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 그놈
-나왔다!
-그놈, 등장.
-시바, 개섬뜩하네.ㅋㅋㅋ
시청자들의 환호 속에 나타난 존재를 보며 고천수는 순간 굳어 버렸다.
“뭐야?”
검은 거적을 입은 놈이 서 있었다.
가만히 이쪽을 쳐다보면서.
“사람…… 인가?”
사람이라면 이쪽에서 겁을 먹을 필요는 없었다.
차 문은 잠겨 있었고, 시동은 이미 걸려 있었다.
도망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덜커덕.
고천수는 기어를 바꿨다.
그리고 액셀을 세게 밟았다.
콰과과각, 하고 차의 바퀴가 모래 바닥을 밀고 달려 나갔다.
“이런 시발.”
백미러를 흘깃거리며 고천수는 질린 표정으로 핸들을 꺾었다.
-사람 아닌 거 알았넼ㅋㅋㅋ
-달려! 달리라구!
-엌ㅋㅋㅋㅋ
시청자들의 말대로 그놈은 사람이 아니었다.
지면에 발이 닿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아, 제발.”
그건 아니길 바랐다.
고천수가 차를 몰고 나가려고 하자 출입문에 서 있던 경찰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비켜요!”
빵빵!
고천수는 창문을 내리고 소리치면서 경적을 울렸다.
경찰들은 놀라며 출입문에서 물러섰다.
덜커덩.
차가 거칠게 출입문을 통과했다.
“후.”
뒤를 돌아보니 그놈이 보이지 않았다. 고천수는 야밤의 도로를 운전해나가면서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 형님들. 이런 건 언질을 해 줘야 하지 않습니까. 양심적으로.”
-아니, 스포 심하면 이 방에서 쫓겨나, 새꺄.
-돌은 넘 아녀, 이거.ㅋㅋㅋㅋ
-걱정 마셈. 1단계 때는 괜찮음.
고천수는 계속해서 백미러를 확인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걸 보니 속도가 그다지 빠른 놈은 아닌 듯했다.
‘공간 뛰어넘는 놈이면 노답인데.’
서로 간의 거리가 떨어지면 한순간에 근처로 전이해 올 수도 있었다. 안심하기엔 일렀다.
차의 속도를 줄이고 방금 들었던 말을 곱씹고 물었다.
“형님들, 1단계가 그냥 갑자기 튀어나와서 놀라게만 하는 단계 맞습니까?”
대답은 없었다. 채팅창은 웃음소리로만 가득 찰 뿐이었다.
“1젠 겁니다. 대답하세요!”
-아닠ㅋㅋㅋ
-니가 젠 주면 안 되지ㅋㅋㅋㅋ
-그 정도는 니가 유추할 수 있자너.
돌아오는 반응으로 상황을 추측할 수 있었다. 일단은 괜찮은 게 분명했다.
“인사도 못했네, 망할…….”
떠나야 하는 건 정해져 있었지만 이렇게 떠밀리듯 도망치게 될 줄은 몰랐다.
잠시나마 휴식에 젖어서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도 해 두지 않았다. 뒤늦게야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상시 정보 :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위험합니다.]
정보창을 켜 봐도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한 지역, 이게 문제였다.
일단 차를 타고 최대한 멀리까지 도망치는 게 상책이긴 했지만, 오히려 브레이크를 살짝 밟았다.
차가 천천히 멈추자 채팅창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뭐 함? 벌써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거?
-어이어이, 우리들의 레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위험하다는 건 고천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위험하기 때문에 이래야만 하는 것이었다.
“형님들, 설마 제가 그냥 쉬고 싶어서 남아있던 건 줄 아셨습니까?”
상시라는 건 앞으로도 유효하다는 뜻이었다. 어차피 검증해야 하는 정보였다.
“여유가 있을 때 확인해 봐야죠.”
고천수는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보다 하드해서 놀라긴 했지만, 몰랐던 방식은 아니었다.
체이싱(chasing).
일정 시간을 초과하면 추적자가 따라붙는 능동형 덫이었다.
“어디까지 얼마나 적용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천수는 차를 세워 둔 채로 의자까지 젖혔다.
“뒤쫓아 오는 것 같으면 말 좀 해 주십쇼.”
[띠링! 한도초과 님이 1젠 후원! - 지금 뒤에 있는데?]
드륵!
의자를 올리고 고천수가 급하게 뒤를 바라보았다.
“아이 씨!”
아무것도 없었다.
“개깜놀했잖아! 이딴 식으로 놀리면……! 안 됩니다. 1젠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드리프트 실화냐?
-자본주의의 노예.ㅋㅋㅋ
-근데 진짜 자진 마. 위험해.
마지막 조언만은 진심인 듯해서 고천수는 핸들에 손을 얹고 다짐했다.
“알겠습니다, 형님들. 눈은 제대로 뜨고 있을게요.”
***
꾸벅꾸벅.
