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 기차역 (1)
“네, 우리 차 따라오면서 매연이나 실컷 드세요! 생긴 게 딱 보니까 신선한 공기를 마실 자격조차 없게 생겼어, 응! 피부 다 뒤집어진 거 봐, 어휴!”
고천수의 기행에 조용진도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뭐, 뭐 하는 거야! 실성했어?”
안 그래도 가능성 없는 커브 구간을 돌아야만 했다. 드리프트 같은 건 친구들과 버리는 차로 운동장에서 시험해 본 적은 있어도, 조용진은 여기를 빠져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고천수가 크롤러를 도발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고! 어?”
“으아아아아! 죽고 싶어서 환장했다! 죽여 봐, 어디! 이 드러운 괴물 새끼야!”
그러거나 말거나 고천수는 크롤러를 보며 외침을 계속했다.
‘제발……!’
이 수단이 먹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크랴아아아아아!
마침내 크롤러가 분노를 폭발시켰다. 찢어지는 듯한 괴성이 주변을 울리는 사이, 고천수의 눈앞에는 이런 알림이 떠올랐다.
[미션을 완료하였습니다.]
[효력을 부여합니다.]
“다들 꽉 잡아!”
급커브 구간.
조용진이 마침내 핸들을 돌렸다.
곧장 뒷바퀴가 바깥으로 흐르고 앞바퀴가 안쪽으로 향했다.
오버스티어였다. 거기서 멈추면 가드레일을 뚫고 차가 바깥으로 튕겨 나갈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아아!”
카운터스티어. 조용진이 다시 핸들을 돌리며 차의 균형을 잡았다.
차는 미끄러지듯 급커브 구간을 돌았다.
크랴아아아아아!
크롤러도 그랬을까?
아니, 그러지 못했다.
콰앙!
가드레일에 직격한 크롤러는 그대로 묵직하게 낭떠러지 방향으로 몸이 넘어갔다.
크랴아아…….
균형을 바로잡으려고 했지만 늦었다.
관성을 해결하지 못한 크롤러는 높이가 가늠되지 않는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했다.
끼이이이익!
동시에 고천수 일행이 탄 차는 도로에 스키드마크를 그리다가 멈춰 섰다.
“…….”
“…….”
“……헉.”
먼저 숨을 토해 낸 사람은 운전자였던 조용진이었다.
“사, 살아, 살았어……?”
그는 의문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분명히 실패할 수밖에 없는 각도였다.
크롤러보다 먼저 낭떠러지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단 말이다.
그는 룸미러로 뒷좌석에 있는 둘을 바라보았다.
“후, 후우…….”
양민철은 긴장이 풀린 듯 의자에 푹 몸을 늘어뜨리며 숨을 뱉어 내고 있었고, 고천수는 언제 창문 안쪽으로 몸을 들인 건지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다, 다들 괜찮아?”
조용진의 물음에 양민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천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진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 지금 고천수는 채팅창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와, 이걸 사네. ㅋㅋㅋ
-절대 효력을 미션으로 걸었어. 존나 비쌀 텐디.
-한도초과 얘, 진짜 한도초과했을 듯.
“한도초과 님.”
고천수는 땀이 찐득한 손을 풀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조금 전에는 진짜 위험했다.
그 무모한 계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시청자가 걸어 준 미션 덕분이 컸다.
겸사해서 새로 추가된 미션 시스템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었다.
-살려 준 값, 꼭 해라.
닉네임이 적혀 있지는 않았지만, 이건 분명 한도초과의 대답이었으리라.
“이젠 기차역에 좀…… 가자.”
고천수는 한참 뒤에야 일행들에게 말했다.
***
“이제 10분 정도만 더 가면 돼.”
기차역으로 가는 길.
다행히 가는 동안 위협적인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간간히 좀비들만 조금 보일 뿐이었다.
남은 시간을 알려 준 조용진을 흘깃 바라본 고천수는 이제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향했다.
‘도착하면 기차가 있을까?’
기차가 있으니 거기로 길을 유도 받은 것이겠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바가 있었다.
‘쉽게 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무전을 통해 들은 사실을 따져 봤을 때, 고천수의 일행 말고도 거기로 몰린 사람들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몬스터도 몬스터지만 사람들과 부딪히게 될까 봐 내심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형, 저희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되나요?”
양민철이 고천수에게 물었다.
“역시 근처에 있는 대전으로 가게 되나요?”
“글쎄. 나야 그렇겠지만…….”
