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 크롤러
“여, 여기!”
반가운 목소리가 나타났다.
“왔냐!”
고천수가 돌아온 조용진을 반갑게 맞았다.
조용진은 고천수에게 곧장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택시 기사 지원서.
고천수의 외모와 비슷한 젊은 남자의 사진이 들어간, 정말 그럴 듯한 지원서였다.
‘나이스다, 조용진.’
고천수는 천천히 남자에게 다가갔다.
“사장님! 지원서를 가져왔습니다!”
“오오!”
지척까지 다가가 지원서를 내밀자, 남자가 기뻐하며 받아 들었다.
“얼마만의 지원인지!”
바로 읽어 볼 듯했던 남자는 고천수에게 외쳤다.
“자네는 면접 자리로 돌아가게!”
“네?”
“뒤로 가 있으라고! 면접은 원래 약간 떨어져서 봐야 하니까!”
별걸 다 요구한다 싶었지만 고천수는 일단 조용진이 있는 곳까지 뒷걸음질 쳤다.
그사이, 남자는 지원서를 열심히 읽어 대기 시작했다.
어찌나 정신없이 보는지, 양민철을 슬쩍 놔주고 몰두할 정도였다.
슥.
고천수는 순간 양민철에게 손짓했다.
“와.”
때가 왔다. 양민철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남자를 힘껏 밀었다.
“억?”
양민철이 이쪽으로 달음박질을 시작한 순간, 남자는 균형을 잃고 옆으로 비틀거렸다. 고천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잠깐 빌린다.”
“앗……!”
조용진에게서 목발을 빼앗아 든 고천수는 그대로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콰악!
똑바로 서려는 남자의 명치에 곧장 목발의 끝이 박혀 들어갔다.
“커헉……!”
놀란 남자가 손바닥을 펴다 칼을 놓쳤다.
타악!
그 칼을 멀리 차고 목발도 놓은 고천수는 그대로 남자를 넘어뜨리고 목을 짓눌렀다.
“뭐 해! 다들 도와!”
뒤를 보며 소리치자 양민철과 조용진이 화들짝 놀라며 다가왔다.
“민철이는 같이 상체 잡고! 용진이 너는 하체 누르면서 키 있나 뒤져 봐!”
둘은 고천수의 지시대로 서둘러 행동했다.
남자가 계속 발버둥 쳤지만, 3인의 제압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차, 찾았다!”
조용진이 키링으로 이어진 스마트키 네 개를 찾아냈다.
“좋았어! 다들 물러나!”
고천수가 외치자 양민철과 조용진이 모두 남자에게서 떨어졌다.
컥컥대는 남자를 보며 고천수는 얼른 목발을 주워 조용진에게 돌려주었다.
“잘 썼다, 용진아.”
“어, 어어.”
“얼 타지 말고 얼른 차 타러 가자.”
남자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려는 사이, 셋은 빠르게 건물을 빠져나갔다.
삑삑!
조용진이 키를 전부 누르자 주차장에 서 있던 네 대 중 한 대가 반응했다.
“됐다!”
조용진이 기쁜 듯 외쳤다.
“있어……!”
“아, 망할.”
하지만 다른 반응을 보이는 고천수를 보며 양민철이 물었다.
“형, 왜요?”
“아냐. 아무것도.”
-따로따로 타고 가자고 하려고 했고만.ㅋㅋ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인간형.
-새침데기임. 웬만하면 다 살려 주긴 함.
고천수는 못 들은 척하고, 문이 열린 차의 뒷좌석으로 기어들어 갔다.
“자, 가자.”
“형이 운전 안 해도 돼요?”
같이 뒷좌석에 오르며 양민철이 물었다.
“운전은 용진이가 더 잘할 거야.”
고천수의 말에 밖에 서 있던 조용진이 놀란 표정을 그렸다. 그러자 고천수는 서둘러 소리쳤다.
“뭐 해! 빨리 운전해!”
“내, 내가?”
“너 금간 거 왼발이잖아! 빨리 운전해!”
조용진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목발을 뒷좌석에 넘긴 뒤, 운전석에 앉았다.
부릉.
시동을 걸고 기어를 조작하는 조용진을 보며 고천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목적지는 기차역. 실력 믿을 테니, 잘 부탁한다.”
몬스터들이 있는 곳에서 운전으로 살아남은 실력, 고천수는 그 사실을 믿었다.
“기차역은 왜……. 지금 상황에서 기차가 지나다니기는 하는 거야?”
“얼른 가기나 해. 좀…….”
의문을 표하는 조용진에게 답하던 고천수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저거.”
누군가 담을 넘어와 대문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뭐냐고.”
어차피 가서 열어야 하긴 했지만, 이건 상정 외의 상황이었다.
드르륵.
열린 문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차라리 그것뿐이었으면 다행이련만.
