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500%
“뭐야, 저 새끼.”
지프차 안에서 진경호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친놈 아니야?”
망치 하나 들고 고천수는 무쌍을 찍고 있었다. 생긴 건 좀비들한테 밀리게 생겼는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직접 쳐 버려야겠어.”
세계가 뒤집힌 마당에 아직도 경찰 노릇을 기대하는 이들이 있었다. 경찰서장은 그에 부합하려고 했지만, 진경호는 아니었다.
“방해하는 놈은 다 죽여 버릴 거야!”
덜컥덜컥.
기어를 바꾼 진경호는 차를 다시 발진시켰다.
목표는 당연하게도 고천수였다.
부아아아앙!
미끄러지듯 출발한 지프차가 곧장 고천수를 향했다.
“시발!”
고천수가 차를 보고 한쪽으로 몸을 날렸다. 마치 스프링처럼 튀어나가는 고천수를 보며 진경호는 눈을 크게 떴다.
“뭐냐고, 이 새끼!”
조금 전의 모습은 명백하게 이질적이었다. 저 몸을 가지고 저렇게 차를 피하는 건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걸로 끝날 줄 알고……!”
진경호는 차를 다시 뒤로 뺐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고천수에게 차를 향했다.
“완전히 밟아 줄 테니까!”
콰직!
뭔가 완전히 밟히는 소리가 났다. 진경호는 순간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그렇지!”
일반적인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여기서 완전히 묻어 버리고, 자신은 돌아가서 명서 초등학교를 장악하면 되는 것이었다.
“어디 한번 꼬락서니 좀 볼까?”
진경호는 차를 뒤로 물렸다. 그러자 차에 치였던 좀비 몇이 질질 끌려나왔다.
“어?”
하지만 고천수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진경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차를 더 빼도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자 진경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크아아아아.
유리창으로는 비틀비틀 일어나는 좀비들만 보일 뿐이었다.
턱!
그때였다. 운전석 창문에 누군가 달라붙었다.
“흐악!”
그건 다름 아닌 풀떼기에 뒤덮인 고천수였다. 깜짝 놀란 진경호는 차를 더 후진시켰다.
쾅! 콰직!
고천수가 차를 쫓아오며 운전석 창문에 팔꿈치를 휘둘렀다.
“흐아아악! 이 새끼 뭐야!”
콰창!
마침내 창문이 깨지고 고천수의 손이 들어왔다. 자신을 잡으려고 하는 고천수의 손을 어깨로 쳐 내며 진경호는 허리춤을 뒤적거렸다.
“놔! 놔아!”
그는 당황하며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꺼져!”
바로 한 발 쏘았지만 그새 고천수가 차 밑으로 사라졌다. 진경호가 고천수를 밀어 버리려고 바로 핸들을 잡는 사이 고천수는 다시 창문 옆에 나타나 팔을 내밀었다.
“와아아아악!”
그의 팔을 재차 걷어 내며 진경호는 완전히 질린 표정을 지었다.
고천수는 그가 상상하던 것보다 무서운 사람이었다.
탕!
총을 쏘는 순간 또다시 고천수는 차 밑으로 사라졌다. 진경호는 차를 빠르게 뒤로 물렸다.
이번엔 전속력이었다.
부아아아아앙.
뒤를 보면서 후진을 하다가 다시 앞을 바라보니 멀찍이서 뛰어오는 고천수가 보였다.
고천수의 표정은 완전히 열 받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새끼……!”
자신이 겁에 질렸다고 느끼자 진경호는 반발심이 일었다.
“지금 누굴 상대로!”
상대할 방법은 있었다. 이곳에 미리 함정은 파 둔 상태였다.
고천수가 계속 쫓아온다는 것을 안 진경호는 빠르게 차를 후진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고천수는 득달같이 차를 따라왔다.
부아아아아.
진경호는 대나무 숲을 거꾸로 빠져나오자마자 점찍어 둔 컨테이너박스로 차를 몰았다.
“내가 똑똑히 가르쳐 주지!”
그리고 컨테이너 박스로 고천수가 따라붙을 때쯤 글러브 박스에서 버튼 하나를 꺼내 눌렀다.
덜컹.
신호를 받은 컨테이너 박스가 문을 개방했다.
크아아아아아.
그 안에 있던 것은 다량으로 모여 있던 좀비들이었다.
“후회해도 늦었다……!”
진경호는 비열하게 웃음을 흘리며 장소를 빠져나갔다.
남은 것은 수많은 좀비들과 고천수뿐이었다.
-당했네.
-야, 이게 다 몇이냐.
-천수야, 안 될 것 같으면 그냥 뛰어라.
그의 눈앞에 채팅창이 빠르게 지나갔다. 하지만 고천수는 망치를 들어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2분 내에 조집니다.”
[어그로 40 - 02:03]
500%.
***
세상엔 이런 말이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크어아아.
