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 검문소 (2)
가지고 있는 탄창은 30발들이, 평시 때는 20발들이인 것을 감안하면 현재 군인들은 전시 상황처럼 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쪽 수가 많으면 화력이 좀 밀리긴 할 텐데, 운이 좋길 바라죠.”
다행히도 터널 위로 보내진 군인들은 전원 무장 상태는 아니었다. 화기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해 볼 만했다.
“그래, 운이 좋길 바라야겠지.”
장서연은 걸어가는 고천수의 뒤를 따르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딴 데서 총 맞고 죽지 않으려면 말이야.”
“걱정 마세요.”
고천수는 눈을 치켜떴다.
“저도 이딴 데서 죽을 생각은 없으니까.”
능선은 막힌 곳 없이 쭉 이어졌다. 고천수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며 좌측을 돌아봤다.
절벽이었다.
능선 좌측은 경사가 가파른 절벽으로 주욱 이어져 있었다.
‘떨어지면 살기 힘들겠는데.’
능선 우측에 있는 검문소와 전투를 시작했을 때 도망치기 어렵다는 의미도 됐다. 고천수는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할 수 있을지.’
누군가를 공격하는 것에 망설임은 없었다. 살아남는 게 목표니까.
하지만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에 관해서는 걱정이 앞섰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있어야지.’
재난 게임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통제를 벗어난 것들이 너무 많다 보니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었다.
크아아아.
그리고 지금 이것도 그랬다.
“……!”
고천수는 절벽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순간 멈춰 섰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장서연도 급하게 걸음을 세웠다.
“왜 갑자기 서는…….”
장서연은 고천수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리다가 표정을 구겼다.
“저게 뭐야.”
고천수와 장서연이 보고 있는 곳은 절벽 아래의 공간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거기에 모여 있는 좀비들이었다.
“하.”
고천수는 그 좀비들을 내려다보면서 떨리는 숨을 뱉었다. 모여 있는 수는 대충 보기에도 50마리는 넘어 보였다.
“개떡 같네, 진짜.”
단순히 그렇게 모여 있기만 한 거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좆됐다, 이거.
-야, 빨리 가야겠는데?
좀비들이 하나둘씩 절벽을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야, 고천수.”
장서연이 고천수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이거 위험한 거 아냐?”
위험한 게 맞았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좀비들의 수도 불어나고 있었다. 대부분은 떨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상당히 많은 놈들이 착실하게 절벽을 올라오고 있기도 했다.
이대로 있다간 좀비 파도에 휩쓸릴 수 있었다.
“야, 어떻게 할 거야?”
장서연의 닦달에 고천수는 잠시 머리를 싸쥐었다. 몰려오는 좀비를 상대하자고 총을 쏠 수는 없었다.
일단은 검문소를 통과하는 게 우선이었다.
“서두르죠.”
고천수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검문소, 빨리 밀어 버려야 합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참이 없었다. 고천수는 속도를 높이다가 아예 뛰기 시작했다. 장서연도 그런 고천수를 따라 달렸다.
꽈악.
얼마쯤 달렸을까, 고천수는 주먹을 쥐며 장서연에게 달리기를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둘은 속도를 늦추고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검문소가 시야에 보였다.
‘10평 정도 되려나.’
고천수는 검문소의 크기를 가늠해 보면서 밖에 있는 인원들을 살펴보았다.
‘하나 둘 셋…….’
10명이었다.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고천수는 주변 바위 뒤에 몸을 엄폐하고 총구를 그들 중 하나에 겨눴다. 그러자 장서연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야, 잠깐. 검문소 안에 얼마나 더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더 살펴볼 시간이 없습니다.”
“네가 총 쏘면 그 괴물 자식들도 더 빨리 올 수도 있어.”
알고 있었다. 고천수는 상관하지 않고 개머리판을 어깨에 더 단단히 견착했다.
군인 시절 에이스로 불렸을 정도로 사격 실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게임을 할 때도 조준력 문제로 죽었던 적은 없을 만큼, 어디서든 뭔가를 총으로 맞히는 데는 자신감이 있었다.
“빨리 자세 잡으세요. 교전할 겁니다.”
“에이 씨.”
