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21화 (21/224)

021. 밤길 조심해라

“택시 회사요……?”

뺏겼던 물건을 돌려받은 양민철이, 함께 걸으며 목적지를 듣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거기 여기서 좀 멀리 있는 곳 아닌가요?”

맞았다. 그래도 걸어서 갈 만한 거리였다.

“가는 데 고생은 하겠지만, 지금은 충분히 가 볼 만해.”

“으음…….”

고천수의 말에 양민철이 신음을 흘렸다.

“거기에 왜 가는지 여쭤 봐도 되나요?”

“방벽이 잘돼 있거든.”

이 부근에 있는 택시 회사는 내부와 외부를 차단하는 큰 담장과 대문이 안에 있었다.

안의 본관도 시설이 좋은 걸로 유명해 운만 좋다면 잠시 거처로 삼을 수 있었다.

본관에 보관 중인 키로 사용 가능한 차를 얻을 수도 있다는 점 또한 매력적이었다.

“넌 그쪽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주면 돼.”

택시 회사는 양민철이 지금까지 왔던 길을 통해서 가야만 했다.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양민철의 안내가 필요했다.

“……생각보다 험할 거예요. 저는 큰 도움도 안 될 거고요.”

양민철은 친구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살아왔기 때문에, 확실히 전투적인 면에서는 고천수에게 도움이 안 될 확률이 높았다.

“걱정 마. 나는 사람을 다루는 재능이 있거든. 너도 쓸모 있게 만들어 줄게.”

“왠지 좀 무서운 말인데요.”

양민철은 한숨을 쉬었다.

“어쨌거나 잘 부탁드릴게요. 저는 어차피 갈 데도 없으니까요.”

“그래.”

명서 초등학교로 못 가게 한 것이 걸리지만, 생존만 책임져 주면 되는 일이었다.

고천수는 지도를 확인하고 계속해서 방향을 수정해 가며 걸음을 옮겼다.

“먼저 하나 물어볼게.”

아직은 주변이 어두웠다. 택시 회사로 가기 전에 임시로 밤을 지새우고 갈 공간이 필요했다.

“네가 지나오면서 잠시라도 거처로 삼을 만하다고 생각한 공간 있어? 안전을 확인하면서 왔을 테니까.”

“거처로요?”

“잠만 잘 잘 수 있으면 돼.”

당장 그 이상은 사치였다.

“그럼…… 이 앞에 농기구 창고가 하나 있어요. 안에 아무도 없어서 잠시 머무르다가 왔거든요. 출입구들도 다 잘 닫아 놓고 왔고요.”

“좋아. 거기로 가자.”

고천수는 앞을 향해 팔을 내밀었다.

“자, 내비게이션! 안내 시작!”

양민철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먼저 걸음을 옮겼다. 고천수는 그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천수야, 남자는 앞에 서야지.

-내비게이션 ㅇㅈㄹ ㅋㅋㅋㅋ

-근데 택시 회사 괜찮을라나? 오히려 좀비 지옥이면 어캄.

고천수는 미소를 씨익 그렸다.

“좀비 지옥이면 좀 어떻습니까, 형님들.”

애초에 그래도 상관없으니까 거기로 가는 거였다.

안전? 고천수에게 특별히 안전한 장소는 없었다.

필요한 건 단서였다. 그 단서를 찾아서 게임 클리어를 향한 길로 나아갈 뿐이었다.

“좀비 많으면, 겸사겸사 좀 강해지면 되죠.”

고천수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좀비였다.

어그로 스킬에 제일 적합한 것들이 좀비였던 것이다.

“단서도 있으면 좋고요.”

택시 회사는 무전국이 설치돼 있는 장소였다.

택시 기사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통신을 시도해 볼 수 있었다. 거기서 단서만 걸린다면 금상첨화였다.

“형, 잠시만요.”

앞서가던 양민철이 뒤돌아서며 손을 뻗었다.

“앞에 뭔가 있는 것 같아요.”

그 말에 고천수는 멈칫하며 대답했다.

“너, 되게 자연스럽게 부른다, 형이라고.”

-그게 중요하냐. ㅋㅋ

-형이라고 부른 거에 충격 받은 거 아냐?

약간 충격이긴 했지만 형으로 안 봤어도 문제가 있었다.

고천수는 고개를 흔들며 양민철이 말한 뭔가를 찾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꾸어어어.

“아, 망할.”

익숙한 몬스터가 앞에 있었다.

“형, 저거…… 읍!”

고천수는 다가가 양민철의 입을 막았다.

“으, 읍?”

“조용히 해.”

당황스러워하는 양민철의 귀에 낮게 속삭이며 고천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 새끼, 여기에도 있는 거야?’

커다란 머리를 달고 있는 6m 크기의 괴물.

분명 한 번 맞닥뜨린 적이 있는 녀석이었다.

꾸우우우우.

빅 헤드.

녀석이 머리를 흔들며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은 가만히 있는 건가?’

