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23화 (23/224)

023. 배수로 (2)

[어그로 1 - 09:59]

“이런 씨…….”

욕지거리를 이을 틈도 없었다.

빅 헤드가 물고 있던 사람을 뱉어 내고 이빨을 들이댔던 것이다.

“형!”

파악!

양민철에게 떠밀린 고천수가 비틀거리다 옆으로 넘어졌다.

콰아아아앙!

아슬아슬하게 고천수를 빗겨 나간 빅 헤드가 마찬가지로 균형을 잃고 바닥을 굴렀다.

“형! 괜찮아요?”

그 외침에 고천수는 바로 정신을 차렸다.

“망할.”

몸 상태가 아직도 썩 좋지 않았다. 역시 차 사고까지 당하고 몬스터들을 상대한 후유증은 빠르게 회복되지 않는 것일까.

하지만 어디다 하소연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고천수는 빠르게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양민철! 뛰어!”

빅 헤드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한 번 들킨 이상 전력으로 달아나야만 했다.

꾸우우우우.

자리에서 일어난 빅 헤드가 괴성과 함께 두 다리를 움직였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불행이라고 해야 할까. 빅 헤드는 양민철을 노렸다.

“으, 으아아아악!”

양민철은 빅 헤드를 피해 어딘가로 달려 나갔다.

-버려.

-미끼가 됐잖아!

-여기까지 안내 받았으면 된 거 아님?

시청자들의 의견은 고천수의 생존에 모였다.

‘제기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양민철을 구하려다가 죽음을 자초할 수는 없었다.

좀비라면 모를까, 아무것도 없이 빅 헤드를 상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것도…… 없이?’

고천수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날카로운 막대기 하나가 들려 있었다. 배수로에서 잠을 잘 때 근처에서 주운 것이었다.

-고천수 뭐해! ㅋㅋㅋ

-이러다 황금시간 다 지남.

고천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 지금은 피하는 게 우선이었다.

주위를 살펴서 일단 안전할 것 같은 골목으로 달려갔다.

“으아아악!”

“살려줘!”

“꺄아아아!”

근처에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생존자 무리가 길을 통과하고 있던 것일까.

“꺄아! 컥!”

그 비명들이 순간순간 끊기면서 사람들의 기척도 사라졌다.

‘헬 프로그다.’

이건 헬 프로그가 사람들을 차례차례 꼬챙이로 꿰고 있어서가 분명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후우.”

숨을 크게 들이내시며 고천수는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건 안타깝지만, 이 틈에 길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혀어어엉!”

우렁찬 외침이 뒤에서 들리지 않았다면, 고천수는 그 일에만 전념했을 것이다.

“어……?”

고개를 돌린 고천수의 눈에 보인 건, 빅 헤드를 몰고 뛰어오고 있는 양민철이었다.

“형 뛰어요!”

그는 고천수에게 빅 헤드를 데리고 오고 있는 주제에 뻔뻔하게 외쳤다.

“이, 이 미친놈이……!”

고천수는 어쩔 수 없이 뛰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건 이제 불가능했다. 살기 위해서는 전력의 속도를 끌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 미친놈아! 뭘 어쩌자고 끌고 온 거야!”

“형, 왼쪽 골목으로 돌아요!”

그때, 양민철이 외쳤다.

“뭐?”

“왼쪽으로 돌아요!”

양민철의 표정은 겁에 질려 있는 기색이 절대 아니었다.

“너…….”

계획의 있을 때의 그것이었다. 고천수는 양민철의 요청에 따라 그대로 왼쪽 골목으로 진입했다.

“이번엔 우측!”

쿠우웅!

움직임을 미처 따라오지 못한 빅 헤드가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기를 반복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빅 헤드의 속도가 떨어지자 양민철은 고천수 곁까지 따라붙었다.

“형! 이 앞에 땅 파 놓은 데 있어요!”

“땅……?”

“배수관 공사!”

그 말을 듣고 고천수는 아, 하고 탄식했다.

“거기까지만! 거기까지만 가면 돼요!”

가닥은 잡혔다. 침착함을 되찾은 고천수는 이제 양민철보다 약간 속도를 늦췄다.

“형?”

“길은 네가 알잖아! 따라갈게!”

고천수는 양민철의 뒤를 따르면서 주위를 계속해서 살폈다.

‘빅 헤드만 잡으면 되는 게 아냐.’

헬 프로그가 쫓아오는지도 봐야 했다.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고천수는 못내 불안하기만 했다.

꾸우우우우.

그새 빅 헤드가 뒤를 빠르게 쫓아왔다. 그걸 본 고천수가 크게 외쳤다.

“멀었어?!”

“다 왔어요!”

양민철이 앞을 가리켰다.

“30m 정도 남았어요! 저희는 가장자리로 통과할 거니까 준비해 주세요!”

