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 배신의 대가 (1)
명서 초등학교의 운동장.
곳곳에 피워 놓은 모닥불이 주위를 밝히는 가운데, 모인 시민들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경찰 내에서 배신자가 나왔다니, 이거 괜찮은 건가.”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중요하겠지.”
“미적지근하게 대처하면 못 믿을 것 같아.”
안 그래도 운동장 안에 좀비가 들어왔던 일로 다들 싱숭생숭했던 차였다.
그런데 경찰들끼리 내분이 있었다는 걸 알고 마음이 편할 인간이 누가 있겠는가.
“자, 여러분. 이제 안으로 들어가세요.”
그런 그들에 앞에 나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 달라고 하는 경찰이 있었다.
“안으로?”
“우리도 어디 가는 거 아냐?”
“아닙니다. 그럴 일 없습니다.”
불안감을 표현하는 시민들을 달래는 그는, 뒤늦게 이곳에 합류한 허영웅이었다.
“이미 충분히 정상화됐으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그렇지만…….”
“아직 배신한 놈들 처분도 안 했다면서?”
시민들은 쉽게 진정하지 않았다.
“언제 뭔 짓을 할지 알고 살려 둔 거야!”
“그놈들이 좀비를 들이는 바람에 얼마나 죽었는지 알기나 해?”
“심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허영웅은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회의 중이니 곧 처분이 나올 겁니다.”
경찰들은 이런 일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누군가를 체포하고 구금하는 일까지는 익숙했지만, 이런 일에 대한 판결은 전에 없던 일이었던 것이다.
“그냥 죽여 버려!”
“그래, 그냥 죽여 버리라고!”
시민들의 요구는 당연했다.
하지만 허영웅은 마른침을 삼킬 뿐이었다.
‘그게 맞긴 하지만…….’
직접 처형을 하는 순간 경찰의 성격이 달라진다.
‘과연 괜찮을지.’
내홍으로 이미 한 차례 조직이 흔들린 이곳의 경찰에게, 처형 이후의 여파가 어떻게 적용될지를 가늠할 수 없었다.
부르르릉!
그때였다.
차 한 대가 명서 초등학교의 출입문에 나타났다.
“저건……!”
허영웅이 놀라는 사이, 출입문에 있던 경찰의 검문을 마치고 차량이 유유히 운동장 안으로 들어섰다.
“고천수 씨!”
운전석에서 내린 건 다름 아닌 고천수였다.
허영웅은 헐레벌떡 뛰어가 그의 앞에 섰다.
“어디에 다녀오셨던 거예요. 늦으시기에 걱정했습니다.”
“제 걱정을? 감사하네요.”
고천수는 심드렁하게 받아치며 손전등 하나를 들어 보였다.
“근데 허영웅 씨. 이거 어디다 쓰는 것 같아요?”
“예?”
허영웅은 손전등을 내려다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 글쎄요. 그냥 불빛 비추는 용도 아닐까요?”
“흐음.”
불만족스러운 고천수를 보며 허영웅은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고천수 씨. 여쭤볼 게 있거든요.”
“음? 뭔가요.”
“그게……. 잠시 이쪽으로.”
허영웅은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고천수를 데려가 심정을 털어놓았다.
“다른 게 아니라 지금 진경호, 이서준에 대한 처분을 놓고 다들 고민이 많거든요.”
“예.”
“그래서 고천수 씨가 생각해 놓았다는 형벌, 그걸 좀 듣고 싶어서요.”
그 말에 고천수는 툭 내뱉듯 답했다.
“아, 그거요. 죽이세요.”
하지만 그건 허영웅이 기대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었다.
“네? 죽이라고요? 그냥……?”
“그냥은 아니고. 운동장 같은 데 모여서 아침에 처형하시면 되겠네요. 왜, 형장의 이슬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하는 고천수를 보며 허영웅은 크게 당황했다.
“그, 그래도 되나요? 하지만…….”
“하지만 뭐요.”
고천수는 매서운 표정을 지었다.
“허영웅 씨, 마음 약해지면 안 됩니다. 배신자는 그렇게 처리할 수밖에 없어요. 왜요. 설마 인도적인 방법이라도 생각하고 있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고천수 씨가 더 유용한 방법을 주실 것 같았어요.”
그러자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허영웅 씨가 너무 절 의지하게 되어 버린 건 아닌지 염려가 되네요.”
“네?”
“저는 돌아와서 형벌을 추천하겠다고 했을 뿐입니다. 결정해 주겠다고 한 건 아니에요.”
허영웅은 절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신박한 방법이 필요했다면 스스로 더 치열하게 생각했어야죠. 자기 능력을 과소평가할 것 없어요. 저랑 같이 살아남았을 정도니까.”
“흐음…….”
허영웅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고천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뭐, 어쨌든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
허영웅은 이상적이었다.
