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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36화 (36/224)

036. 검문소 (1)

“좋아, 이제 어쩔까.”

장서연의 물음에 고천수가 양민철을 가리켰다.

“이 녀석은 여기 두고 가죠.”

“예? 형, 저는 안 따라가요?”

“그래, 인마.”

다 가면 기관차는 누가 지킨단 말인가.

“얘 혼자 남겨서 괜찮겠어?”

장서연은 걱정스러워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남으면 또 모를까.”

“그건 안 됩니다. 전 선로 전환기를 다룰 줄 모릅니다.”

고천수가 단호히 대답하자 장서연이 헛웃음을 뱉었다.

“그냥 나 혼자 튈까 봐 그런 건 아니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레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혼자 도망갈 수도 없었다.

“생각보다 검문소 인원들이 많으면 저 혼자서 상대하긴 어려우니까요. 그러니까 같이 가야죠.”

“적으면 혼자서 뭐 해 볼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네?”

고천수는 고개를 저었다. 여태까지 많은 몬스터들을 상대해 왔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사람은 많이 상대해 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인원수가 적든 많든, 제 경험이 부족합니다.”

“야, 누군 사람을 많이 상대해 본 줄 알아?”

그러면서도 장서연은 고천수의 심정을 이해한 듯 한숨을 쉬었다.

“뭐, 어쩔 수 없지. 네 말에 일리는 있으니까.”

“좋습니다.”

고천수는 양민철의 팔을 붙잡아 끌어당기며 장서연에게 요청했다.

“그럼 이 녀석에게 간단히 조작법 좀 가르쳐 주시죠.”

“뭐?”

장서연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작법을 왜 가르치려고.”

“그래야 저희가 레일을 바꿨을 때 열차를 가지고 올 수 있죠.”

“하.”

-여자 또 화난 듯.ㅋㅋ

-얼른 달래줘라, 천수야. 검문소 같이 안 가 주면 어케 하냐.

-아니, 근데 지금은 괜찮을걸? 어차피 레일 비어 있고.

고천수의 생각은 조금 전 시청자의 마지막 의견과 같았다.

‘그래, 어차피 앞뒤 열차를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거란 말이지.’

이 기관차 하나만 생각하고 움직이면 됐다. 비어 있는 도로에서는 차 운전도 평소보다 훨씬 수월한 법이었다.

조작법을 알면 양민철도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어.”

장서연은 그러면서도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기관차를 맡기고 가도 될지 확신은 안 들긴 해.”

“그럼 언제 확신을 가지고 움직입니까.”

고천수가 면박을 주듯 말했다.

“검문소에서 일 제대로 못 하고 여기 갇히는 게 더 최악입니다. 빨리 가르쳐 주고 이동하죠.”

“말만 존댓말이지 아주 내 상관이야.”

그래도 장서연은 더 따지고 들지 않았다. 결국 고천수의 계획에 동의한 듯했다.

“그럼 이리로 와. 얼른 알려 줄 테니까.”

장서연은 양민철에게 손짓했다. 양민철이 곁으로 다가가자, 그녀는 장치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잘 들어. 복잡해 보이겠지만, 너무 긴장할 것 없어. 다행히 앞으로는 검문소까지 직선 구간밖에 없으니까 기본적인 조작만 잘해도 될 거야.”

터프한 성격과는 대조적으로, 그녀는 조작법을 알려주는 데 있어서는 무척이나 침착했다.

“일단 이건 역전간 핸들이라는 거야. 기관차의 추진 방향을 정하는 건데, 이 방향으로만 놔두면 돼. 그리고 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건 이 브레이크 핸들이랑 엔진 출력 조정 핸들이야.”

전문적인 얘기였지만 양민철이 알아듣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장서연은 계속해서 양민철에게 핸들을 다루는 방법과 기타 신호 장치 제어에 관해 알려주었다.

“……알겠지? 알았으면 조금 움직여 봐.”

장서연은 양민철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양민철은 긴장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기관차를 잘 출발시키고, 멈추었다.

“재밌네요, 이거.”

양민철의 말에 장서연이 인상을 찌푸렸다.

“기관차를 운전하는 건 장난이 아니야. 진지하게 생각해.”

“앗, 네.”

양민철에게 한소리를 마친 장서연이 고천수에게 손짓했다.

“된 거지? 그럼 우리 이제 가자.”

“잠깐만요.”

고천수는 양민철에게 몇 가지를 일러두었다.

“민철아, 우리가 나가고 30분 뒤에 경적을 울려 줘.”

“경적이요?”

“네가 시선을 끌어 줘야 해.”

검문소가 레일 바로 옆에 붙어 있다면 잠입하기 어려웠다. 시선을 분산시킬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경적을 울리고 넌 바로 기관차를 출발시켜. 가만히 있기 어려워질 테니까.”

“혹시 뒤에서 쫓아오는 인원이 있으면요?”

