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39화 (39/224)

039. 1000%

“한 마리만 더.”

모두를 침묵하게 한, 한 마디. 그리고 새로운 좀비 한 마리가 고천수를 노리자 어그로 수치가 경신됐다.

[어그로 90 - 00:30]

1000%.

-미친 새꺄!

-이 와중에……! ㄷㄷ

이 와중이라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고천수는 이제 미친 듯이 달리며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당연히 레일 위를 달리고 있는 기차였다.

빠아아앙!

그런 고천수를 놀리듯 기관차는 경적을 크게 뱉어냈다.

“이런 망할……!”

시간은 시시각각 줄어들고 있었다.

기관차는 그에 맞춰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고천수는 방해하는 좀비들을 총으로 쳐대며 내달렸다.

크아아아아!

“비켜!”

콰직!

1000%의 완력이란 실로 무시무시했다.

광대가 찌그러진 좀비가 우스꽝스럽게 옆으로 넘어졌다.

퍽! 퍼억!

총알보다 확실했다. 좀비들은 고천수가 휘두른 총에 맞고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으아아아아아!”

그래도 위협은 여전했다. 사방에서 몸을 날리는 좀비들이 고천수를 조금이라도 할퀴어 보려고 손을 내밀었다.

“다 꺼져어어어!”

고천수는 쏟아지는 무수한 악수 요청을 거절하고 마침내 레일 옆으로 올라섰다.

철커덩 철커덩.

지면의 울림이 그대로 고천수에게 전해졌다.

“크으윽.”

신체 기능이 너무 강화된 탓에 그 떨림조차 너무 크게 느껴졌다. 고천수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리듬을 타듯 박자를 맞춰 호흡했다.

탁탁탁탁.

두 다리의 신경이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레일 옆은 자갈밭이었다. 그 때문에 고천수는 몇 번이나 발목이 꺾일 뻔하며 비명을 질러 댈 수밖에 없었다.

“시발, 멈춰!”

몸이 적응되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기관차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약간의 미묘한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어그로 90 - 00:20]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멈추라고!”

-버려.

시청자 중 누군가가 말했다.

-버리면 되잖아.

-그래, 여자만 버려.

-그러면 탈 수 있어.

그러자 시청자들이 그에 동조하듯 반응을 쏟아냈다.

‘버려?’

고천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랬다.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균형을 못 잡는 이유도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 컸다. 장서연만 버린다면 확실히 기관차에 오를 수 있었다.

“형님들.”

시청자들이 쓴 채팅을 보며 고천수는 미소를 지었다.

“언제는 저랑 작별할 것처럼 얘기하시더니.”

적어도 장서연은 함께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편한 데 앉아서 채팅만 썼던 대부분의 시청자보다는 나았던 것이다.

“장서연 씨.”

[어그로 90 - 00:10]

카운트다운 시작.

고천수는 장서연을 어딘가로 발사할 듯이 자세를 고쳐 잡고는 말했다.

“아파도 꼭 붙잡으세요.”

“응?”

장서연이 의문의 목소리를 냈을 때였다.

고천수는 장서연을 힘껏 내던졌다.

“으아앗!”

갑자기 허공을 비행한 장서연은 기관차의 뒤편에 부딪혔다.

“끅?”

떨어지며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난간 아래의 커다란 구멍으로 몸이 빠져나가 버렸다.

“아!”

탁!

뒤늦게 난간의 기둥을 붙잡은 손이 몸을 기관차에 매달았다.

일촉즉발.

곧 있으면 레일 위로 추락할 것은 자명했다.

“꽉 잡고 있어요!”

그때였다.

고천수가 총을 버리고 양팔을 흔들며 미친 듯이 속도를 높였다.

[어그로 90 - 00:05]

“으아아아아아!”

[어그로 90 - 00:04]

“망할 양민철 자식!”

[어그로 90 - 00:03]

남은 시간은 불과 3초.

탁.

닿았다.

고천수는 순간 난간을 붙잡고 바로 올라섰다.

“장서연 씨!”

2.

“잡았습니다!”

1.

난간 기둥에 매달려 있던 장서연을 고천수가 바로 끌어올렸다.

0.

버저비터였다.

“흐아.”

고천수는 바로 기관차 뒤편의 벽에 기대고 앉아 늘어졌다.

“살았다.”

고천수는 기관차의 뒤를 쫓아오는 좀비들을 바라보며 참았던 숨을 헐떡였다. 어그로 스킬이 다시 켜지며 수치가 조금씩 다시 잡히는 가운데, 저 멀리서 크롤러로 보이는 놈들까지 괴성을 지르는 게 보였다.

