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6화 (16/224)

016. 온리베어와 보급함

“이런 시발…….”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돌은 거 아냐?”

고천수에게서 녹음 파일까지 전달받은 경찰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서장님을 죽이고 우리를 장악하려고 한 거야?”

“개쓰레기 같은 놈!”

“죗값을 치르게 해 주겠어!”

이서준은 구석에 찌그러진 채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금방 찌그러지다니, 고천수는 그가 한심하기만 했다.

“여러분, 진정하시죠.”

고천수는 경찰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경찰서장님도 모셔야 하고, 상황 정리도 해야 하니까요.”

죄를 저지른 자들에 대한 처분을 어떻게 할지는, 여유롭게 정해도 괜찮았다. 그 점을 납득한 경찰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그래, 서장님부터…….”

“진경호 소장님도 그 꼴이 되셨는데 뭔 일이 이렇게 참.”

“아, 여러분. 말이 늦었는데, 진경호도 한 패입니다.”

고천수가 손을 들며 말하자 경찰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뭐라구요?”

“소장님도?!”

“이런 제기랄! 빨리 가서 잡아 놔!”

몇몇의 경찰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고천수가 보기엔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그 양반은 이미 아주 박살을 내 놨으니까.

“서장님, 뭐 상황을 보니까 증언해 주실 것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한 마디 해 주시겠습니까?”

“고천수라고 했던가? 자네 말이 다 맞네.”

고천수의 물음에 대답하며 경찰서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곁에는 허영웅이 서 있었다. 고천수에게 한 번 의심을 받은 적도 있는 그는, 지금은 완전한 아군으로서 경찰서장을 부축하고 서 있었다.

“고천수 씨, 감사합니다. 덕분에 다들 살았네요.”

“별말씀을.”

고천수는 그보다 다른 게 신경 쓰였다.

“허영웅 씨, 그럼 서장님과 뒤처리를 부탁드립니다.”

“예? 고천수 씨는요?”

“저는 잠시 할 일이 있습니다. 참고로 당부하자면 이서준하고 진경호에게는 적절한 형벌이 있습니다. 좀 이따 추천해 드리러 오죠.”

그 말에 이서준이 또다시 떠는 모습을 보였지만 고천수는 무시했다.

바깥으로 걸어 나온 고천수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뭐야, 이건.”

지금 그는 열려 있는 정보창을 계속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뭐라는 거야.”

[상시 정보 :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위험합니다.]

해소된 ‘정보 1’은 없어지고, 상시 정보라는 묘한 게 생겨 버렸다.

-난 천수 멘붕할 때가 그렇게 재밌더라.

-한도초과 : 내 정보라도 풀까? 이제 풀까?

-던질까 말까 던질까 말까.

이 상황을 가볍게 여기는 시청자들과 달리 고천수는 혼자 심각했다.

‘좀 쉬려고 그랬더니, 참.’

명서 초등학교의 위험은 제거했다. 당분간은 여기 있으려고 했는데 이래서야 불안 요인이 생겼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형님들, 상시 정보라는 건 계속 적용된다는 거죠?”

고천수가 묻자 시청자들이 즉답했다.

-상시라는 뜻 몰라?

-우리 천수, 가방끈이 좀 짧던가?

-이러고 있을 시간에 움직이는 게 어때.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고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 운동장으로 향했다.

‘어떻게 할까.’

뭐가 됐든 명서 초등학교 사태는 해결했으니 잠깐의 여유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 틈에 그 곰 인형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도 좋았다.

“형님들, 잠깐 드라이브나 가죠.”

어차피 가서 가져 올 것도 있었다.

고천수는 운동장으로 가 지프차를 찾았다.

“있네.”

키도 그대로 있었다. 운동장에 몇 남아 있던 사람들이 지프차에 타려는 그에게 소리쳤다.

“어이, 조심해!”

“타지 말라고!”

“응?”

그가 의문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돌아보자 그들은 서둘러 이유를 설명했다.

“아까 전에 경찰 하나가 그거 타고 왔어!”

“온몸이 다 박살 나 있었다고!”

“뭔가 또 옮는 걸 가져왔을지도 몰라!”

상당히 공포에 질려 있는 얼굴이었다. 고천수는 그런 그들을 보며 헛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겨우 참아 냈다.

“괜찮습니다. 옮는 게 아닌 거는 다 확인했습니다.”

저렇게 겁먹은 사람들이 많아서 키까지 있는 차가 얌전히 놓여 있었으니, 오히려 감사할 뿐이었다.

“이, 이봐!”

“잠깐!”

주위의 만류는 모른 척하고 고천수는 차 위에 올라탔다.

사람들이 이 차를 탄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여기를 떠야 한다며.’

상시 정보에 나와 있는 ‘한 지역’이라는 게 어느 정도의 범위를 말하는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명서 초등학교에는 머무르지 말란 의미와 다를 바 없었다.