“그럴 것 같진 않지만, 그럼 그때도 출발해. 다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분기선 앞에서는 반드시 멈춰야 해.”

기관차가 먼저 분기선으로 빠지면 일이 더 복잡해질 수도 있었다.

“그럼 갈게. 뒷일을 잘 부탁한다.”

당부를 남긴 고천수는 그대로 기관차에서 내렸다. 장서연도 서둘러 그의 뒤를 따라왔다.

“괜찮을까?”

“뭐가 말입니까?”

“아무래도 걱정되니까.”

장서연이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고천수는 그녀의 모습에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언제는 저희를 죽일 듯이 얘기하더니…….”

“그건 어쩔 수 없었잖아.”

얼굴을 붉힌 장서연이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기관차 좀 몰게 해 줬다고 좋아하는 꼴을 봐. 완전히 어린애던데.”

-순수성이 도움이 좀 됐네.

-그러게.

시청자들의 의견에 고천수도 동의했다. 뭐가 됐든 장서연이 약간이라도 정을 붙였다면 나쁜 일이 아니었다.

“장서연 씨, 저기로 가죠.”

직선 구간이긴 했지만 앞에는 터널이 또 있었다. 안쪽은 위험했기에 고천수는 장서연과 함께 언덕을 타고 터널 위쪽으로 올라갔다.

“저기, 보이네.”

장서연이 풀숲 안, 시야에 들어온 검문소를 가리키며 말했다. 고천수는 숨을 삼켰다.

“생각보다 더 가깝네요.”

“괜찮아. 우리가 온 건 아직 모를 거야. 근처에서는 서행하면서 달렸으니까 땅 울림도 못 느꼈을 거고.”

“혹시 모르죠.”

그래도 고천수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검문소와 분기점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 그리 크지 않았다. 게다가 둘 다 왼쪽 산 옆에 인접해있어서 몸을 숨기고 접근하기에 용이했다.

“가죠.”

고천수는 능선을 따라 빠르게 이동했다. 장서연이 그 뒤를 쫓았다.

멈칫.

그러던 중 고천수는 장서연의 앞을 가로막고 멈춰 섰다. 물음표를 그리는 듯한 그녀를 돌아보며 고천수는 입술에 검지를 올렸다.

저 앞에서 웬 사람들이 능선을 타고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망할.’

고천수는 장서연과 함께 풀숲에 숨으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검문소에서 미리 인원을 보낸 듯했다.

아마 터널 위의 지점을 확보하기 위해 오는 것이리라.

‘하나, 둘, 셋, 넷…….’

그들의 수를 세어 본 고천수는 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제압하기에는 적지 않은 규모였다.

그들 중 두 명이나 소총을 들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그러했다.

-야 야, 천수야. 무리하지 마라.

-그냥 기관차 버리고 산 쪽으로 계속 도망가는 건 어떰?

-아직은 여기서 대전 멀어서 위험하지 않냐?

고천수는 걸어서 대전까지 갈 생각이 없었다. 기관차가 없으면 몰라도.

“……그놈들 근데 어떻게 하래?”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군인들이 멀지 않은 곳까지 다가온 것이었다.

“저항하면 그냥 쏘라던데?”

“기관차만 뺏으면 되는 거라고.”

“존나 쉽네.”

내용을 들은 고천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설마 했는데 바로 죽일 생각이었단 말인가? 고천수는 그래도 검문소까지 가서 상황을 보고 제압할 방법을 정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상대는 이미 인정사정없는 쪽으로 방법을 정해 두고 있었다.

꽉.

대화를 같이 엿들은 장서연이 고천수의 소매를 힘껏 움켜쥐었다. 고천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이 여자…….’

눈빛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분노에 찬 범을 보는 느낌이었다.

-장서연은 이게 매력이지.

-빡 돌면 진가가 나오거든.

-몬스터는 몰라도 사람 잡는 건 맡겨도 됨.

시청자들은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이제 스포일러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듯 장서연에 대한 정보를 풀었다.

‘사람 잡는 건 맡겨도 된다고……?’

고천수는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 장서연과 시선을 마주쳤다.

장서연은 군인들을 잡자는 듯 눈짓했다. 고천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잡자고?’

막상 소총까지 들고 있는 사람들을 코앞에서 적으로 마주치자니 고천수는 심장이 떨렸다. 검문소에 가서 사람들을 제압하겠다는 생각은 어불성설이었을지도 몰랐다.

-천수야, 뭐 해.

-설마 쫀 거 아니지?

더욱이 여기서 일을 그르치면 검문소에 은밀히 잠입하거나 몰래 선로를 조정해 놓는, 소극적인 대응을 할 기회조차 없을지도 몰랐다.

꽈악.

하지만 고천수가 누구던가. 이미 수많은 위협을 뚫고 여기까지 온 스트리머였다. 이번엔 그가 장서연의 소매를 움켜쥐었다.