그러자 장서연도 엎드려서 총을 들어올렸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얘기해 놓고 엉뚱한 데 맞히지나 마라.”
“장서연 씨도요.”
“괜히 조준하다가 망설이지나 말고.”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적으로 인식한 상대에게 자비는 없으니까.
탕!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고천수가 쏜 건 아니었다.
-야, 쐈다!
검문소 쪽에서 이쪽으로 쏜 것이었다.
“이런 시발!”
적들은 감시 장비를 가지고 있었다. 고천수는 바로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타앙!
미리 장전돼 있던 총이 뒤로 밀리며 총알을 뱉어냈다.
“끄악!”
검문소 쪽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 비명은 곧 다른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타다다다다다다!
적들이 고천수 일행을 향해 미친 듯이 총을 쏴 대기 시작했다.
팅! 티잉!
총알들이 바위에 맞고 이곳저곳으로 튕겨져 나갔다. 고천수는 몸을 안쪽으로 들인 채 숨을 크게 내쉬었다.
‘제기랄.’
생각보다 더 위협적이었다. 저쪽은 가지고 있는 탄환이 많은지 냅다 연사로 갈기고 있었다.
타앙! 타앙!
“야, 뭐 해!”
장서연이 간간히 바위 바깥으로 총을 쏘면서 외쳤다.
“빨리 쏴!”
고천수는 숨을 삼키고 바로 바위 좌측으로 몸을 내밀었다.
타앙! 타앙! 타앙!
저쪽이 탄환이 많더라도 제대로만 맞힐 수 있으면 이쪽도 승산은 있었다. 고천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적들을 빠르게 조준했다.
“끄악!”
하나 더 맞혔다. 고천수는 몸을 다시 바위 안쪽으로 들였다.
타앙! 타앙!
장서연이 계속해서 주의를 끌어 주고 있었다. 탄환이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기에, 고천수는 더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이번엔 바위 우측으로 몸을 꺼내 총구를 내밀고 적을 조준했다.
“끅?”
하지만 적을 채 맞히기도 전에 고천수가 먼저 총알을 맞아 버렸다.
“끄악…….”
고천수는 몸을 다시 바위 안쪽으로 들인 채 어깨를 만져 보았다.
부상이었다.
“끅…….”
“야, 뭐야! 맞았어?”
“괘, 괜찮습니다.”
스친 것뿐이었다. 고천수는 이를 악물고 다시 총을 꽉 쥐었다.
-야, 빨리 다시 자세 잡어!
-뒈질 거야?
시청자들의 반응이 급박해졌다. 고천수는 총구를 다시 바위 밖으로 내밀기 전에 물었다.
“형님들, 검문소 안쪽 인원 보입니까?”
-안 보이지, 인마!
-우린 그냥 공포 게임 3인칭 시야 정도로밖에 못 봐.
-네 시야 정도의 거리로 주위 반경밖에 안 보인다고.
아직 검문소 안 인원들이 나오지 않은 거면 위험했다. 이쪽은 탄환이 없어서 조준 사격을 해야 하는데 너무 빨리 들켜 버린 것이다.
“망할……!”
고천수는 다시 바위 밖으로 총구를 내밀고 빠르게 적을 조준했다.
타앙!
놓쳤다.
타앙! 타앙!
계속해서 빗나갔다. 그 와중에 적들이 쏜 총알이 계속해서 바위를 때리고 있었다.
“끅?”
엄호를 해 주던 장서연도 신음과 함께 자리에 주저앉았다. 고천수는 얼른 그녀의 몸을 살폈다.
“괜찮습니까!”
“괘, 괜찮아. 나도 팔에 스쳤어.”
“몇 발 쐈습니까!”
고천수의 물음에 장서연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답했다.
“한 스무 발 정도?”
기껏해야 10발 가량밖에 안 남았다는 소리였다. 고천수는 바위 안쪽에서 숨을 골랐다.
‘내가 가진 건 20발 남짓.’
탄 소모가 너무 빨랐다. 변수가 너무 많이 생겼다. 고천수는 숨을 헐떡였다.
‘젠장. 어떡하지.’
-천수야, 근처로 온다!
-저쪽에서 거리 좁힌다고!
고천수는 바로 정신을 차렸다.
