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 기차역 (5)
“시장이…… 죽어?”
장서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
“여기로 오다가 빅 헤드한테 당했습니다. 그 머리 큰 놈, 알고 계시죠?”
고천수의 말에 장서연은 곧장 당황했다.
“뭐? 정말이야?”
“네, 제 시간에 도착한 건 저희밖에 없지 않습니까.”
“아니, 그건 그렇긴 한데……!”
크아아아아!
때마침, 주변에서 괴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고천수는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며 장서연에게 계속 말했다.
“빨리 여기서 떠야 합니다. 저희라도 타겠습니다.”
“어, 엉?”
장서연은 여전히 불이 붙어 있는 담배를 내밀며 외쳤다.
“잠깐! 나는 시장을 데리고 오라는 계약을 맺었어! 시장이 없으면…….”
“꿩 대신 닭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고천수는 장서연이 투덜거리는 말을 듣고 확실히 알아챘다. 적어도 장서연은 시장과 같은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협상이 가능한 대상이었다.
“저는 시청 사람입니다. 목적지에 데려다만 주시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다 말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럼…….”
“네, 시청 쪽의 정보를 쥐고 있는 사람은 저뿐입니다. 어차피 계약 깨지게 생긴 것 같은데, 협력해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통하지 않으면 서로 맞붙는 방법밖에 없었다. 고천수는 긴장하며 장서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야, 시간 없다.
-그냥 쳐야겠다, 천수야.
-설득할 시간이 너무 촉박.
괴성이 가까워지자 시청자들이 오히려 더 조급함을 드러냈다. 고천수는 할 수 없이 양민철에게 신호를 보냈다.
완력을 써서라도 일단 기관차를 점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려고 했을 때였다.
“아유……!”
담배를 멀리 던져 버린 장서연이 고천수에게 손짓했다.
“그래, 타! 너라도 데려가야 약속한 방공호에 넣어 주겠지!”
방공호. 장서연이 7.5사단에게 약속받았던 내용이 분명했다. 고천수는 기관차를 붙잡고 오르면서 장서연에게 물었다.
“잠깐. 당연히 쟤도 포함이겠죠?”
여기서 쟤라는 건 당연히 양민철을 의미했다.
“뭐?”
장서연은 난감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쟤는 시청 직원이 아닌 걸로 보이는데.”
“그럼 두고 가자는 겁니까? 고등학생인데?”
고천수의 힐난에 장서연이 몸을 흠칫했다. 그녀가 쉽게 흔들린다는 것을 안 고천수가 더욱 세게 쏘아붙였다.
“아무리 세상이 이래도 지켜줘야 할 사람이 있는 법입니다. 저도 관계없는 저 애를 여기까지 데려오느라 산전수전 다 겪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ㅋㅋㅋ
-양민철이 더 산전수전 많이 겪었을 듯.
고천수는 시청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장서연을 쏘아보았다. 장서연이 옳고 그름을 따지지 못하는 인간이었다면 고천수의 이런 행동은 오히려 반발을 살 수 있었지만, 그는 장서연에 대해서 이미 파악을 마쳤다.
그동안의 인터뷰 내용과 조금 전에 그녀가 보인 행동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씨…….”
장서연은 결국 양민철에게도 고갯짓을 했다.
“그래, 타.”
“앗…….”
양민철이 서둘러 달려와 기관차를 붙잡고 오르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서도 고맙다는 인사는 잊지 않는 양민철을 보며 장서연은 멋쩍은 듯 손으로 뒷목을 쓸어내렸다.
크아아아!
그때였다.
계단 쪽에서 군복을 입고 있는 좀비가 하나 나타났다.
“저건……?”
고천수는 그 좀비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던 것이다.
“아아…….”
양민철도 그게 누군지를 알아차리고는 탄식을 흘렸다.
조용진.
좀비가 되어 버린 그가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쿠당탕.
하지만 그것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미 자신이 조용진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좀비는, 고천수 일행을 보며 흥분하며 내려오다가 계단에서 굴러 버렸다.
크아아아…….
계단 끝에 처박힌 좀비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려고 했다. 장서연은 그걸 보고 더 이상 행동을 지체하지 않았다.
곧장 기관실로 돌아가 레버를 조작했다.
덜컹.
기관차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좀비는 제대로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다행이었다. 기관차가 조금씩 속력을 높이는 동안 좀비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니까.
“형…….”
다만 양민철은 그런 좀비의 모습이 안쓰러운지 고천수를 보며 한숨을 쉬듯 말했다. 고천수는 좀비의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고맙다.’
