기라면 도가 터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재물욕은 많은 편이었으니까.
‘뭐, 지금은 이 꼴이지만.’
원래 바라면 더 멀어지게 돼 있다고 했던가.
노답 백수로 살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게다가 이런 상황이 되리라고는 더더욱.
‘그래도…….’
괜찮았다. 여태까지 잘해 냈으니까.
‘어디 한번 가 보자.’
그렇게 결심을 다지는 고천수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어떤 종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