약속을 지키지 못한 고천수가 이내 졸고 있을 때였다.
쉬이이이.
어디선가 흘러든 찬바람에, 고천수가 몸을 떨며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누구보다 우렁차게 비명을 뽑아 냈다.
거적을 쓴 해골바가지.
그놈이 바로 차 옆에 서 있었다.
“아아악! 개새꺄!”
고천수는 바로 액셀을 밟았다.
차가 힘 좋게 달려 나갔고, 그놈은 거짓말처럼 또다시 멀어졌다.
“하, 미친. 맙소사.”
진짜로 식겁했다. 전조에 비해서 나타나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다시 한번 떼어 놓기는 했지만 또 기다리고 있을 자신은 없었다.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진짜로.”
잠깐 본 얼굴이 압권이었다.
해골. 딱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검은 거적을 쓰고 있으니 솔직히 말해서 사신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 쉐도우. 이제 2단계야.
-슬 벗어나는 게 좋을걸?
-좀만 더 멀어지면 어차피 지금 볼 일은 없어.
시청자들이 나름대로 친절함을 보여 주기는 했지만 2단계가 어떤지 설명해 주지는 않았다.
‘쉐도우라.’
이름은 심플했다.
한 번 더 기다릴지를 결정하기 위해 고천수는 잠시 침음했다.
“형님들, 저거 저한테만 붙은 저주입니까?”
긍정도 부정도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긍정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플레이어는 플레이어다, 이건가.’
게임에서는 플레이를 강제하기 위해 여러 장치가 설정되고는 한다.
그중에서 이런 방식이 고천수는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콰창!
갑자기 창문이 깨졌다. 고천수는 반사적으로 액셀을 밟았다.
“뭐야……!”
그놈이 깬 거였다.
돌연 옆에 나타나서 말이다.
“공간 점프!”
서로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면 근처로 도약해 오는 것이었다.
“이게 2단계라 그거냐?”
백미러를 보니 역시 그놈, 쉐도우가 나타나 있었다.
입술을 깨문 고천수는 액셀을 더 밟지 않고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는 게 2단계의 조건이라면, 그걸 넘지만 않으면 됐다.
-페이스메이커야 머야.ㅋㅋㅋㅋ
그 말대로 쉐도우와 함께 도로를 달리는 일이 시작됐다.
“이렇게 어디까지 쫓아올 수 있나만 보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형님들.”
고천수는 다시 여유를 되찾았다.
거점이었던 명서 초등학교를 기준으로, 쉐도우가 언제 없어지는지만 알면 앞으로 상시 정보에 떨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아, 저 천재인 듯.”
역시 공포 게임을 다량으로 플레이해 봤던 경험은 어디 가는 것이 아니었다.
시청자들도 인정하는지 아무런 부정도 하지 않았다.
끼이익!
갑자기 쉐도우가 차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고천수는 그대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콰아앙!
급하게 핸들을 꺾은 차가 전신주에 처박혔다.
“아…… 시발.”
정신이 아찔했다. 눈앞은 흐릿했고, 보닛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아른거릴 뿐이었다.
액셀을 밟았다. 엔진은 살아 있는데도 차가 반응하지 않았다.
고천수는 겨우 시선만 돌려서 깨진 창문 밖을 바라봤다.
그우우우우.
이상한 소리를 내며 쉐도우가 다가오고 있었다.
“끄, 응.”
안전벨트를 풀고 차 문을 열었다.
다가오는 위험을 미리 검증한다는 게, 시야 안에서 너무 만용을 부리고 말았다.
아마도 3단계. 고천수는 다가오는 쉐도우에게 공포를 느끼며 품 안에서 무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다, 준비해 뒀다고……!”
총이었다.
경찰서장을 구해 낸 공으로, 특별히 하나 받아 뒀던 것이었다.
“죽어!”
타앙!
한 발이 발사됐다.
먹히면 한숨 돌릴 수 있었겠지만…….
그우우우우.
먹히지 않았다.
-야, 고천수.
-나 다이렉트로 쉐도우 3단계까지 올려 놓는 거 처음 봄.
-눈앞에서 존나 개겼네, 이거.ㅋㅋㅋ
고천수는 총을 다시 품 안에 집어넣었다.
총이 통하지 않을 확률은 이미 계산에 있었다.
다만 몸이 성치 않다는 게 문제였다.
“헉, 헉…….”
어디 부러지진 않았지만 타박상이었다.
고천수는 비틀거리는 몸을 세워서 일단 근처의 건물 안으로 향했다.
쉐도우는 그런 고천수를 정직하게 따라왔다.
기본 이동은 물리 법칙을 지키고 있었다.
‘중요한 건 타이밍이야.’
3단계는 틀림없이 점멸이었다.
바로 사용하지 않는 걸 보니 재사용에 시간이 걸리는 것이 분명했다.
그우우우우.
쉐도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고천수는 제한시간 외에 다른 조건을 생각해 냈다.
“제발.”