덕분에 기관차를 빨리 출발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헤어지게 됐지만, 끝까지 동료로서 도움을 주고받은 셈이었다.
“응?”
양민철이 고천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계단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형! 누가 또 내려오고 있어요!”
그 말에 고천수는 양민철이 가리킨 곳을 빠르게 내다보았다.
“자, 잠깐……!”
그렇게 외치는 사내들이 있었다. 모두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고천수는 눈을 크게 떴다.
-시청 사람들이네.
-어리둥절하겠다. ㅋㅋㅋㅋ
-응, 이미 천수가 가져갔고요.
아직 기관차는 플랫폼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다. 고천수는 창문을 통해 기관실의 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아직 외침을 듣지 못했는지, 장서연은 기관차가 나아갈 레일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
하지만 사내들이 한 번 더 외쳤을 때는 장서연도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멈추라고……!”
사내들은 플랫폼을 내달렸다. 그들은 모두 기관차 탑승을 노리고 있었다.
“뭐야.”
장서연이 문을 열고 나왔다.
“멈춰어!”
그녀는 소리치는 사내들을 목격했다. 그들 중에서는 시장처럼 보이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고천수는 그녀가 기관차를 멈추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내들 뒤에는 사일런트 걸들이 따라붙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미 늦었습니다, 장서연 씨.”
고천수는 장서연을 돌려 세웠다.
“기관차 운전을 잘 맡아 주세요.”
“어?”
장서연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지금 저기서 사람들이 소리치고 있는데.”
“그런 걸 따질 때입니까?”
고천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위험 상황입니다.”
“너……!”
“장서연 씨, 안 보이냐고요.”
고천수는 사내들을 잡아서 뜯어 버리는 사일런트 걸들을 가리켰다.
“저것들은 소리를 듣고 쫓아옵니다.”
기관차의 속도를 높이지 않으면 이쪽으로 따라붙을 게 당연했다.
크아아아아!
심지어 저 멀리에서 KTX를 따라갔던 크롤러도 몇 돌아오고 있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장서연 씨.”
고천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재촉했지만 장서연은 여전히 찝찝한지 모자를 고쳐 쓰며 중얼거렸다.
“저기 저 높아 보이는 사람, 시장 아냐?”
“장서연 씨.”
“아, 알았다고!”
그녀는 할 수 없다는 듯 기관실로 다시 복귀했다. 기차는 순식간에 속도를 높였다. 그와 동시에 사내들의 외침도 더욱 커졌다.
“야 이, 새끼들아!”
그중에서도 고천수가 시장이라고 알아본 정찬국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
“날 두고 가면 어떻게 하냐고! 나라고 나!”
정찬국은 기관차 바로 뒤까지 쫓아와서는 소리쳤다.
“나 모르냐고! 날 태우라고!”
“…….”
“호, 혹시 암호가 필요한 거야? 어?”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고천수에게 정찬국은 지레 이렇게 말했다.
“암호는 디엔드…… 으악!”
거기까지였다. 정찬국은 너무 시끄럽게 떠든 소음의 죄로, 사일런트 걸에게 발목을 붙잡혔다.
“안 돼! 안 돼!”
넘어진 정찬국이 사일런트 걸에게 발길질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끄아아아악!”
사일런트 걸이 그의 살점을 찢었다. 최후는, 뒤뚱뒤뚱 그에게 다가간 조용진 좀비가 선사했다.
“끄아…… 컥?”
목까지 물어뜯긴 정찬국은 그대로 목소리를 잃었다. 대화 한 번 나눠 보지 못한 이 도시의 시장은 그렇게 고천수의 일행이었던 좀비에 의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고천수는 복잡한 기분으로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형님들, 저거 잘된 거겠죠?”
-나는 잘된 거라고 생각.
-저 시장 살아나면 사실 개발암인데 이렇게 처리되는 거 첨 봄. ㅋㅋㅋㅋ
-조용진 재평가행.
반응을 보니 잘못된 길을 가지는 않은 듯했다. 고천수는 조용진을 한 번 더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기관차는 이내 플랫폼을 벗어나 긴 레일을 내달렸다.
무궁화호의 기관차라고는 해도 사실 달릴 수 있는 속도는 꽤 빨랐다.
시속 100km도 너끈히 넘길 수 있기 때문에 기관차 밖 난간에 서 있는 것은 위험했다. 고천수는 양민철의 팔을 붙잡아 끌었다.
“민철아, 들어가자.”
“네…….”
양민철은 풀이 죽어 있었다. 나이가 어리다 보니 일행 중 한 명을 잃은 타격이 큰 듯했다.
“후.”
기관실에 들어가자 장서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 나한테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할 거야.”
