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다 계획이 있구나
별관은 본관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도 금방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어디로 갈까.”
별관은 지상 3층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고천수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정해야 했다.
“헉…… 헉…….”
그때, 지하에서 누군가 숨을 헐떡이며 올라왔다.
근처에 급하게 몸을 숨긴 고천수는 고개를 살짝 내밀고 상황을 살폈다.
‘지상이 아니라 지하 쪽이었나?’
나타난 게 경찰이라면 낭패였다. 자칫하면 한 발 늦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제, 젠장.”
하지만 그렇게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장만철이었다.
‘장만철?’
그가 왜 여기서 나오는 걸까.
아니, 사실 이유는 알 수 있었다. 고천수가 부탁했던 바를 정말 들어줬던 것이다.
“장만철 씨.”
고천수가 주위를 살피고 있는 장만철을 조용히 불렀다.
“장만철 씨, 여기 보세요.”
손까지 흔들자 장만철이 드디어 고천수를 발견했다.
“자, 자네……!”
장만철은 고천수에게 뛰어와 어깨를 붙잡았다.
“자네 다 알고 있었나?! 어?!”
“잠시만요. 진정하세요.”
장만철이 안에서 뭔가를 확실히 봤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고천수는 검지를 입술에 붙이며 말했다.
“시끄럽게 해서 좋을 거 없어요. 안에 지금 누가 들어가 있나요.”
“아, 안에는…….”
장만철이 뒤를 돌아보고 다시 고천수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서준! 경비교통과장 이서준이 들어가 있네! 본관 문지기도 한 패야!”
“각 나오네요.”
진경호와 둘이 짜고 명서 초등학교를 먹으려고 한 게 보였다.
여러 가지 정황과 장만철의 증언으로 봤을 때 문지기도 역시 공모자였다.
“안에, 이서준만 있지는 않죠?”
고천수의 물음에 장만철은 한 번 숨을 크게 삼킨 뒤 답했다.
“경찰서장이 있었네! 그것도 의자에 묶인 채로!”
“확실합니까?”
“이서준이 말하는 걸 들어 보면, 분명히 경찰서장이었어……!”
원하던 내용이었다. 고천수가 주먹을 꽉 쥐는 사이, 장만철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경찰서장을 어디로 옮기려나 봐! 전기 충격기로 몇 번이나 지지더라고!”
“알겠습니다.”
장만철의 역할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남은 건 이서준과 맞서는 일이었다.
“장만철 씨, 이서준, 지금 무장은 어떤 상태였습니까?”
“자, 자네, 싸우려는 건가?”
“당연하죠.”
고천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장만철을 바라보았다.
“전 불의를 참지 못합니다.”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게 아니고?
-입술 실룩이고 있는데.
-거의 연기자야 이놈.ㅋㅋㅋ
시청자들이 참지 못하고 채팅창을 채웠다. 고천수는 애써 무시하며 장만철의 팔을 붙잡았다.
“여기는 제가 맡을 테니 사람들에게 가 보세요. 설득해서 데려오셔야 합니다.”
“데려오라고……?”
“네, 일이 잘 안 되면 사람들이 좀 필요할 테니까.”
물론 고천수는 질 생각이 없었다. 다만 좀 더 재미를 보려면 목격자가 없는 편이 나았다.
“아, 알았네.”
장만철은 순순히 응하며 고천수에게 말했다.
“조심하게. 내가 금방 사람들을 불러 올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돌아선 장만철이 빠르게 뛰어갔다. 고천수는 멀어져가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별관 안으로 들어갔다.
“형님들, 집중하게 대화는 조금 줄이고 이동할게요.”
-그냥 말을 하지 마.ㅋㅋ
-안 돼. 실황은 해야지.
고천수는 말 대신 손가락으로 자신이 이동할 곳을 가리켰다.
지하.
들어가는 계단은 어둡기만 했다. 하지만 고천수는 따로 핸드폰을 써서 불빛을 비추지는 않았다.
대신 녹음 기능만 미리 켜 놓았다.
마침 차에 있는 시가 잭으로 충전해 둬서 배터리도 가득 차 있었다.
‘불 좀 켜 놓지, 이 새끼.’
들킬까 봐 다른 짓은 못하겠고, 고천수는 그저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지루한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곧 불빛이 비치고 있는 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용하네.’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이 틈으로 장만철이 안을 엿본 듯했다. 고천수는 시선을 살짝 안으로 향했다.
“-맷집 더럽게 세네.”
순간 들린 목소리가 있었다. 주인은 누구라고 할 것도 없었다.
이서준, 그가 의자에 늘어져 있는 한 남자를 보며 어깨를 풀고 있었다.
