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 검문소 (3)
외침은 곧장 좀비들에게 가 닿았다.
[어그로 10 - 09:59]
[어그로 12 - 09:59]
[어그로 14 - 09:59]
“내가 보이냐!”
[어그로 21 - 09:59]
[어그로 23 - 09:59]
[어그로 25 - 09:59]
고천수는 미친 듯이 소리쳤다.
“보이면 와서 잡아 보든가!”
[어그로 27 - 09:58]
[어그로 28 - 09:58]
[어그로 29 - 09:58]
⋮[어그로 41 - 09:57]
어그로 수치가 빠르게 올라갔다. 뒤에서 놀란 장서연이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고천수는 무시하고 좀비들에게 외치고 또 외쳤다.
“야, 고천수!”
그사이 장서연이 올라와 고천수의 어깨를 붙잡았다.
“너, 미쳤어?”
고천수가 한 행동은 정상적인 사고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지금 대체…….”
그렇게 절벽 아래로 시선을 돌리던 장서연이 멈칫했다.
그녀는 고천수가 한 일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했다.
“장서연 씨!”
고천수는 굳어 있는 장서연의 어깨를 붙잡으며 물었다.
“내려갈 준비 됐어요?”
“어, 어?”
“곧 좀비들이 올라올 거예요!”
도발을 당한 좀비들은 더 포악해졌다. 먹잇감을 손에 넣기 위해 사정없이 절벽을 타고 오르고 있으니, 곧 있으면 대참사가 벌어질 것이었다.
“군인이랑 좀비, 둘 다 잘 피해서 내려오세요! 제가 시선을 끌 테니까, 그 정도는 할 수 있죠?”
“그 정도는 할 수 있다니! 너 돌았…….”
고천수는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그는 몸을 뒤로 돌려 뛰어가기 시작했다.
“저쪽이다!”
군인들이 고천수를 발견하고는 총구를 돌렸다. 위험했다. 엄폐하지 않고 달리고 있으니 스스로를 보호할 수단은 그 무엇도 없었다.
자신의 몸 이외에는.
파악!
고천수는 땅을 지르밟고 멀리 뛰었다.
-야, 이거……!
-미친!
그리고 그건 결코 일반인이 한 번에 뛸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고천수는 10m의 거리도 한 번에 이동하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뭐가 어떻게……!”
“일단 잡아!”
군인들이 당황하며 총구를 급하게 돌렸다. 하지만 고천수도 바보는 아니었다. 높이 뛰어서 나무 위로 올라갔다가 풀숲 안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하며 조준을 방해했다.
“시발, 어떻게 된 거야!”
“사람 새끼 맞아?”
“야, 저 새끼 검문소로 가잖아!”
고천수가 빠른 속도로 길을 우회해서 검문소로 향하자 군인들도 부리나케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느렸다. 고천수는 이미 검문소에 도달해 있었다.
콰득.
고천수는 검문소의 문을 바로 열어젖혔다.
타다다다다!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군인 일곱이 빠르게 총을 쏘았다. 하지만 고천수는 맞지 않았다. 장난치듯 문만 열어 놓고 자리를 떴던 것이다.
콰창!
고천수는 검문소 안에 진입하지는 않고 주위를 돌며 총으로 창문만 깨부쉈다. 그럴 때마다 안에 있던 군인들이 대응 사격을 했지만 고천수가 행동하는 게 더 빨랐다.
“저건가……?”
고천수는 검문소 근처에 있는 분기점을 발견했다.
레일은 분기선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역시 검문소 쪽에서 레일을 바꿔 놓았던 것이다.
크아아아아.
산 쪽에서 좀비 몇 마리가 나타났다.
“……!”
고천수가 도발한 좀비들은 아니었다. 산 쪽으로 이미 몇 마리가 넘어와 있다가 총 소리를 듣고 근처로 몰려온 게 분명했다.
“야아!”
고천수는 다시 소리쳤다.
“여기다!”
크아아아아.
좀비들은 고천수를 보고 빠르게 뛰어왔다.
“형님들, 잘 보세요.”
고천수는 미소를 지었다.
“쟤네들이 누구 편인지.”
[어그로 46 - 07:42]
크아아아아.
고천수는 바로 앞까지 다가온 좀비들을 검문소로 유인했다.
타앙!
창문에서 언뜻 좀비의 모습을 본 군인들이 총을 쏘았다.
크아아아아.