고천수가 처음 의심했던 바와는 다르게 꽤나 순수한 경찰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처형 방식을 무조건 피할 수는 없을 테지만.’
당분간만이라도 지금까지의 경찰로 유지하고 싶다면, 고천수는 도와줄 의향이 있었다.
이번만 여유를 주면 나중엔 알아서 더 좋은 방법을 강구할 수도 있고 말이다.
-내가 보기엔 까먹고 있다가 그냥 죽이라고 한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도 그럼.
-내가 보기에도.
“형님들, 너무하시네요. 물론 정답입니다만.”
고천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허영웅에게 자신을 가리켜 보였다.
“허영웅 씨, 방법은 바로 저입니다.”
“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허영웅을 보며 고천수는 미소를 지었다.
“이번엔 제 손에 맡기세요.”
처형 방식을 쓰지 않겠다면 남는 건 하나였다.
“제가 그 사람들을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고천수 씨가요?”
허영웅은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고천수 씨가 그 사람들을 처형하게 해 달라는 건가요?”
“아뇨. 그럼 일개 시민 손에 맡겨 버린 게 되잖아요.”
시민들은 사정에 대한 설명을 바라고 있었다. 그건 경찰이 해야 하고, 형의 집행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 경찰이 주도적으로 상황을 해결해야죠.”
“그럼 고천수 씨가 말하는 건…….”
“추방입니다.”
추방.
처형을 하지 않을 거면 그냥 내보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추방……! 그럼 과정은요?”
“물건을 전부 뺏고요. 명서 초등학교에서 추방시키세요.”
“고천수 씨는 어떤 역할을 하실 건가요?”
“전 운송입니다.”
고천수는 차를 가리켰다.
“유효하게 추방시키려면 멀리 데려다 놔야 하겠죠. 전 운전자 역할만 맡을 테니까, 조수석에는 허영웅 씨가 타세요.”
집행은 어디까지나 처음부터 끝까지 경찰이 하는 셈이었다.
“저는 일을 돕기만 하겠습니다.”
단순하지만 현재로서는 이런 방식 외에는 없었다.
다행히도 허영웅은 화색을 띠었다.
“나쁘지 않네요. 어차피 추방시키면 살아남기도 힘들 테니까.”
“그렇죠. 가서 건의해 보고 오세요.”
“네네! 감사합니다, 고천수 씨!”
허영웅은 그대로 본관으로 향했다. 고천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순진하네, 저 친구.
-그래, 우리 천수는 분명 악랄한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
-그치, 천수야?
“형님들, 누굴 악마로 아십니까.”
하지만 배신자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또한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이었다.
단순한 추방으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근데 그냥 죽이자고 안 하려나?”
고천수의 입장에서는 배신자를 죽이는 데 그렇게 거리낄 것이 없었다.
다만 서로 처한 현실이 다르기 때문에, 경찰이 무슨 결정을 하든 토를 달 생각은 없었다.
‘것보다…….’
고천수에게는 다른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랑 쉬고 싶은 생각은 없어, 학교 개구멍 쪽에 있던 숙직실로 향했다.
-와, 여기 좋네.
-꿀 자리인 듯.
-천수한테는 아직 좀 이른 곳인 듯.
공간도 넓고 이부자리도 잘 마련돼 있었다.
시청자들이 천수는 벌써 이런 좋은 데서 자면 안 된다는 개소리도 늘어놓았지만 쌈박하게 무시했다.
고천수는 풀썩 누워서 정보창을 열어 보았다.
[상시 정보 :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위험합니다.]
계속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었다.
“형님들, 이거 ‘오래’가 어느 정도를 의미하는 겁니까?”
-글쎄. 한 이틀?
-때에 따라서 다를걸?
-전조현상이 있으니까 그걸로 파악하셈.
전조현상.
유의미한 발언이 하나 있었다.
“전조현상이란 건 뭘 말하는 겁니까? 오래 머무르면 뭐가 나오는 거죠?”
그러자 다들 ‘ㅋㅋㅋㅋ’ 하고 웃을 뿐 답이 없었다.
“이 정도면 힌트는 많이 줬다~ 이거군요.”
고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나머진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벌떡 일어나서 숙직실의 문을 잠근 고천수는 그대로 다시 이불로 가 누웠다.
“제가 잘 동안은 별 일 없으면 좋겠네요.”
지금 뭔가를 더 확인할 수는 없었다. 어디다 쓰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고천수는 손전등을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쾅쾅쾅.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천수는 다시 눈을 떴다.
“으으음.”
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고천수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뭐야…….”
오전 9시였다.
“아니, 시바! 내가 이렇게 잤다고?”
잠깐 눈만 붙였다가 뜬 것처럼 느껴지는데 폰에 찍혀 있는 시간은 완전 예상외였다.
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됐다.
“아이 씨.”