가장자리로 통과. 어떤 형태인지 고천수는 대략 가늠이 됐다.

잠시 동안 말없이 달리는 시간이 계속됐다. 그리고 마침내 양민철이 골목 하나를 돌고 고천수가 그 뒤를 따랐을 때였다.

“형……!”

눈앞에 푹 파인 공사장이 있었다. 담벼락 옆에 좁은 공간으로만 그 푹 파인 땅을 지나칠 수 있게 돼 있었다.

꾸우우우우.

빅 헤드는 이제 언제 목을 물어뜯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까이 붙어 있었다.

“실수하면 안 돼요!”

“너나!”

먼저 양민철이 가장자리 땅을 밟았다. 약간 비틀대긴 했지만, 다행히 무리 없이 통과했다.

“간다!”

고천수가 외치며 가장자리를 밟을 때, 빅 헤드가 입을 크게 벌렸다. 한 발자국만 빅 헤드가 더 내밀면, 고천수가 잡힐 수밖에 없는 거리였다.

“끄아아아아아!”

한순간의 비틀거림도 허용하지 않았다. 고천수는 그야말로 매끄럽게 가장자리를 통과했다.

그리고…….

꾸우우우우우.

빅 헤드는 발을 헛디뎠다.

그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가장자리를 밟을 수는 없던 것이다.

콰앙.

담벼락에 머리와 몸을 부딪친 빅 헤드는 그대로 균형을 잃고 푹 꺼진 땅으로 넘어졌다. 고천수는 치솟는 먼지를 피해 계속 달려 나갔다.

“이런, 썅…….”

하지만 정면을 보고 있는 고천수의 시야에 걸린 건, 횡으로 날아가고 있는 웬 꼬챙이 같은 혀였다.

“양민철!”

곧 이 소란을 듣고 헬 프로그가 이쪽에 나타날 것을 직감한 고천수가 소리쳤다.

“피할 준비 해!”

“아……?”

멍한 표정을 지으며 양민철이 멈칫하는 순간, 혀를 입안에 거둔 헬 프로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숙여!”

찰나였다.

양민철이 고개를 숙이고, 고천수가 옆으로 몸을 날린 것은.

촤아아악!

머리카락과 옷깃을 스친 헬 프로그의 혓바닥이 빅 헤드가 넘어졌던 장소의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쿠욱!

그리고 이어진 건, 기분 나쁜 타격음이었다.

“하……!”

고천수가 탄식과 같은 한숨을 뱉으며 뒤를 돌아봤다.

먼지 속에서는, 괴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꾸우우우우우우!

물론 괴성은 그쪽에서만 흘러나오는 게 아니었다.

게르르르륵!

헬 프로그 쪽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인지 혀를 회수하지 못한 헬 프로그가 무언가에 끌려가듯 주춤대고 있었다.

쿠궁.

그때, 먼지 속에서 빅 헤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고천수는 눈을 크게 떴다. 헬 프로그의 혀가 빅 헤드의 입 안을 꿰뚫고 들어가 있던 것이다.

꾸우우우!

빅 헤드는 그 헬 프로그의 혀를, 입을 닫아 붙잡고 있었다. 헬 프로그는 혀의 경직화를 풀지도 못했다.

그러면 빅 헤드가 말랑해진 혀를 이빨로 끊어내 버릴 테니까.

“크윽!”

넘어졌던 몸을 일으킨 고천수는 바로 양민철에게 다가갔다.

“민철아, 괜찮냐?”

“예, 형. 형은요?”

보다시피 목숨은 붙어 있었다.

“시간 없어. 빨리 여기를 빠져나가자.”

여태까지의 습성을 봤을 때, 몬스터는 서로 싸우기보다는 웬만하면 인간을 노렸다.

다만 한번 물리적으로 맞붙은 이상 결판은 보려고 할 터, 이때가 도망칠 기회였다.

“얼른!”

고천수의 외침에 양민철도 걸음을 옮겼다.

-후, 나 이제 숨 쉬어도 되는 거임?

-협력 오졌다.

-천수 생존본능 하나는 진짜 지린다.

시청자들의 격찬이 이어졌지만 고천수의 시선은 양민철을 향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됐다.

고천수를 만날 때까지 살아남은 것은 완전한 우연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형, 걷는 거 괜찮아요?”

“아직까진.”

“잠시만요.”

양민철은 어딘가로 고천수를 데려갔다.

“여기에 자전거 대여소 하나 있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그걸 기억하냐.”

길을 외우는 능력은 진짜 천부적인 듯했다.

“저거 있네요.”

양민철이 가리킨 곳에 다 부서져 가는 자전거 대여소가 하나 있었다.

물론 당연한 얘기겠지만, 멀쩡한 자전거는 없었다.

딱 하나만 빼고.

“형, 이거라도 괜찮으세요?”

“농담이지?”