그러자 좀비들이 검문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너희도 좀비들 좀 나눠 가져.”
어차피 어그로 스킬은 발동되고 나서는 누적 계산이었다. 도중에 다른 놈들이 도발로 채간다고 해도 당장 수치가 줄어들 일은 없었다.
고천수는 좀비가 보이는 족족 자신이 먼저 도발한 뒤 죄다 검문소로 유인했다.
“으아아악! 으아악!”
검문소 안쪽에서 비명과 총성이 이어졌다. 고천수는 다시 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풀숲 안에 몸을 숨기고 있자, 곧 산에서 이제 내려온 군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이런 망할!”
“검문소가 당하고 있잖아!”
“야, 조심해!”
타다다다!
군인들은 주위로 좀비가 몰려드는 것을 보며 총을 마구 휘갈겼다.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고천수는 중얼거리며 돌멩이 하나를 주워들었다.
총알은 다 썼다.
그렇다고 해서 무기가 없는 게 아니었다.
꽈득.
그의 팔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600%.
그새 도달한 수치가 고천수의 팔을 강철 스프링처럼 만들었다.
촥!
돌멩이는 던져졌다.
콰직!
그리고 이내 목표물의 인중을 깨부쉈다.
“컥……?”
군인 한 명이 옆으로 넘어갔다.
“뭐야.”
어리둥절해 하는 다른 군인들에게도 돌멩이가 날아갔다.
“크악!”
“저, 저기!”
“저기 있다!”
공격당한 군인들이 소리치며 총구를 들어 올렸지만 이미 고천수는 거기에 없었다.
대신 다른 것들이 군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크아아아아.
절벽을 타고 올라와 산을 내려오기 시작한 좀비들이었다.
이미 산에 있었던 좀비들에 더해 후방에서까지 좀비들이 몰려들자 군인들은 기겁하며 꽥 소리를 질렀다.
“쏴! 쏴!”
“탄창 하나만 넘겨 줘!”
“으아아아아!”
그들이 좀비들의 시선을 끄는 사이 고천수는 장서연을 찾아 냈다.
“꺼져! 꺼지라고!”
탄을 소진한 장서연은 총을 휘둘러 근처 좀비들의 머리를 깨부수고 있었다. 하지만 혼자서는 무리였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좀비에 장서연은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아아아!”
퍼억!
그때였다.
고천수가 장서연의 옆으로 뛰어들어 총으로 좀비들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어그로 57 - 05:21]
[어그로 58 - 05:20]
[어그로 61 - 05:19]
사방에서 좀비들이 몰려들수록 고천수는 점점 강해졌다. 총을 장난감처럼 다루며 한 방에 하나씩 좀비를 부숴 버리는 고천수의 완력을 보고 장서연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야, 너 대체…….”
“업혀요!”
고천수는 장서연에게 소리쳤다.
“얼른 업히라고요!”
좀비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아무리 군인들을 쓸어버리기 위함이었다지만, 이대로는 모두가 위험할 뿐이었다.
“선로 바뀌어 있었어요! 빨리 업혀요! 같이 죽기 싫으면!”
놀란 장서연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고천수가 재빨리 손을 뻗었다.
“판단 한번 느리네!”
순간 고천수는 장서연을 안아서 어깨에 둘러멨다.
“앗, 잠깐……!”
“꽉 잡아요!”
고천수는 그대로 장서연을 든 채로 달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좀비들이 그를 붙잡으려고 달려들었지만 소용없었다. 고천수는 마치 럭비 선수라도 된 것처럼 좀비들 사이로 빠르게 뛰어서 검문소까지 향했다.
-장서연 지금 놀라서 굳은 듯.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고천수는 군인들이 어떻게 됐는지부터 확인했다.
“으아악! 으아아악!”
군인들은 죄다 좀비들과 육탄전을 벌이고 있었다. 저렇게 되면 결과야 뻔했다.
고천수는 장서연을 분기점으로 데려가며 소리쳤다.
“장서연 씨!”
“…….”
“장서연 씨! 대답해요!”
“으, 응?”
겨우 정신을 차린 장서연이 대답했다.
“왜?”
“저거!”
고천수는 텅 레일을 가리켰다.
“혼자서 바꿀 수 있어요? 딴생각하지 말고 집중해요!”
그가 일갈하자 장서연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어, 어. 할 수 있어.”
“그럼.”
고천수는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고 총을 들어올렸다.
“1분 내에 끝내요!”