부르릉!

시동을 켜고 액셀을 밟자 차가 시원스레 도로로 빠져나갔다.

“상쾌하네.”

혼자서 차를 모니까 한껏 자유를 얻은 느낌이었다.

-벌써 이런 거로 만족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우린 계속 재미 좀 보고 싶다고.

-천수가 쉬는 꼴을 못 보네.ㅋㅋㅋ

고천수는 헛웃음을 뱉었다.

‘알고 있다고.’

어차피 시청자들은 마냥 고천수를 괴롭히는 건 아니었다.

재미를 더 보고 싶다고 하는 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말하자면 시청자들은 경각심을 심어 주고 있는 것이었다.

“자, 형님들.”

고천수가 차를 몰고 도달할 장소는 그 컨테이너 하우스였다.

“캄캄하니까 다들 눈 크게 뜨세요.”

***

늦은 시간이었다.

차를 멈춘 곳의 주위는 어둑하기만 했다.

“내리는 건 가급적 삼가야겠네요.”

밤에는 또 어떤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크르르르.

어디선가 좀비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하나가 아닌가?”

기척이 여러 개였다. 그렇게 쓸어 버렸는데도 이만큼이나 있다는 건, 또 잔뜩 몰려왔다는 얘기였다.

-좀비는 점점 늘어나지.

-줄어들 리가 없잖아.

하긴 물면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사실이었다.

“상시 대기 중 같은 거네.”

어느 곳으로 가나 이 좀비는 없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가장 투박하면서도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될지도 몰랐다.

-한도초과 : 이제 정보 뿌려도 되지?

허락을 구할 필요는 없었다. 고천수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의미로 빵! 하고 클랙슨을 울려 주었다.

“네, 형님. 귀 활짝 열었습니다.”

-아니, 이 미친 새끼ㅋㅋㅋㅋ

-돌았냐?

-어그로는 갑자기 왜;;

주위로 몰려드는 좀비의 수가 훨씬 더 많아졌다. 고천수는 기어를 바꾸고 액셀을 밟았다.

“하나 확인해 보려고요.”

앞으로 계속 마주칠 몬스터라면 좀 더 확실히 특성을 파악해 둘 필요가 있었다.

부아아아앙!

라이트를 켜고 달리는 지프차 주위로 좀비들이 부나방처럼 달려들었다.

[어그로 2 - 09:59]

지프차로 몰려드는 수에 비해 확연히 적은 어그로 수치였다.

‘날 목표로 쫓아야 어그로가 끌린다, 이거네.’

고천수는 백미러로 좀비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대부분의 좀비는 그저 차를 보고 쫓아오고 있었다.

위이이잉.

창문을 살짝 내린 고천수가 팔을 살짝 내밀었다.

“어이!”

[어그로 10 - 09:25]

신체의 일부만 목표로 인식시켜도 어그로 수치는 바로 경신됐다.

-보통이 아니네.

-스킬이 딱 이놈 성격에 맞는 듯.

고천수는 팔을 넣고 다시 창문을 닫았다.

[어그로 13 - 09:12]

더 이상 바깥으로 노출시키는 신체는 없었지만 어그로 수치가 또 경신되기는 했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창문을 통해 고천수를 인식하고 쫓는 놈들 덕분이었다.

“형님들, 지금부터 곡예 운전 갑니다!”

라이트 소등.

채팅창에 시청자들의 외침이 미친 듯이 밀려 올라갔다.

“아, 역시.”

앞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진짜 되네, 이거.”

고천수는 고개를 살짝 돌린 채, 채팅창을 통해 앞을 바라봤다.

-와, 이놈. 발상 미친다.ㅋㅋ

-우릴 이렇게 봐 왔던 거니……?

-에바다, 진짜. ㅋㅋㅋㅋ

고천수는 채팅창이 유독 시인성이 높다는 걸 진즉에 인지하고 있었다.

채팅창에 겹쳐 있는 현실 부분까지 잘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기에, 이런 기행이 가능했던 것이다.

크아아아…….

덕분에 불 꺼진 차도 수월하게 운전하는 고천수와 달리 좀비들의 외침은 좀 잦아들었다.

차를 쫓아오는 수가 확연히 줄어 있었다.

“좋아. 좀비는 소리보다는 빛이다. 이게 내 결론이다.”

소리에도 반응을 하기는 하지만 추적하는 정확성은 떨어졌다.

보통의 인간처럼 시각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

“뭐, 더 썩은 놈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부패하는 도중에 눈이 나가 버리면 다른 감각에 더 의존하겠지만, 말 그대로 썩어 가는 거니 갑자기 청각이 더 발달하기도 어려울 터였다.

다만 나중에 가면 변종이 있을지도 모르니 그건 주의해야 했다.

-근데 한도초과 어디 감?

-한도초과 : 나?