피곤한 건 그렇다 치고 밖에 누가 왔는지는 확인해야 했다.
고천수는 크게 소리쳐 물었다.
“밖에 누굽니까!”
『고천수 씨! 접니다! 허영웅!』
듣고 나서 열어 주자 정말로 거기에는 허영웅이 서 있었다.
“새벽부터 죄송합니다, 고천수 씨.”
그 말대로 밖은 이제 막 여명이 밝아오는 참이었다.
그제야 통신사로부터 정보를 받는 핸드폰 시계가 이상해졌다는 걸 깨달은 고천수에게, 허영웅이 죽이 든 그릇을 내밀었다.
“일단 이것 좀 받아 주세요.”
“……아침밥입니까?”
“네. 근데 일찍 드리는 건 고천수 씨가 말씀해 주신 방법이 통과됐기 때문이에요.”
허영웅은 진경호와 이서준을 추방하는 일이 오전 일찍, 그것도 6시 30분에 시작될 거라고 알려 주었다.
“드시고 좀 이따 운동장으로 와 주세요. 고천수 씨가 꼭 필요하니까요.”
“뭐, 알겠습니다.”
그렇게 허영웅을 보내고 고천수는 핸드폰을 들어보았다.
역시 표시된 시각이 이상했다.
“손목시계를 구해야 하나…….”
일단 폰의 설정을 만져서 임의로 시간을 수동 설정해 뒀다. 자세한 시간은 조금 이따가 추방식이 시작되면 맞추면 될 터였다.
“근데 진짜로 추방만 하네.”
그런 짓을 한 놈을 바로 쏴 버리지 않을 만큼 침착하다니, 어떤 면에서는 대단한 경찰들이었다.
“그럼 나도 준비를 해야지.”
고천수는 숙직실에서 페트병 하나와 잔 두 개를 챙겼다.
***
“여러분,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운동장 단상. 허영웅이 옆에 있는 경찰서장을 대신해 결정을 통보했다.
“간밤에 모두에게 말씀드렸던 대로, 이곳에 저희를 배신하고 위기에 몰아넣은 인원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진경호와 이서준이었다.
“회의 끝에 저희는 이 두 사람을 추방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시민들이 술렁였다.
“추방?”
“안 죽이고?”
“저놈들 때문에 사람이 몇이나 죽었는데……!”
곳곳에서 분노가 터져 나왔다. 그걸 보는 진경호와 이서준은 바들바들 몸을 떨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이렇게 흘러가네요, 형님들. 그쵸?”
한구석에서 고천수는 상황을 여유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경찰들은 추방을 설득하고, 시민들은 불만을 보이고 있는 모습은 나름대로 흥미로웠다.
-아니, 그냥 죽이면 되는 거 아님?
-괜히 불만만 사는 거 아닌지.
-노이해.
물론 고천수도 그냥 죽이는 게 편하다고 여기긴 했지만, 그래도 경찰들의 결정을 존중했다.
“형님들, 저게 아예 이점이 없는 건 아니에요.”
죽이는 건 쉽다. 근데 정당성을 떠나, 누굴 죽인 자가 다른 사람들의 신뢰를 잃는 것도 아주 쉬웠다.
“지금만큼 준법적인 면을 보여 줄 수 있는 때가 없거든요. 좀 답답한 머저리 같아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다들 깨달을 겁니다.”
적어도 저 경찰들이 그냥 내키는 대로 자신들을 죽음으로 위협하지는 않으리란 사실을.
-그래도 살려 두면 안 되잖아.
-살려 두면 재미없어.
“인정합니다.”
사람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진경호와 이서준이 저지른 짓에 비해, 형벌이 가벼워 보일 테니까.
“그럼 이제 제가 나서 볼까요.”
누구도 자기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하는 거라면, 바로 여기에 이미 피를 묻힌 자가 있었다.
부릉.
차로 가 시동을 걸고 출입문 앞까지 옮겨 놓자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끌린 듯 시선을 보냈다.
“허영웅 씨! 죄인들을 다시는 못 돌아올 곳으로 보낼 준비! 끝냈습니다!”
그렇게 외치자 여태 불만을 내뱉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다시는 못 돌아올 곳. 그게 그들의 뇌리에 꽂혔던 것이다.
“아, 네! 알겠습니다!”
허영웅은 바로 사람들에게 고했다.
“여러분! 그럼 바로 추방 명령을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다른 경찰들과 함께, 수갑을 찬 이서준과 진경호를 끌고 갔다.
“젠장! 젠장……!”
“끄윽……. 끄으윽.”
죄인 둘은 그냥 속절없이 걸음을 옮겼다.
출입문 밖을 나서자 고천수가 그들을 맞았다.
“드디어 이 단계네요.”
그가 미소를 지으며 트렁크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자, 허영웅은 눈을 크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