[어그로 67 - 03:42]
“곧 민철이가 올 테니까!”
그때까지는 고천수가 장서연을 엄호할 계획이었다.
“알았어……!”
장서연은 선로 근처에 있는 하얀색 박스를 찾았다. 거기에는 텅 레일을 움직이는 장치를 조작할 장비가 들어 있었다.
“아 씨, 왜 이렇게 손이 떨리냐고……!”
아무리 강심장인 그녀라도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다만 그녀는 기관사였다. 철로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래도 자기 할 일은 습관처럼 할 수 있었다.
이이이이이잉.
사전 준비를 마친 뒤, 그녀가 수동 핸들을 끼워 넣고 풍차처럼 한쪽으로 빠르게 돌리자 텅 레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서연 씨! 멀었습니까?”
“거의 다 했어……!”
장서연은 식은땀을 흘리며 팔에 좀 더 힘을 주었다.
“전환 완료!”
일을 마친 장서연이 서둘러 확인 작업에 돌입했다.
“진로 양호! 고천수! 다 마쳤어!”
탁.
고천수는 그대로 장서연을 들쳐 멨다.
그녀가 또 놀라 움찔대는 게 느껴졌지만 고천수는 신경 쓰지 않았다.
크아아아아.
그새 좀비들이 군인들을 전부 집어삼켰다. 남은 사람은 고천수와 장서연뿐이었다.
-야, 이거 망한 거 아냐?
-너무 많아.
-기차 버려! 경적소리도 안 났잖아!
그 말대로였다.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고천수가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좀비들을 보며 마른침을 삼킬 때였다.
빠아아아아아앙!
경적이 울렸다.
철커덩 철커덩.
거대한 진동을 일으키며 기관차 한 대가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빨라……!”
하지만 기뻐할 수는 없었다. 고천수는 기관차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빨라! 너무!”
기관차는 누굴 태울 생각이 없는 듯 계속해서 가속하고 있었다. 고천수는 불안함을 느꼈다.
‘양민철, 설마…….’
고천수는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산에서 좀비들이 더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안 돼.’
농성은 불가능했다. 한 번만 물려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상대를 두고 무리를 할 수는 없었다.
‘타야 돼.’
기관차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타야 했다. 여기서 다른 몬스터라도 추가됐다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야아!”
그래서 고천수는 소리쳤다.
“이쪽이다아아아!”
좀비들의 시선이 일순 고천수에게 쏠렸다.
그렇게 도발당한 좀비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면서 장서연이 고천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장서연 씨. 걱정 말고 좀 더 꽉 매달리세요.”
어차피 좀비들이 레일 위로 올라오게 만들면 기관차가 탈선할 수도 있었다.
고천수는 레일 바깥으로 좀비들을 몰고 갔다.
“저흰 무조건 살아서 탑승할 거니까.”
그리고 이내 좀비들을 다시 산 쪽으로 유인하며 고천수가 말했다.
“저 놓치지나 마세요. 떨어지면 못 구할 수도 있습니다.”
좀비들을 괴성을 지르며 고천수의 뒤를 따랐다. 그건 역시 파도와도 같았다.
[어그로 89 - 00:31]
신체 기능 990%.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신체 능력이었다. 고천수는 일전의 기록을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퍽! 파악!
눈앞을 막는 좀비들은 총을 휘둘러 모두 분쇄해 버렸다.
총이 마치 검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다.
‘바로 다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몸은 가볍고 강인했다. 고천수는 이제야 이 스킬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크아아아아.
‘아니.’
고천수는 정신을 차렸다.
‘난 무적이 아니야.’
착각은 금물이었다. 플레이어는 자신이 가진 스킬의 한계를 꿰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이 스킬은 좀비의 감염력까지 막아 주는 방호복이 아니었다. 스킬이 꺼지는 순간, 한순간의 실수도 자신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었다.
‘대략 70미터…….’
좀비들을 잔뜩 끌고 산 쪽으로 들어왔다.
그렇다면 이제 기관차를 타기 위해 다시 선로 쪽으로 향해야 했다.
철커덩 철커덩.
기관차가 검문소를 지나치고 있었다.
-뭐 해! 안 가고!
-멀어지잖아!
-여기서 뒈질 거?
채팅창이 급박한 반응으로 가득 찼다.
“잠깐.”
그렇게 모든 것이 경각에 달했을 때, 고천수는 검지를 위로 들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