-정보 빨리 풀어. 노잼 만들면 그냥 내가 풀음.

고천수가 애쓰고 있는 동안 시청자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랐다.

한도초과는 서둘러 말했다.

-그러니까 그 곰 인형 말인데…… 저, 저기!

고천수도 확인했다. 마침 나타난 곰 인형 하나가 어딘가로 뛰어가고 있었다.

“저건 대체 뭡니까.”

-온리베어야.

온리베어.

뭔 소리인지 못 알아듣겠는 단어에 고천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몬스터 같은 겁니까?”

-좀 달라. 보급함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는 역할이거든.

그 말을 듣자마자 고천수는 탄식해 버렸다.

“아, 그래서 이름이…….”

온리베어.

그리고 고천수를 이 게임에 집어넣은 자의 이름은 온리원.

그가 판을 깔아 두면서 일종의 실마리로 만들어 둔 것이 분명했다.

“제가 보급함에 가까이 다가가면 나타나서 반응하는 거네요.”

체제도 이해했다. 그 이상 설명은 필요 없었다.

고천수는 차를 빠르게 달려 곰 인형, 온리베어를 쫓아갔다.

속도는 당연히 차가 더 우위에 있었다. 그 덕분에 금방 따라잡을 수 있었다.

쾅!

“아, 망할.”

속도를 너무 높인 바람에 온리베어를 쳐 버렸다.

-…….

-진짴ㅋㅋㅋ.

[띠링! 온리원 님이 1젠 후원! - ^^;]

“죄송합니다.”

고천수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넘어진 온리베어를 쳐다보았다.

다행히도 파괴 불가 오브젝트 같은 것인지, 온리베어는 금방 다시 일어나 뛰어갔다.

부우우웅.

차를 타고 쫓아간 곳에는 이미 예고됐던 대로 보급함 하나가 놓여 있었다.

“후. 드디어 찾았네요.”

오면서 좀비들은 다 떨어뜨려 놓고 왔다.

고천수는 차에서 내려 보급함에 다가갔다.

“5젠…….”

이제 와서 보니 보급함에는 필요한 젠의 숫자가 적혀 있었다.

거기에 더불어 방패 모양의 표식도 박혀 있었다.

‘저번에 제대로 봐 뒀어야 하는 건데.’

고천수는 보급함을 만지며 자신이 빠져나왔던 자취방 건물의 옥상을 떠올렸다.

그때 본 보급함에는 몇 젠이 적혀 있었는지, 어떤 표식이 박혀 있었는지 미처 보지 못했다.

참고할 만한 정보를 놓친 것이었다.

‘뭐, 그래도 상관없지.’

그 보급함이 1젠짜리였던 거야 시청자들을 통해 들었고, 표식도 아마 검 모양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크아아아아.

멀리서 다가오는 좀비의 소리가 들렸다.

고천수는 고개를 돌리다가 온리베어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괜찮음. 원래 만지면 없어짐.

-보급함 깔 거임?

-야, 안 깔 거면 얼른 타. 재미없게 조지기 전에.

시간이 없었다.

고천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보급함을 열어젖혔다.

“이건……?”

손전등이었다.

“뭐야.”

12젠에서 5젠을 써서 남은 금액은 7젠.

그렇게 적지 않은 금액을 썼는데 나온 물건이 뭔가 애매했다.

“이게 방어용이라고?”

크아아아아!

마침 나타난 좀비가 있어서 얼른 손전등을 들고 켜 보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오히려 더 자극돼서 달려들었다.

“아, 쉣!”

고천수는 급하게 좀비의 옆구리를 차 버리고 얼른 차에 올랐다.

“아나, 젠만 썼네!”

손전등은 조수석에 던져두고 얼른 기어를 조작했다.

액셀을 밟자 차가 시원스레 달려 나갔다.

크아아아아!

다시 많아진 좀비들이 뒤를 빠르게 쫓아왔다.

하지만 이곳을 빠져나가기만 하는 고천수에게 큰 위협은 되지 못했다.

곧 좀비들은 차에서 멀어졌다.

“후.”

그다지 긴장하고 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고천수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얻다가 쓰는 거야, 대체.”

상시 정보도 그렇고, 이런 손전등도 그렇고 아주 골치만 아프게 하는 것들이었다.

-ㅋㅋㅋ 유령은 싫어하겠고만 뭘.

-것보다, 걔넨 어떻게 처리할 거야?

-맞아. 배신한 경찰들.

-그냥 봐줄 건 아니지?

다시 명서 초등학교로 가려고 하니 시청자들이 급하게 의견을 냈다.

이로써 고천수는 시청자들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 네. 그럼요. 걱정 마세요.”

배신자들에게는 그에 걸맞은 최후를 선사해 줄 필요가 있었다.

“형님들 심심하시지 않게 잘 정리할 테니까요.”

고천수는 미소를 지었다.

“잘 지켜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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