숨을 크게 쉬는 것으로 봐서는 수면 상태일지도 몰랐다. 고천수는 양민철을 끌고 천천히 뒤로 빠졌다.

혹시 빅 헤드가 갑자기 이쪽으로 달려올까 봐 고천수는 완전히 긴장한 상태였다.

-천수 도망가네.

-하긴 빅 헤드만큼은 아직 직접 처치한 적이 없잖아.

-근데 갈 데가 있나?

고천수는 양민철과 함께 계속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시바, 아무데나 들어가야 하나.’

건물 안에도 언제 어느 몬스터가 나타날지 몰라서 양민철에게 장소를 추천받은 건데, 이래서야 도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러다가 건물 안에서 몬스터를 맞닥뜨리고 큰 소리를 내 버리면, 빅 헤드까지 불러들여 진퇴양난에 빠질 수도 있었다.

꾸우우우.

“형.”

그때, 양민철이 고천수의 손을 내렸다.

놀란 고천수가 다시 입을 막으려고 하자, 양민철이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자, 잠시만요.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야, 제발 조용히 좀……!”

“괜찮다니까요.”

양민철이 오히려 손으로 고천수의 입을 막았다.

“오면서 만난 적 있어요.”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저 멀리에 있는 빅 헤드를 가리켰다.

“저렇게 자고 있을 때는 생각보다 덜 위험해요.”

“덜…… 위험하다고?”

“네. 잘 보세요.”

빅 헤드는 계속 ‘꾸우우우’ 소리만 내면서 머리를 꾸벅거리고 있었다.

“이 정도의 대화로는 깨지도 않아요. 물론 건들면 달려들겠지만요.”

그 말에 고천수는 이동을 멈췄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빅 헤드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깰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안전하다는 얘기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잠깐 긴장을 풀 수는 있었다.

“한 방 먹었네.”

고천수가 쳐다보며 말하자 양민철이 물음표를 띄웠다.

“예? 뭐가요?”

“아니야.”

그새 일행이 됐다고 자기 역할은 하는 양민철을 보며 고천수는 헛웃음을 뱉었다.

‘그래도 위험은 다 겪고 왔다 이건가.’

자기만 살겠다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없었다. 고천수는 양민철에게 더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럼 천천히 옆으로 지나가자.”

고천수의 말에 양민철이 고개를 끄덕이고 걸음을 옮겼다.

빅 헤드는 살금살금 움직이는 그들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니, 푹 잠에 들어서 누가 근처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꾸우우우.

하지만 빅 헤드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협적이었다. 고천수는 빅 헤드가 언제라도 움직일까 봐 긴장을 풀지 않았다.

“형.”

아직 빅 헤드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못한 시점에, 양민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농기구 창고 저기예요.”

“뭐?”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고천수의 표정이 굳었다.

***

-야, 너무 가까운데?

-빅 헤드 깨자마자 밥 먹으러 오는 거 아님?

그 말대로였다.

농기구 창고는 빅 헤드가 있는 곳과 너무 가까웠다.

“하…….”

고천수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민철아. 네가 형이라고 하니까 나도 그냥 부를게.”

“앗, 네.”

“다른 장소 없냐?”

밤을 지새우기에는 전혀 적절한 장소가 아니었다.

“어…… 그게 저도 이 근처에서 잠을 잔 장소는 저기뿐이라서요. 다른 데 같이 찾아볼까요?”

“흠.”

고민이 좀 되긴 했지만 할 수 없었다. 피곤하기는 해도 다른 장소를 수색해 볼 필요가 있었다.

“좋아. 다른 데로 가 보자. 한군데는 쓸 만한 데가 있겠지.”

그렇게 말하고 다시 발걸음을 뗄 때였다.

크아아아아.

어디선가 좀비 몇 마리가 나타났다.

“뭐야.”

당장 몇 마리 정도야 큰 위협은 아니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어어……?”

고천수는 좀비들이 걷고 있는 방향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나, 미친!”

빅 헤드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고천수는 바로 손을 뻗어들고 외쳤다.

“야! 거기 아니야! 여기야!”

“혀, 형! 뭐 하는 거예요!”

옆에서 양민철이 고천수를 말렸다.

“좀비들이 이쪽을 본다구요!”

“보라고 이러는 거야!”

좀비가 빅 헤드와 접촉해서 잠을 깨우면 큰일 난다.

빅 헤드는 좀비와는 위험도부터가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형! 우리 그냥 가요!”

“아, 이 자식! 빅 헤드 깬 건 본 적 없고만!”

빅 헤드가 잠들어 있는 것만 확인한 게 틀림없었다.

“저 녀석 깨면 난리난다고! 그러니까 막아야…….”

꾸어어어어.

빅 헤드가 내는 소리에 고천수는 입을 다물었다.

[어그로 2 - 09:58]

크어아아아.

그 와중에 좀비 두 마리가 고천수에게 도발이 걸리기까지 했다.