“쉽게 쉽게 좀 갑시다, 서장님. 예?”
따다다닥.
이서준의 손에는 전기 충격기가 들려 있었다. 진경호가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취향 공유 하네.ㅋㅋㅋ
-천수, 저거 맞고 기절하는 거 아님?
-드롭킥부터 먹이면 1젠 줌.
망설일 것도 없었다. 고천수는 바로 문을 완전히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뭐, 뭐야.”
이서준이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다음에 일어날 일은 미뤄지지 않았다.
“드롭 키익!”
달려가 날아오른 고천수에게 양발에 이서준이 가슴을 걷어차였다.
“꺼억?!”
쿠당탕탕!
밀려난 이서준이 벽에 부딪히며 잡동사니에 처박혔다.
“아, 흑. 시바.”
이서준을 차고 바닥에 수직 낙하한 고천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통이 온몸을 치달았지만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이서준이 허리춤에서 급하게 권총을 찾고 있던 것이다.
탕!
이내 한 발이 발사됐지만 적중하지는 못했다.
“뭐, 뭐야……!”
이서준이 권총을 든 손은 고천수에게 잡혀 엉뚱한 방향으로 돌아가 있었다.
“뭐냐고? 네 잃어버린 인간성!”
고천수가 이서준의 얼굴에 니킥을 먹였다.
“크악?!”
“총 내놔, 이 새끼야!”
누적 기록에 의한 신체 능력 1.5. 이 정도면 선빵을 때린 고천수가 유리했다.
탕! 탕! 탕!
이서준이 총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며 몇 발이나 더 쏘아 댔다.
탕! 탕! 딸깍!
고천수는 총구가 자신과 경찰서장을 향하지 않도록 꽉 잡고 놔주지 않았다.
“아?!”
하지만 순간 뜨거운 총열에 손이 닿은 고천수가 권총에서 손을 뗐다. 이서준은 기회라는 듯 눈에 불을 밝혔다.
“넌 죽었다, 이 새끼야……!”
팅.
그렇게 이서준이 잡았다가 놓은 방아쇠가 힘없는 소리를 울렸다.
“뭣?!”
“방금 소리 못 들었냐?”
이미 권총의 총알은 다 소진되었다. 고천수는 주먹을 쭉 뒤로 뺐다.
“이건 정민규의 몫!”
파악!
펀치에 맞은 이서준의 고개가 돌아갔다.
“이건 너한테 당한 경찰서장의 몫!”
퍽!
한 대 더 이어진 펀치에 이번엔 고개가 반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건 내가 개고생한 값이다아!”
“크악!”
턱을 제대로 때린 어퍼컷에 이서준이 완전히 나동그라졌다.
쿠당탕!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하지만 더 요란했던 게 있다면…….
“총소리!”
고천수는 이서준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가 낸 총소리에 모두가 몰려올 거다!”
장만철에게 사람들을 데려오라고 했지만, 경찰들도 같이 올 것이었다.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경찰서장이 필요했다.
“열쇠 내놔.”
의자에 수갑을 찬 채 묶여 있는 남자를 힐끗 본 뒤, 고천수가 이서준에게 요구했다.
“……하.”
“한숨 쉬지 말고 열쇠 내놓으라고.”
일견 정신이 없어서 말도 못 듣는 듯 보였지만, 고천수는 이서준이 무슨 짓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경을 헤매는 척 자신의 전기 충격기로 손을…….
따다다닥!
“크아악?!”
“어딜.”
고천수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또 다른 전기 충격기로 이서준을 먼저 지져 버렸다.
“끄악! 끄아아악!”
“아직 두 번밖에 안 댔어.”
고천수는 꿈틀대는 이서준을 보다가, 그의 허리에서 열쇠뭉치를 빼어 냈다.
“왜 이렇게 많이 달고 다녀.”
의자 앞으로 가자 경찰서장의 모습이 더 잘 보였다.
“약간 닮았나?”
허영웅처럼 약간은 순한 느낌의 인상이었다. 다만 턱 선이 굵고 이목구비가 뚜렷해 훨씬 우직해 보였다.
“이런 사람을 아주 엉망으로 만들어 놨네.”
숨을 헐떡이는 경찰서장을 풀어 주고 상태를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의식이 조금 남아 있었다.
“자네는…… 누구지?”
평소라면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마침 모범 답안이 있었다.
“허영웅 씨 지인입니다. 허영웅 아시죠?”
“아아. 그 녀석…….”
경찰서장의 얼굴에 쓴웃음이 퍼졌다.
“일 냈구만. 그녀석이 이런 동료를…….”