시야 안에 든 곳으로만 이동할 수 있다는 조건만 설정돼 있다면…….
-천수 어이없이 죽을 수도 있겠는데?
-아, 엔딩 이렇게 보는 거 극혐인데.
고천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시청자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로 꽂혔다.
어쩌면 위기를 스스로 겪는다는 건 머저리 같은 짓이었는지도 몰랐다.
그왁!
따라온 쉐도우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쉐도우는 고천수의 앞까지 점멸해 왔다.
“기다렸다……!”
그때, 고천수는 쉐도우의 눈앞에 뭔가를 비췄다.
그워어어어어.
손전등의 빛.
그게 닿자마자 쉐도우가 얼굴을 가리며 비틀거렸다.
“쫓아오는 유령이 있고 방어용 손전등이 있다! 그럼 뻔하지!”
고천수는 시청자들의 말을 결코 허투루 듣지 않았다. 손전등은 유령이 싫어한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경직에 걸린 쉐도우를 보며 고천수는 다시 총을 빼 들었다.
타앙!
그워억.
쉐도우는 이번엔 통증을 느꼈는지 몸을 숙였다.
“빙고!”
공격이 안 통한다면 그대로 술래잡기를 계속할 생각이었다.
손전등의 배터리만 남아 있으면 시간을 때울 수 있었으니까.
“너도 급하지?”
좀만 더 멀어지면 당장 다시 볼 일은 없다고 했다.
벗어날 수 있는 거리가 그렇게 많이 남지 않은 것이었다.
“잡아 보든가.”
고천수는 그대로 달아났다.
‘엿될 뻔했네.’
물론 모든 것이 계산되었던 바는 아니었다. 차를 전신주에 박는 건 계획해 두지 않았으니까.
[띠링! 고문관 님이 1젠 후원! - 노잣돈 주는 거 너무 신나.]
“무슨 노잣돈입니까!”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위로금 받을 생각은 없었다.
고천수는 건물 밖으로 나갔다가 자전거 하나를 발견하고 올라탔다.
“신이 날 도왔다!”
도망가는 데 좀 더 속도를 붙일 수 있을 거라 판단했지만, 불행히도 자전거는 바퀴가 구겨져있던 상태였다.
쿠당탕.
채 2m를 못 가고 자전거와 함께 땅바닥을 구른 고천수는 부딪힌 무릎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아, 고문관 님! 아!”
-정글러 탓하는 탑돌이 같네.ㅋㅋㅋㅋ
-니가 넘어진 거잖아!
-시발! 개천수야! 손전등 들어!
달칵.
채팅을 보고 고천수는 반사적으로 손전등을 켜서 들었다.
그워어억.
마침 따라붙었던 쉐도우가 빛을 받고 몸을 움츠렸다.
“한 방…… 더 먹어!”
타앙!
총알까지 맞은 쉐도우가 크게 비틀거렸다.
고천수는 일어나서 다시 달렸다.
“방향을 못 잡겠네, 제기랄.”
결국 차가 있던 곳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방향을 잡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남은 총알은 3발…….’
플레이어만 쫓는 추적자라면 사실상 불사신일 터, 희망할 수 있는 건 일정 수준 이상 유효한 타격을 받으면 쉐도우가 일시적으로 소멸하는 것이었다.
반짝.
그때, 한줄기 빛이 고천수의 시야를 채웠다.
“응?”
하지만 고천수가 손전등을 켠 것은 아니었다.
“뭐야, 또.”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누군가 이쪽으로 빛을 깜박이고 있었다.
“돌겠네, 진짜.”
남이 어그로 끄는 꼴은 참아줄 수가 없었다.
소리가 들려서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쉐도우가 따라붙고 있었다.
“저놈한테는 어그로 스킬도 적용 안 되는 거냐고……!”
달칵.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은 손전등뿐이었다.
그워어어어.
빛에 처맞고 흐느적거리는 쉐도우를 향해 고천수는 또 한 번 총알을 먹였다.
“어?”
쉐도우가 허리를 푹 숙였다.
타격 누적이 확실했다. 남은 총알을 다 쓰면 일시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을지 몰랐다.
-더 쏴!
시청자의 지시까지 있었지만, 방아쇠에 건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았다.
더 우선해서 확인해야 하는 내용이 있었으니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고천수는 쉐도우가 회복하기를 기다려 술래잡기를 더 이어갔다.
그어아아아.
숨이 차서 한 번 더 손전등을 비추려고 기다리는 순간, 쉐도우가 멈칫하며 괴성을 질렀다.
“아.”
고천수는 미소를 그렸다.
“거기구나, 네 한계.”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는 쉐도우를 보며 고천수는 웃음을 흘렸다.
“지옥으로 돌아가라, 하수 새끼야.”
엄지를 거꾸로 드는 고천수를 보며, 쉐도우는 미친 듯이 괴성만 지르다가 사라졌다.
털썩.
고천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반짝반짝.
어딘가에서 오는 빛줄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