사내들이 달려와 살려 달라고 했다.
장서연은 거기에 시장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확인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거기에 시장이 있었을 가능성은 염두에 두고 있었다. 고천수는 장서연이 그 점을 설명해 주길 바란다는 것을 잘 알았다.
“어떤 걸 설명해 드리길 바라는 거죠?”
하지만 고천수는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
“모른 척하는 거야? 거기에 시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없었습니다.”
“없었다고?”
장서연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 많은 사람들이 이 기관차가 서 있을 시간을 모르고도 딱 맞춰서 나타났다는 거야? 딱 봐도 시청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잖아.”
“하지만 시장님은 없었습니다.”
[띠링! 끝까지아니라고하지 님이 1젠 후원. - 더 우겨, 더!]
“하.”
장서연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거야?”
“제가 뭐 하러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고천수는 반문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시장님이 살아 계셨으면 저에게도 도움이 됐을 겁니다. 저한테 다 알려 주신 것도 아니니까요.”
“다 알려 주지 않았다……?”
“네. 제가 알고 있는 정보로는 별로 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제가 시장님을 죽었다고 말한다고 해서 얻는 이득은 없어요.”
없진 않았다. 수상한 인물이었으니까. 시청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 기관차에 태운 순간 지옥이 시작됐을 거라 예상한다면, 이쪽엔 없어서 다행인 놈이었다.
“언제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 듯이 얘기하더니.”
“안 그러면 장서연 씨가 안 태워 주셨을 거 아닙니까.”
“아 씨, 자꾸 나쁜 사람 만드네!”
장서연은 주먹을 꽉 쥐며 소리쳤다.
“날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아는 척이야? 너 나 조금이라도 알아?”
“실제로 본 건 처음이지만 예전에 본 적은 있어서요.”
“뭐? 어디서.”
고천수는 자신이 보았던 언론사의 인터뷰 내용을 쭉 읊어 주었다. 그러자 장서연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그걸…… 읽었다고?”
“예. 처음부터 끝까지.”
“…….”
장서연은 놀란 기색이었다. 하기야 그 인터뷰 기사는 댓글이 몇 개 달려 있지도 않았다.
포탈에 올라가는 메인 뉴스와는 유입량 차이가 컸기에, 설마 그걸 읽은 사람과 마주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리라.
‘나니까 읽었지.’
그런 건 백수 인터넷 망령 고천수에게는 흥미로운 읽을 거리였다.
“아, 모르겠다.”
장서연이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모자를 고쳐 썼다.
“뭘 그런 걸 읽고 그랬냐.”
그러면서도 기분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솔직하네.’
엄청 솔직하게 속내가 겉으로 드러나는 장서연을 보며 고천수는 일단 안심했다. 시청자들도 별 말 없는 걸 보면 장서연은 특별히 방해가 되는 인물은 아닌 듯했다.
애초에 시청자들은 고천수가 장서연을 설득하려고 할 때 설득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조급해했을 뿐이었다.
완벽한 적이었으면 고천수에게 안 공격하고 뭐 하냐고 좀 더 닦달했을 터였다.
‘하지만…….’
적이 아니라고 해도 확인받을 사항은 있었다.
“저, 장서연 씨.”
“왜.”
“저희 지금 대전으로 가는 겁니까?”
여태까지 고천수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이 기차는 대전으로 가야만 했다.
정확한 스토리 노선을 따르고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고천수의 질문에, 장서연은 잠깐의 뜸을 들이다가 답했다.
“맞아. 그건 잘 알고 있네.”
들어맞았다.
설정된 목적지가 같았기에, 장서연은 이제 좀 긴장을 푼 듯했다.
“너희, 몸수색 좀 해도 될까?”
물론 긴장을 풀었다고 해서 완전히 신뢰한 건 아니었다. 장서연의 말에 고천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몸수색, 말입니까?”
“그래. 내가 계속 앞을 살펴야 하는데, 갑자기 너희가 뒤에서 공격하면 곤란하잖아?”
“저, 저희는 그런 짓 안 해요!”
양민철이 끼어들며 외쳤지만 장서연은 고개를 저었다.
“목적지도 같고, 사정상 너희가 거짓말할 이유도 없다는 건 알았어. 내 인터뷰도 읽었다고 하고.”
“뭐, 인터뷰는…….”
“그래도 난 기관사야.”
고천수의 중얼거림을 끊으며 장서연이 날카롭게 말했다.
“안전 운행에는 협조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러자 양민철이 고천수를 쳐다보았다. 고천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 있나.’
이제 대전으로 간다. 협조는 필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