“조용진. 내가 믿는다고 했다.”
사람들을 따라 문을 완전히 밀쳐서 열어 버리고 들어온 한 몬스터를 보며, 고천수가 중얼거렸다.
***
“망할……! 또 뭔 괴물이야!”
조용진이 눈을 크게 뜨며 액셀부터 밟았다. 차가 빠르게 달려 나갔지만, 바로 밖으로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온 몬스터가 그쪽에 아직 머물고 있기 때문이었다.
“돌겠네!”
조용진은 차를 다시 거꾸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걸로 된 게 아니었다.
몬스터는 시끄러운 소음을 내는 차에 도발당해 버렸다.
크랴아아아아!
“하필 크롤러가…….”
양민철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고천수는 땅을 사족보행으로 기어서 쫓아오는 몬스터, 크롤러의 모습을 창밖으로 유심히 지켜보았다.
“크롤러? 진짜 생긴 것도 뭣 같이 생겼네!”
틀은 인간과 흡사하지만 온몸의 근육이 기괴하게 발달해 체구가 트럭만큼이나 매우 거대했다.
그런 형태를 하고 사족보행을 고수하고 있으니 고천수가 보기엔 정말로 끔찍한 형태였다.
“조용진! 차 본관 쪽으로 몰아!”
“뭐?”
“빨리!”
고천수의 닦달에 조용진이 핸들을 본관 쪽으로 틀며 소리쳤다.
“뭐, 어쩌자는 건데!”
차는 아직 속력이 부족했다. 반면에 크롤러는 순식간에 따라붙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잡힐 게 분명했다.
본관 쪽에서 그 광증에 걸린 택시 회사 사장이 나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내 택시!”
성난 외침을 뱉는 사장을 발견한 크롤러가 순간 방향을 바꾸더니 본관 입구에 몸을 처박았다.
“야, 지금이야! 문으로 가!”
고천수의 지시에 조용진이 반사적으로 핸들을 다시 꺾었다.
회전을 마친 차는 그대로 출구를 향해 직행했다.
콰직!
시체를 피하다가 대문에 차가 살짝 부딪히긴 했지만 다행히 택시 회사의 부지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
괴성이 멀어지고 엔진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가운데,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조용진이 말했다.
“설마 그 남자를 이용한 거야?”
“후. 어쩔 수 없었잖아.”
고천수는 의자에 푹 몸을 늘어뜨리며 답했다.
“다 죽을 순 없으니까. 좋은 사장님이었어.”
“너…….”
“맞아요. 어쩔 수 없었어요.”
양민철이 굳은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형은 우리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거라고요.”
“으음.”
조용진은 양민철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저 한숨을 쉬며 다시 전방 주시에 집중할 뿐이었다.
“아.”
그때, 고천수는 차가 초록색 선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분기점을 통과하였습니다.]
예전에 튜토리얼 구간을 통과할 때와 비슷한 알림이었다.
[지금부터 시청자들에게 미션 설정 기능이 추가됩니다.]
[시청자들은 각종 효력을 구매하여 플레이어에게 미션 성공 보수로 내걸 수 있습니다. 물론 단순하게 젠을 거는 것도 가능합니다.]
‘응?’
뭔가 새로운 것이 나타났다. 고천수가 어리둥절해 하는 동안 기다렸다는 듯 채팅창이 반응했다.
-드디어 나, 한도초과가 빛날 때가 왔다.
-과금러 꿀단지 오픈했네.
-ㅋㅋㅋㅋ 쉽게 후원 안 하고 천수 굴리게 생겼네.
고천수는 채팅창을 살펴보았다.
Cash Chat 말고는 자신에게 추가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형님들, 조금 전에 그거 뭡니까?”
-조금 전에 그거 뭡뉘까~.
놀리는 반응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고천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자 시청자들은 답을 알려 주기는커녕 고천수가 귀엽다느니 하는, 고천수로서는 웃기기만 한 반응만 돌려주었다.
‘뭐야, 대체.’
고천수는 짜증이 났지만 잠깐 머리를 굴려 추측해 보았다.
‘나한테 준 기능이 아니라 시청자용 기능 같은데.’
효력을 구매하여 플레이어에게 보수로 내걸 수 있다는 부분이 궁금했다.
방송 진행자의 직감으로 보건대, 득이 되면 득이 됐지 해가 될 게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말 안 해 주셔도 됩니다, 형님들. 저 이런 걸로 안 삐집니다.”
채팅창이 ‘ㅋㅋㅋㅋ’으로 도배되는 가운데, 후원창이 하나 날아들었다.
[띠링! 한도초과 님이 1젠 후원! - 걱정 말고 기대나 해. 형이 키워 줄 테니까.]
일반 후원금 시스템은 똑같이 살아 있었다. 내용이 약간 불길하긴 했지만, 고천수는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중얼거렸다.