입에 망치가 낀 좀비가 어물쩍하게 괴성을 뱉었다. 고천수는 팔뚝에 힘을 주고 망치를 빼냈다.
콰작!
입이 아작 난 좀비가 이리저리 비틀대다 쓰러졌다.
고천수는 엎어지며 좀비의 머리통에 망치를 박아 넣었다.
사살 완료.
크아아아아.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좀비들의 수는 많았다. 물량으로 밀고 들어오는 좀비를 보며 고천수는 이를 악물었다.
‘불리해!’
힘은 강하지만 부상을 입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지키기 어려웠다.
고천수는 좀비들을 밀쳐 내다가 눈을 크게 떴다.
지프차가 시야가 닿는 곳에 멈춰 서 있었다.
이쪽이 좀비에 당하는 것을 구경이라도 하려는 듯.
[어그로 40 - 00:45]
어그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이 종료되어도 다시 어그로가 켜지긴 하겠지만, 고천수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저 새끼부터…… 조진다!’
어그로 상태가 최상일 때 잡아야 했다.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이 두 다리에 담겼다. 종아리와 허벅지가 터질 듯이 근육을 움찔거렸다.
500%.
폭발적으로 성장한 신체가 마침내 뛰쳐나갔다.
100m 14초. 고천수의 원래 달리기 기록은 무의미했다.
그가 있던 곳에서 지프차가 서 있는 곳까지는, 지금 단 몇 초에 불과했다.
“잡았다……!”
도달. 질주를 마친 고천수는 운전석 옆에 미끄러지며 섰다.
“어, 경찰서장 명서 초등학교에서 옮…… 뭐야!”
장거리 무전기로 뭔가를 지시하던 진경호가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이 새…….”
진경호는 무전기를 놓치고 급하게 다시 총을 들어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고천수가 창문 안에 몸을 집어넣는 속도가 더 빨랐다.
“끄, 끄아아아아악?!
진경호의 손은 고천수에게 붙잡혀 비틀렸다.
-천수야, 다른 손!
채팅 하나를 확인한 고천수가 진경호의 다른 손을 붙잡았다.
그가 전기 충격기를 꺼내들려고 하고 있던 것이다.
“진경호. 네가 이길 수 있을 줄 알았어?”
고천수의 말에 진경호는 완전히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뭐, 뭐야. 너 도대체 뭐야!”
“스트리머.”
고천수는 진경호의 양손을 구겨 버리며 말했다.
“형님들한테 잔뜩 사랑받고 있다고.”
“끄아아아아아악!”
진경호가 고꾸라지는 사이 뒤에서는 좀비들이 몰려왔다.
[어그로 22 - 10:00]
어그로가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수치가 경신된 것을 보며 고천수는 운전석 안에 아예 몸을 들여놓았다.
“내가 운전할 거니까 꺼져.”
고천수는 거의 기절 상태인 진경호를 조수석에 옮겨 놓고 자신이 운전석에 앉았다.
“일만 복잡하게 만들고 말이야.”
머리를 쓸어 올린 고천수는 차에 기어를 넣고 액셀을 밟았다. 4륜구동의 차체가 힘 좋게 바퀴를 굴렸다.
“쇼타임.”
콰앙! 쾅! 쿠웅!
지프가 괜히 지프가 아니었다. 남아 있는 좀비들은 차와의 정면 승부에서 전부 튕겨져 나가거나 요철이 되어 버렸다.
부아아아아아아.
하나하나 볼링 핀처럼 좀비들을 쓰러뜨린 고천수는 그대로 차를 몰고 대나무 숲으로 향했다.
“이 양반 살아는 있나 몰라.”
안전하게 혼자 컨테이너 하우스 안으로 들어갔으면 모르겠지만, 안에 좀비라도 딸려 들어갔다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끼이익.
목적지에 도달한 고천수는 차 안에 수갑을 찾아냈다.
-그거 차려고?
-양손에 차고 여기서 빠져나가면 2젠 줌.
-나도 1젠 걸음.
“아니, 형님들.”
그딴 짓을 할 만큼 여유롭진 않았다.
“차라리 발목에 차 보라고 하죠, 왜.”
헛웃음 한번 흘려 주고 다음 순번으로 넘어갔다.
고천수는 진경호의 손목에 수갑을 채워 조수석 손잡이에 달아 놓았다.
“뭐, 이럴 필요도 없나?”
진경호의 손은 완전히 만신창이였다. 솔직히 수갑을 채웠어도 뼈가 다 부서졌으니까 빼낼 수 있을 정도였다.
“하나 챙기고~!”
어차피 저 손으로 차는 운전 못 한다. 고천수는 진경호에게서 총과 전기 충격기를 챙겼다.
불행히도 총은 딱 한 발 남아 있었다.
역시 기본적으로는 망치를 써야 했다. 차에서 내린 고천수는 망치를 들고 컨테이너 하우스 앞으로 향했다.
똑똑똑.
