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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4화 (14/224)

014. 재진입

명서 초등학교.

좀비 사태를 수습한 사람들은 여전히 뒷정리를 하는 중이었다.

“이 지랄이 났는데 쟤들은 뭐 하는 거야.”

“믿어도 되는 거야, 이거?”

“경찰서장도 없고…….”

경찰들만 따로 모여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여기저기서 불안감이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이, 장 씨요.”

학교 근처에서 장사를 하던 이들이 명서 중국집 장만철에게 달라붙었다.

“이거 괜찮은 거 맞는기요?”

“그러니깐. 엄청 불안하다구.”

“뭘 나한테 묻소.”

장만철은 한숨을 쉬며 답했다.

“나도 아는 것 하나 없구만.”

“우리가 뭐 자네한테 정답 들으려고 그러나.”

“그래, 민규도 죽은 판에 자네는 불안하지도 않아?”

그 말에 장만철은 인상을 팍 구겼다.

“민규 얘기는 왜 하나?”

“아니, 그렇잖아. 무조건 우리 여기다 욱여넣기만 하고!”

“구해 주지도 못했던 거잖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여기에 모여 있는 경찰들은 괴물들을 충분히 막아 낼 정도의 병력은 아니었다.

하물며 밖에 있는 사람들은 구해 낼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여기서 나가야 하는 거 아냐?”

“민규 대신 그 괴물을 잡아 준 사람도 나갔잖아.”

“그래, 맞아.”

사람들의 말에 장만철은 잠시 침음했다.

정민규를 잡은 그 남자, 고천수가 분명히 뭔가를 부탁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감시를 해 달라고 했지.’

장만철은 저 멀리에 있는 경찰들을 내다보았다.

‘대체 뭘 봐 달라는 건지…….’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경찰들은 저들끼리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토로하고 있었다.

“어떻게 좀비가 생긴 거야? 검사 제대로 안 한 거야?”

“뭔 소리야. 검사는 제대로 했어.”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이 난리가 났는데.”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통제도 겨우 했다. 생존자들은 현재 상황에 대해 의구심과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든 상태였던 것이다.

“다들 진정하지.”

그때, 경비교통과 과장 이서준이 말했다.

“일단 문에서 문제가 일어났을 리는 없어. 내가 맡고 있었으니까.”

그는 경찰서장 다음으로 이곳에서 높은 사람이었다. 비슷한 직급들은 생존해서 이곳에 오지 못했다.

경찰서장까지 실종됐으니 사실상 그가 이곳의 전권을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인물이 입구를 맡았다.

그걸 강조한 이상, 누구도 더 이상 출입구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고 의견을 제시할 수는 없었다.

“문제 해결은 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다들 사람들 진정시키는 데 주력해.”

차분한 이서준의 말에 다들 분위기가 좀 진정됐다.

그랬다. 이곳에 모여 있는 이들은 경찰이었다.

당황스러운 상황은 많이 경험했다. 이 정도에 무너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 알겠습니다. 한번 다시 잘해 보겠습니다.”

“액땜한 걸로 칠 수 있겠죠.”

“맞습니다. 괜히 호들갑 떨 건 없을 거예요.”

의지를 다지는 그들의 모습에 이서준이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나는 경찰서장님이 계시던 곳에서 찾아볼 게 있으니까. 자네들한테 잠시 맡기지.”

“네, 저희한테 맡기십쇼.”

“잘해 보겠습니다.”

확답을 받은 이서준은 다른 경찰들을 남기고 학교의 본관으로 걸어갔다.

거기에는 그새 본관 앞으로 돌아온 문지기 경찰이 있었다.

“과장님.”

문지기가 입을 열자 이서준이 거기에 멈춰 섰다.

“뭐지. 진경호한테 연락이라도 왔나?”

“네. 경찰서장을 옮겨야 한답니다.”

그 말에 이서준은 한숨을 쉬었다.

“대체 뭐야?”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에만 경찰서장을 옮기기로 했다.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기가 쉽지 않아서 신중하게 행동하고 있건만, 왜 이렇게 상황을 어렵게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진경호가 누군가에게 쉽게 당할 인물은 아니었다. 고천수라는 이름의 남자를 생각이 신경이 곤두섰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처음부터 심상치는 않은 놈이라고 생각했건만…….”

어쨌거나 지체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혹시나 일이 틀어지면 써먹을 데가 있을까 싶어 경찰서장을 살려 뒀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처리해 버릴 수도 없었다. 누구도 찾지 못하게 빼돌려서 없애야 했다.

이 명서 초등학교는 자신이 먹는다.