-이 미친 새끼.

-둘 다 살았네.

-깡 하나는 대단하다, 진짜.

시청자들의 극찬을 들으며 고천수는 기운이 잔뜩 빠진 표정으로 엄지를 들어올렸다.

“형님들, 저 안 죽는다니까요.”

장서연을 살린 건 덤이었다.

[띠링! 한도초과 님이 1젠 후원! - 해낼 줄 알았다.]

[띠링! 새로운주인 님이 1젠 후원! - 감탄.]

[띠링! 니목에혓바닥 님이 1젠 후원! - 낼름.]

오랜만에 돌아온 낼름이까지 보며 고천수가 헛웃음을 흘릴 때였다. 장서연이 일어나 터덜터덜 측면 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아직 감사 인사를 받지 못했기에 그녀를 부르려던 고천수는 순간 흠칫했다.

“잠깐……!”

기관차에 탔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아직 해결을 봐야 할 것이 있었다.

고천수는 서둘러 일어나 장서연의 뒤를 따랐다.

“고천수…….”

장서연은 먼저 앞서가며 떨리는 목소리를 뱉었다.

“앞에 봐.”

그 말에 고천수는 장서연의 머리 너머, 기관실의 문을 쳐다보았다.

“저건……!”

기관실 문의 창문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야 씨, 안에 뭐 들어갔나 본데?

-양민철 죽은 거였네.

-기관차는 출발시켜 놓고?

고천수는 이를 악물었다. 정말로 그렇다면 양민철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일단 한번 살펴볼게.”

장서연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기관실 문에 붙어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윽……!”

장서연이 인상을 찌푸렸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고천수도 그 뒤에 붙어서 기관실 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망할.”

좀비들의 사체가 보였다. 양민철이 문을 열고 있을 때 타이밍 안 좋게 쏟아져 들어갔던 것일까.

“어?”

고천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문고리를 붙잡았다. 그러자 장서연이 놀라며 어깨를 붙잡았다.

“들어가게?”

“어차피 들어가지 않으면 나중에 기관차를 멈출 수 없잖아요.”

스킬이 다시 켜질 때 좀비와 크롤러에게서 어그로를 10은 끌었다. 안에 남아 있는 좀비가 있다면 지금 상대하는 편이 나았다.

물론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기는 했지만.

“그리고 저기 보세요.”

고천수가 어딘가를 가리키자 장서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거……!”

양민철이었다. 피 칠갑을 하고 있어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자세히 보면 분명히 양민철이었다.

“네, 양민철이에요. 제가 들어가서 확인해 봐야 합니다.”

죽었든 감염된 상태로 놓였든, 확인은 해야 마음이 편했다. 고천수는 장서연을 물러서게 했다.

“그건 주시고요.”

고천수는 장서연의 몸에 멜빵끈으로 매달려 있는 총을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장서연은 이제 고천수에 대한 의심은 없는지 잠시간의 망설임도 없이 총을 건네주었다.

“후.”

고천수는 한숨을 한 번 몰아쉬고 기관실의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우윽.”

피 냄새가 진동했다. 고개를 돌리자 대략 세 마리의 좀비 사체가 보였다. 모두 머리가 깨져 있었기에 확실히 처리됐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양민철…….”

남은 건 양민철 하나였다.

-지금 머리 쳐 버리는 게 낫지 않음?

과격한 시청자의 의견에 고천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야, 천수 인성을 뭘로 보고.

-천수 빡침.

-조용히 좀 해 봐라.

고천수는 한숨을 쉬며 총으로 양민철을 건드려 보았다.

반응이 없었다.

‘상처가 있는지 모르겠어.’

온몸에 피가 묻어 있는데 본인 것인지 아니면 좀비들과 싸우며 묻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기절해 있다는 게 문제였다. 의식을 확인할 수 없으면 불안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머리 치라니까!

그때, 거친 시청자들의 의견이 다시 올라왔다.

-갑자기 깨어나서 물면 간신히 산 거 도루묵이잖아!

-인성 망치려는 게 아니고 천수 위하는 거임. ㅇㅇ

-그래, 그냥 쳐 버려.

일리는 있었다. 양민철이 이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무한정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양민철.”

고천수는 총으로 양민철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물었다.

“들려?”

하지만 양민철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미치겠네.’

그사이에 장서연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뭐야, 안 일어나는 거야?”

그녀의 물음에 고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래도 기절한 것 같아요.”

“하.”

“물렸다면 변하고 있는 걸 수도 있어요.”