“매번 감사합니다. 우와, 진짜 기대된다…….”
어처구니없는 리액션에 시청자들이 ‘삐진 거 풀려 가는 과정’이라며 또 놀려 댔지만 고천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어느새 차의 뒤를 향하고 있었다.
“음?”
쿵쿵 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본 것이었지만, 고천수는 순간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야야, 잠깐!”
정신을 차린 고천수가 조용진에게 외쳤다.
“아직 쫓아온다!”
“나도 봤어……!”
조용진이 당황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아닌 게 아니라 차 뒤에서 크롤러가 미친 듯한 속도로 쫓아오고 있었다. 고천수는 아연실색했다.
“속도 더 못 높여?”
“최대한으로 높이고 있다고!”
차는 직선 구간에 접어들었다. 차가 최대한 빠르게 달리고 있는 와중에도 크롤러가 뒤처지지 않는다는 건 한 가지 사실을 의미했다.
“설마 직전으로 달릴수록 빨라지는 건가……?”
고천수는 마른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정말로 그렇다면 이대로 가는 것은 위험했다. 실제로 차가 빨라질수록 크롤러는 더 빠르게 쫓아오고 있었다.
“민철아!”
“네?”
“여기 길도 잘 아냐?”
크롤러의 허를 찌르는 길로 다녀야 떨어뜨릴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 글쎄요, 잘.”
“떠올려 봐!”
이대로 가다간 잡히는 수밖에 없었다. 고천수가 외치자 양민철은 잠시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숙였다.
포기한 건 아니었다.
양민철은 손가락을 물어뜯으며 생각에 잠겼다.
“길, 길…….”
그러더니 양민철은 조용진에게 직접 지시했다.
“저기 언덕으로 가세요!”
“뭐?”
조용진은 황당함을 드러냈다.
“언덕으로 가면 차 속력 떨어진다고!”
“빨리 가세요! 죽고 싶어요?”
양민철의 험한 발언에 조용진이 입을 다물었다.
고천수는 그 모습에 놀라면서도 얼른 양민철을 거들었다.
“그래, 민철이 말대로 해! 믿고 좀 해 보라고!”
“젠장……!”
조용진은 곧장 차를 몰고 언덕으로 올라갔다.
당연한 얘기지만 평지를 달릴 때보다 차의 가속이 한풀 꺾여 버렸다.
“으아아아아!”
하지만 크롤러는 정면으로 달리기만 하면 되는 건지 속력이 줄지 않았다.
“잡힌다고!”
조용진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외쳤다. 고천수도 긴장을 숨길 수 없었다.
믿기는 했지만 크롤러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채팅창을 흘깃거렸지만 이 상태에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게 시청자들의 중론이었다.
그리고 그때, 갑작스럽게 급경사 내리막이 나타났다.
“어?”
다들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조용진은 그 길을 확인하고 식은땀을 흘렸다.
“야, 여기……!”
내리막이 끝나는 길에 급경사 커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커브 바깥은…….
“낭떠러지 구간이잖아!”
경악하는 조용진을 보고 고천수도 눈을 크게 뜨고 숨을 뱉어 냈다.
“민철아……!”
“달려요!”
양민철은 철없는 목소리로 외쳤다.
“할 수 있죠? 크롤러 잘 못 멈추는 거 봤잖아요!”
그야 본관에 몸을 처박은 걸로 대충 알 수는 있었지만, 지금 이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천수는 시청자들에게 외쳤다.
“형님들, 빨리 미션 좀!”
분명히 보상에 효력이란 걸 걸 수 있었다.
이 상태로 속도를 높이다가 급커브를 돌면 크롤러보다 먼저 저세상 행이었다.
-아쉽네. 천수하고는 이대로 작별인가.
-진짜 저세상 웃기게도 가네. ㅋㅋㅋㅋ
여전히 놀려 대는 쪽만 선택하는 시청자들이 있어 고천수는 인상을 구겼지만,
-시발! 나 젠 충전 잔뜩 했는데 벌써 뒈지면 안 돼에에에!
다행히도 시청에 절박한 시청자도 존재했다.
[띠링! 한도초과 님이 효력 보상 미션을 설정하였습니다.]
[한도초과 님의 미션 - 창밖으로 몸 내밀고 크롤러 더 분노하게 하기.]
[한도초과 님의 보상 - 15초 동안 차량 이탈 절대 방지. 미션 완료 시 즉시 발동.]
“야……! 이 새끼야!”
놀랍게도 일말의 지체도 없었다.
고천수는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크롤러에게 외쳤다.
“그렇게 느려 터져서 우리 잡을 수나 있겠냐? 굼벵이도 그거보단 빠르겠다! 호랑말코 같은 새꺄!”
“형……?”
양민철이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 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