“허영웅 씨?”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저, 고천수입니다.”
신분을 밝혀도 변화는 없었다. 혹시나 해서 문고리를 잡아 보았다.
살짝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고천수는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갔다.
“허영웅 씨?”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띠링! 니목에혓바닥 님이 1젠 후원! - 낼름.]
“아, 낼름 님 감사합니다.”
고천수는 무심코 큰 소리로 내뱉고는 이내 인상을 구겼다.
“아, 정말. 낼름 님, 저 빡 집중하고 있는데 인사하게 만들고.”
-시청자 혼내는 거야?ㅋㅋ
-심지어 이름도 틀림ㅋㅋㅋㅋ
-ㅋㅋㅋㅋ 미친놈.
숨을 가라앉힌 고천수는 얼굴에 자본주의적인 미소를 띠었다.
“낼름 님한테 빡 집중하고 있었다고요. 예? 1젠 감사합니다.”
또 이름을 틀렸다며 채팅창이 난리가 났지만 지금은 정말로 상황에 집중해야 했다.
고천수는 검지를 세워 입술에 붙였다.
“쉿.”
안에서 뭔가 소리가 들렸다. 고천수는 귀를 기울였다.
‘설마 좀비가 된 건 아니겠지?’
망치를 높이 치켜들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어그로가 더 끌리면 바로 그가 좀비가 됐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부스럭.
하지만 고천수가 확인한 건 커다란 상자 하나였다.
“뭐야, 이거.”
고천수가 다가가 박스를 발로 차자 안에서 새된 비명이 새어 나왔다.
“흐아악!”
“허영웅 씨.”
상자 뚜껑을 연 고천수가 헛웃음을 흘리며 안을 들여다보았다.
“여기서 뭐 하고 있습니까.”
허영웅은 상자 안에 웅크린 상태로 있었다. 어디서 찾아낸 건지 털모자까지 눌러 쓰고 있어서 소리를 제대로 못 들은 듯했다.
“나오세요.”
고천수에게 끌어올려진 허영웅은 상황을 확인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고, 고천수 씨. 어떻게 여기에…….”
“다 쓸어 버리고 들어왔죠. 이렇게 겁먹고 있으면 어떡합니까? 뭐, 멀쩡하니 다행이지만.”
“으, 으음.”
허영웅은 신음처럼 내뱉었다.
“무서웠거든요. 총알도 다 써 버려서……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일단 빨리 나오시죠. 시간은 없거든요.”
고천수는 허영웅을 밖으로 끌고 나왔다.
함께 차에 타던 도중, 조수석에 먼저 타 있던 진경호를 확인한 허영웅이 화들짝 놀랐다.
“아니, 소장님!”
손이 박살 난 채로 기절해 있는 진경호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허영웅이 물었다.
“대체 소장님한테 무슨 일이 있던 거죠? 좀비! 좀비인가요?”
“…….”
“완전히 박살이 나 버렸어……. 대체 무슨 일이.”
“일단 타시죠.”
고천수는 기어를 잡은 채로 나지막이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됐는지 설명을…….”
“타세요.”
“뭐가 대체…….”
“허영웅 순경님.”
고천수는 차분히 뒷좌석을 가리켰다.
“거기 앉아서 물어도 늦지 않아요.”
심정은 이해하지만 빨리 떠나야 하는 판에 진정할 시간을 따로 내어줄 수는 없었다. 이 정도는 경찰다운 담력으로 넘길 수 있길 바랄 뿐이었다.
고천수가 그렇게 우선순위를 정리해 주자, 허영웅은 머쓱한 표정으로 일단 뒷좌석에 올라탔다.
“설명은 가면서 해 줄 테니까.”
탑승을 확인한 고천수가 차를 출발시켰다.
‘여기에 경찰서장은 없다.’
운 좋게도 진경호가 하는 말을 주워들었다.
진경호가 손에서 무전기를 곧장 놓았기 때문에 명서 초등학교에 얼마나 상황이 전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야, 근데 경찰서장 구해야 알려 주는 거야?
-그러게 곰 인형 여기에 있잖아.
-한도초과 : 근데 미션 아직 성공을 안 해서;
“괜찮습니다, 형님들.”
지금 당장은 괜찮았다.
어차피 명서 초등학교에 첩보원을 남겨 놓고 있었다. 당장은 그걸로 충분했다.
“고천수 씨.”
차가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자 허영웅이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가요? 소장님 괜찮으신 거예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소장은 경찰서장을 배신했다.
수장을 쳐낸 뒤에 경찰 조직을 먹고 다른 사람 따위는 돕지 않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진경호 이 사람이 다른 경찰들과 짜고 경찰서장님을 쳤어요.”
“네?!”
“그러니까 패실 거면 지금 좀 때려 놓으세요. 기절해서 몇 대 더 쳐도 몰라요.”
복수는 이제 시작됐다.
“나머지는 제가 다 조져 놓을 테니깐.”