기차역으로 가면 각자 살 길을 찾을 수 있을지 몰랐다.
고천수는 일행을 유지하는 게 부담이었다.
‘별로 익숙하지도 않고.’
방구석에만 있던 고천수에겐 고정된 파티원이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약간의 신뢰가 생긴 건 사실이긴 했다.
“일단 가서 보자고. 거기서 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고천수를 보며 양민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추가되는 대화 없이 얼마나 지났을 때였을까.
“자자, 여러분.”
조용진이 고했다.
“기차역입니다.”
외진 곳에 있는 기차역.
많은 유동인구를 기대한 듯 쇼핑몰만 한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지만, 정작 주변 상권은 조그마했다.
차는 그곳의 작은 가게들을 지나쳐 기차역 앞에 멈춰 섰다.
“어떻게, 잘 도착하긴 했네요.”
양민철이 먼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형, 빨리 내려요. 지금은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그러게.”
따라 내린 고천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말 아무것도 없어.”
애초에 이곳은 아직 상권 개발이 제대로 되지 않은 곳이었다.
기차역을 완성하고 주변 상인들과의 조율을 통해 구역을 정비한다는 시의 계획이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마찰이 있어 진행이 지지부진했었다.
“이상한데.”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 이곳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게 정상이라는 얘기는 아니었다.
분명 무전에서는 이곳에서 기차를 타야한다고들 떠들어 대지 않았던가.
꽤 많은 인원들이 몰려 있지 않을까 했는데 완전히 예상외였다.
“형.”
양민철이 고천수에게 다가와 우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은 거예요?”
“글쎄. 그렇게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긴 한데…….”
너무 조용하다는 점이 걸리긴 하지만, 일단 이동하기는 해야 했다.
‘정보가 잘못되진 않았을 거 아냐.’
여기로 오면 도시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했다.
기차 외의 다른 방법으로 갑자기 지역 점프를 할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니, 기차를 타는 건 확정적이었다.
“차는 여기에 놔둬?”
창문을 연 조용진이 여전히 운전석에 앉은 채 물었다. 고천수는 주변을 다시 두리번거리다가 반문했다.
“저쪽 상점 뒤에 주차해 두는 건 어때?”
“저기?”
“누가 우리 차를 가져가면 곤란하니까 잘 안 보이는 데 둬야지.”
혹시 또 차를 이용하게 될 수도 있었다.
최대한 가까운 데 두면서도, 남들의 눈에 띄지 않을 장소를 고르는 게 좋았다.
그 점을 이해한 듯 조용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물었다.
“근데 나 혼자 가서 두고 오라고?”
“아.”
-아. ㅋㅋㅋㅋ
-눈치 챘다.
-천수야, 빨리 다른 방법 쓰자.
미안하지만, 방금 고천수는 용진을 버리고 가려는 걸 들켜서 탄식한 게 아니었다.
그냥 조용진이 다리가 부러졌다는 사실을 아주 잠깐 잊어서였을 뿐이었다.
“그래, 같이 갔다 오지 뭐.”
고천수가 심드렁하게 답하며 다시 차에 오르자, 이번에는 양민철이 헐레벌떡 따라와 탑승했다.
“후우. 형, 저 안내 마쳤다고 두고 가시면 안 돼요.”
‘대체 내 이미지는 어떻게 되어 있는 걸까.’
고천수가 잠시 침음하는 사이 조용진은 살짝 액셀을 밟았다.
차는 최소한의 소리만 내며 천천히 도로로 움직였다.
“너무 조용하니까 불안하긴 하네.”
고천수가 지정해 둔 상점 뒤에 차를 세우며, 조용진이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고천수는 동의를 표하려다가 창문 밖을 바라보고 살짝 눈을 크게 떴다.
“방심하지는 말라고. 밖에 봐.”
그의 말에 조용진이 시선을 돌렸다.
“저건…….”
좀비였다.
딱 봐도 원래 상인이었던 듯한 좀비 세 마리가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몇 마리 안 되는데?”
“그래도 조심해야지. 네 다리 생각도 못 하냐, 용진아.”
다른 몬스터에 비해서 좀비가 약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만한 존재는 또 아니었다.
고천수는 문손잡이를 잡으며 말했다.
“내가 내려서 시선 끌 테니까, 너흰 그사이에 내려서 이동해.”
“형 혼자서 괜찮겠어요?”
양민철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고천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혼자서도 괜찮아.”
그러면서 고천수는 나가서 좀비들에게 소리쳤다.
“자식들아!”