경찰들의 위에 서서 외부에서 들어온 인원들까지 전부 하나씩 밑에 둘 생각이었다.

“일단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그렇게 알아 둬. 알지? 우리 셋, 한 배를 탄 거. 집중하자고.”

진경호는 그렇게 본관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거기서 다른 층으로 이동하진 않았다.

뒷문으로 나온 진경호는 남들 모르게 별관으로 향했다.

그때, 본관의 앞쪽 수풀에는 장만철이 숨어 있었다.

‘뭐야……!’

내용을 다 엿들은 장만철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새끼들 진짜 뭔가 있는 거였어!’

따라가야 했다. 눈치를 보던 장만철은 문지기가 본관 문 앞에서 떨어져 이동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쪽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장초를 주우려고 하는 것이었다.

‘지, 지금이야.’

장만철은 몰래 본관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서준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썅……!”

조용히 욕지거리를 내뱉던 장만철은 뒷문이 살짝 덜렁거리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곧장 그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그리고 별관으로 향하는 이서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한 번 살핀 장만철은 그렇게, 이서준을 따라갔다.

***

명서 초등학교가 저 멀리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정보창.”

고천수의 말에 따라 정보창이 나타났다.

[정보 1 : 명서 초등학교에 있는 경찰서장 보호 필요. 오늘 밤 위기에서 사망 시 도시 치안이 급격히 악화.]

“하, 시바.”

중요한 내용이 앞에 있었다.

“왜 이걸 진즉에 몰랐을까.”

‘명서 초등학교에 있는’이라는 표현은 괜히 있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허영웅 씨!”

어쨌거나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만이었다.

진경호 덕분에 알았어도 순서만 조금 바뀔 뿐이었다.

“이제 곧 명서 초등학교에 들어갈 겁니다. 지금부터 잘 들어 두세요.”

끼익.

그 말과 동시에 차를 세운 고천수가 곧장 밖으로 나가 뒷좌석 문을 열었다.

“여기서부터 운전은 허영웅 씨가 할 겁니다.”

“예? 제가요?”

“네.”

고천수가 몰고 들어가도 의문만 쏟아질 게 뻔했다.

그걸 일일이 다 해명해 줄 시간은 없었다.

“들어가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묻거든 그냥 불한당들에게 당한 거라고 해 주세요.”

“불한당…….”

“명심하세요. 내막을 다 파헤치기 전까지는 제가 말한 내용에 대해 모른 척해야 합니다. 허영웅 씨는 치료하는 척 진경호를 잘 잡고만 있으면 돼요.”

진경호 혼자 일을 벌이지 않았다는 것쯤은 고천수도 잘 알고 있었다.

공모자가 더 있을 테니 자신은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리고 일을 처리하는 게 나았다.

“으음.”

허영웅은 조수석에 앉아 있는 진경호를 바라보며 신음했다.

“정말 괜찮을까요?”

“나약한 마음은 고이 접어 두세요.”

진경호는 경찰서장을 해치려고 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허영웅 본인도 죽을 뻔했지 않은가.

“허영웅 씨가 시선을 끌면 전 알아서 진입할 테니까 이쪽으로 옮겨 오세요.”

-진경호 움찔대는데?

-깨어나는 거 아님?

고천수가 시선을 돌리자 과연 진경호가 몸을 일으키려고 하고 있었다.

이럴 때 해야 될 일은 정해져 있었다. 고천수는 조수석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형님들, 선택지 드립니다. 1번. 말로 다시 자라고 타이른다. 2번. 전기 충격기로 꿀잠에 인도한다.”

-1.

-1.

-1.

“예, 2번.”

덜컥.

조수석 문을 열자 진경호가 실금같이 뜬 눈으로 중얼거렸다.

“너, 이 개새…… 끄루우우우루루룩?!”

따다다다다닥! 따다닥! 따다다닥!

전기 충격기의 소리와 함께 진경호가 몸을 들썩거렸다.

-부정투표 ㅅㅂ

-진경호 자반고등어 같당.

“이럴 땐 그냥 고등어라고 하셔야죠.”

진경호는 물가에 튀어나온 싱싱한 생선마냥 팔딱대다가 곧 조용해졌다.

“형님들, 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승산 좀 있겠습니까?”

-너 하기 나름이지. 부정투표 새꺄.

-진경호 잡았으니까 한 발만 잘 꽂으면 될 듯.

-들어갈 때 동쪽 개구멍 추천. 거기 개꿀임.

역시 시청자들은 그냥 스트리머를 놀려먹기만 하는 존재는 아니었다.

‘몰입하면 허무하게 끝나는 거 겁나 싫어하거든.’