“뭐, 동료랑은 약간 다르긴 한데.”
고천수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들었다.
“어쨌거나 오기 전에 확실하게 마무리 짓죠.”
-드디어 기다리던 게 시작하나요!
-두근거림.
미친 반응을 얻으며 고천수는 다시 이서준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뭐, 총 맞는 데 이의는 없으시죠?”
“아아, 아…….”
“네네. 빨리해 드릴게요.”
장전된 상태의 권총을 들이밀자 이서준의 동공이 커졌다.
“자, 자자잠까아아안…….”
“빵.”
흠칫.
고천수가 입으로 낸 소리에 이서준이 숨을 헉 삼켰다.
그 반응에 미소를 지은 고천수는 총구를 이서준의 곳곳에 가져다 댔다.
“팔? 다리? 가슴? 아니면…….”
마침내 머리에 가져가자 이서준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고작 한 발에 이렇게 쫄 거면서, 내 쪽으로는 몇 발이나 쏴댄 거야? 응?”
키득거리자 이서준은 이제 사색이 되어 갔다. 그의 입에서는 “사, 살려만 줘. 살려만 주세요.” 하는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띠링! 니목에혓바닥 님이 1젠 후원! - 낼름.]
“아, 낼름 님 감사합니다.”
후원까지 받아서 미친 듯이 밝아진 고천수의 표정을 보며, 이서준은 마침내 바지를 적시고 말았다.
“아이, 왜 적시고 그러시는지.”
고천수는 채팅창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형님들, 아직 젠 주실 때 아닙니다.”
계획된 일은 더 남아 있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했던가.
누군가 급하게 계단을 뛰어내려 왔다. 많은 수는 아니었다.
단 하나였다.
“왔나.”
고천수는 문 옆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내려오는 누군가를 천천히 기다렸다.
“-아니, 과장님! 경찰서장이……!”
타앙!
털썩. 고천수가 든 권총에서 나는 초연과 함께 본관 앞에서 달려온 문지기 경찰이 바닥에 쓰러졌다.
“배신자가 말이 많네.”
고천수는 시선을 싸늘하게 내리깔았다.
사람들이 이쪽으로 몰려오는 것을 보며 가장 먼저 이곳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이 작자였던 것이다.
-와, 씨바 소름.
-천수야,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무조건 명중하려고 바로 옆에서 쏜 거 보게.
[띠링! 니목에혓바닥 님이 1젠 후원! - 낼름.]
[띠링! 난종말이좋아 님이 1젠 후원! - 배신자의 파멸이다.]
[띠링! 빛나는조이스틱 님이 1젠 후원! - 그래, 이거지.]
[띠링! 온리원 님이 1젠 후원! - ^^]
잠시 두 팔 벌려 후원을 환영하던 고천수는, 순간 정신을 번뜩 차리고 문지기 경찰의 권총을 주워들었다.
“6발.”
안에 들어 있는 장탄수를 확인하고 허리춤에 채웠다.
그리고 여전히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경찰서장 곁으로 가 바닥에 떨어진 수갑을 주워들었다.
그 수갑은 곧장 이서준에게 향했다.
“저쪽 서장님께서 보내는 겁니다.”
철컥.
이서준에게 수갑을 채우고, 그의 전기 충격기도 빼앗았다.
“대충 정리됐나.”
채팅창의 $를 눌러서 젠을 확인해 보니 11개가 모여 있었다.
-한도초과 : 정보 이제 풀까?
그때 올라오는 채팅을 보고 고천수는 씨익 미소를 그렸다.
“잠시만요. 급할 거 없죠.”
주위로 몰려오는 소란스러움이 커졌다. 혹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고천수는 바깥으로 나갔다.
별관으로 헐레벌떡 달려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시민과 경찰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있는 것을 보고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끝.’
경찰서장이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배신자들이라면 이렇게 엉터리로 대응하지는 않는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고 이미 마무리를 지었다고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확인은 해 두는 편이 좋았다.
“이, 이보게!”
장만철이 다가오며 소리쳤다.
“무사한가?!”
“예, 보시다시피.”
그러면서 고천수는 별관으로 시선을 향하며 말했다.
“이서준 과장이 경찰서장님을 피떡으로 만들어 뒀기에 잡아 뒀습니다. 가 보시죠.”
“뭐, 뭐?!”
“경찰서장님이 여기에……!”
놀란 경찰들과 시민들이 한데 몰려 지하로 들어갔다.
“어둑어둑하네.”
하늘을 올려다보던 고천수는 드디어 기다리던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정보창.”
그렇게 확인한 내용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경악을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