남아 있는 건 다름 아닌 2인용 자전거였다.

***

드드드륵!

자전거의 기어를 바꾸는 소리가 조그맣게 울려 퍼졌다.

“형, 근데 저희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자전거의 앞에 타고 있는 양민철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저도 여기서부터는 길 잘 모르거든요. 택시 회사 쪽으로 갈 생각은 못 했어서…….”

“그렇겠지.”

차만 구할 생각이면 다른 장소를 찾는 게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서가 필요하다고…….’

속삭이듯 정보창을 불러 낸 고천수는 그 내용을 살펴보았다.

[상시 정보 :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위험합니다.]

여전히 이것밖에 없었다. 다른 게 없었다.

‘정보 부족이야.’

쉐도우의 위협에서 벗어나고 난 뒤, 원래 있던 데로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되면 쉐도우가 금방 다시 나타날 거라 추측할 수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이었다.

“형님들.”

고천수는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쉐도우가 나타났던 곳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됩니까?”

-돌아가면?

-글쎄. 어쨌더라.

-그냥 좀만 있어도 다시 나타날걸?

확실한 정보까지는 주기 꺼리는 듯했지만 고천수는 대략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역시 한 번 쉐도우를 본 지역에 돌아가는 건 위험 부담이 큰 거네.’

고천수는 저 멀리 길게 늘어선 담벼락이 보이자 한숨을 쉬었다.

‘다음 정보가 뭐든 빨리 좀 열리면 좋으련만.’

그래야 지표로 삼을 것을 빨리 찾아낼 수 있었다.

“형.”

양민철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의 다 온 것 같아요.”

“그래, 나도 보인다.”

“바로 앞까지 갈까요?”

지금까지는 주위에 별다른 위협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대비는 철저히 해서 나쁠 게 없었다.

“그래, 한 100m 앞에서 멈추고 걸어가자.”

“근데 형.”

“어.”

“페달 돌리고 계신 거죠?”

돌리고는 있었다.

약간 힘을 덜 주고 있을 뿐.

“열심히 돌리고는 있는데 페달이 잘 안 돌아가긴 해.”

“그런가요. 하긴 그런 데서 주워와 가지고…….”

순진하게도 양민철은 고천수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다.

“형, 뭐 하나 물어봐도 되나요?”

“뭔데.”

시답잖은 질문이 아닐까 하고 고천수가 하품을 하던 그때, 양민철이 허를 찔렀다.

“7.5사단이라고 알아요?”

“……뭐?”

고천수는 순간 눈을 부릅떴다.

“7.5사단?”

“네.”

잠시 양민철의 등을 빤히 쳐다보던 고천수가 조금 지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들어보긴 했어. 뭐 하는 데인지는 몰라.”

“저도 그래서요.”

양민철은 한숨을 쉬었다.

“제 친구 중 하나 데리러 갔었는데. 집에 7.5사단에서 데리고 갔다는 쪽지만 있는 거예요.”

“음…….”

“7.5사단이라고 하면 역시 군대 같긴 한데 저는 잘 모르니까요.”

고등학생이 알아 봤자 뭘 얼마나 알겠는가.

하지만 7.5사단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는 건 고천수도 마찬가지였다.

‘묘하네.’

사람들을 구하고 다니는 군대라기엔 너무 은밀히 일부의 사람들만 데려갔다.

‘비밀 실험 하고 그런 데는 아니겠지.’

솔직히 사단 규모면 인간이 몇인데, ‘7.5사단이 데리고 간다’는 표현을 쓴단 말인가.

‘7.5사단의 무슨 부대가 데려간다’도 아니고 말이다.

부르르릉!

생각이 많아질 무렵, 고천수는 차 한 대가 옆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응?”

레토나.

군용 SUV 차량이었다.

“형, 저건……!”

“나도 봤어.”

레토나는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무언가에 맞았는지 외형이 잔뜩 찌그러져 있었다.

지켜보고 있자니 레토나는 택시 회사의 철제 창살 대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이 씨.”

골치 아파졌다. 뭔 상황인지도 모르겠는데 나타난 레토나는 고천수에게 혼란을 선사했다.

“형, 택시 회사로는 갈 거죠?”

“당연하지.”

기껏 왔는데 뒤로 무를 수는 없었다. 여기만큼 수많은 사람들과 통신을 시도해 볼 수 있을 만한 곳이 없었다.

게다가 안에 멀쩡한 군인만 타 있으면, 거기서 알아낼 정보 또한 있었다.

콰앙!

위태롭던 레토나는 결국 택시 회사의 대문에 사선으로 차를 박고 멈춰 섰다.

“어째 쉽게 풀리는 일이 없네.”

고천수는 자전거 위에서 폴짝 뛰어내리며 몸을 풀었다.

뭐 제대로 아는 게 있을까 싶은 계급이었지만, 일단 고천수는 그를 바깥으로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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