크어어?
“이쪽이다!”
곧장 뛰어가자 좀비들이 바로 고천수를 따라갔다.
[어그로 3 - 09:57]
‘이것도 언제 한번 제대로 성장시켜야 하는데.’
고천수의 현재 신체는 기록 누적을 통해 1.4로 강화돼 있었다. 1이 처음 한 명 분의 고천수라고 한다면, 거의 반 명 분의 추가 성장을 이뤄 낸 셈이었다.
거기에 더해 현재의 어그로 스킬 효과로 그 강화된 몸이 130%의 출력을 내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몇 마리 정도로는…….’
고천수는 갑자기 몸을 틀어 좀비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크아아아아!
가장 가까이에 있던 첫 번째 놈이 먼저 이빨을 들이댔지만 고천수가 더 빨랐다.
미리 단검을 꺼내 들고 있던 그는 첫 번째 놈의 목에 깊은 자상을 선사해 주었다.
“다음.”
비틀대며 옆으로 넘어가는 한 놈을 먼저 보내고 두 번째를 상대했다.
두 번째 놈은 팔을 먼저 내밀었다.
리치는 이게 더 길다는 뜻으로 발로 가슴팍을 차 뒤로 넘어뜨렸다.
크아아아아!
틈은 없었다. 세 번째 좀비가 고천수의 등을 노렸다.
그는 몸을 회전해 세 번째의 공격을 피해 냈다.
순간 균형을 잃은 세 번째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푹!
고천수는 그사이 땅바닥에서 다시 막 일어서려는 두 번째의 턱에 단검을 꽂아 주었다.
“걱정 마, 안 잊었으니까.”
세 번째 놈 역시 일어서기 전에 뒷목을 찔러 주었다.
그것을 끝으로 모든 괴성은 멎었고, 고천수는 미루고 있던 숨을 내뱉었다.
-와아, 우리 천수.
-많이 컸네.
-첨에 세 마리 상대할 때를 생각하면. ㅋㅋㅋ
“형님들, 흑역사는 왜 또 꺼내십니까.”
어그로와 기록 누적 스킬을 더 크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하지만 방금 전투로 증명했듯이, 좀비를 차서 넘어뜨리는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는 완력과 반사 신경은 되었다.
여태까지 몬스터를 상대한 경험을 토대로 봤을 때, 네다섯 마리 정도는 다소 여유를 가지고 상대할 수 있을 거라 판단됐다.
‘뭐, 후원 시스템도 강화됐으니까.’
아직 부족하긴 해도 미션 보상에 확실한 체계가 생겼으니 괜찮았다. 당분간은 큰 성장 없이도 어떻게든 될 터였다.
“으아아아아아!”
그렇게 고천수가 기차역으로 향하던 때였다.
갑작스럽게 들린 비명에 그는 상가 건물 옆에 몸을 숨기고 밖을 살펴보았다.
‘뭐야.’
웬 정장을 입은 남자 한 명이 좀비 하나에 소매를 붙잡힌 채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한 춤이라도 추듯이 말이다.
“으아아아! 살려줘! 정찬국 이 개새끼!”
누군가를 욕하며 계속해서 소리치는 그를 보고 고천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정찬국?”
그냥 보면 죽기 직전에 싫어하는 상사라도 욕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고천수는 상황을 그렇게 단순하게 볼 수 없었다.
“시장 이름이잖아.”
이 도시에 사는 시민으로서 그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고천수는 정체 모를 남자의 입에서 시장의 이름이 나왔다는 것에 의문을 품고 주위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남자가 타고 온 듯한 검은색 승용차가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자 외에 다른 사람은 없어 보였다.
“흠…….”
양민철과 조용진도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있는 거라곤 저 남자가 좀비에게 당하기 직전이라는 사실뿐이었다.
“형님들, 도울까요?”
의견을 묻자 채팅창이 금방 차올랐다.
-반대.
-반대.
-찬성. 나 한도초과임.
“예, 구합시다.”
고천수는 숨어 있던 장소에서 나가 남자 쪽으로 걸어갔다.
-야, 새꺄! 반대가 더 많잖아!
-천수야, 너무한다. ㅋㅋㅋㅋ
“하, 정말. 형님들, 그런 의견을 낼 때는 후원창을 이용해 주세요. 알겠죠?”
젠 얘기 덕분에 더 불만을 드러내는 이는 없었다. 고천수는 몸을 풀며 남자 쪽으로 다가갔다.
“자, 그럼 누군지 좀 알아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