직접적인 스포일러는 하지 않아도, 이제 단서는 반드시 뿌리게 되어 있었다.

고천수는 씩 미소를 그린 뒤, 다시 뒷좌석으로 향했다.

“허영웅 씨. 저희 빠르게 좀 진행하죠.”

“아, 아아. 네.”

진경호를 대하는 것에 놀라 있던 허영웅이 서둘러 운전석으로 옮겨 왔다.

“그럼 아까 말씀하신 대로 하면 되는 거죠, 고천수 씨?”

“네, 잘 부탁합니다. 저도 바로 들어갈 테니까.”

담담하게 대답하는 고천수를 본 허영웅은, 이제야 결심이 섰는지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뒤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덜컥.

기어가 들어가는 것을 본 고천수가 차에서 물러났다.

허영웅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를 몰아 명서 초등학교로 향했다.

“그럼 형님들, 저희도 슬슬 진입해 보죠.”

***

부아아아앙.

명서 초등학교로 지프차 한 대가 돌진했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찰들은 놀라 물러섰고, 안에 있던 사람들도 예상치 못한 소동에 혼비백산했다.

“접니다!”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한 명의 젊은 경찰관, 허영웅이었다.

“남부 파출소 순경, 허영웅입니다!”

“남부 파출소?”

“생존자가 더 있었다고?”

눈을 크게 뜨며 그의 주위로 다른 경찰들이 몰려들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거기 전원 몰살 아니었나요?”

“그러니까 말이야.”

“근데 이 지프차는…….”

진경호가 타고 나간 차라는 것을 안 경찰들이 서둘러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니, 소장님!”

그 안에는 진경호가 실신한 상태로 늘어져 있었다. 경찰들은 서둘러 조수석 문을 열고 진경호의 상태를 살폈다.

“뭐, 뭐야. 수갑을 차고 있어!”

손이 박살 났기 때문에 열쇠 없이도 빼낼 수는 있었다.

진경호를 조수석에서 내려 땅바닥에 눕힌 경찰들은 허영웅에게 시선을 보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완전히 박살이 나 있는데?”

허영웅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차를 발견했을 때부터 이런 상태였어요.”

“뭐라고?”

“대체 누가…….”

경찰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허영웅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명서 초등학교에 있던 일반인들도 이 광경을 보며 불안에 떨고 있었다.

“저기, 다들. 일단은 치료를 위해 옮기도록 하죠. 다들 보기도 하고 있고…….”

허영웅의 말에 경찰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돌렸다.

“그, 그래, 일단 옮겨야…….”

“다들 도와!”

그렇게 경찰들은 진경호를 데리고 발을 뗐다.

허영웅은 그들을 쫓아가면서 어딘가로 시선을 보냈다.

‘고천수 씨, 지금입니다.’

***

고천수는 명서 초등학교 개구멍에 몸을 들이고 있었다.

“아, 망할.”

나무에 가려진, 어설프게 찢어져 있는 그물망을 통과하는 것이었는데 제법 버거웠다.

“좀만 더 찢어 놓지……!”

체구가 그렇게 큰 편도 아닌데 몸이 끼었던 것이다.

-어이구, 좀 적당히 먹지.

-민규가 살 불려 놨네.

그 말에 고천수가 이를 악물었다.

“민규 씨 복수해 줄 거니까 걱정 마십셔.”

-아니, 네가 버린 거 아니냐? ㅋㅋ

-ㅋㅋㅋ 복수라고 하기엔 쪼큼.

애써 무시하고 통과를 완료하자니 웬 빨랫줄이 보였다.

“뭐야, 이거.”

알고 보니 숙직실이 마련된 건물이 근처에 있었다.

빨랫줄에는 예전에 걸어 둔 듯한 모자와 옷들이 몇 개 걸려 있는 상태였다.

“마침, 잘됐네.”

모자를 쓴 뒤, 후드 티까지 입어서 머리를 가렸다.

가까이서 보지 않는 이상 얼굴을 알아보긴 어려울 것이었다.

“가 볼까.”

일단 가장 가까운 본관 쪽으로 가 보았다. 입구에는 여전히 그 문지기 경찰이 서 있었다.

운동장 쪽을 내다보자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허영웅이 타고 온 지프차, 그리고 진경호를 옮기고 있는 경찰들이 목격됐다.

어디서나 눈에 띌 법하게 듬직한 체형인 장만철은 보이지 않았다.

‘운동장도 본관도 아닌가?’

감시를 하라곤 했지만 접선 방법을 마련해 놓지는 않았다.

‘괜찮아.’

여기 없는 것만으로 역추적할 수 있었다.

“별관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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