적들 인원 정도면 충분히 우회 조를 보낼 수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좌우에서 적들을 맞닥뜨리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장서연 씨! 물러나야 합니다!”
도망가야 했다. 이대로 있다가 당할 수는 없었다.
“물러서면 어디로 가는데!”
“그건 나중에 정하자고요!”
고천수의 외침에 장서연이 입술을 꽉 물어뜯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안 듯, 총을 연발로 바꿔서 들어 올리며 바위 바깥으로 벗어났다.
타다다다다!
장서연의 총이 불을 뿜었다.
딸깍!
하지만 기껏해야 7발이었을 뿐이었다. 적들이 7발에 놀라 움츠러들었다가 대응 사격을 하려고 할 때였다.
타다다다다!
고천수가 바로 가진 탄환을 소진해서 스스로 엄호하며 장서연의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죽여!”
적들이 소리 높여 외치며 총을 쏴 댔다.
파직! 파악!
주변 나무들이 총알에 맞아 깊게 파였다. 고천수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장서연과 함께 능선으로 향했다.
-야, 천수랑 작별 인사 해야 하겠는데?
-누가 미션 안 거냐?
-지금 미션을 어케 거냐.
채팅창이 혼란으로 가득 찼다. 고천수는 생각이 한계에 몰리는 느낌이었다.
“도와줘, 빨리. 형님들 빨리…….”
고천수는 숨을 헐떡이다가 이를 악물었다.
“시발, 내가 이대로 죽을 것 같아?”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제아무리 무리수라도 방법을 강구해 낼 수 있었다. 고천수는 머리를 굴렸다.
‘이판사판이다.’
어차피 안전하게 검문소를 터는 건 물 건너 갔다. 그렇다면 안전을 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오로지 확실하게 검문소의 적들을 제압만 할 수 있다면…….
“형님들, 미션은 안 걸어 줄 거죠?”
당장 목숨을 구할 정도의 효력 미션을 걸면 얼마나 비싼지 알고 있었다. ‘한도초과’ 외에는 그런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았다.
-시발, 금액이 모자라……!
아니나 다를까, 한도초과로 보이는 채팅이 하나 올라왔다. 하지만 효력 미션을 구매하려다가 실패한 듯했다.
-야, 나 한도초과야! 아무거나! 천수한테 아무거나 좀 걸어 줘!
고천수를 살리려는 의지가 느껴졌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떨떠름한 반응만 내놓고 있었다.
심지어 이런 반응도 있었다.
-야, 그냥 죽게 냅둬.ㅋㅋ 존나 이입해가지곤.
고천수는 이제 채팅창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았다. 아직까진 많은 시청자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껏해야 기차역을 떠나 이제 검문소에 온 플레이어에게 무지막지하게 젠을 털어놓을 자는 없던 것이다.
‘너도 그런 거지?’
‘온리원’.
자기 기분파인 ‘새로운주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온리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 텐데도 말이다.
‘기대심이라고 생각할게.’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란 기대.
팅!
방아쇠를 당겼지만 힘없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전탄 소진.
고천수는 총을 몸 가까이 당겨 잡고 더 빠르게 산 위로 올라갔다.
“난 이렇게 안 죽어!”
발악하며 외치는 고천수를 장서연이 돌아보았다.
고천수는 그런 장서연에게 소리쳤다.
“장서연 씨! 내려갈 준비 하세요!”
장서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적들을 피해서 올라가고 있는데 내려갈 준비를 하라니 어불성설이었다.
“제가 먼저 내려가면 뒤따라 내려오면 돼요! 알겠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자살이라도 하려는 거야?”
“아뇨!”
고천수는 결연한 표정으로 외쳤다.
“지금부터 역전이란 걸 해 볼 테니까……!”
어느덧 능선까지 올라왔다. 고천수는 아까 능선을 타고 오며 보았던, 절벽 쪽으로 가 시선을 내렸다.
크아아아아.
절벽을 올라오고 있는 좀비들의 수가 더 많아져 있었다.
타다다다다!
뒤에서 들리는 총소리. 앞에는 좀비들.
그렇다면 선택할 길은 하나였다.
고천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후읍.”
폐가 공기로 꽉 찼다. 고천수는 그대로 좀비들을 향해 내질렀다.
“이쪽이다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