둘은 신호를 주고받았다.

눈앞의 적을 어떻게 할 것인지, 방법이 정해졌다.

“야 야, 다들 좀 서둘러라. 왜 이렇게 느려.”

그사이, 군인들의 목소리가 이제 코앞까지 가까워졌다.

“서두르고 있잖아. 근데 그 녀석들은 왜 죽이래? 잡부로라도 쓰지.”

“뭔가 반항적인 것처럼 보였나 보지.”

“뭣하면 그냥 우리가 잡아서 좀 갖고 놀…… 어?”

그때였다.

다시 신호를 주고받은 고천수와 장서연이 나란히 뛰쳐나갔다. 군인들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탁! 타악!

고천수와 장서연은 각자 총을 든 인원 한 명씩을 붙잡았다.

“이런 시…….”

고천수에게 잡힌 소총수가 바로 총을 쏘려고 했지만 방아쇠가 당겨지지 않았다.

“안 되지, 새꺄……!”

방아쇠 뒤에 손가락을 넣어 격발을 막은 고천수가 총을 함께 감싸 쥐며 조정간도 단발로 돌려 놓았다.

-천수 존나 세네.

몸 관리가 어느 정도는 되어 있던 고천수는, 기록 누적 스킬을 통해 사람 한 명을 쉽게 제압할 정도의 완력은 갖추고 있었다.

“이 자식이!”

하지만 문제는, 이들 이외의 다른 인원도 있다는 데 있었다. 정신을 차린 다른 군인들이 고천수를 붙잡으려고 할 때였다.

뿌득!

“으아아아악!”

장서연이 붙잡은 쪽의 소총수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고천수에게 달려들려던 군인들의 시선도 돌아갔다.

“이런 망할!”

그들의 눈에 보인 건 손목이 돌아가 있는 소총수였다. 장서연은 고통에 겨워 하는 소총수에게서 총을 뺏으며 발을 앞으로 뻗었다.

파악!

그녀에게 가슴팍을 얻어맞은 소총수가 뒤쪽의 낭떠러지로 넘어갔다.

“뭐? 죽인다고?”

그녀는 싸늘하게 눈을 치켜뜨며, 남아 있는 군인들을 돌아보았다.

“자, 잠깐. 진정해.”

“우린 임무대로 한 것뿐이라고.”

“임무 같은 소리 하네.”

그녀는 군인들에게 다가가 개머리판을 휘둘렀다.

“컥?”

“크악!”

그들이 예상치 못한, 능숙한 총검술이었다.

“이게……!”

그들은 바로 단검을 빼어들어 그녀를 노렸지만, 이미 전세는 기울어 있었다.

콱! 콰직!

턱을 한 대씩 얻어맞은 그들은 바로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꺼져.”

그녀는 그들도 낭떠러지의 품으로 보내 주었다. 남은 사람은 고천수가 상대하고 있는 한 명의 소총수뿐이었다.

“으아아아악!”

하지만 그녀가 나설 틈은 없었다. 고천수가 총을 빼앗아 든 채 소총수를 개머리판으로 몰아세우고 있던 것이다.

“으악! 잠깐! 살려…….”

소총수는 얼굴에 개머리판을 맞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옆구리에 손을 뻗어 단검을 꺼내려고 했다. 장서연은 바로 다가가 소총수의 가슴에 발차기를 먹여 주었다.

“어, 어…… 으아아악!”

뒤로 비틀거린 소총수가 그대로 낭떠러지 속으로 원하지 않는 다이빙을 해 버렸다.

-디스 이스 스파르타!

-아니, 심문할 사람 한 명도 안 남기곸ㅋㅋㅋ

-상여자네.

고천수는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며 멍한 표정으로 장서연을 쳐다봤다. 그녀는 숨을 크게 몰아쉬면서 고천수에게 짧게 한 마디를 던졌다.

“왜.”

“……아닙니다.”

검문소 상황을 알려줄 인원 한 명쯤은 남겨 뒀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고천수는 그냥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너도 다이빙할까 봐 참는 거임?

“조용히 하십쇼, 형님.”

고천수는 대신 시청자에게 면박 준 뒤 장서연에게 말했다.

“장서연 씨,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뭘.”

“동료가 돼서 영광입니다.”

은근슬쩍 그녀를 일행에서 동료로 격상시키며, 고천수는 소총에서 탄알집을 빼내 안을 살폈다.

무게가 무겁고, 탄환이 우측으로 올라와 있었다.

“일단 탄환은 꽉 차 있는 것 같네요. 혹시 총은 쏴 보신 적 있습니까?”

“있어.”

“그럼 얘기가 빠르겠네요.”

아직 한 발도 쏘지 않았기 때문에 적에게는 들키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고천수는 총을 장전하며 중얼거렸다.

“그럼 좀 격한 방법으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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