“하, 미치겠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민철아, 뛸 준비해라.”

꾸우?

빅 헤드가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뛰어.”

고천수는 먼저 부리나케 농기구 창고를 향해 뛰어갔다.

-천수는 뭐 쉴 때가 없냐. ㅋㅋㅋ

-일단 자기만 뛰어가는 거 보소.

-천수야, 너만이라도 꼭 살아라! 노잼되는 거 싫다!

응원 아닌 응원을 받고 있는 고천수의 뒤로 양민철이 따라왔다.

“혀, 형! 같이 가요!”

꾸우우우우우.

빅 헤드는 좀비들의 동태를 따라 둘을 발견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컥! 칵?

다만 빅 헤드는 잠에서 막 깨서인지 바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주위 좀비들만 그대로 뭉개 버렸다.

“형!”

그 끔찍한 장면을 본 양민철이 사색이 된 표정으로 외쳤다. 갑자기 일어난 소란에 주위에는 좀비들이 더 몰려들고 있었다.

“망할……!”

고천수는 농기구 창고로 가 쪽문을 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작은 자물쇠가 문 위에 달려 있었다. 들어갈 곳을 잘못 고른 것이었다.

탕! 탕!

고천수는 급한 마음에 남아 있는 총알을 자물쇠에 쏴 버렸다. 어차피 두 발 가지고는 빅 헤드를 어쩔 수도 없었으니까.

“허억.”

자물쇠를 부수고 겨우 안으로 들어간 고천수는 양민철도 따라올 거라 생각해 안쪽에서 문을 잠그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농기구 창고 안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아니 무슨 트랙터도 없냐.”

있는 거라고는 경운기들뿐이었다. 이런 걸 타고 도망치려고 했다간 그대로 빅 헤드에게 붙잡혀 유명을 달리할 것이었다.

“아나, 모르겠다……!”

타고 도망칠 수 없으면 몬스터들의 시선이라도 끌어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했다.

고천수는 경운기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키를 찾았다.

[띠링! 한도초과 님이 1젠 후원! - 키 없으면 시동막대로라도 걸어!]

후원 알림을 보고 탄식을 흘린 고천수는 근처 테이블에 있던 시동 막대를 찾아서 돌아왔다.

“어떻게 거는 거야, 시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시골에서 시동 거는 걸 본 적은 있는데 잘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 경운기 몸체에 매뉴얼이 붙어 있어서 고천수는 그대로 해 볼 수 있었다.

“이걸 여기에…… 그리고…….”

압축 레버를 잡아당기며 고천수는 시동 막대를 돌렸다.

탈탈탈, 탈탈탈탈탈!

경운기 한 대의 시동이 걸렸다. 고천수는 바로 기어를 바꿔 넣고 시동 걸린 경운기가 앞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 경운기에도 시동을 걸고 앞으로 전진시켜 놨을 때, 쪽문으로 양민철이 들어왔다.

“형!”

좀비 한 마리와 씨름을 하면서 말이다.

“도, 도와주세요! 형!”

절박한 외침에 고천수는 시동 막대를 들고 가 그대로 좀비의 머리를 깨 버렸다.

“얼른 일어나!”

엎어진 양민철을 일으켜 세운 고천수는 함께 창고의 뒷문으로 향했다.

콰앙!

그렇게 밖으로 나간 순간 창고의 벽에서 굉음이 일었다. 빅 헤드가 뚫고 들어온 것이었다.

꾸아아아아아.

빅 헤드의 괴성과 경운기의 요란한 소음이 섞였다.

고천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양민철도 그런 그를 따라 정신없이 걸음을 옮겼다.

“헉…… 헉.”

어느 순간 숨 쉬는 게 어려운 지경까지 됐을 때에야 고천수는 움직임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멀리서 괴성은 들리지만 뭔가가 쫓아오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 하아.”

그대로 도로 주변 적재함 뒤에 몸을 늘어뜨린 고천수는, 안도와 함께 숨을 몰아쉬었다.

“잠깐, 양민철은?”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고천수는 적재함 바깥으로 고개를 배꼼 내밀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죽었을지도 몰랐다.

‘일 꼬이네…….’

안내원을 얻어서 좋아했건만, 이렇게 되면 다른 계획을 짜야 할 판이었다.

깜박.

그때, 손전등 불빛이 모스부호를 이루며 근처에서 깜박였다.

“겁나게 알기 쉽네.”

고천수도 손전등을 꺼내 화답해 줬다.

그러자 곧 안색이 하얗게 질린 양민철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 버리신 줄…… 알고.”

“울어 버릴 뻔했냐.”

진심으로 멘탈이 나간 듯한 양민철을 보며 고천수가 탄식했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네.”

“형도요.”

고천수는 그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함께 살아남으니 뭔가 또 묘한 친숙함이 생겨 버렸다.

“살았으니 가자.”

“예? 바로요?”

“길바닥에서 잘 일 있냐.”

고천수는 지금 막 눈에 띈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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