고천수는 주위를 둘러보며 장서연에게 물었다.

“혹시 줄 같은 거 있어요?”

“왜, 묶어 두게?”

“네. 그게 확실할 것 같아서.”

“없어.”

장서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있었으면 내가 진즉에 알려줬을 거야.”

할 수 없었다. 고천수는 총을 높이 치켜들었다.

“변하고 있는 거라면 곧 일어날 겁니다.”

아무리 갑자기 달려든다고 해도 괜찮았다.

기록 누적 효과로 고천수 신체의 기본 능력치는 맨 처음 1에서 이제는 2배에 가까운 1.9가 됐다.

거기에 다시 어그로 스킬까지 발동돼 있는 상태였다.

“깨어나자마자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대전에는 무조건 함께 가려고 했었다.

이제는 어려운 일이 된 걸까.

고작 고등학생에게 너무 무리한 임무를 줬던 건가 싶어 고천수는 못내 마음이 무거웠다.

“끄, 억.”

양민철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고천수는 총을 쥔 손에 힘을 꽉 쥐었다.

“양민철!”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너 양민철 맞냐!”

“끄윽…….”

양민철은 대답하지 못하고 계속 몸만 움찔거렸다.

“젠장.”

고천수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좀 더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양민철이 팔을 비틀어 올리는 것을 보며 고천수도 이를 악물었다. 눈을 뜨는 순간이 바로 모든 걸 결정짓는 때가 될 터였다.

“끅.”

그렇게, 양민철이 팔을 자신의 뒤통수로 넘겼다.

“아파…….”

철컥.

고천수는 치켜들었던 총을 내렸다. 그리고 양민철의 머리를 붙잡아 들어올렸다.

“형?”

눈을 옅게 뜬 양민철이 고천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너……!”

고천수는 양민철의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야 탄식을 흘렸다.

“안 물렸어?”

“네. 마지막에 다 잡고 그냥 미끄러져서 머리만 부딪…….”

와락.

고천수는 양민철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다행이다.”

정말로 죽은 줄 알았다.

-그래도 직접 살펴보는 게 낫지 않음?

시청자의 의견에 고천수는 화들짝 놀라 양민철의 몸을 자세히 살폈다.

“혀, 형?”

이곳저곳을 만지는 고천수를 보며 양민철이 기겁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고천수는 양민철에게 상처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어깨를 끌어 잡았다.

“다행이야, 진짜.”

-시바, 진짜. ㅋㅋㅋ

-기뻐하면서도 그거 한 마디에 자기 안전 챙기기. ㅋㅋ

-천수답다.

모든 안전을 확인한 뒤 순수하게 기쁨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고천수는 한숨과 함께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날 수는 있냐?”

“네. 이제 괜찮아요.”

고천수가 손을 내밀자 양민철은 그 손을 잡고 천천히 일어났다.

“어휴, 죽은 줄 알았다 야.”

장서연도 뒤늦게 양민철에게 한 마디를 건넸다.

양민철은 멋쩍은 웃음을 흘리더니 갑자기 뭔가 번뜩 생각나는지 물었다.

“어? 근데 두 분 어떻게 탄 거예요?”

기관차는 양민철이 좀비들과 계속 싸우고 있던 바람에 도중에 멈추지 못했다. 몸에 짓눌려, 경적만 몇 번 울렸을 뿐이었다.

“얘기하자면 길어.”

고천수가 대충 얘기를 정리하려고 하자 장서연이 갑자기 숨을 삼켰다.

“앗! 그러고 보니 고천수 너!”

장서연은 고천수의 얼굴을 잡아 돌리며 물었다.

“너 어떻게 그렇게 힘이 센 거야?”

“뭘 말입니까?”

“나 집어 던졌잖아!”

누가 듣고 오해하기 딱 좋은 말이었다.

“예, 형? 집어 던졌다고요?”

“그래! 그게 다가 아니었다니깐!”

장서연은 흥분한 듯 소리쳤다.

“막 나 업고 달리고! 기관차도 달리기로 따라잡았어!”

“예?”

양민철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천수를 바라보았다.

고천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죽을 것 같으니까 진짜 초인적인 힘이 나오더라. 나도 놀랐어.”

“그러니까 말이야. 정말 위기에 몰리면 그렇게도 되는구나. 엄청 신기해.”

천진하게 눈을 빛내는 장서연을 보며 고천수는 미소를 그렸다.

“뭐, 이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사체들부터 치우죠. 냄새 나니까.”

그때였다.

치이이익.

떨어져 있는 교신 수화기에서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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